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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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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최근연재일 :
2022.09.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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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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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2,617

작성
21.10.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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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꾸는 꿈 -2-

DUMMY

허름한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제법 고즈넉한 가게였다. 점원은 책을 보며 한가하게 있었다. 마치 자신 외에는 가게 안에 아무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 가게 안에서 데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꼭 생각하던 술을 찾고 있었다. 코너별로 다른 종류의 주류가 있는 곳에서 브랜디가 즐비한 구석으로 들어갔다. 조금 아래에 있는 시야에 들어오는 고급스러운 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먼지가 조금 내려앉은 병들 위로 손이 뻗어나갔다.


그녀보다 더 빠른 손이 그 브랜디를 덥석 집었다. 데이지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며 브랜디를 가져간 손을 보았다. 투박한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눈을 흘겨 데이지를 보고 있었다. 순간 두 사람이 정지했다.


남자의 시선은 은연중에 깔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데이지는 조금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으로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실례지만 그 술을 양보해주실 수 없을까요?”


남자는 은근한 코웃음을 치고는 뒤를 돌아 카운터로 갔다. 데이지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데이지가 남자를 잡아 세웠다. 남자는 카운터 앞에서 귀찮다는 눈빛으로 데이지를 쳐다봤다.


“죄송하지만 그 브랜디에 더 가까웠던 건 저잖아요? 그렇게 훌쩍 집어가시면 곤란하단 말이에요. 저로서는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은데 그냥 저에게 그 브랜디를 양보하시면 좋겠거든요.”


데이지가 말을 하는 중에도 남자는 계산을 이어갔다. 데이지가 말을 마치자 남자는 바코드를 찍고 봉투에 브랜디를 담는 단계까지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3만 솔라리입니다.”


점원의 말에 남자가 디바이스를 꺼냈고 결제가 완료되었다.


“거절하지.”


짧고 굵은 한 마디에 그나마 웃고 있던 데이지의 입이 일그러졌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라는 점원의 말이 그 신경을 더 거스르게 했음은 당연했다. 데이지는 가게를 박차고 나갔다. 거리를 걷는 남자에게 달려가 그 팔을 붙잡았다.


“어이, 당신. 나 좀 봐요.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남자가 데이지를 보는 눈은 미친년을 구경하는 시선이었다.


“뭘 하긴? 술을 사서 밖으로 나온 거잖아.”


브랜디를 채가는 손도 거슬린다. 깔보는 듯한 시선도 아니꼽다. 반말을 듣는 것도 짜증 난다. 데이지는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 진짜 양심이란 게 없는 거야? 사람을 대하는 싸가지는 얼마에 팔아먹었어?”

“고작 술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

“고작 술? 내가 화가 난 건 네 태도 때문이라고.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공교롭게도 내가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말이지.”

“뭐라고?”

“이럴 시간에 다른 술집이나 뒤져보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주머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술을 마시며 말하는 그의 말에 데이지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우선 당신을 두들겨 패고 난 뒤에 강제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술을 사는 경우가 제일 빠른 방법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남자가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그때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디바이스를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편집장님. 아, 그 기사 말씀이신가요?”


연신 존대를 해가며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조아리던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누가 봐도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가며 데이지에게 브랜디가 든 봉투를 건넸다.


“3만 솔라리.”

“뭐?”

“3만 솔라리 달라고. 현금 없어?”


데이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지갑에서 3만 솔라리를 꺼냈다. 잡아채듯이 그 현금을 가져간 남자에게서 술을 받은 데이지는 찜찜하면서도 만족하는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당신. 다음부터는······.”


남자가 있던 쪽을 바라본 데이지의 말이 끊겼다. 남자는 이미 자리를 뜨고 저쪽으로 걷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담배 한 개비를 손가락에 쥐고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썩 못나 보이지는 않았다.


데이지는 뒤로 발걸음을 돌렸다. 원하던 브랜디를 얻었으니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방금 일어난 일은 생각해봤다 기분만 나빠질 뿐이었다. 빨리 잊어버리고 바질 리브스 호로 돌아가 브랜디를 음미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는 최대한 생각을 죽이며 걸어갔다.




조지는 목에 멘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이곳저곳 찍을 곳을 물색하며 다녔지만, 그가 카메라와 사진에 대하여 가진 조예는 많지 않은 수준이라 달리 찍을 만한 곳을 찾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다리 위에서 강가를 찍어도 계단 위에서 건물을 찍어도 뭐 하나 쓸만한 사진을 건지기는 어려웠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렌즈만 사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장비 병을 느끼다가도 그것이 한심한 생각임을 자각한 채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조리갯값에 따른 흐려짐이나 화각에 따른 원근감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실로 그의 사진은 썩 괜찮지 않았다.


“찍을만한 게 없어. 찍을만한 게.”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이해시킬 실력은 없었다. 장비에 집착하는 것이 한심한 것은 안다. 그러니 피사체를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닳도록 걸어 다니면서 찍을만한 것에 모조리 셔터를 눌렀지만, 미러리스의 LCD 창에 나온 사진은 대단찮은 것들뿐인 것이 현실이었다. 그때 조지의 눈에 훌륭한 피사체가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으리으리한 집이라니.’


큰 절에서나 볼 법한 아주 아름다운 대문이 철로 된 미닫이문을 깔끔하게 품고 있었다.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은 저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관이 수려했고 대문과 어울릴 정도로만 딱 깔끔했다. 정원 한가운데에 분수가 있었고 그것은 작동하진 않았지만, 그 돌로 된 조각이 미니멀리즘한 미학을 뽐내고 있었다.


‘이건 찍지 않으면 안 되겠어.’


조지의 내면에서 욕구가 고동쳤다. 적당히 광각으로 렌즈를 줌 아웃하고 예스러운 프리셋을 선택했다. 조리개를 적당히 조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대문 앞에서 자세를 잡고 뷰파인더 너머로 피사체를 바라봤다. 조지가 셔터를 누른 순간이었다.


“어이, 거기! 지금 뭐 하는 거야!”


스트라이프 패턴의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마당을 가로지르며 소리쳤다. 목 위로 드러나는 문신과 위압감을 주기 위한 올백 머리는 누가 봐도 폭력단의 조직원으로 보였다. 조지는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가 노리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은 지나가던 사람이 봐도 고개를 끄덕일 일이었다.


남자를 따라 나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여섯 명의 험상궂은 남자들이 인상을 잔뜩 쓰며 조지를 향해 나왔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줄행랑이었다. 카메라를 품은 조지는 헐레벌떡 남자들을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들은 동작이 큰 걸음으로 위압감을 주며 걷는 대신 달려와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떡할까요?”


삭발한 부하가 묻자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어떤 놈인지 모르니 반드시 찾아서 잡아 온다!”


다섯 명의 남자들이 우렁차게 “예!”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평화로운 길바닥에서 참으로 이질적인 광경이었지만 그들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여섯 명의 남자들은 조지가 도망친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데이지는 조금 지쳐있었다. 많은 거리를 걸어와서가 아니었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망할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만 솔라리 짜리 브랜디를 얻어 왔건만 이 술이 자신의 기분을 달래줄 것 같지는 않았다. 싫은 생각을 계속 나게 하는 술을 마셔봐야 무엇하겠는가. 오늘은 다른 술을 마시고 이건 나중에 마셔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종실 테이블에 브랜디를 두고 소파에 털썩 누웠다.


팬이 돌아가는 천장이 안정적이다. 갓난아이 위에 모빌을 올려놓는 것이 이런 걸 위해서일까. 누워있던 데이지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자기 방으로 가서 술을 가져와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조금 귀찮은 탓이다. 괜히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서 엄지와 비빈다. 기운 내서 술을 마셔야겠다며 데이지가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디바이스의 벨소리가 울렸다.


‘조지?’


발신자를 확인한 데이지는 눈을 깜빡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그녀의 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데이지 씨? 지금 어디예요? 제가 좀 급한 상황인데······.”


속삭이는 듯한 게 어딘가에 숨어있는 듯했다. 데이지는 조지가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많이 심각한 상황이야?”

“어, 네.”

“세상에. 무슨 일인지 설명할 수 있어?”

“제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너무 멋있는 건물이 있어서 찍었는데요. 그 안에서 폭력 조직원 같은 사람들이 나오더니 저를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무슨 건물을 찍었길래 너를 잡으러 온다는 거야?”

“절 같은 느낌이 있는 대문에 미닫이문이 있고 그 뒤에는 저택과 분수가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건물을 찍었는데 나와서 널 쫓아오고 있다고?”


데이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조지가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사진만 찍었을 뿐이라고요.”


데이지가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 냄새가 나긴 나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지금 길도 모르고 그 사람들도 많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요. 옷을 좀 바꿔입어야 할 것 같은데 제 방에서 셔츠랑 바지 한 벌하고 야구모자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뭐야? 총질 같은 건 안 하는 거야? 재미없게.”

“대낮에 길가에서 왜 총격전을 해요! 그냥 모습만 숨기면 되요. 적들은 6명이나 된다고요! 데이지 씨, 제발 다른 거 하지 말고 그냥 옷만 챙겨서 와주세요. 부탁이에요.”


깔깔대는 데이지의 웃음소리를 듣는 조지는 죽을 맛이었다.


“걱정하지 마. 나라고 총을 쏘는 것에 환장한 건 아니라고. GPS로 위치 보내. 내가 그리로 바로 갈게.”

“정말 고마워요. 그럼 빨리 와 줘요.”

“그래. 기다리라고.”


통화가 종료되었다. 데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브랜디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 브랜디를 적당한 자리에 두고 배낭을 하나 꺼내 조지의 방으로 갔다. 제대로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은 채 침대에 널브러진 셔츠와 반바지를 집어 대충 배낭에 쑤셔 넣었다. 모자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눈에 띄게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고민하던 데이지는 그 모자를 자신의 머리에 푹 눌러썼다. 밑단이 짧은 가죽 재킷과 자못 어울렸다. 호기롭게 배낭을 멘 데이지가 당당한 걸음으로 바질 리브스 호의 해치를 나섰다.


GPS의 위치는 건물 안으로 뜨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지는 자신을 쫓는다는 남자들을 피하려고 건물로 몸을 숨긴 것 같았다. 물론 쫓는 놈들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거리를 뒤지다가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상황을 볼 게 뻔했다. 조지가 있는 근방은 건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운이 나쁘다면 제대로 잡힐 것이 분명했다. 데이지는 걸음을 빨리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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