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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거물 연예인들이 집착하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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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6.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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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470

작성
24.05.0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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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화 마른 하늘에 날벼락

DUMMY

경상북도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곧 촬영 들어갑니다! 스탠바이 해주세요!"

"조명팀! 빨리빨리 움직여! 시간 없어!"


웅성웅성


지옥 같은 수습 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제대로 마주하게 된 현장이었다.

내 눈에 비친 촬영장은 마치 여러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처럼 보였다.

분장을 마친 배우들은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손떼 묻은 대본을 끊임없이 읊조렸고, 감독과 스태프들은 카메라 구도를 잡고, 조명을 조절했다.


“정신없고 아주 좋아.”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이 번잡스러움과 생생한 현장감이 내가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송주포(宋主布).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펼쳐 보이라는 뜻의 거창한 내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값이 무색할 정도로 내 초년(初年)은 무색무취 그 자체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이슈 없이 자라왔고, 으레 남들과 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공부도 적당한 수준으로 했고, 적당히 코드가 맞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이란 놈은 삽시간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대학교 4학년 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나는 내던져지듯 세상에 홀로 남게 되었다.


사람이 한번 감당하지 못할 불행을 맞이하게 되면 슬픔이란 감정도 마비가 되더라.

기가 막히니 눈물도 나지 않았다.

슬픔도, 경악도 없는 그야말로 백지상태였다.


그저 얼빠진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는 부모님의 영정사진만 봤던 것 같다.

장의차에 실린 나무관이 화장터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것을 마주하고 나서야 실감이 좀 났던 것 같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던 소중한 존재들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부모님 장례를 어찌어찌 치르고, 근 1년 정도는 집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지독한 허망함에 허우적대며 더 어두운 심연을 찾아 헤맸고, 우울이란 땅굴을 파고 또 파고들었다.

내가 누려온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이었는지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그렇게 나는 세상과 단절되어 단단한 껍질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탁자 위에 무심히 놓인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홉 살 때쯤이었나?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는데 뚱한 표정의 나와 다르게 아버지 어머니의 미소는 봄날의 햇살처럼 밝았다.


멍청한 얼굴로 하염없이 사진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끝까지 못난 아들이구나···."


방구석에 쳐박혀 궁상이나 떠는 게 과연 돌아가신 부모님이 바라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살아 계실 때도 내가 뭐라도 하는 모습을 항상 기쁜 듯 바라보셨던 부모님이셨기에.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쁘게 살아보자. 잡생각 따윈 나지도 않을 정도로."


라는 인생 목표를 세우게 된 게.


돈을 떠나서 혼이 쏙 나갈 정도로 정신없을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 해봤다.


'일단 힘을 써야 하는 막노동은 제외.'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회사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요즘은 근로 시간 준수가 철저해서 쓸데없는 여가 시간만 늘어날 게 분명했으니깐.


그렇게 종일 고민만 하다가 무심코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적막 가득한 집이 싫어 습관처럼 틀어놓은 TV 속에는 매니저와 연예인이 함께 출연하는 예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희 일이라는 게 출근은 있어도 퇴근은 없죠. 스케쥴이라는게 워낙 중구난방이라···. 어제도 겨우 4시간밖에 못 잤는걸요. 그래도 확실히 재미와 보람은 있습니다."


퀭한 몰골로 웃으며 말하는 모 연예인 매니저의 인터뷰를 보자마자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휴일도 없는 극악한 근무 시간에 하루하루가 새로운 업무라면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어릴 적부터 곧잘 아버지 차를 몰고 다녔기에 운전은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껍데기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매니저 채용 공고를 찾아 이력서를 넣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나간 면접날.


"특별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습니까?"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집에 TV는 항상 켜놓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성의 없는 답변을 면접관들은 '딱히 취향을 가리진 않나보네.' 라고 이해했단다.


"이 일을 왜 하려고 합니까?"

"매니저 일이라는 게 챙겨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생각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시종일관 담담한 내 면접 태도가 진정성 있게 느껴졌는지 면접관들의 눈빛이 호의적으로 바뀌어갔다.


이후, 딱히 특별한 질문은 없었고 군필이라는 점과 무사고 운전 경력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SH엔터테이먼트라는 제법 건실한 연예기획사 매니저로 입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월급은 170만 원 남짓. 시급으로 따지면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돈이었지만 그나마 법카 사용이 자유로워 돈 쓸 일이 많이 없긴 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습 과정 3개월.

하는 일은 단순했다.

운전, 운전, 또 운전하면서 택배기사처럼 연예인만 실어 나르면 됐으니.


확실히 매니저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다른 잡생각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물론 주된 업무는 운전이었지만 평소에 내가 하던 운전과 달리 신속 정확하게 연예인을 픽업해서 현장까지 데려다 놔야 했기에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담당 연예인 피부과 보내고, 헬스장 보내고, 연기 레슨 보내고, 가끔은 개인 볼일에도 따라가고 하다 보면 정말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다가 가수 매니지먼트 팀 인력이 부족하면 그쪽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가수 쪽은 또 신세계였지.“


배우 쪽도 바쁘긴 했지만,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가수, 특히 아이돌 쪽은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로 쪼개어 스케쥴이 잡혀있었다.


특히 행사 시즌에는 홍길동 뺨칠 정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게 되는데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서 스케쥴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온갖 신박한 쌍욕을 들어먹게 된다.


정말 바쁜 날은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2시에 업무가 종료되어도 아침 6시까지 다시 픽업하러 가야 했으니깐.

때문에 틈틈이 쪽잠이라도 자서 어떻게든 피로회복을 해야만 했다.

혹여 졸음운전이라도 하게 되면 그거야말로 대참사였으니깐.


그리고 또 하나 의외인 점이 있다면 TV에서 보는 연예인의 모습과 실제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방송에서의 모습은 털털하고, 귀엽고 애교 넘치는 요정같은 이미지인데 카메라 불이 꺼지면 접신이라도 한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바뀌며 온갖 히스테리는 종류별로 다 부렸다.


그러다가 다시 카메라 앞에서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춤추며 노래 부르고······.

확실히 연예인이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할 것도 없는데 연예인 매니저나 해볼까?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극구 만류하고 싶다. 진심으로···.


휴일은 당연히 없고 개인 시간도 없다.

퇴근이란 걸 하면 기절하듯 눈을 붙여야 했고, 일어나자마자 대충 씻고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UDT 훈련생들이 받는 지옥주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다 보니 중도 이탈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가 15명 정도 됐었는데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10명이 나가떨어졌다.


나 역시 힘들긴 매한가지였지만,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나름 만족하며 매니저 튜토리얼을 이어갔다.


이런 극한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3개월이라는 시간이 쏜살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홀로 현장을 뛰는 날이 찾아왔다.

비록 대타였지만 사수의 그늘을 벗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개가 무량했다.


픽업한 여배우가 분장에 들어간 사이.

감상에 젖어 현장 주변을 서성이다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흐르면서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

듣자하니 조폭을 연상케 하는 저 반백 발의 험상궂은 양반이 그토록 까탈스럽다는 모상호 PD인듯싶었다.

90년대에 LBS에 입사하여 사극이라는 한 우물만 판 사극의 명장이라 불리는 PD였다.


조연출과 대화를 주고받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큰소리로 외쳤다.


"자! 한 큐에 끝내봅시다! 깔끔하게! 하이~! 큐!"


감독이 큐 사인을 외치자 고풍스러운 한복 차림의 중견 배우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웬 젊은 도령 하나를 엄히 꾸짖었다.


"이런 고얀 놈! 아직 정신 못 차리고 그따위 짓거리를 하고 다닌단 말이냐!?"

"제가 또 뭘 어쨌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하라는 과거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기생년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내가 질 안 좋은 놈들이랑은 어울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더냐!?"


확실히 배우는 배우구나. 현장에서 직관하니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다.

멍하니 두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자꾸 제 인생에 간섭하려 드시면 소자도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이런 미친놈이···! 그게 애비한테 할 소리냐!? 내가 후레자식을 키웠구나!"


"그냥 저를 좀 내버려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뭬야!? 이런 고얀!?"


격분하여 얼굴이 시뻘게진 남자 배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 감정 연기 대박···."


눈에 핏줄까지 돋은 걸 보니 이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두 손을 달달 떨며 자개장 위에 올려진 순백의 도자기를 집어 든 배우.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뭐라 했느냐?“

”소자 인생, 소자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무릇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향리에 묻혀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당장 그 입 닥치지 못할까!"


부들부들 떨며 벼락같은 노성을 내지른 중견 배우가 손에 든 도자기를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 장면을 입 벌리고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외마디 당혹성.


“어라···?"


그때부터였다.

주변 움직임이 엿가락 늘어지듯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한게.

바닥과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어야 할 도자기가 탄력좋은 농구공처럼 튀어 올랐다.

추진력까지 얻어서 럭비공처럼 예측 못 한 방향으로 날아든 도자기.

당황한 내 동공에 도자기 형상이 공기를 머금은 풍선처럼 점점 커져갔다.


이 모든 과정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쨍그랑!!!


욱신거리는 머리 통증과 함께 안개라도 낀 것처럼 조금씩 시야가 흐려진다.


이때의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개고생 끝에 수습 딱지를 떼고 현장에 출근한 첫날.

배우가 던진 도자기에 뚝배기가 깨지면서 내 인생 자체도 백팔십도 달라지리라고는.


작가의말

신작으로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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