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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거물 연예인들이 집착하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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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6.30 12:5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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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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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7
글자수 :
314,470

작성
24.06.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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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9화 진지하게 임해주세요

DUMMY

'연산이라···.'


공교롭다, 참으로 공교로워.

하필 걸려도 이런 작품이 걸리다니.


과연 현시대에서 나보다 연산군이란 인물에 대해 잘 아는 존재가 있을까?

저명한 역사학자? 한국사 일타 강사?

그래봤자 사료에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살을 덧붙인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연산군이 얼마나 정신 나간 인간이고, 얼마나 공포스러운 군주였는지 내 머릿속에 생생히 저장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직접 옆에서 지켜봤던 것처럼.


"왜요? 자신 없어요?"


대본을 받고 멀뚱멀뚱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생각한건지 정소리가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시끄러운 잡음이 이어졌다.


"에이, 설마. 명색이 배우 매니저인데 이 정도는 껌이겠지. 이런 것도 못 하면 배우 매니저랑 가수 매니저랑 무슨 차이가 있어 안 그래?“


"더구나 홍슬기 선배님이면 사극 연기 엄청 잘하시는 분인데 옆에서 매니저님이 많이 도와줬겠지."


"아~ 맞네! 잘 됐다! 나는 진짜 사극 연기가 젤 어려운거 같애. 소녀···. 아직 준비가 안 되었사옵니다···. 으으, 뭔가 이상해. 니들이 봐도 그렇지?"


"응, 국어책 읽는 것 같아."

"칫, 뭐래? 너는 얼마나 잘하는지 내가 한번 두고본다."


나를 무슨 마네킹 취급하며 지들끼리 짝짜꿍하는 모습이 웃기지도 않는다.


‘한번 해보지 뭐.’


연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던 간신의 기억을 가진 매니저가 하는 연산군 연기라니.

나름 재밌지 않겠는가.


"왜 대답을 안 해요? 진짜 자신 없어요?"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 정소리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자신 없다고 하면 아주 그냥 사정없이 물어뜯을 기세였다.


“아뇨, 도와드려야죠. 잠깐 읽을 시간만 줄래요? 많이는 아니고 한 15분만?"


내 승낙에 정소리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요. 그렇게 하세요."


어째 희희낙락 하는 모양새가 어째 '옳커니, 너 잘 걸렸다.'라는 뉘앙스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매니저들을 골탕 먹인게 한 두번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 중심에 정소리가 있는 듯했고.


'어린 것이 못된 것만 배웠네.'


냄새가 난다.

믿는 구석이 있는 자만이 풍길 수 있는 구린내가.


귀여운 토끼 탈을 쓰고 저런 음흉한 구렁이 짓이나 하고 있다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힐끗 소파 쪽을 쳐다봤다.

외딴 섬처럼 홀로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고유라.

손에 대본은 들려있었지만, 썩 관심 있어 보이진 않았다.


'쟨 참 생긴 대로 노네.'


생긴 것만 고양이가 아니라 하는 짓도 비슷하다.

마치 영역 동물처럼 일정 반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 바운더리에 침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뭐, 그러던가 말던가.’


일단은 신경끄고 대본집부터 살펴봤다.

영화의 주인공인 연산군과 장녹수의 대화 장면만 따로 짜깁기하여 만든 듯했다.


'호오, 이건···?"


대본을 훑어보다 나도 모르게 나직한 감탄을 흘렸다.

이건 내가, 아니 정만수가 아주 잘 아는 사건이 아니던가?


'얼추 1505년 11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오죽했으면 정만수가 날짜까지 잊지 못하고 있을까?

자신이 발탁한 장녹수가, 자신이 발탁한 또 다른 운평(運平)인 옥지화를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었으니.


'별 관심 없는 척하면서 뒤에서 무서운 흉계를 꾸미고 있었지···.'


때문에 정만수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하니 연산군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장녹수가 기생 중에서도 하급인 운평 옥지화를 그토록 시기하고 있었을 줄은.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며 벼르고 있던 장녹수에게 작은 사건이 벌어진다.

옥지화가 잘못하여 장녹수의 치마를 밟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때다 싶었던 장녹수는 그대로 연산군에게 찾아가 이를 고하였고, 분노한 연산군이 옥지화를 참수형에 처한다.

사실 거기까지라면 뭐, 재수가 더럽게 없어서 힘없는 불쌍한 기생 하나 죽었구나 라고 넘길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매끈하게 잘려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옥지화의 머리를 다른 기생들에게 돌려가며 유심히 살펴보라고 어명을 내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엽기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만행.


'으으, 속 안 좋아지네.'


그 끔찍한 장면과 피비릿내가 머릿 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다 보니 어제 먹었던 곱창전골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거참, 편견 따윈 없는 연기 선생일세. 뭐, 이런 작품을 가져왔어?"


아이돌이라고 해서 로맨스 연기만 할 줄 알았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찌 됐건 전체적인 대사들을 한번 쭉 살펴본 나는 태연하게 대본집을 덮어버렸다.

이건 뭐, 더 봐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15분 다 됐네요. 시간 없는데 바로 시작할까요?"


거참 시간관념 한번 철저한 금쪽이들이다.


이쯤되니 왜 이전 매니저들이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떻게든 골탕 먹이려고 혈안이 된 저 금쪽이들에게 아주 그냥 치를 떨었겠지.


"그럽시다."


하지만 우리 금쪽이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금쪽이가 있으면 그 상극인 오금영 박사님도 존재하는 법이었으니깐.


"제가 먼저 할게요."


당차게 손을 들어 올린 정소리가 당당한 기세로 내 앞에 섰다.

아무리 봐도 얘가 금쪽이들 대장이 맞는 듯 싶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연기에 나름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세요."


나야 좋지.

원래 기세를 꺾으려면 적의 수장부터 족쳐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장난스럽게 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주세요. 정말 촬영장에서 연기를 한다는 마음으로.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이곳에 있는 거니까요."


얼씨구? 언제는 부담가지지 말라면서 이제는 대놓고 부담을 팍팍 주네?

얄팍한 수가 아주 그냥 훤히 들여다보인다.


"예, 최선을 다할게요."


저토록 원하는데 어쩌겠는가.

입맛대로 맞춰줘야지.


"그럼 저는 앉아서 시작할게요. 대본에서처럼."

"오, 너무 좋아요! 그런 자세."


재기발랄한 멘트와 다르게 얼굴은 '꼴값 떨고 있네' 라는 표정이다.

금쪽이 대장은 아무래도 앞과 뒤가 다른 화전양면술에 달인인듯 싶었다.


빈 소파에 앉은 나는 평소 연산군이 앉아 있던 모습을 상기하며 자세를 잡았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자 눈빛이 확 바뀐 정소리가 간드러진 요부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신첩 너무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사옵니다. 아니 글쎄, 비천한 운평 계집 하나가 제 치맛자락을 밟았지 뭡니까? 흐흑, 아무래도 아랫것들이 신첩을 업신여기고 있음이 분명한듯 싶습니다. 너무너무 분통하고 속이 상해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심정이옵니다. 흐흐흑."


자신있게 먼저 나선 이유가 있었구만.

춤과 노래는 그저 그렇더니, 연기는 제법 공을 들인 티가 났다.

발성도 나쁘지 않았고, 금세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몰입도까지.

이 정도면 아이돌 출신 발연기 논란은 없을 법했다.


고개를 푹 숙인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 속에 있는 연산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사소한 버릇, 행동, 습관, 눈빛까지 그의 모든 것이 습자지처럼 나에게 스며든다.


그리고 내 심상의 공간이 그의 존재로 완전히 채워졌을 때.

나는 고개를 쳐 들었다.


"어떤 미친년이 그런 망발을 저질렀단 말이냐!"

"꺄악!"


기껏 몰입해서 겨우 대사 한마디 내뱉었구만, 어째 돌아온 반응은 고막을 후벼 파는 비명이었다.

본인도 당황했는지 입을 틀어막은 정소리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애드립 한 건가요···?"


분명 대본에 비명을 내지르라는 지문은 없었건만.

얼굴이 시뻘게진 정소리가 말을 더듬거리며 해명에 나섰다.


"버, 벌레를 봐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렇군요."


정소리의 비명 때문인지 별 관심 없어 보이던 고유라까지 여기를 힐끗거렸다.


"죄송해요, 다시 갈게요."

"그러세요."


옅게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은 정소리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쳤다.


"어떤 미친년이 그런 망발을 저질렀단 말이냐!"


이번에도 살짝 움찔한 정소리였지만 다행히 다음 대사를 이어갔다.


"운평 중에 옥지화라는 계집···. 이옵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터트릴 듯 움켜잡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울화통이 치밀면 일단 술병부터 잡는 게 연산군이었고, 그 영향으로 흥분을 하게 되면 간질 환자처럼 손발을 덜덜 떨어댔다.


"평소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어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었을까? 녹수 너를 모욕하는 행동은 나를 욕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능상죄를 적용하여 그년의 목을 치고 그 목을 내게 가져오라 해야겠구나. 크흐흐."


연산군은 성격이 급했고, 다혈질에 대책 없이 일부터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광증을 보일 때도 많았지만, 때에 따라선 한없이 무정하고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게 다반사였으며, 귓가에는 누군가의 저주처럼 속삭이는 환청이 맴돌았다.

그러다 보니 정신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요동첬고, 분노와 의심에 잡아먹혀 누구든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단 한 사람. 장녹수만 빼고선 말이다.


"감히···. 감히 우리 녹수를. 그딴 미천한 운평 계집이? 내일은 그년의 잘린 머리를 두고 술을 마셔야겠구나. 크하하하, 그 술맛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지 않느냐 녹수야?"


정만수의 기억 속에 있는 연산군은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을 터트리다가, 갑자기 돌변하에 광기 어린 눈빛으로 사람들을 쏘아봤다.

그러다가 사람 몇이 죽어 나가면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온화해졌다가도 심사가 뒤틀리면 곧장 살의에 찬 표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으히히,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구나. 녹수야, 우리 녹수야. 그년은 내가 친히 그 머리통을 잘라서 똑같이 욕보인 뒤에 짐승의 먹이로 줄 터이니 너는 구경만 하고 있거라. 어떠냐? 이제는 조금 기분이 풀리느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실제로 술에 취하면 연산군은 이렇게 미친놈처럼 춤을 추며 궁궐을 돌아다녔다.

옷자락이 붉은 피로 물들어있고, 웃음소리에 소름 끼치는 광기가 묻어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본인은 신이 나서 추는 춤이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숨을 죽이고, 연산군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자칫 불똥이 튀기라도 하면 허망하게 목숨이 날아갈 수 있었으니깐.


"녹수야? 우리 녹수야? 왜 말이 없느냐? 기분이 어떻냐니깐?"


나도 모르게 연기에 너무 몰입했던 것일까?

상대방의 대사가 들려오지 않자 출타했던 정신줄이 다시 돌아왔다.

의아한 마음에 덩실덩실 춤추던 허리를 고쳐 세우고 고개를 돌렸더니.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로 나를 무슨 흉악범 보는듯한 아이들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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