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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거물 연예인들이 집착하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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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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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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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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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9화 굴러 들어온 복

DUMMY

"우재목···. 배우님?"


각진 턱에 어딘지 모르게 억울하게 생긴 이목구비.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배달 대행업체 로고가 새겨진 형광 조끼 입고 있었지만, 분명 오후에 대전에서 봤던 우재목이 맞았다.


극도로 당황한 우재목은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아···. 어, 여기 사시는 줄은······."

"저도 이렇게 우 배우님을 만나 뵙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


우리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우재목이 허둥지둥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이, 이렇게 만나서 유감이지만 하하···.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다급히 돌아서려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우 배우님. 혹시 내일 잠깐이라도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만나 달라는 요청에 우재목이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오후에 간단히 커피나 한잔..."

"전 좋습니다. 이번에는 연락 꼭 받아주세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우재목이 도망치듯 현관문을 닫고 사라졌다.

손에 든 치킨을 물끄러미 바라본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인연이 있긴 한가보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꼬르륵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배를 어루만지고선 치명적인 냄새를 풍기는 치느님을 정중히 품에 안고 식탁으로 향했다.


"일단 먹고 생각하자. 어후 배고파."


어쩐지 심상치 않은 인연이 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


서울시 노원구에 한 카페.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자그마한 개인 카페여서일까?

점심이 갓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내부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리며 저 멀리서 우재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운동화에 회색 재킷 차림, 부스스한 머리는 그야말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그 자체였다.

배우라고 하기엔 너무도 단출한 모습.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우 배우님."


내 인사에 주변 눈치를 살핀 우재목이 손사래를 쳤다.


"어후, 배우 소리는 빼주세요. 동네 사람들 들을까 무섭습니다."


"그럼 그냥 우 선배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뭐···. 차라리 그게 낫겠네요."


호칭 정립이 명확하지 않은 연예계에서 애매하면 쓰는 게 선배님, 선생님이었다.


"어제 정말 놀랐습니다. 거기서 우 선배님을 마주치게 될 줄은···."


우재목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엄청 민망하네요."


"배달 일은 부업으로 하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얼굴에 그늘이 진 우재목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나는 스리슬쩍 그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황금빛 문자를 유심히 살폈다.


『浮浪人』


이것이 바로 운명의 나침판이 가리키는 우재목에게 들어온 대복이다.


'부랑인? 이건 또 뭔···."


단어 자체는 썩 긍정적 느낌이 아닌데, 빛의 색깔은 길운을 가리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일단은 우재목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근데 저는 왜 보자고 한 겁니까···?"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사람 귀찮게 하냐는 눈빛이 전해졌다.

일단 그에게 황금 문자를 본 이상, 더는 간 보지 않고 정공법으로 돌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우재목이라는 배우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묵직한 돌직구에 빨대로 커피를 마시던 우재목이 움찔했다.


"아니, 영입 생각은 없다면서요?"

"제가 아직 연차가 되지 않아 누구를 영입하고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우재목의 얼굴에서 혹시나 했다가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도 팀장님께 요청은 드려볼 생각입니다.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배우를 만났다고."


"아니, 대체 절 뭘 보고···."

"독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우재목이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


"주인공 옆에서 아부 연기 몇 번 한 게 단데 겨우 그거 가지고 말입니까?"

"연기라는 게 양보다는 질 아니겠습니까? 짧지만 임팩트 있는 연기였습니다. 계속 기억이 났을 만큼."


사실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일단 호감을 사기 위해선 이런 사탕발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 효과가 없진 않았는지 우재목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 좋게 봐주셨다니 고맙긴 한데···. 그래서 대체 뭐가 궁금한 겁니까?"

"우 선배님의 모든 게 궁금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가 반쯤 날아간 중년 남자에게 할 멘트는 아니었던지라, 주변에서 우릴 보며 수군거렸다.

내 구애 아닌 구애를 들은 우재목이 턱을 긁적이며 난감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하신 겁니까? 짧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글쎄요···. 언제부터였더라···. 하하. 워낙 까마득해서."


우재목의 눈이 과거의 회상으로 조금씩 젖어 들었다.


"첫 시작은...고등학교 연극부였습니다. 당시 좋아하던 여자애가 연극부원이라는 소리에 무작정 들어갔던 거죠. 연기라고는 꾀병 말고 해본 적도 없던 놈이 뭘 알겠습니까? 그냥 적당한 단역 하나 어거지로 맡아서 무대 위에 섰습니다."


우재목의 입가에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 대사가 채 두 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긴장되던지···. 하하,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정말 엄청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잘 해냈던 겁니다. 다 끝내고 얼마나 뿌듯하던지···. 집에 가면서 내내 웃었던 것 같아요."


아련한 추억이 담긴 눈동자가 허공을 향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이었고 희열이었죠. 그때부터였습니다. 연기라는 것에 진심으로 매달렸던 게. 좋아하던 여자가 생각도 안 났을 만큼 빠져버렸죠.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태어난 이후 무언가에 그렇게 몰입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고3이 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을 때 저는 당연하게도 연극영화과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철없는 감정적인 선택이었죠."


그때부터였다. 우재목의 미소에 씁쓸함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


"물론 대학 생활은 즐거웠습니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동기, 선배들이랑 합을 맞추는 것도 행복했죠. 정말 학교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게 '동이'라는 극단에 입단할 수 있었죠. 그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당시 '동이'는 많은 훌륭한 선배 연기자들을 배출한 전통 있는 극단이었거든요. 그 선배들을 보면서 저도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 선배들처럼 대단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큭큭.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순진했던 시절이었죠."


자조적인 얼굴로 고개를 내저은 우재목이 목이 탔던지 냉수 한 잔을 들이켰다.


"극단 생활은 즐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활고 때문에 힘들기도 했습니다. 선배들 뒷바라지부터 온갖 잡일은 도맡아 했는데 한 달에 버는 수입은 용돈보다 못했습니다. 월세 내기도 빠듯한 실정이었죠. 어쩔 수 없이 짜투리 시간을 내서 돈 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고된 생활이었지만 뭐···. 괜찮았습니다.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했으니까요."

"대단하시네요. 정말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던 우재목이 픽 웃음을 내뱉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그 거지 같은 생활이 금방 끝이 날 줄 알았습니다. 선배들도 이런 배고픈 시절은 모두 있었고 나 역시 으레 겪는 성장통 같은 거라고 생각했죠.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그 생활이 25년이나 이어질 거라고는 정말로···."


뭔가 생각이 많아진 듯, 잠깐 침묵하던 우재목이 한차례 입술을 짓이기고는 말을 이어갔다.


"20대에는 괜찮았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있었으니. 30대가 되어 주변을 돌아보니 같이 연기를 했던 동료들이 거의 남아 있질 않더군요. 주변의 시선도 바뀌었습니다. 조금씩 동정과 안쓰러움이 묻어나오기 시작했죠. 또래 친구들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때, 저는 아직도 연극판을 전전 거리며 밤에는 부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40대가 되고보니···. 그때부터는 짙은 회의감이 찾아오더군요. 물론 연기는 아직도 너무 즐겁지만···. 이 나이에 아직도 월세 걱정을 해야 하는 제 신세가···. 너무도 처량했습니다. 아니 비참하다는 말이 맞겠군요."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절절한 한(恨)이 묻어나왔다.


"주포씨는 혹시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중독된다는 말을 아십니까?"

"아뇨, 처음 들어봤습니다."


"어느 순간 두려움이 생기더군요. 아, 나는 정말 배우로서 대성할 재목이 아닌가? 혹시 나는···. 실패한 인생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대배우가 될 가능성에 머물고 싶어 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연기를 평가받는 걸 싫어하게 되고, 오디션도 피하게 되더군요. '아, 난 배우가 될 수 없는 사람인가?' 이것보다는 언젠가 대배우가 될 가능성에 머무르는 게 심적으로 편안했거든요. 아직 기회가 안 찾아왔을 뿐, 언젠가는 반드시 모두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겠다고 스스로 세뇌하기 시작한 겁니다. 일종의 정신병이 걸린 거죠."


마치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듯 우재목은 무거운 얘기를 담담히 늘어놓았다.


"사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성공한 배우가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란 걸···. 그냥 더는 상처 받지 않으려고 비겁하게 피하고 다녔던 겁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이제 그만하려고 합니다. 나이 마흔 넘게 먹고도 밥벌이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삶···. 그거 정말 못 할 짓입니다. 이제는 늙은 어머님 뵐 명목도 없어요. 큭큭큭, 앞날 창창한 젊은 양반 앞에서 왜 이런 얘길 하고 앉아있는지 모르겠는데···. 미안합니다. 날도 좋은데 우중충한 소리만 늘어놨군요."


내 눈에는 보였다.

불길처럼 타오르던 열정이 사멸하듯 어둠 속에 잠겨 가고 있는게.


"이런 패배의식 가득한 퇴물한테 아직도 관심이 있습니까?"


염세로 가득 들어찬 물음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더 관심이 생기네요.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목소리가 너무 컸을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커져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로서는 100% 진심이었으니.


25년 이상을 묵혀온 농도짙은 한(恨).

그 고된 삶에 대한 보상이라도 내리겠다는듯 굴러 들어온 대복(大福),

마지막으로 나와 이어진 인연의 끈까지.


내 생명 연장을 위해서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재였다.


"무슨···?"


어리둥절해 하는 우재목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실 정만수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데에 특별한 화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말을 들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믿음을 심장에다 박아 넣는듯한 특유의 분위기와 눈빛이 있었다.


"우재목 배우님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네···?"


"절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 하는 말이라 미덥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우재목 배우님은 반드시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지금껏 힘들게 버텨오시지 않았습니까? 더도 말고 저한테 딱 1년만 더 써주십쇼. 한평생 바라고 또 바래왔던 우 배우님의 꿈. 제가 이뤄드리겠습니다."


고저 없는, 담백하지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는 당찬 눈빛과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맹목적 신뢰가 의지가 꺾인 중년 남자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어두웠던 심연 속에서 불타 없어져 버린 잿더미에서, 다시금 불빛이 껌뻑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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