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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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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최근연재일 :
2022.09.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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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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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7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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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 뒤 한 주 -1-

DUMMY

클로어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조장 아리우스가 죽은 이후로 그가 남긴 일들이 너무 많았다. 조장의 개인적인 탐욕을 위해 벌인 일들을 정리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만 같았다. 그가 개인적으로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을 처리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오는 조장 회의에서 조금이라도 책잡힐만한 일들을 없애서 아리우스조를 존속이라도 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차기 조장이 되는 것도 가능했다.


관리하는 몇몇 클럽에서 마약상들을 처분하는 일이 막 끝난 참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클로어는 소파에 몸을 뉘었다. 잠깐의 쪽잠을 자는 건 요즘 들어 그가 느끼고 있는 행복 중에 하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눈을 조금 붙였다 뜨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가 그 작은 행복을 영유하려 할 때였다.


“지부장님 계십니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말하는 지부장이란 바로 클로어였다. 클로어는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비며 일어난 클로어는 버릇처럼 넥타이를 고쳐 맸다.


“아까 말씀하셨던 여자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들은 오늘 들른 첫 클럽에서 이상한 여자를 봤다. 인질로 잡힌 그 여자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자신을 인질로 잡은 마약상을 제압하고 자기 몫의 약을 가져갔다. 어떻게 생각해도 평범한 약쟁이는 아니었다. 클로어는 그 여자를 미행하도록 지시했었다.


“어떤 여자야?”

“처음엔 큰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길래 조직 사람인가 했는데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과 커다란 배로 들어가더군요. 단순한 약쟁이인 건지 다른 걸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클로어는 잠시 생각했다. 그 여자에 대해 더 머리를 짜야 할지에 대해서. 그러기엔 그는 너무 피곤했다.


“일단 알았어. 동향 파악만 해두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그의 부하가 물러갔다. 클로어는 다시 소파에 자리했다. 아까와의 차이점은 눕지 않고 앉았다는 것이었다. 담배가 당겼던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깊게 연기를 흡입하고 내쉬었다. 그리고 뻑뻑한 눈을 꾹꾹 눌렀다.


“귀찮은 일들이 너무 많다.”


타들어 가는 담배의 소리를 들으며 클로어는 담배를 껐다. 그가 잠을 잘 시간은 3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아리우스의 장례식으로부터 1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그것은 경찰을 도와 마약을 구매한 지 6일째가 된 날이기도 했다. 골든 혼의 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했으나 바질 리브스 호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물론 그건 선원 개개인의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조지의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


갑판 위에 올라갔던 조지는 조종실로 내려와 데이지를 찾았다. 짐짓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소파에 다가간 그는 어렵지 않게 데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데이지 씨.”


데이지는 고개를 들어 한껏 짜증을 머금은 조지를 쳐다봤다.


“왜?”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이지에게 조지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왜 자꾸 흰 옷들 사이에 검은색 옷을 넣는 거예요? 그것도 속옷을요! 제발 분류 좀 잘해달라고요.”

“아, 미안. 잘못 봤나 보네.”


조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다고 그의 앞에 데이지가 눈 하나 깜짝할지는 모르지만. 조지는 다시 화를 삼키며 말했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말 했잖아요. 좀 잘 봐줄 수 없어요? 부탁입니다.”

“아니, 잘못 볼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닦달하고 그래? 고작 한두 개 섞인 거 가지고. 네가 좀 돌려놓으면 되는 거 아니야?”


세탁물을 관리하는 남자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정비사란 직업은 평소엔 크게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몇몇 개를 제외한 가사 전반은 조지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불만은 아니었다. 그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그가 행하는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다른 선원들이 그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빨래가 섞이는 건 조지가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중 하나였다.


“아니, 한두 개가 섞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렇죠! 사람 짜증나게 진짜!”


고함 소리가 들리자 데이지 역시 역정을 내었다.


“섞였으면 빼라니까? 그게 그렇게 어렵냐?”

“처음부터 안 섞였으면 안 빼도 되잖아요! 빨래통 확인하고 넣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래, 어렵다! 집중력 장애라서 보지도 않는다. 어쩔래?”


그때 콜린이 조종실로 들어와 외쳤다.


“왜들 이렇게 시끄럽게 구냐?”


두 사람은 다시 언쟁을 시작했다. 빨래를 잘못 놓은 사람, 빡빡하게 잔소리하는 사람이라며 서로를 헐뜯는 것이 반복됐다. 보다 못한 콜린이 말했다.


“그만들 좀 해. 그 나이 먹고 초등학생처럼 싸우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그제야 두 사람은 말을 멈췄다. 물론 얼굴에는 서로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콜린은 피곤한 표정으로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


“오늘은 큰일이 있는 날이라고. 제발 내 정신을 좀 사납게 하지 말란 말이야.”

“무슨 일인데요?”


조지의 물음에 콜린이 답했다.


“제임스 녀석이 골든 혼 간부 회의에 참여하는 날이잖아. 오늘 회의 결과에 따라서 당장 지벡을 죽여야 할지 아니면 잠시 넘어가야 할지가 정해진다고.”

“아, 그렇군요. 미안해요.”


지벡을 죽이게 되든 죽이지 않게 되든 어쨌든 콜린은 언젠가 사람을 죽이게 된다. 하지만 그도 사람을 죽이는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가져가고 싶기도 했다. 첫째는 단순히 살인 자체가 꺼림직하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제임스의 템포가 좀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템포를 맞춘다면 골든 혼에서 콜린과 제임스가 벌이는 일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콜린은 고개를 들어 조지를 봤다. 더 이상 말을 꺼내진 않을 것 같았다. 데이지를 보자 그녀 역시 어깨 위로 손을 들어 항전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괜찮을까요? 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 주겠죠?”

“그렇긴 할 거야. 중요한 건 결과겠지만.”


데이지가 시계를 봤다. 점심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박수를 짝, 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자, 걱정은 잠깐 뒤로 하시고. 일단 밥 만들어 줄 테니까 먹자고.”


조지가 말했다.


“오늘 저한테 실례했으니까 제가 먹고 싶은 걸로 하죠. 전 대구구이가 끌리는데요?”

“은근슬쩍 날 조종하려고 하지 말아라, 응?”


데이지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조지가 콜린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증거들을 모았잖아요.”

“그랬으면 좋겠다만.”


콜린은 조종실 창밖으로 떠올라있는 태양을 바라봤다.




남향으로 창이 나 있는 이 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조금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이 방에 들어오는 자들이 저격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던 탓이었다. 또 다른 단순한 이유로는 늙은 회장이 너무 강한 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란 것도 있었다.


햇살이 막힌 커다란 창문들이 있는 넓은 방에서 제임스는 그저 앉아만 있었다. 상석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자리가 그에게 허락된 자리였다. 조금 서늘한 기운이 도는 곳에 그는 혼자였다. 다리를 꼰 채로 이리저리 둘러보는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전부 지난번에 왔을 때랑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한쪽으론 술병 가득한 유리장. 벽 한쪽을 모두 채우고 있는 수많은 자료. 그의 관음은 누군가 방에 들어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토니오 체이스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여,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반갑습니다, 조장님. 헌데 무슨 소문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장 회의에서 두 번째로 오는 녀석은 달라도 첫 번째로 오는 녀석은 항상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


제임스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것은 결코 부정의 의미는 아니었다.


“조장이어도 조장 사이에서는 막내 아닙니까? 미리 와서 다른 분들이 오실 때마다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지요.”


토니오는 싱긋 웃어 보였다. 회의실에 둘만 있는 가운데 그가 은밀하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자네가 내게 힘을 실어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고 있네.”


제임스 역시 웃었다. 방금과 같은 멋쩍은 웃음은 아니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임스는 조장들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그것은 전 레드 카프든 아니든 출신을 가리지 않았고, 누군가는 인사를 받아주고 누군가는 받아주지 않았다. 대개 받아주는 것은 그와 같은 뿌리였고 받지 않는 건 그렇지 않은 자들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모든 조장들이 도착했고, 부회장 역시 도착했다. 회의 시간을 15분 앞둔 시각이었다. 조장들 모두 서로를 알고 서로가 전부 친하지 않기에 어색한 시간이 지나갔다. 제임스는 고개를 돌려가며 자리에 앉은 이들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회장의 상석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기존 골든 혼 조장들이 앉았다. 왼편에는 전 레드 카프 출신 조장들이었다. 이 배치는 처음 레드 카프가 골든 혼에 복속되었던 이래로 바뀌지 않았다. 정치에는 좌익과 우익이 있다고 했다. 먼 옛날 지구에서 큰 혁명이 있었을 때 의회에서 혁명했던 파는 좌측, 왕을 지지하는 측은 우측에 앉았던 것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때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사람들이나 바뀐 것은 없었다. 출신에 따라 분파를 나누고 의견을 규합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 회의에 참석하고 그런 사실을 새삼 다시 확인한 제임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그 본성 덕분에 세상은 정말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자신과 가까운 오른편 자리에 앉아있는 지벡 포레스트가 눈에 띄었다. 오늘 회의가 그의 명줄을 늘려줄 수 있을지 결정하는 자리라는 것을 본인은 모르겠지. 멀뚱멀뚱하게 앉아서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 상담실에 불려온 학생과 같지 않은가? 그의 머릿속엔 아리우스 조의 처분보다 같은 카지노 사업을 하는 전 레드 카프 조장들과 어떤 대화를 할지가 들어있을 거다.


회의실 가운데쯤으로 고개를 돌리니 얼굴만 알고 있는 녀석이 새로 들어와 있었다. 물론 신참은 아니다. 신참은 저곳에 앉을 수 없다. 제임스의 기억이 맞다면 필시 클로어일 것이다. 아리우스 조장 대리로 이곳에 온 그는 저 자리에 처음 앉아보는 것이었다. 조장들의 위압에 곧게 굳은 채로 부동하는 게 안쓰럽다.


시선은 상석 쪽으로 옮겨졌다. 부회장의 자리는 오른쪽에 위치했다. 그것은 복속의 상징임과 동시에 쇼커의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그 역시 골든 혼의 회장을 노리고 있지 않을까. 때가 되면 천천히 정리할 거야. 제임스는 그 말을 되뇌었다. 이곳에서 그쪽을 바라보나 그쪽은 이곳을 보지 않는다. 쇼커는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위세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제임스는 생각했다.


회의 5분 전,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회장의 수행원이 모습을 보였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그렇게 짧게 외치고는 다시 뒤로 빠졌다. 늙은 회장은 열린 문으로부터 두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이곳의 모든 이들처럼 새까만 정장을 입은 채로. 지팡이는 짚었지만, 눈은 노쇠하지 않다. 모두가 이 사람을 경외했다. 그렇기에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일어서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앉게.”


회장이 자리에 도착하자 앉고는 그렇게 말했다. 자리에 하나씩 놓인 마이크 덕분에 스피커가 울려 방안에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기립했던 사람들이 곧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골든 혼 비정기 조장 회의를 시작한다.”


회장이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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