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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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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14 00:1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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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7,047

작성
24.05.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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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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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247. 하나를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DUMMY

율트나는 제사장을 상대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스물다섯 명 정도의 전투원들을 이끌고 엑살라니스 주민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전투원 중 일부는 제사장과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이들을 업고 있었다.


카밀로테 잠입을 위해 나올 때에 챙겨온 회복약을 아낌 없이 부어 지혈을 하였기에 다행히도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하람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뒤를 흘긋 쳐다본 율트나는 품에 안은 고양이에게 물었다.


"잘 가고 있는 걸까?"

"..."

"투실라고."

"..."

"투실라고!"

"네! 네... 잘 가고 계십니다."


까만 노묘는 율트나가 몇 번을 더 부르고 나서야 반응을 했지만 시선은 계속 율트나 뒤를 향하고 있었다.


"남은 세 분께서는... 강한 분들이시니 지원이 갈 때까지 버틸 수 있으시겠지요?"

"..."


이번에는 율트나가 입을 다물었다.


- 주민들을 데리고 몸을 숨기게나.

- 안전이 확보되면 이걸로 신호를 보내세요. 신호를 받는 즉시 저희도 바로 몸을 뺄 테니.


그러면서 이트나가 쥐어준 것은 이리저리 금이 간 노란 보석이었다.

받으면서도 알았다.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에는 이 보석은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라는 것을.

그럼에도 율트나는 부상자들을 데리고 전장에서 빠졌다.


첫째는 놔두면 부상자들 모두 죽을 정도로 제사장의 공격이 막기 어려웠다는 점 때문이었고.

둘째는 당시 전력으로 제사장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주민들과 부상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세 사람이 몸을 빼내는 것이 살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정작 호박을 건네준 이트나씨나 장로님이나 중간에 몸을 빼 낼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지만.'


더 높아진 가능성이라는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모래알 정도의 가능성에 모래알을 더한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 가여운 노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심산이 컸다.


걸어볼 것이라고는 두 사람을 따라 남은 카논의 존재.

적어도 그녀는 아직 포기한 기색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니.


"세 사람은 살 거야."


율트나가 애써 뱉은 이 말은 위선도 거짓도 아니었다.

간절한 바람이었다.


"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께서 세 분을 지키실 겁니다."


투실라고 역시 간절함을 담아 말을 해보았다.

차라리 기도라고 할 법한 말이었다.


침중함 가운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 부상자를 업고 있는 자 중 한 명이 율트나를 불렀다.


"여기 젤로트씨가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기존의 마법사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명은 이트나가 정신 마법으로 조작된 기억을 깨부순 펠페림 유날 육번대 대장.

다른 한 명은 장로네가 오면서 데리고 온 기사 젤로트였다.


율트나는 그에 대해서 소문으로만 들었지 막상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골락의 상인인 데셀비아를 호위하는 기사이자 엑살라니스에 드나드는 조력자가 바로 그라고.


그가 어쩌다가 숲 속에서 혼자 카밀로테 정규군을 상대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가 뛰어난 기사라는 것은 확실했다.

훈련받은 정예라 할 수 있는 군 마법사 다수를 상대로 우위를 점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쓰러진 이유도 상처를 입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단순 탈진 같다고 하였으니.


투실라고 역시 그를 아는지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젤로트님께서는 뛰어난 기사십니다. 곧 히펠렌스의 경지까지 오를 것이라고 데셀비아님께서 말하곤 하셨으니까요."


말 뜻은 이 뛰어난 자가 전장에 합류한다면 지금 제사장과 싸우고 있을 세 사람이 살아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소리였다.


"... 우선 좀 보죠."


잠시 일행을 멈춰 세운 율트나는 젤로트와 대화를 시도했다.


"... 당신은?"

"우선 진정하시죠."

"됐고.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부터."

"..."


꽤나 강압적인 모습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 율트나네에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제사장 유스티티엔과 싸우다 부상을 입은 자들이 몸을 빼내는 중입니다."

"카논... 카논은?"

"... 카논씨는 현재 제사장을 상대하고 있어요."


율트나의 말에 젤로트가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한계까지 힘을 끌어다 썼기 때문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비척거렸다.

아무래도 싸울 상태는 못되는 모양인지라 율트나는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진정하세요."

"비켜라 머저리."


젤로트는 사납게 할버드를 휘두르며 주변 사람들을 밀어냈다.


"지금 그 몸으로 간다고 해도 별 도움이 안 되니 몸부터 회복을..."


후웅

카가각


차분한 어조로 저를 막아서는 율트나를 향해 젤로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할버드를 휘둘렀다.

율트나는 그나마 멀쩡한 오른팔로 철 조각을 뭉쳐 공격을 막아냈다.


우드득


안그래도 약해졌던 그의 오른팔이 이번 공격을 막는다고 아주 부러져 버렸다.

기운을 다 소모하고도 이 정도의 힘을 쓰는 기사가 대단한 건지 이 조차 막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몸이 상한 것인지.

아마 둘 다일 것이리라.


젤로트 역시 할버드를 한 번 휘두른 여파로 비틀거리더니 할버드에 몸을 의지해 간신히 쓰러지는 것을 면했다.


"이러다 카논이 죽으면 너희가 책임 질 건가?"

"간다고 다른 수가 있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내가 말씀드리면 스승님께서 공격을 멈추실 거다."

"... 그게 무슨."


젤로트가 한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율트나가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젤로트가 말을 이었다.


"몰랐나? 유스티티엔님의 부탁으로 이 숲을 없앤 것이 바로 나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당신이라고?"

"그래."


그러고보니 이트나나 카논이 기절한 젤로트를 보았을 때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아군이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 원흉께서 자리하고 있었다.

의문점이라면 아무리 여유가 없다고 해도 싸우는 중에 젤로테에 대한 언질을 줄 법도 한데 이트나도 카논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음의 숲을 없앤 것. 젤로트씨가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에게 가서 한 일입니까?"

"... 그렇다."


젤로트는 자신이 없앴다고 했지만 실상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없애게 해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 마음이 바뀌면 다시 찾아와.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른 젤로트가 얼굴을 찌푸렸다.

젤로트의 답을 들은 율트나 역시 표정이 묘해졌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베고 가겠다."


여기 전투원들이 아무리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기운이 다해가는 기사 한 명을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원하는 것이 카논의 생존이라면 이쪽에서 시간만 끌어도 불리해지는 것은 젤로트였다.


분노에 몸을 떠는 투실라고를 애써 뒤에 숨긴 율트나는 이내 그에게 말했다.


"만약 너의 스승이 카논씨를 살려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 그때는 스승님을 베어야겠지."


참 여러모로 웃기는 녀석이었다.

카논을 원한다는 녀석이 카논을 위험에 빠트린 것도, 카논이 적대할 존재를 스승으로 삼는 것도, 그리고 그 스승이란 자가 카논을 죽이려고 하자 곧바로 스승을 베겠다는 것도.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녀석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치료를 받아봐. 머리쪽으로."

"허튼 소리는 그만하고 답이나 해라. 비킬 것인지 싸울 것인지."

"비키겠다."


율트나의 선택에 다른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보다 뒤에서 발광을 하는 투실라고는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봤자 몸도 성하지 않은 고양이가 울어젖히는 것에 불과했기에 그리 크지도 않았다.


"... 왜지?"


그 질문에는 율트나도 답을 할 수 없었다.

보내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유?

그 역시 몰랐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허락했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숲이 없어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기사를 보냈을 때의 일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선 자가 젤로트라는 웃기는 기사라면 사건의 중심에 보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늦기 전에 얼른 가기나 하지."


율트나의 말에 젤로트는 비틀대면서도 소란이 벌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젤로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 본 것은 의외의 장면이었다.

파편과 스승님이 싸우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묘했다.

스승님이 평소 완벽히 제어하던 기운이 어째서인지 흘러넘쳐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스승님의 검을 따라 까만 기운도 검이 되어 주변을 베어냈다.

그 중 일부가 저에게 날아오기에 젤로트도 이를 막아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 날아온 어둠의 기운은 그를 베는 대신에 그의 손에 얌전히 머물렀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스승님은 기운을 갈무리하였다.

다만 그의 손에 머문 기운은 스승님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 제사장이라는 자가 설마 본인이 흡수한 힘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건가?

- 뭐 그런 셈이지.


이런 대화가 오가고 스승님은 역시나 손쉽게 파편을 베어버렸다.

베는 것으로 모자라 파편을 먹어치웠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해도 카논으로부터 스승님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고민뿐이었는데.


"방금 그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스승님."


정작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본 이후로는 카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스승님이 좀 전까지 보였던 그 막대한 양의 기운이 눈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저를 가로막는 그 모든 것을 베려는 스승님께서는 어째서 저 기운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 기운만 있다면 더 빠르게 더 강해질 수 있을 텐데.


저 스스로 흡수한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견 한심해보이기도 했다.

기운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본신의 의지에 달린 일.

기운에 휩쓸려 스스로를 잃는 것은 그만큼 의지가 약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저 자와 달리 넌 충분히 다룰 수 있어.'


스승님의 통제를 벗어난 기운을 봤을 때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음?

방금 너라고 하지 않았어?

방금 그게 내가 한 생각인가?

나를 너라고 한 거야?


그의 손에 남은 어둠의 기운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어때? 나를 다스릴 수 있다면 나를 가지지 않겠어?'


손 안에서 꿈틀대는 기운을 통해 유스티티엔이 몸 안에 가두고 있는 기운의 양이 얼핏 느껴졌다.

그것은 차라리 망망대해와 같았다.

양으로만 따지면 현재의 유스티티엔 따위는 가뿐히 능가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기운.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젤로트를 보며 유스가 말했다.


"그곳에 손을 뻗지 마라. 너 자신을 잃게 될 거다."


그 와중에도 젤로트의 손에 남은 기운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나를 얻으면 넌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어. 그 증오스런 인간들보다, 유고보다, 네 스승보다.'


"목소리에게 귀를 기울이지 마라."


'누구보다 강해진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가질 수 있어.'


스승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조용히 울리는 속삭임이 전하는 말이 너무나 달콤했다.


유스는 심장에 가둔 기운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말하는 것은 명확했다.

아직 제대로 다루지 못해 심장에 가둬 놓은 기운이 주인을 바꾸려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스스슥


이윽고 유스의 가슴에서 실낱같은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보며 가만히 있을 유스가 아니었다.


그가 오랜 시간 애써 모아둔 기운이었다.

파편을 뛰어넘기 위해.

인간으로서 온전한 자유를 얻기 위한 양분이 되어야 할 기운이었다.


이를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수 없었다.


"아무리 제자라고 해도 내 힘을 탐낸다면 말이 달라지지."


그리 말하며 제 힘을 빼앗는 젤로트를 향해 유스가 검을 내리그었다.

균열의 경로에 있는 젤로트가 이대로 찢기는 듯 했으나.


"... 글쎄."


젤로트가 손에 쥔 할버드를 크게 내리그었다.

할버드의 날 끝에서 균열이 일었다.

유스의 것과 꼭 같은 것이었다.


균열과 균열이 부딪히며 굉음이 일었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무승부.


젤로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이미 배울 것은 다 배운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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