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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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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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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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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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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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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첫 단추를 잇는 법 -2-

DUMMY

제임스는 조수석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엄밀히 말하면 콜린과 제임스의 반란은 아직 첫 단추도 끼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구두 약속이 전부고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 콜린과의 동맹은 끈끈하지 않았다. 신의 없이 약점들만으로 쌓인 신뢰의 두께는 한없이 얇다. 지금 제임스에겐 콜린과의 관계가 지속될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콜린이 마음을 바꾸고 잠적을 하거나 이 반란의 계약을 골든 혼에 알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도 없었다. 만약 이 첫 청부살인이 성공한다면 그때서야 첫 단추란 것이 끼워졌다고 볼 수 있으리라.


“걱정되십니까?”


운전하고 있던 시류가 물었다. 제임스는 옆을 보지 않고 말했다.


“걱정되지. 지금이 가장 위험한 때니까.”

“그래도 말씀은 잘 끝내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러려나?”


일이 잘 풀려야 오늘의 말들이 잘 끝난 것이겠지.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시류가 자신의 일을 돕고 있긴 하지만 자신의 걱정까지 쓸데없이 전염시킬 필요는 없었으니까.


“예, 나오실 때의 표정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긴장이 풀리면 웃는 버릇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개인적인 사담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제임스는 다른 말을 했다.


“그 친구가 꽤 실력이 좋은 걸로 유명했거든.”


시류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 그는 콜린에 대해서 들은 것이 없었다. 그 사실을 새삼 떠올린 제임스는 다시 말을 돌렸다.


“밥이나 먹고 들어가지.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저는 따로 없습니다.”

“난 리소토가 당기는데.”

“그럼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시류는 차를 돌렸다.




얘기를 끝낸 콜린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종이 한 장을 두고 정보를 검색하는 데 열심이었다. 종이는 아리우스 볼턴의 일정표였고 검색하고 있는 건 그의 이동 루트에 대한 것이었다. 목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리할지, 또 어떻게 빠져나올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근 10년의 세월은 날카로운 칼을 녹슬게 했다. 구석에 묵혀두던 머리를 쓰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콜린은 실감할 수 있었다.


검색을 통해 상대를 처치할 몇몇 위치를 잡아낼 수는 있었지만, 사고사로 위장하려면 더 많은 생각이 필요했다. 필요한 장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큰 도움은 아니겠지만 제임스에게서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 생각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이었다. 생각을 해야 했다.


콜린은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는 콧김을 내쉬었다. 머리가 아플 것만 같았다. 10년 동안 히트맨으로서 사고해오지 않았던 그는 지금 이 작업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평범한 승용차로 거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데이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차려놨다니까?”

“응?”


콜린이 뒤를 돌아보자 데이지가 조종석 뒤에 서 있었다.


“두 번은 불렀는데 답도 없고 말이야.”

“아, 미안.”

“그렇게 힘들어?”

“괜찮아. 별거 아니야.”


콜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했다. 조지는 벌써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먹죠. 식겠어요.”


식탁에 앉은 콜린은 접시 안에 든 음식을 봤다.


“리소토네.”

“왜? 별로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콜린은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몇 숟가락 떴을 때, 데이지가 입을 열었다.


“당신 일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데?”

“우리가 그런 일은 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당신하고 같이 지낸 정이 있잖아?”


콜린은 수저를 멈추고 데이지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우리도 당신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당신 혼자 끙끙대지 말란 말이야.”


콜린이 수저를 내려놨다.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조지가 데이지를 거들었다.


“콜린 씨, 우리도 돕고 싶어요.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아냐, 아니야. 그냥 이건······.”


콜린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는 데이지와 조지가 이런 말을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그들의 호의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썩 반가운 말들은 아니었다.


“저기, 이건 내 일이야. 내 과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오로지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야. 다른 사람한테까지 피해를 끼치면서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아. 과거는 누군가 해결해주는 게 아니야. 결말은 스스로 지어야지.”


요컨대 그들이 엮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단 말이군요.”

“이 고집불통 아저씨가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지. 당신 생각은 알았으니까 식사나 하자고.”

“그래. 고맙다.”


콜린이 숟가락을 들려고 할 때였다. 데이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알아줘. 우린 이 배의 선원이고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야 해. 그 말은 당신이 당신 일을 해결하는 걸 우리는 지켜만 봐야 하는 거야. 우리 나름의 생각이 있을 텐데도 그걸 말하지 못하고 당신이 가는 대로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짐짝처럼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


이런 대화는 분명 전에도 몇 번 오간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콜린은 분명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 작전이 그 머리를 흐리게 했다. 확실히 정신적으로 몰려있던 콜린이 작게 읊조렸다.


“그럼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일순 식탁이 조용해졌다. 그 와중에도 식어가는 리소토는 누구의 입으로도 들어가지 않았다. 조지가 말을 꺼낼 때까지 침묵이 지나갔다.


“뭐라고 한 거예요?”


그 누구도 콜린의 말을 잘못 들은 이는 없었다. 데이지와 조지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거짓이었음을 바라기에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물음의 대가로 재확인한 말은 식탁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흩트려놨다. 데이지가 입을 열기 시작한 순간부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데이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어? 당신 우리를 편리한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는 거잖아.”

“그런 게 아니야.”

“아니긴? 나는 혼자 해결할 테니 너는 밥이나 하고 너는 정비나 해라. 당신이 말한 게 이거잖아. 스스로 말해놓고 부정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


고함 뒤에는 이명 같은 울림이 부엌에 울렸다. 짧은 순간 이어진 소리가 끝나자 콜린이 말을 계속했다.


“너는 뭘 위해서 내 일이 끼어드는 거야?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 녀석들하고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 거라고. 걱정된다는 이유 하나로만 끼어 들만한 판인 줄 아는 거야? 왜 그렇게 애처럼 구는 거야? 이건 너한테는 위험하고 나한테도 부담이야.”

“바로 그 점이 우릴 애완동물로 생각한다는 거야. 우린 당신한테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고. 우리가 끼어들 판 정도는 우리가 정할 수 있어.”

“누구 마음대로 낀다는 거야? 아, 내 허락 없이 낀다는 거야? 미안하지만, 안 되겠는데? 자기 역량도 모르고 사지에 발붙이는 애송이들이랑은 일을 못 하겠거든.”

“지금 우리를 그 정도 사리 판단도 못 하는 애송이로 취급하는 거야? 제 몸 하나 간수 못 할 거였으면 진즉 이 배에서 나갔을 텐데?”

“그래, 차라리 나갔으면 더 편할 거다. 너희들한테 신경 쓸 거 없이 혼자 해결하는 게 더 편할 테니까.”

“허······.”


데이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선을 넘어버린 콜린 역시 자신이 한 말을 깨닫고는 풀린 표정으로 식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지는 끼어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다시 잠시 간의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데이지가 말을 꺼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는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헛웃음을 낸 데이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지 씨?”


조지의 말도 못 들은 듯 또각또각 걸어 나가던 데이지는 문 앞에서 뒤를 돌아봤다.


“멋대로 해결해 봐. 좋을 대로 하라고.”


싸늘하게 한 마디를 남긴 데이지는 구두 소리를 흘리며 사라졌다. 남겨진 두 사람은 식어버린 리소토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미안하다.”


이윽고 콜린이 말을 꺼냈다. 조지는 “아니에요.”라며 작게 말했지만, 그 이상 다른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침묵은 잠시 계속되었다. 식어버린 리소토, 굳어버린 분위기. 움직이지 않던 두 남자를 움직이게 한 건 선체에 흐르는 미세한 진동이었다.


“콜린 씨, 이 소리는······?”

“설마.”


두 사람은 재빠르게 조종실로 달려갔다. 거대한 조종실 창으로 보이는 건 날아가는 홀 토마토 호의 모습이었다. 격납고에서 발진하는 홀 토마토 호의 소리가 진동했던 것이었다.


“하아······.”

“아주 날랐네요.”


콜린은 정신이 나간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에게는 더 화낼 기운이 없었다.


“어떡하면 좋죠?”


옆에서 들리는 조지의 물음에도 콜린은 별말이 없었다.


“콜린 씨, 뭐라고 말 좀 해봐요!”


그제야 콜린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작전이 먼저야. 일단 아리우스를 해치우고 찾던지 해야 해.”

“그런······.”

“어쩔 수 없어. 당장 찾는다고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서로 화를 식힐 시간도 필요하겠지.”


조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된 거냐고 진짜!”


이렇게 된 원인은 옆에서 소파에 기대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조지는 더 이상 그를 탓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식당으로 돌아가서 남은 음식을 싱크대에 버렸다. 개운하게 쓸려가는 음식물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안정되려고 했다. 다만 설거지는 하지 않았다.


소란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콜린은 모니터를 보고 조지는 소파에서 TV를 봤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다시 모니터를 보며 작전을 세우던 콜린은 여러 검토 속에 모든 루트가 부정당했고 결국 관자놀이에 손을 짚고 말았다. 옆에 있던 레몬 소다 캔을 들었으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 콜린은 새 레몬 소다를 세 캔쯤 들고 다시 돌아왔다. 조종실에 다시 얼굴을 들이민 콜린이 본 것은 모니터를 보고 있는 조지였다.


“이봐, 잠깐. 뭐 하는 거야?”


조지는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말했다.


“관심이 가서 보고 있었어요.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나 해서요.”

“넌 볼 필요 없어. 이건 내 일이라고 했잖아.”

“네, 그랬죠. 하지만 데이지 씨 말이 맞아요. 저는 선원이고 콜린 씨한테 끌려다니고만 싶지는 않아요. 데이지 씨가 말 안 한 게 있는데요. 그냥 보고만 있는 거 엄청 지루해요.”


콜린은 다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싶었다. 손에 들고 있는 망할 레몬 소다들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조지의 시선을 피하지 못한 콜린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자료 줄 테니까 같이 작전을 생각해보자고.”

“고마워요.”


소다 캔을 자리에 놓은 콜린은 아리우스 볼턴의 일정표를 복사해서 조지에게 가져다줬다.


“자, 지도는 네 디바이스로 확인하면 되고.”


조지는 일정표를 받아들고는 거기에 몰두했다. 콜린 역시 자리로 돌아가 모니터에 집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 가니메데에서의 일정이네요.”

“가니메데 마피아니까 말이야.”


조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적은 무조건 가니메데에서 죽여야 하나요?”

“그런 법은 없지만, 가니메데에서 해치우는 게 편하잖아?”


조지가 콜린에게 다가왔다.


“여길 보면 칼리스토에서 일정이 있던데 이때 따라가서 해치우는 게 좋지 않겠어요?”


콜린은 잠시 생각했다.


“안 될 건 없지.”

“그럼 그렇게 하죠?”

“그렇게 해도 되지만 칼리스토에서의 자세한 일정을 몰라.”

“그 제임스란 사람 연락처 알아요?”

“일단은 알고 있지.”

“그럼 물어보죠?”


콜린은 놀라며 되물었다.


“뭐라고?”

“물어보면 되잖아요? 일 수틀리면 아쉬운 건 그쪽도 마찬가지일 텐데?”


맞는 지적이었다. 상대방의 정보의 우위와 떠오르지 않는 작전 때문에 연락하기 꺼려졌지만, 당연히 안 될 건 없었다. 이건 동업이었고 권리는 동등했다.


“잠깐만 기다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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