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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연재소설

죽어 마땅한 인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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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8.16 12:20
최근연재일 :
2023.08.16 13:58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966
추천수 :
3
글자수 :
152,143

작성
23.08.16 13:11
조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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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9. 검은색 이민가방

DUMMY

* * * * *


치르르르.

귀뚜라미 소리가 풀숲 사이로 들리고,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만연한 늦여름.

해 질 녘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벤츠 E 클래스가 특유의 부드러운 승차감으로 자갈 덮인 비포장길을 부드럽게 올라간다.

언덕길을 따라 멀리 2층짜리 상가 주택과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큼지막한 창고가 보인다.


유가람은 집 앞에 있는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글로브 박스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서 품속에 넣었다.

뒷좌석 문을 열어 짐을 꺼낸다. 황금색 보자기로 쌓인 명절 선물 세트와 20L 쓰레기봉투를 들고 상가주택으로 걷는다.


위이잉 드르르륵.

집에 가까이 갈수록, 고속으로 회전하는 기계로 무언가 자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가람이 불이 켜진 1층 공방 문을 벌컥 열며 외친다.


“형 왔다. 인마!”


집주인이자, 가구 공방의 주인인 강현수는 더 안쪽의 목공 기계실에서 나무 뭉치를 자르고 있었다. 기계 소리 탓에 아무 소리를 못 들었는지, 일에 열중이다.

현수가 대패로 민 나무의 평행을 보기 위해 원목을 들어 올려 한눈을 감고서는 총을 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앞치마에서 연필을 꺼내더니 나무 위에 동그라미를 몇 개 친다.


“야! 나 왔다고”


목공 기계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가람이 들어온다.

실내를 떠다니는 나무 톱밥을 손으로 내저으며 질색팔색한다.

가람이 들어오고서야 온 것을 알아챈 현수가 그제야 수압대패와 집진기를 끈다.


“오 왔냐”


“그래 형 왔다. 어휴~ 먼지. 야 이 정도 먼지면 폐암 걸리는 거 아니냐”


“나무 톱밥으로 무슨 폐암이야. 네가 폐암 걸리면 담배 때문이겠지. 이런 건 삼겹살 먹으면 기름기에 다 쓸려 내려가.”


“네가 딱~ 그 말 할 줄 알고 삼겹살 사 왔다. 나 밥 안 먹었어. 구워 먹자. 자 이건 선물.”


“오 삼겹살 좋지~ 그런데 웬 선물?”


“이번 주말부터 추석 연휴잖아. 우리 회사에 통 크게 투자해 준 이사님한테 드리는 홍삼 세트야. 아! 이것도.”


가람이 상의 안주머니에서 종이봉투를 꺼낸다. 백화점 상품권이다.


“오~ 고마워. 캬~ 투자자 대우가 확실해서 좋다니까? 풍성한 한가위겠어. 앞으로도 나한테 잘해라. 하하하.

그건 그렇고, 올 거면 연락 좀 하고 와라. 인마. 어떻게 중3 때부터 한결같이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냐.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


“아~ 오늘도 졸라 바빠서 연락할 생각을 못 했어. 말도 마라 개 바쁘다.”


매번 있는 일인 양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식사를 준비한다.

가람이 마당 텃밭에서 야채를 가져와 씻고, 냉장고에서 반찬과 쌈장, 김치 등을 꺼낸다.

현수가 화로를 꺼내 안쪽을 간단하게 닦아 내고, 숯과 석쇠를 가져와 불을 지핀다.

남자 둘이 식사 준비를 하자 순식간에 준비가 끝났다.


타닥타닥.

숯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석쇠 위의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기 시작한다.

현수가 열심히 고기를 굽는데, 가람은 의자에 기대서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문자를 치고 있다.

“뭐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카톡을 해? 왜? 와이프가 들어오래?”


“와이프 아냐. 그냥 일 때문에...”


“일? 일이면 열심히 해야지. 하하하. 그런데, 너는 유부남 새끼가 무슨 하루가 멀다고 매번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냐?”


“... 내가 말 안 했던가? 나 별거 중이고 이미 이혼 소송하고 있어. 조정 기간 중이야.”


“뭐?! 언제부터? ... 에휴.”


“하지 마! 결혼. 씨발. 형 말 들어.”


“지랄. 야 그런 건 결혼 허락받으러 가기 전에 말했어야지! 지 신혼 때는 결혼하라고 부추기더니. 이제는... 하아... 밥이나 먹어라.”


현수가 잘 구워진 고기를 가위로 잘라 테이블 중앙에 놓는다.

그중 잘 구워진 몇 점은 가람의 밥 위에 올려 준다.

가람은 배가 고팠는지 말도 없이 상추를 싸 먹으며 야무지게 밥을 먹는다. 현수도 별말 없이 식사에 열중한다.


밥을 다 먹고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가람이 의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숯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넌지시 묻는다.


“고민 있냐?”


“... 아냐.”


“우리가 몇 년 친군데. 딱 봐도 졸라 고민 많구만. 말해봐 뭔데?”


“아냐... 그냥 생각 정리가 필요한 거였어.”


“그래? 그럼 됐어. 심각해 보여서 물어봤다. 고민 상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응 알았어. 바빠 보이던데, 지금은 뭐 만드는 거야?”


“아~ 식탁 세트. 명절 전까지 납품해야 해서 열심히 만드는 중이야.”


“뭐 밤샐 정도로 바빠?”


“아. 그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명절이 있다 보니 조금 일정이 바쁘네. 나는 일할 건데, 너는 어쩔래?”


“그럼 일해. 난 좀 쉬다가 갈게. 말없이 가면 그런 줄 알고~”


“이 자식, 완전 자기 집이네. 하하하. 그래 불멍이나 하다 가라.”


현수가 안쪽의 목공 기계실로 들어가 아까 하던 작업을 이어서 한다.

수압대패로 한쪽 면을 갈아내서 평행을 맞추고, 수평이 안 맞아 보이는 부분을 찾아 연필로 표시한다. 수압대패로 더 깎아내 수평을 맞춘다.

다음은 자동대패에 넣을 차례.

레버를 돌려 두께를 조절한 뒤 자동대패에 넣으니 면이 깨끗하게 다듬어 져서 나온다.


식탁 상판의 무늬가 이쁘게 들어맞게 원목을 무늬대로 배치한 뒤, 옆으로 돌려서 옆면에 목심을 넣을 홈을 낸다.

나무를 이어 붙일 방향으로 목공용 접착제를 바르고, 홈 안에 목심을 넣었다.


탕탕탕.

망치로 나무를 쳐서 빈틈없이 붙을 수 있게 만든다. 클램프를 가져와 원목을 꽉 조이고, 튀어나온 접착제를 천 조각으로 닦아 낸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원목 식탁의 상판 집성을 끝냈다.

손끝의 감각을 집중해서 쓰다듬는데도, 턱이 만져지지 않는다.

작업이 잘 된 거 같아 기쁘다.


“하암~ 어우. 피곤해... 청소는... 내일 하자.”


현수가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다. 목공 기계실의 장비와 전등을 끈다.

1층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는데 귀뚜라미 소리 사이로 어렴풋이 말소리 같은 게 들린다.


‘잘못 들었나? 사람 목소리 같았는데? 가람이 아직 안 갔나?’


상가주택 2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집 앞의 공터로 간다.

익숙한 벤츠 승용차와 처음 보는 SUV 한 대가 전조등과 시동이 켜진 채 주차되어 있다.


‘벤츠 E클래스는 가람이 차고, 저 BMW는 누구 거야?’


두 명의 인영이 작은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하다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흠칫 놀라, 말을 멈춘다.


현수는 차량 전조등 탓에 눈이 부셔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유가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면서 먼저 말을 건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인다. 유가람이 맞다.


“현수야 이제 일 끝난 거야?”


“어. 이제 자려고, 아직도 안 가고 있었어? 옆에는 누구야?”


“아~ 우리 회사 홍 부장. 왜 말한 적 있었잖아. 내 중학교 후배, 유도했다던.

잠깐 급하게 상의할 게 있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했었어.

홍 부장, 이쪽은 내 친구 강현수. 고등학교 동창이자 우리 회사 투자자님.”


키도 크고 단단한 체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예의 바르게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홍성일입니다.”


“어... 안녕하세요.”


홍성일이 인사 후 악수를 청하자 강현수도 멋쩍게 인사하며 손을 맞잡았다.

유가람이 마치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기뻐하며 현수의 어깨를 붙잡는다.


“아! 현수야 마침 잘됐다. 정말 미안한데, 우리 지금 당장 급하게 지방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거든... 미안한데 이 차 좀 옮겨 주면 안 될까? 부탁 좀 할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차 가져다 놓으라고? 이 시간에? 싫어 인마. 차라리 대리기사를 불러”


“야야~ 미안하다. 부탁 좀 하자. 여기 너무 외진 곳이라 대리기사 안 오는 거 알잖아~ 진짜 급해. 우리 지금 바로 지방 가야 하는데, 홍 부장이 별생각 없이 차를 끌고 왔네. 한 번만.”


“아니, 그냥 여기 뒀다가 내일이든 가져가면 되잖아.”


“내일 홍 부장님 가족이 꼭 차를 써야 한대. 부탁 좀 하자. 오죽하면 내가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하겠냐. 부탁 좀 하자. 응?”


“아 싫다고. 나는 어떻게 돌아오라고. 택시도 여기 우리 동네 가자 그러면 승차 거부해 인마.”


“야! 10만 원! 10만 원 줄게. 차 주차만 해주고 사우나에서 몸도 지지고 들어와. 올 때 택시 타고 들어오고. 좀 들어줘라!~”


가람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진 현수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내놔 10만 원. 어디다 가져다 놔야 하는데?”


“홍 부장. 집이 어디랬죠? 차에 스티커가 붙어 있을 텐데. 어디 보자~ 청천동 쌍용아파트네~”


가람이 차 전면 유리에 붙어 있는 주차스티커를 확인한다.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지갑에서 오만원권 두 장을 꺼내 건넨다.

옆에 조용히 서 있던 홍 부장이 키를 건네며 말한다.


“늦은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 내에 주차 자리가 없을 겁니다. 번거롭게 아파트 주차장 들어가지 마시고 그 앞에 있는 한마음 마트 주차장에 주차하시면 돼요. 보통 그쪽은 자리 있어요.

차 열쇠는 집에도 여분이 있어서 가지고 계시다가 나중에 사장님 통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러죠.”


“고맙다 현수야. 역시 너밖에 없어. 곧 명절인데 나간 김에 사우나나 하고 들어와~ 아니면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 한 편 보고 들어오던가. 둘 다 하면 딱 좋겠네. 하하하.”


“에휴~ 넌 진짜... 청천동 쌍용아파트 앞 한마음 마트. 알았어.”


현수가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찍은 뒤, BMW X6에 올라탄다.

시동이 걸리고 차가 출발하자, 손을 흔들던 유가람의 눈빛이 차갑게 돌변한다.

가람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옆에 있던 홍성일이 라이터를 꺼내 유가람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이윽고 홍성일도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 피우기 시작한다.

둘 다 담배를 다 태우자 유가람이 말한다.


“홍 부장. 빨리합시다.”


홍 부장이 대답 없이 벤츠의 트렁크 문을 연다. 그 안으로 검은색의 커다란 이민 가방이 보인다.


쾅.

늦여름.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가득한 시골길.

트렁크 닫는 소리와 함께 2명의 인영이 큰 짐을 들고, 현수 집 뒤편의 야산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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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0. 행적 23.08.16 18 0 17쪽
31 29. 담금주 23.08.16 1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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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4. 합의 23.08.16 23 0 9쪽
25 23. 장막 23.08.16 17 0 13쪽
24 22. 교살 23.08.16 19 0 11쪽
23 21. 우리종합건설 23.08.16 20 0 10쪽
22 20. 설득 23.08.16 17 0 13쪽
21 19. 춘천 데이트 23.08.16 21 0 10쪽
20 18. 일상 23.08.16 21 0 10쪽
19 17. 그린벨트 23.08.16 22 0 14쪽
18 16. 술 장식장 23.08.16 24 1 11쪽
17 15. 선 긋기 23.08.16 21 0 10쪽
16 14. 뒷처리 23.08.16 26 0 11쪽
15 13. 대리운전 23.08.16 25 0 10쪽
14 12. 루나코인 23.08.16 23 0 10쪽
13 11. 공사대금횡령 23.08.16 23 0 11쪽
12 10. 이민가방의 정체 23.08.16 30 0 9쪽
» 09. 검은색 이민가방 23.08.16 28 0 11쪽
10 08. 압수수색 23.08.16 28 0 8쪽
9 07. 국립과학수사연구소 23.08.16 31 0 10쪽
8 06. 롤렉스의 주인 23.08.16 30 0 11쪽
7 05. 목매단 시체 23.08.16 34 0 11쪽
6 04. 더원종합건설 23.08.16 33 0 11쪽
5 03. 단서 발견 23.08.16 40 0 11쪽
4 02. 실종자 명단 23.08.16 47 0 12쪽
3 01. 신원미상의 시체 23.08.16 70 1 12쪽
2 00. 프롤로그 23.08.16 67 0 5쪽
1 0. 작품소개 23.08.16 97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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