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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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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최근연재일 :
2022.09.01 23:3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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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2,617

작성
21.12.0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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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대를 만나고 싶단 말이오 -3-

DUMMY

“이상한 말을 다 하네.”


콜린은 컴퓨터로 검색하며 중얼거렸다. 소파에 누워서 감자칩을 먹고 있던 데이지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리야?”

“조지 말이야. 할 말 없냐니 언제는 내 허락받고 나갔나.”


데이지가 신음했다.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 아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제게 관심 좀 주세요. 하는 어린애의 마음이란 거지.”


콜린이 얼굴을 찡그렸다. 노골적으로 혀를 차는 소리에 깔깔대며 웃는 데이지에게 개소리 좀 하지 말라는 말은 덤이었다.


“농담이야. 돌아오면 물어보든가.”


데이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너도 나가게?”

“그래. TV에선 재밌는 걸 하나도 안 한단 말이지.”

“TV에서 재밌는 걸 틀어준 적은 있었냐?”


데이지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바람 좀 쐬자. 당신도 화면만 들여다보지 말고 기분전환이라도 해봐. 눈 나빠지겠다.”

“내 시력에 대한 조언은 감사히 받도록 하지.”


데이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나갔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서늘하지도 거칠지도 않아 완벽했다. 데이지는 찰랑거리는 머리를 정리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 좋은 날씨.”


왠지 혼잣말을 하게 될 만큼 좋은 날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 도달하자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끔은 그 같은 북적거림이 싫지 않았다. 데이지가 걸음을 멈추게 된 건 그곳에서였다.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 한 명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거리에 서 있었다. 대단히 잘생긴 그 남자는 거리의 누구라도 그를 한 번쯤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나 잘생긴 남자는 드물었다. 성인 남자가 길에서 눈을 붉히고 있는 광경 또한 드물었다. 두 조건은 데이지를 호기심에 들게 하기 충분했다. 데이지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아요?”


남자는 조금 놀라며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네, 그쪽이요.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길래.”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낯선 이에게는 단호한 거부였다. 다가오지 마라. 묻지 마라. 그러나 딱히 할 일이 없던 데이지는 조금 더 남자를 떠보기로 했다.


“사실 제가 당신한테 관심이 가서요. 괜찮다면 연락처 좀 주실래요?”

“죄송하지만 제가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요.”


데이지는 짐짓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아! 애인 분한테 차이셨구나! 그래서 우시는 거죠?”

“누가 차였다는 거예요? 안 차였어요!”


당황하며 발끈하는 남자를 보며 데이지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애인도 있으신 분이 왜 길에서 울고 있어요?”

“그냥 뭘 좀 찾고 있었을 뿐이에요.”

“혹시 찾고 있다는 게 애인 분인가요?”


조금 당황한 남자는 방금보다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괜히 찔러봤는데 정답이었다. 데이지가 한쪽 손을 허리에 걸쳤다.


“같이 찾아드리죠, 뭐.”

“뭘 어떻게 찾아준다는 건데요?”


눈을 가늘게 뜬 남자에게 데이지가 말했다.


“일단 믿어봐요.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니에요?”


남자가 신음했다. 분명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머뭇거렸다. 거절할까 했지만 역시 지푸라기도 잡아야 하는 게 그의 처지였다. 남자는 못 미더워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입을 열었다.


“뭐부터 말씀드리면 좋을까요?”


데이지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부터요.”

“처음부터 말씀드릴게요. 저는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나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군에 입대하게 되거든요. 여자친구의 집안에선 저를 싫어해서 가끔 몰래 만나고 있었어요. 며칠 전에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해 연락을 했는데 이 동네에서 보자고만 하고 세세한 약속은 잡지 못했어요.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혹시 몰라서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길에서 이걸 주웠어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데이지가 살펴보니 회중시계였다.


“이게 뭔데요?”

“제가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준 거예요. 싸구려이긴 하지만요. 이게 땅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여자친구가 여기에 와서 이걸 떨어트렸다는 거잖아요? 저를 만나러 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네요.”


데이지가 조금 생각한 끝에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디바이스는 연락 안 되죠?”

“계속 꺼져있었어요.”

“당신 디바이스는 가지고 있고요?”

“네.”

“여자친구네 집이 어디인지는 알아요?”

“알긴 합니다.”

“지도 좀 켜주시겠어요?”

“지도요?”

“네. 이 근방 지도요.”


데이지의 말에 남자는 디바이스를 꺼내 지도를 열었다.


“여자친구네 집을 찍어보겠어요?”


남자는 데이지의 말대로 한 점을 찍었다.


“여자친구네 집이 이 점이고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 이 점이죠?”

“네. 그렇죠?”

“짐작 상 여자친구도 당신을 찾고 있을 거예요. 여자친구네 집에서 우리가 있는 점까지 직선을 그어보면 여자친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죠.”


남자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이쪽으로 쭉 가면 제가 자주 놀던 거리가 나와요. 다른 거리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같이 다닌 적이 있어요.”

“그래요? 그럼 여자친구분은 당신을 찾으러 당신이 주로 가던 거리로 향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고 그냥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떨어트린 거면 어쩌죠?”

“그런 것까지 고려할 수는 없어요. 당신 급한 거 아니에요? 게다가 여자친구가 향한 걸로 추측되는 곳은 당신이 자주 놀던 거리라면서요? 지금은 이 추리를 믿는 수밖에 없어요.”


남자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밤의 한복판에서 북극성을 발견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제대로 된 감사를 받아본 적이 없던 데이지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힌트를 찾았으니 다행이네요. 그럼 꼭 여자친구분을 찾길 바랄게요.”


말을 마친 데이지는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데이지의 뒤까지 찾아온 남자는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말했다.


“대단히 실례지만 혹시 제 여자친구를 같이 찾아주실 수 있나요?”


데이지는 잠시 멈췄다. 대단히 형식적인 정지였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본인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면 답은 하나였다.


“그럴까요? 까짓거 할 일도 없고 말이죠.”


남자의 얼굴에 드디어 화색이 돌았다. 그 표정을 본 데이지는 수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통성명부터 할까요? 저는 데이지라고 해요.”

“에릭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평소에 가시던 곳 중 가장 가까운 곳부터 갈까요?”


데이지의 말에 남자는 잠시 고민했다.


“제가 즐겨 가던 재즈바가 있어요. 여자친구에게도 소개해준 곳이에요. 거기부터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좋아요. 안내해주세요.”


에릭의 안내에 따라 데이지는 걷기 시작했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몇 개의 골목에서 방향을 틀어 들어갔다. 곧 누군가 색소폰을 불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보였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더럽지는 않았다. 묵직해 보이는 짙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TV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남자가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딸랑거리는 벨소리를 들었는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어, 웬일이야? 아직 안 열었는데. 내일 떠난다고 하지 않았어?”

“안녕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남자는 대걸레를 벽에 세워두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뭔데?”

“저번에 데려온 여자 기억나세요? 여기 여자분보다 키는 조금 더 작고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머리에 어깨보다 좀 더 밑까지 오는 그런 사람이었는데요.”

“아, 기억하지. 술은 하나도 안 마시던데.”

“혹시 오늘 본 적 있으세요?”

“글쎄, 나도 좀 전에 와서 말이야.”


아아. 하며 목소리를 내는 에릭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묻어나왔다.


“왜? 무슨 일인데?”

“별일 아니에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언제라도 여기 오면 꼭 들러라.”


말을 마친 남자는 다시 걸레질을 시작했다. 별다른 수확 없이 두 사람은 가게를 나왔다. 표정이 좋지 않은 에릭에게 데이지가 물었다.


“여자친구분이라고 알리고 다니지는 않았나 보네요?”

“말했다시피 그쪽 집에서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지라. 되도록 주변에는 그냥 친구 정도로만 얘기했어요.”


에릭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처지와 여자친구에 대한 걱정이 복합적으로 만든 한숨이었다. 데이지는 그를 위로했다.


“이제 한 곳 둘러본 거잖아요. 실망할 거 없어요. 마음 급한 건 알지만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꼭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죠?”

“그럼 가죠. 다음 장소는 어디예요?”

“아, 어디냐면요······.”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중력에 몸을 맡긴 소피아는 그대로 조지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속옷이 보인다는 만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가까워지면서 불쑥 커지는 그녀를 쫓아, 조지는 팔을 벌렸다. 그의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자칫하면 환자를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린 몸이 조지의 팔에 떨어지고 조지는 넘어져 바닥에서 굴렀다. 곧 정신을 차리니 온몸이 뻐근했다. 생각보다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소피아에게 생각이 미친 조지는 끙끙대며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불렀다.


“괜찮아요?”


소피아는 조지보다 먼저 일어나 몸을 털고 있었다. 꽤 멀쩡한 모양이었다.


“할 만하네요. 빨리 일어나요. 가야죠.”

“난 전혀 할 만하지 않았는데······.”


소피아는 조지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뼈와 근육이 쑤셔오는 조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손길에 이끌렸다. 골목을 내달리며 몇 분을 뛰었을 것이다. 숨이 차올라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달리기를 멈췄다.


“일단 이 정도면 충분히 못 찾겠죠?”


소피아의 말에 조지는 대답조차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잠시 헉헉대던 그는 한 손으로 다른 쪽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혹시 모르죠. 이런 골목은 의외로 사람을 몰기 쉬운 장소니까요. 빨리 대로변으로 가야 할 거예요.”

“그걸 왜 이제 말한 거예요?”

“말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절 끌고 갔잖아요!”


어처구니없다는 듯 반론하는 조지의 말에 소피아는 입을 다물었다. 조지의 근육통이 조금 잦아들었을 무렵 소피아가 말했다.


“자, 그럼 어서 큰길로 나가죠.”


조지는 수긍했다. 사람을 숨기려면 사람들 사이에 숨기는 게 제격이다. 두 사람은 빠르게 걸으며 길가로 향했다.


“이제 어떡하실 거죠?”


길가에 거의 도착할 때쯤 조지가 물었다.


“어떡하냐뇨?”

“당신 남친을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찾을 거냐고요.”


소피아가 멈춰 섰다.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 것이 보였다. 조금 신음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고요?”

“막무가내로 찾기 시작한 거라 사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소피아를 조지가 지그시 쳐다봤다. 뭔가 풀리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 첩첩산중 같았다. 조지는 잠시 생각했다.


“아까는 어떻게 찾고 있었어요? 돌아다니면서 찾고 있었다면서요.”

“그 사람과 자주 가던 동네를 찾아갔어요. 그 사람하고 같이 갔던 가게를 몇 군데 들러봤는데 다들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아냐고 물어보고 다녔어요.”

“남자친구분은 어디 사는데요?”

“옆 동네에요. 집은 어딘지 몰라요.”


조지는 잠시 생각했다.


“당신, 더 갈만한 곳은 있어요?”

“몇 군데 더 있긴 해요.”

“그럼 그쪽으로 가보죠.”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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