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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연재소설

죽어 마땅한 인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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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8.16 12:20
최근연재일 :
2023.08.16 13:58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942
추천수 :
3
글자수 :
152,143

작성
23.08.16 13:26
조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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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5. 선 긋기

DUMMY

강현수가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담배와 라이터, 커피를 샀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 잔소리에 금연한 지 3년이 됐는데,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 나니 담배를 안 피울 수가 없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생각을 정리한다.


목표는 나태석의 ‘가출’

대한민국의 법에서 성인의 실종사건은 기본적으로 가출이다.

어린이, 장애인, 치매 환자 등 스스로 보호하기 힘든 사람이 아니라면 ‘시간 지나면 돌아올 거에요~’ 하며 손 놓고 있는 게 경찰의 일반적인 대응이다.


특히 남자.

남성은 자신을 보호할 힘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치안이 좋은 대한민국에서는 성인 남성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리 없다는 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성인 남성은 강력범죄에 연루된 정황만 없으면 가출로 판단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기본 대응 매뉴얼이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자면 단순 가출이 될 만한 상황과 알리바이를 만들면 된다.


경찰이 나태석의 마지막 행적이 인천항의 모텔이고, 거기서 가람과 성일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확인한다면 강력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들어갈 거다.

마지막 행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안전하게 집 근처까지 돌아간 행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증인.

현수는 이를 위해서 대리기사인 척 경찰에 신고 할 생각이었다.


‘신고 내역이 남아있으니 죽은 나태석이 쌍용아파트에 도착할 무렵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될거야. 나는 대리기사니까 차에 내 지문이 남아있더라도 정당화될 거고...

경찰이 여기서 수사를 뭉개면 나태석은 단순 가출자가 되겠지.’


경찰이 나태석의 그 이후 행적을 추적해서 인천항까지 왔음을 파악했다면?


‘인천항이 나태석의 마지막 행적이라면 중국 밀항을 의심 안 할 수가 없어. 거기에다가 회삿돈 횡령한 신고 내역이 있다는 게 확인된다면? 이건 100% 중국 밀항이지. 경찰이 밀입국 브로커를 찾는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경우의 수가 있는지 생각해 보지만 없는 거 같다.

경찰이 어느 쪽으로 수사를 하던 빠져나가는 데 문제가 없다.

의경으로 경찰 생활을 해본 현수의 경험상 60%는 ‘가출’로 결론 낼 가능성이 크다. 40%는 밀입국으로 결론 날거고.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

이쯤이면 가람과 성일도 청천동으로 돌아왔겠지.

핸드폰을 꺼내서 카톡을 킨다.

선물하기 메뉴에서 대충 저렴한 선물을 하나 사서 가람에게 보낸다.

가람이라면 지시대로 하라는 뜻인 것을 알 거다.

1분도 채 지나지 않고 선물하기가 읽음 표시로 바뀐다.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구대를 향해 걸어간다.


‘나는 대리기사다. 나는 대리기사다.’


현수는 스스로를 세뇌하며, 대리비를 못 받은 대리기사인 척 메소드 연기를 시작한다.

신고하고 나면 경찰이 나태석의 가족한테 접촉하던지, 곧 명절이니까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든지 하겠지.

뭐가 됐든 가출이나 밀항.

둘 중 하나로 결론 날 것이다.



*


혹시 누가 들을까 현수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경찰이 밍기적 거리면 가출로 처리하다가 장기 실종자가 될 거야. 내가 알기로는 최초 실종 신고일부터 5년 넘으면 그때부터는 사실상 사망자 처리돼.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해서 나태석의 마지막 행적이 인천항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금방 밀입국 브로커를 만났다는 걸 알게 될거고, 나태석이 중국으로 간 것으로 판단하겠지. 실제로는 중국에 없는 사람이니 이쪽이 더 편할 거야.”


“오오! 역시! 그래 성일아. 현수만 믿으면 된다고 했잖아. 한시름 덜었다.”


“형님... 감사합니다!”


강현수의 설명을 들은 유가람과 홍성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하는 둘의 모습에 현수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람이 죽은 일이다.

둘은 마치 셋이 공범이 됐다고 생각하는 거 같지만, 현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엄연히 방관자다.

아무리 우발적이고 설령 죽어 마땅한 사람 일지라도 살인은 살인.

현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친구의 죄를 모르는 척하는 것까지다.

모르는 척을 해야 나한테 피해가 안 오니까, 내 재산도 지킬 수 있으니까.

공범이 되는 건 다른 문제다.

얻는 이득은 없는데, 밝혀지면 감옥에 가던, 금전적인 피해를 보던 피해가 따라온다.

현수는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둘 다 이건 분명하게 하자. 어디까지나 사람을 죽게 만든 건 너희 한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거고.

나는 공범 될 생각 추호도 없어. 내가 엮인 건 증거인멸에 관련이 된 거잖아?

그마저도 가람이 네 거짓말에 속아서 말려든 거고.

하지만.

가람이 네가 구속되면 나도 마음은 편치 않으니까. 횡령범 한명으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그들이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내가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지 못 본 척 하는거야. 그리고 나는 이것만으로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인정하지?"


가람과 성일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마저 말한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야. 모르는 척 하는 거.

생각해봐. 내가 얻는 이득이 뭐가 있어? 없잖아. 나는 이 사건으로 이득 볼 게 없어.

너희야 못 받은 회삿돈도 받게 됐고, 감옥에 갈 일도 없어졌지만.

나는? 나는 오히려 최악의 경우 공범으로 감옥에 갈 리스크를 얻었지.

그것도 거짓말에 속아서. 기껏 도와줬는데, 잃는 것만 있다고? 이건 아니지.

유가람. 홍성일. 확실히 하자.

설사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나는 모르는 일인 거야.

너희 일에 나까지 엮지 마.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너희를 도왔다는 걸 잊지 말라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에 나를 엮지 말고. 다음은 없어."


현수가 진심으로 말하자, 가람과 성일이 미안함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현수야... 미안. 그리고 고맙다”


“형님, 죄송합니다.”


현수는 이 정도로 진지하게 이야기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앞으로도 가람과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면서도 몰랐던, 가람의 일면을 보게 되며 껄끄러움이 생기긴 했지만, 이 정도로 봉합할 수 있으면 그것도 선방이라고 생각했다.

투자한 돈 때문이라도 가람이와 마냥 척을 질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투자한 돈을 돌려받기 전까지는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


현수가 침체된 분위기를 환기한다.


“그래. 부탁한다. 아! 그리고 아까 경찰한테 연락 왔어. 나태석 와이프한테 차 키 건네줬고, 대리운전비용 나한테 계좌이체로 보냈대. 이제 나태석의 마지막 행적은 자기 집까지 대리운전으로 들어온 거야.”


가람과 성일의 두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에 화색이 가득해진다.

마음이 놓인 얼굴이다.


“그럼 마저 먹자고~ 그럼 성일이는 가람이 따라서 대학 입학한 거야?”


“아, 그런 건 아니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남은 식사를 마저 끝낸다.

가람과 성일은 마음이 한결 편한지, 술을 시원하게 들이켠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어느덧 한밤중이다.


“잘 먹었어.”


가람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현수가 구석진 곳으로 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가람과 성일도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가람이 현수가 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살짝 움찔한다.


“현수야 너 담배 끊은 지 한참 됐잖아?”


“너 때문에 다시 핀다.”


“...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진짜 너밖에 없어.”


“됐어. 그 이야기는.”


흩어지는 담배 연기. 먹자골목 사이로 울리는 취객들의 고성 소리.

현수는 손가락을 털어 담뱃불을 껐다. 담배꽁초가 구석진 곳으로 튕겨 날아간다.

가람과 성일도 다 피웠는지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는 발을 비벼 불을 끈다.


“그럼 이만 헤어지자고~ 내일 아침에 여자친구네 가야 해서 이만 갈게.

나는 저기 공영주차장에 주차했어. 너희는? 대리 부를 거야?”


“저는 차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가 바로 집이라 걸어가면 됩니다”


“아 너희는 들어가. 나는 잠깐 회사에 짐 두고 온 게 있어서. 챙기고 대리 불러서 갈게”


“그래~ 그럼 조심히들 들어가고~ 추석 잘 보내고~”


“응 조심히 가~”


“네 형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즐거운 한가위 되십쇼~”



* * * * *


강현수가 트럭을 집 앞마당에 세우고 2층 계단을 올라간다.

도어락의 키패드를 눌러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거실 불을 켰다.


하얀 실내를 따듯하게 밝히는 조명.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안락의자, 같은 톤의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 깔끔한 패브릭 소파. 원목으로 만들어진 장식장들까지.

괜히 미대를 졸업한 게 아니라는 듯 실내가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하다.


당연하게도 원래는 오래된 건물이라서 이렇게 깨끗하지 않았다.

구옥이라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살기 불편한 집.

곰팡이가 끊이지 않고, 냉ㆍ난방비가 엄청 많이 나오다 보니 집을 손볼 이유는 충분했다.


현수는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틈틈이 집 여기저기를 손보기 시작했다.

단열이 안되는 오래된 창호와 방문, 집 문은 업자를 불러서 싹 다 새것으로 교체했다.

서재방, 현수방, 거실, 주방 등 구획을 정해 순차적으로 철거하고 리모델링 하기를 반복했다.

단열재를 붙이고 석고보드로 벽을 다시 만든 뒤 페인트를 칠한다.

하나씩 고칠 때마다 새 가구를 만들어 채워 넣었다.

안방만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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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1. 에필로그 23.08.16 21 1 7쪽
32 30. 행적 23.08.16 18 0 17쪽
31 29. 담금주 23.08.16 18 0 10쪽
30 28. 동맹 23.08.16 18 0 11쪽
29 27. 대치 23.08.16 18 0 11쪽
28 26. 굴레 23.08.16 17 0 9쪽
27 25. 다솜분식 23.08.16 16 0 10쪽
26 24. 합의 23.08.16 22 0 9쪽
25 23. 장막 23.08.16 16 0 13쪽
24 22. 교살 23.08.16 18 0 11쪽
23 21. 우리종합건설 23.08.16 20 0 10쪽
22 20. 설득 23.08.16 16 0 13쪽
21 19. 춘천 데이트 23.08.16 20 0 10쪽
20 18. 일상 23.08.16 20 0 10쪽
19 17. 그린벨트 23.08.16 21 0 14쪽
18 16. 술 장식장 23.08.16 23 1 11쪽
» 15. 선 긋기 23.08.16 21 0 10쪽
16 14. 뒷처리 23.08.16 25 0 11쪽
15 13. 대리운전 23.08.16 24 0 10쪽
14 12. 루나코인 23.08.16 23 0 10쪽
13 11. 공사대금횡령 23.08.16 23 0 11쪽
12 10. 이민가방의 정체 23.08.16 29 0 9쪽
11 09. 검은색 이민가방 23.08.16 27 0 11쪽
10 08. 압수수색 23.08.16 27 0 8쪽
9 07. 국립과학수사연구소 23.08.16 31 0 10쪽
8 06. 롤렉스의 주인 23.08.16 29 0 11쪽
7 05. 목매단 시체 23.08.16 33 0 11쪽
6 04. 더원종합건설 23.08.16 33 0 11쪽
5 03. 단서 발견 23.08.16 39 0 11쪽
4 02. 실종자 명단 23.08.16 46 0 12쪽
3 01. 신원미상의 시체 23.08.16 69 1 12쪽
2 00. 프롤로그 23.08.16 66 0 5쪽
1 0. 작품소개 23.08.16 96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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