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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거물 연예인들이 집착하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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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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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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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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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보상

DUMMY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짙어지는 악취에 세 사람은 동시에 코를 틀어막았다.


"어후, 이게 무슨 냄새야?"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지독한 냄새.

오래 된 하수구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고, 쓰레기를 묵힌 냄새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한 사람.

때 묻은 얼굴에 기름이 잘잘 흘러 떡이 진 머리.

턱 전체를 덮은 덥수룩한 수염에 연식을 짐작할 수 없는 낡은 회색 점퍼와 구멍 난 바지까지.


압도적인 비주얼과 뇌를 뒤흔드는 악취에 세 심사위원은 할 말을 잃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춘길 역에 지원한 배우 우재목입니다."

"배우···. 시라고요?"


철컥


다급히 외부 창을 열어젖힌 제작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우재목에게 물었다.


"근데 행색이 왜 그러십니까···? 아니, 옷차림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몰골이···."


제작부장의 물음에 우재목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무언가 부스스 떨어지는 착각이 일었다.


"오디션 준비를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 대체 무슨 오디션 준비를 어떻게 하셨길래···?"


"서울역에서 노숙자들과 이주간 같이 생활했습니다."


우재목의 말에 세 심사위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노숙자들과 같이 생활을 했다고요? 그것도 이 주씩이나?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지금 제 몰골을 보시면 어느 정도 납득하실 겁니다."


우재목의 말에 세 심사위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림새는 그렇다 쳐도 지독한 악취와 노숙자 특유의 헛헛한 분위기는 이게 연기인지 실제 노숙자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하게 했다.


"허어···. 오디션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셨다니···. 놀랍네요."


제작사와 배급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창작자인 박인수 감독은 적잖이 감동한 기색이었다.


"뭐, 좋습니다. 오디션 보기에 앞서···. SH엔터 소속이시고···. 연기 경력은 오래되셨네요? 초혼의 덫, 자물쇠, 사랑 그 덧없는, 솔방울 등등. 어후, 작품 활동은 정말 열심히 하셨네. 근데 왜 저는 우재목 씨를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을까요?"


제작부장의 날 선 질문에 우재목은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임팩트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배역의 비중이 높지 않아서 그랬던 건 아니고요?"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배역만 맡을 수 있다면 정말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텐데. 나는 실력에 비해 운이 너무 없다 뭐 이런 의미 없는 푸념을 해오면서 저 자신을 자위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뀐 건가요?"

"예, 배역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가 문제였던 거죠. 그저 연기를 오래 해왔다는 쓰레기 같은 자부심 하나로 부족한 점을 외면해왔던 겁니다. 그러니 발전이 있을 리가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작은 배역은 있을지언정 작은 배우는 없다는 걸."


뭔가 해탈한듯하기도 하고, 통달한 것 같기도 한 우재목의 묘한 분위기에 세 심사위원의 눈에서 약간의 호기심이 떠올랐다.


"좋은 말이긴 한데, 그래서 지금은 자신 있으십니까?"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연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당당한 우재목의 목소리에 눈빛을 교환한 세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준비하신 연기 보여주세요."


카메라에 들어온 빨간 불이 시작 신호를 알렸다.

아래를 향하고 있던 우재목의 고개가 서서히 들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모든 걸 잃은 고독한 사내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저 있잖아요. 선생님!? 내가 배가 고파요."

"네?"


제작부장이 자기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배가 고프다고. 도시락 하나만 좀 사줘요. 기왕이면 담배도 한 갑만. 응?"


쇳가루라도 삼킨듯한 걸걸한 목소리와 어눌한 발음, 약에 취한 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대뜸 밥을 요구하는 우재목.

마치 접신하여 다른 사람이라도 된듯한 소름 끼치는 변신이었다.


당황한 세 심사위원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자 우재목이 거칠게 인상을 썼다.


"아 씨발, 선생님들! 나 배고프다고! 밥 좀 사줘 봐. 아, 현찰이 없다고? 그럼 카드라도 줘봐. 내가 가서 긁어올게. 낄낄낄."


잃을 것 없다는 노숙자 특유의 막무가내식 강압에 장내 분위기가 싸늘히 가라앉았다.


"에? 왜 사람을 그딴 눈깔로 쳐다봐? 당신들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이런 씨부랄거. 내가 왕년에 뭐하던 사람인지 알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거야? 내가 씨발, 잘나갔을 때는 한 달에 몇억도 벌었던 사람이야! 알긴 알아!? 아냐고!? 으아악!!"


심사위원을 쳐다보며 악을 쓰며 발광하던 우재목이 돌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개좆같은 새끼들. 사주기 싫으면 말아라. 크흐흐, 그럴 줄 알고 어제 남겨둔 거 꿍쳐놨지."


품에서 먹다 남은 팩소주를 꺼내든 우재목이 주둥이를 대고 꿀꺽꿀꺽 술을 삼켰다.


흐리멍덩한 동공으로 멍하니 앉아있던 우재목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내 간헐적으로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서글픈 흐느낌이 들려왔다.


"크흐흑, 지랄 맞은 인생. 그냥 뒤져버리지 숨은 왜 쉬고 있냐?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데 삶에 무에 그리 미련이 남는다고."


처연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우재목의 눈빛은 깊은 밤바다처럼 음습했지만, 그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잠겨있었다.


이내, 먼지 가득한 옷소매로 눈가를 쓱쓱 닦아낸 우재목이 남은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빈 곽을 구석에 휙 던져버렸다.


완전히 만취한 모습으로 비틀대던 우재목이 심사위원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완벽히 몰입한 세 심사위원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거기 선생님들···. 도시락 하나만 좀 사줘요. 기왕이면 담배도 한 갑만."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도돌이표 같은 노숙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멘트를 마지막으로 허리를 곧게 편 우재목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집니다."


"허···."


연기가 끝났음에도 세 사람은 쉬이 입을 떼지 못했다.

짧은 연기였지만 그 강렬한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노숙자들과 같이 생활했다는 게 거짓은 아니었던지 행색, 말투, 눈빛, 사소한 제스처까지.

그 모든 것이 노숙자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 눈빛···. 방금 그 눈빛은 정말."


단순히 성격 고약한 노숙자를 연기하라고 하면 많은 배우들이 그럴듯하게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재목의 연기는 궤를 달리하는 디테일이 있었고 관객을 몰입시키는 흡입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고요한 아픔과 절망을 품고 있는 눈빛은 극중 최춘길이라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서사를 완벽히 담아냈다.


최춘길이라는 캐릭터를 얼마나 연구하고 파고들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캐릭터 연구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박인수 감독의 물음에 우재목이 입가에 쓴 웃음을 내걸었다.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날 수 있더군요. 그중에는 상종 못할 인간말종도 있었고, 우리 옆집에 살법한 평범한 사람도 있었으며, 가슴 찢기는 사연을 품은 안타까운 인간들도 있었습니다."


우재목의 담담하면서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 심사위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대화에 집중했다.


"시나리오상에 최춘길은 괴팍하고 못된 성질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지만 나름의 사연을 품은 캐릭터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반전도 있고요. 때문에 저는 최춘길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노숙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당시 들었던 생각, 행동, 눈빛, 그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이미 그는 연기로 모든 걸 보여줬기에 꼬투리 잡을 것도 없었다.

좌우로 고개를 돌린 박인수 감독이 물었다.


"혹시 더 하실 질문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저도 뭐···. 딱히."


고개를 끄덕인 박인수가 우재목을 쳐다봤다.


"우재목 배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차후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꾸벅 고개를 숙인 우재목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퇴장했다.


"후아! 이제야 제대로 숨 좀 쉬겠네. 후욱후욱."


창가 쪽으로 다가간 제작부장이 거칠게 심호흡을 해댔다.


"이야, 설마하니 오디션 때문에 노숙자랑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다니···. 지독하네요. 저 양반 진짜."

"그래도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순간 진짜 노숙자가 들어온 줄 알고 경찰 부를 뻔했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제작부장과 배급사 담당자를 보며 박인수 감독이 물었다.


"연기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말해 뭐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오디션 본 사람 중 단연 압도적입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테죠?"

"저도 뭐 당연히···.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고 캐릭터 연구를 위해 노숙자 생활까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떨어뜨립니까?"


"그럼 다들 생각이 일치하는 거네요."


박 감독의 물음에 나머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탁!


문이 닫히자 깊은 한숨을 내쉰 우재목이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겉으로 티는 나진 않았지만, 그는 무척이나 긴장한 상태였다.

오디션장에서 자신이 뭘 했는지 제대로 기억도 못 할 정도로.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다가오는 나를 보며 우재목이 누런 건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후, 긴장돼서 죽을 뻔했네. 이놈의 오디션은 봐도 봐도 적응이 안돼."

"다 끝났으니 목욕탕에 때나 벗기러 가시죠. 까마귀가 친구 하자고 하겠습니다."


내 말에 우재목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너야말로 거울 한번 보고와. 나야 오디션이라 그렇다 쳐도 왜 너까지 그 몰골을 하고 따라온 거야?"


"그래도 같이 동고동락한 전우애가 있는데 저만 멀끔하게 올 수 있겠습니까?"

"얼씨구, 그것참 눈물 나는 의리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우재목이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주포 네 말대로 일단 씻자.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머리 근지러운 건 도저히 못 참겠다."

"가시죠. 제가 시원하게 등 한번 밀어드릴게요."


"좋지! 대신 바나나 우유는 내가 쏜다."


그렇게 우리는 상거지 행색을 하고선 희희낙락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오디션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합격을 당연시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촬영 전부터 남자 주인공의 불륜 사건으로 큰 홍역을 앓은 '오, 주여, 오, 나의 신령님.'은 지금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퇴출된 최원우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강현수는 다행히 홍슬기와 케미가 잘 맞았고, 다른 조단역들과도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촬영장 분위기는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나도 그게 느껴질 정도였기에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갖은 개고생 끝에 '악의 전염' 오디션에 합격한 우재목도 곧 첫 촬영에 들어간다.

합격은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박인수 감독이 우재목의 연기를 보고 영감이 떠올랐다며 최춘길 캐릭터의 분량을 늘려줬다.


우리로선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일은 막힘없이 순탄하게 흘러갔고, 첫눈이 오고 여기저기에서 구세군 종소리가 울리는 연말이 다가왔다.


직장인들에게 연말이란 올 한 해 있었던 성과를 평가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평소보다 행동이 더 빠릿빠릿해지고, 공연히 상사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나는 이때까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예전에 문서현 대표가 내게 언급 했던 확실한 보상이란 말을.


다음 날, 오전 10시쯤, 전 직원에게 발송된 공지 메일 한 통으로 회사가 떠들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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