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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거물 연예인들이 집착하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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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6.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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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470

작성
24.06.2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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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53화 대체 뭘 원하는데요?

DUMMY

“고유라 연습생···?”


작고 갸름한 얼굴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눈동자.

순백의 하얀 피부와 대조되어 유독 붉어 보이는 가느다란 입술.

무엇보다 시그니처라 볼 수 있는 눈 밑에 박혀있는 눈물점까지.


몇 시간 전, 연습실에서 봤던 고유라가 분명했다.


나를 발견한 고유라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대로 멈춰 섰다.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떨려오는 연갈색 눈동자.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안면이 없는 사이도 아니고, 아침에 인사까지 나눈 사인데 당신이라니.

거참, 사교성 없는 금쪽이가 아닐 수 없었다.


"............"


기묘한 침묵 속에 우리 두 사람이 노려보듯 대치했다.


"오메나, 이게 누구야. 우리 똥강아지 아냐? 할미 마중 나온거여?"


내 등에 업혀 있던 할머니가 고유라를 보고선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나 걱정했잖아!"


황급히 다가온 고유라가 할머니를 흘겨보고선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아저씨가 할머니를 왜 업고 있어요?"


속이 쓰렸다.

차라리 당신 소리 듣는 게 낫지, 아저씨라는 말은 뼈가 아팠다.


"할머니가 다리가 불편해 보이셔서 제가 좀 도와드렸습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고유라가 할머니의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하, 할머니 또 다리 아파? 혹시 넘어진 거야?"

"넘어지긴 인석아. 그냥 무릎이 좀 쑤신 것뿐이여."


"그러니깐 그냥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할머니를 나무라는 손녀의 목소리에는 서운함과 걱정이 범벅되어 있었다.

그런 손녀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할머니의 얼굴에 미안함이 떠올랐다.


"할미가 미안혀.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답답하면 그냥 동네 마실이나 나가라고···! 당장 생활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이러다가 할머니 무릎 더 안 좋아지면 그땐 어떡하라고? 자꾸 이렇게 속 썩이면 나 이제 더는 어디 못 나가. 아무것도 못 해. 할머니 걱정돼서."


말투에는 가시가 있었지만, 그 안에 할머니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려 그려. 우리 똥강아지 허락 없이는 어디 안 나갈 테니깐 인제 그만 화 풀어 응?"


주름진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할머니를 보며 고유라가 붉어진 눈가를 훔쳤다.


"진짜 약속하는 거지?"

"끌끌끌, 손녀 무서워서라도 그렇게 할 테니깐 할미 한번 용서해다오."


앓는 소리 하는 할머니를 한번 흘겨본 고유라가 마지못해 한다는 듯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을 내걸었다.

그 훈훈한 분위기 속, 중간에 낀 나는 쥐죽은 듯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나저나···.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여?"


할머니의 물음에 고유라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뭔가 곧이곧대로 말하면 안 되는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같은 회사 다니는 직장 동료에요."

"으응? 직장 동료? 그람 청년도 춤추고 노래하는 딴따라여?"


정확히는 몰라도 고유라가 대충 어떤 걸 하는지는 아시는 듯했다.


"그 딴따라 잘되라고 옆에서 도와주는 일 합니다."


단번에 이해했다는 듯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도우미 총각이로구만."

"도우미 중에서도 특급 도우미죠."


"하이구, 심성만 선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유라한테도 은인 같은 사람이었구먼."


대충 얼버무린 내 답변이 마음에 들었던지 고유라의 얼굴에 안도가 떠올랐다.


"유라씨? 일단 할머니부터 집 안으로 모실까요? 무리하셔서 편히 쉬셔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내가 쉬어야 할 것 같다.

할머니가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오랜 시간 업고 다니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전완근도 뻐근했다.

심각한 근육통이 예상되는 조짐이었다.


집안에 낯선 사람을 들이는 게 꺼려져서였을까?

고유라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고, 그런 손녀딸을 향해 할머니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이것아! 우리 특급 도우미 총각, 지금 다리 떨리는 거 안 보여? 시원한 마실 거라도 먹여서 보내야 그게 도리인거여."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건만, 야속한 내 두 다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독촉에 고유라가 떨떠름한 얼굴로 길을 안내했다.


오 분 정도 걸었을까?

낡은 외벽의 한 주택 앞에 멈춰선 고유라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내 쪽을 돌아봤다.


"리어카는 저 구석에 놓으면 돼요···."


아담한 마당 한구석에 리어카를 주차한 나는 할머니를 업은 상태로 고유라 뒤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허름한 반지하 방이었는데 정리정돈은 깔끔히 잘 되어있었다.


등에 업힌 할머니를 푹신한 소파에 앉혀드리고 스트레칭하듯 허리를 쭉 폈다.

중량 조끼를 벗어 던진 운동선수들의 마음이 이러할까?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졌다.


"욕봤어, 도우미 총각. 무거워서 힘들었지?"


"아뇨, 깃털처럼 가벼우셔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나이 가오가 있는데 티를 낼 순 없었다.


"이거 고마워서 어쩌누. 유라야. 도우미 총각, 시원한 냉차라도 한잔 갖다 줘라."


할머니의 말에 고유라가 잠깐 쭈뼛거리더니 터벅터벅 주방으로 걸어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온 건 허연 밥알이 둥둥 떠다니는 식혜였다.


"내가 직접 담근 건데 도우미 총각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데요. 잘 마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땀을 좀 흘렸더니 목이 타들어 가기 직전이었다.

나는 생명수를 들이키는 것마냥 허겁지겁 식혜를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으슬으슬한 냉기로 인해 골이 띵하면서도 동시에 달짝지근한 식혜의 맛이 혀를 감돌았다.

단연코 내가 먹어본 식혜 중에 으뜸이라 할만했다.


"크으, 끝내주는데요? 장사하셔도 되겠어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리액션에 할머니가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끌끌끌, 내가 딱 우리 유라 나이 때 시집을 가서 시어머니한테 혼나가면서 배운 거여. 다른 건 몰라도 식혜 담그는 거 하나는 자신 있지."


식혜 부심이 상당하신 듯싶었다.

맛을 보니 그럴만하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할머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고, 고유라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말없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드문드문 경계심 묻은 날 선 시선이 느껴졌다.


"근데 말이여. 내가 궁금혀서 그런데···."


고유라 눈치를 살피던 할머니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유라가 일은 잘하고 있는거여···? 가시네가 물어봐도 통 말을 안 하니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기겁한 고유라가 다급히 할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할머니! 쓸데없는 것 좀 묻지마. 사람 난처하게."

"쓸데없긴 왜 쓸데없어? 우리 강아지 잘하고 있나 궁금한 건 당연한 거 아녀? 안 그래 도우미 총각?"


"당연히 그러시겠죠. 어디보자···. 유라씨의 회사 생활이라······."


내 시선이 닿자, 고유라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뭐라고 말하든 본인은 별 관심 없다는 의지의 표명.

하지만 발가락을 연신 까딱까딱하는 걸 보니 내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되게 잘해요."

"그랴?"


"그럼요. 실력도 제일 좋고, ‘사교성’은 또 얼마나 좋은지 동료들이랑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내고요. 직장 상사한테도 얼마나 ‘깍듯’한데요. 회사에서 마주치면 어찌나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는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니까요."


손녀 칭찬 폭격에 기분이 좋으셨던지 할머니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당사자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고.


"끌끌끌, 우리 강아지가 겉보기엔 별난년 같아도 여린 구석이 많아. 정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안 그런 척 하면서 뒤에서 알뜰살뜰 얼마나 잘 챙겨주는데."


그런 손녀가 못내 자랑스러웠던지 할머니가 고유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는 그 분위기를 못 견디겠던지 고유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할머니.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데 도우미···. 아니, 실장님 빨리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


"아이구야. 그러네. 일찍 들어갔어야 할 양반이 나 때문에···. 도우미 총각. 우리 강아지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것도 인연인데 가끔 놀러 오고 그래, 응?"


"예, 할머니. 할머니도 건강 잘 챙기세요.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하이고, 싹싹하기도 해라. 얼른 가봐요."


"할머니! 저 도우미 총각 요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올게."


내 옷소매를 잡아끈 고유라가 황급히 나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왔다.



***


버스정류장 인근 편의점.


"자, 마셔요."


내가 내민 캔맥주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고유라.


"연습생한테 맥주 권하는 매니저가 어딨어요?"

"먼저 사달라면서요."


"사달라고 진짜 사주는 경우가······. 그리고 저 아직 미성년자거든요?"

"어른이 주는 술은 괜찮아요."


당당한 내 태도에 잠깐 고민하던 고유라가 캔 뚜껑을 따고선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뭐지···? 맥주가 좀 밍밍한데···?"

"그거 제로 맥주에요. 설마하니 내가 진짜 맥주를 줬겠어요?"


칙!


그리고선 나는 진짜 맥주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어후, 가짜는 가질 수 없는 이 알싸함과 시원함! 좋다."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고유라가 제로 맥주를 만지작거리더니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물었다.


"다 알고 한거죠?"

"뭘요?"


"우리 할머니 도운 거···. 미리 알고 그런 거죠?“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제가 무슨 재주로요? 프로필에 가족관계에 관한 내용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거야 뒷조사를 하더라도······."


"흐음···. 영화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니죠? 제가 왜 유라씨 뒷조사를 합니까? 저는 그냥 집 가는 길에 이놈의 오지랖이 쓸데없이 발동돼서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사람 순수한 호의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니 저도 기분이 썩 좋진 않네요."


싸늘한 내 목소리에 하얀 미간을 찡그린 고유라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든 맥주만 들이켰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인 고유라가 뭐라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요?"

"미....@%$%#$"


"잘 안 들려요."

"미안하다고요!"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른 고유라가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왔던지 쓰고 있던 모자룰 푹 눌러썼다.


"거참, 사과 한번 요란하네."


픽 웃음을 터트린 나는 다 마신 캔을 찌그려 뜨려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늦었어요. 얼른 들어가서 발 닦고 자요. 내일 늦지 말고."

"저기···."


"왜요? 더 할 말 있어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고유라가 닭똥집 같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혹시···. 저에 관한 얘기는 다른 데에서 안 해주시면 안 될까요?"

"뭔 얘기요?“


연습생 신분에 맥주 마신 거?

제로 맥주인데 그것까지 신경 쓰는 걸까?


"제가···. 할머니랑 둘이 산다는 거랑···. 집안 형편이 썩 좋지 않다는···. 뭐 그런 거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언급하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극히 사적인 부분인데 그걸 제가 딴 데 가서 왜 얘기해요."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했지만, 고유라는 순순히 수긍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면 안 돼요?"

"솔직하게 얘기한 건데요?"


설마···.

사람이 제로 맥주 마시고도 취할 수 있는 걸까?

애 상태를 보니 전혀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대체 뭘 원하는데요?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해요! 사람 피 말리게 하지 말고!"


아니면 아까 상한 치킨을 먹은 건가?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쯤.


"아니면, 당신도 탁···. 그 사람처럼 원하는 게 결국 그런 거예요? 지겨워 정말···.흑"


갑자기 편의점 의자에 쪼그려 앉아 서럽게 눈물 흘리는 고유라.

덕분에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손수건···.'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급한 대로 편의점 냅킨을 건네며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자세히 좀 얘기 나눠볼까요?"


아무래도 문제 학생 상담이 필요한 시점 같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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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특종 +10 24.06.14 13,881 34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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