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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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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최근연재일 :
2022.09.01 23:3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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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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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
글자수 :
742,617

작성
21.12.2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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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첫 단추를 잇는 법 -5-

DUMMY

식사는 길지 않았다. 콜린은 실언을 한 뒤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만든 파스타를 먹고 난 조지는 콜린에게 약을 권했다. 물론 콜린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주린 배를 잡고 조종석으로 향한 콜린은 곧 정리를 마치고 돌아온 조지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탁자에 놓인 종이를 보여주며 콜린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있듯이 이 녀석들은 이른 새벽에 소냐위크에 있는 공장으로 향한다고 해. 어떤 공장인지는 안 적혀 있지만, 눈에 띄지 않게 새벽에 움직이는 걸 보면 당당한 곳은 아니겠지. 그 녀석들이 이용하는 도로의 통행량을 보면 이 시간대에는 한 주에 두 세대 있을 정도야. 목표를 헷갈릴 일은 없겠지. 여기까진 알겠지?”

“네.”

“그렇다면 여기 적힌 작전은 사실 편하게 진행할 수 있어. 다만 문제는 이거지. 혹시 다른 차량을 잘못 노리게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한 500m 앞에서 어떤 차가 지나가는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단 거야. 그리고 네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하고.”

“이해했어요.”


콜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 할 거냐?”

“물론이죠. 어려운 일도 아닌 걸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다. 콜린이 그 말에 대고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수많은 말들이 자신이 나가겠다고 아우성치는 통이었다. 어렵진 않아도 의미가 크다. 살인에 일조하는 거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 진심은 정말 고맙다고 생각해. 그중 어떤 말을 내보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콜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직 조지가 걱정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조지는 그런 콜린을 인내심 있게 쳐다봤다. 말이 없다는 것은 그도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교차하는 시선 가운데 두 사람 모두 그걸 깨닫지는 못했다.


이윽고 콜린이 말을 꺼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 차종은 이따 알려줄게.”


콜린은 장비를 챙기기 위해 일어섰다.




광활하게 맑았던 낮에는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날이 어두워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움푹 쌓일 정도의 함박눈과는 거리가 먼 질척한 진눈깨비였다. 자박거리는 소리는 신발에 닿는 느낌과 같이 섞여 사람을 불쾌하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하게 내리기 시작했고, 콜린은 이런 날씨에 감사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빛이라고는 옅은 가로등밖에 없는 이차선도로에 콜린과 조지가 서 있었다. 옆길에 숨어든 두 사람은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저쪽으로 500m쯤 가서 녀석들이 탄 차가 오면 나한테 전화를 걸어. 알겠지?”


차가 오는 방향을 가리키며 콜린이 말했다.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콜린은 차 넓이 만한 매트를 굴려 펼쳐보았다. 아스팔트 바닥과 같은 색의 그것은 가시가 여럿 박혀있었다.


콜린은 바질 리브스 호를 세워둔 쪽을 바라봤다. 녹색의 커다란 배는 어둠에 모습을 감춘 채 보이지 않았다. 이차선도로에서 사차선도로로 넓어지는 그 부분에 잘 있을 것이었다. 문제가 없다면 일이 끝나고 곧바로 출발할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20분 정도 남았나.’


콜린은 시계를 보며 생각했다.




골든 혼의 조장 아리우스 볼턴은 이번 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밖은 무식하게 춥고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 거래를 하러 온 족속들도 이런데 이들과 마찰이 생긴다면 어떨지. 날건달 같은 이곳 사람들의 분위기는 품격이란 걸 중시하는 골든 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결코 올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새벽 일찍 일어난 아리우스는 차에 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운전석의 앉은 비서의 말에 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석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아직 피로가 풀리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어제부터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쉽게도 비서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리우스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덕분에 비서는 그가 깨어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얘기를 나누어 피로를 가시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생은 무슨. 좀 피곤하기만 할 뿐이지.”

“그래도 지금 일정만 하시면 되니 힘내십시오. 그 친구들이 그렇게 자랑하며 봐달라고 하던 공장 아닙니까.”


칼리스토 범죄자들이 생산하는 마약이라는 게 애초에 썩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아리우스였다. 그는 비서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양아치 같은 놈들이 만드는 물건은 애초에 믿을 게 못 되는 거야. 언제든지 품질 떨어지면 거래 끊을 준비해 두고, 적당히 구경만 하다 가자고.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상당히 날 선 말투 때문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조장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말없이 운전대만을 잡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콜린은 시계를 확인하지는 않았기에 정확히 몇 분이 흘렀는지는 몰랐다. 감각적으로는 생각했던 시간 정도가 흘렀을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때 콜린의 디바이스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방금 지나갔어요. 검은 세단. 아까 보여줬던 차랑 똑같이 생겼어요.”

“차선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오른쪽이요.”


갓길에 몸을 숨기고 있던 콜린은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매트를 꺼내 가로등 빛이 옅은 쪽에 펼쳤다. 가까이서 본다면 티가 나지만 저 멀리서 오는 차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두 플라스틱 통 중 하나의 뚜껑을 따서 매트 앞에 뿌렸다. 시험 삼아 신발로 밟아보니 길이 굉장히 미끄러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콜린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콜린은 등에 멘 가스통을 다시 정리하고 휘발유가 든 플라스틱 통을 왼손에 들었다. 심장이 크게 박동하고 덥지도 않은데 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두근거리는 소리를 느끼며 자리에 정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가 왔다. 검은 고급 세단. 차종도 정확했다.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도 모르는 그 차는 빠른 속도를 유지한 채 죽음을 향해 질주했다.


푸슈욱하는 소리가 들린 직후 자동차는 중심을 잡지 못하며 휘청거렸다. 속절없이 차체가 돌더니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차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콜린에겐 다행히도 멀쩡한 사람이 없는 듯했다.


재빨리 차 쪽으로 달려간 콜린은 우선 차 안을 살폈다. 깨진 유리 틈새로 정신을 잃은 운전자와 뒷좌석에서 꿈틀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선글라스를 썼지만, 아리우스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콜린은 잠시 무언가 위화감이 느꼈지만,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즉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콜린은 재빨리 가스통에 연결된 호스를 유리 틈새에 넣었다. 그리고 가스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진한 수면 가스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시야가 흐려지기도 전에 아리우스는 곧 그 미세한 움직임마저 멈추게 되었다.


콜린은 즉시 주유구를 열고는 그곳부터 미끄러운 액체를 뿌린 곳까지 휘발유를 뿌려댔다. 라이터를 켜고 액체의 시작점부터 불을 옮기자 삽시간에 불길이 번져갔다. 주유구까지 불이 도달했다. 시원스러운 굉음이 들리며 차가 폭발했다. 장담컨대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었다. 콜린은 주변을 둘러서 오가는 차가 있는지 살펴봤다. 불타는 소리를 제외한 찻길은 고요했다. 그제야 콜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디바이스에서 다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조지의 연락이라고 확인한 콜린은 전화를 받았다.


“끝났어. 얼른 와.”


차분한 목소리의 답으로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것은 다급한 조지의 말이었다.


“다른 차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뭐?”

“빨리 몸을 숨겨요!”


전화를 끊은 콜린은 황급히 갓길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가 깔아놓은 가시 매트에 생각이 미쳤다. 갑자기 바퀴가 펑크 나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누구라도 수상하게 여길 것이었다. 콜린은 가스통을 내려놓고 매트를 향해 뛰었다. 조금만 더 빨랐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차는 콜린이 매트를 접고 갓길로 향하는 순간 나타났다. 콜린의 앞에 끼익 멈춰선 검은색 차에서 네 명의 사람이 내렸다. 모두 검은색 정장을 하고 있었고, 콜린은 그것이 어떤 옷인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골든 혼의 옷이었다.


뒷좌석에서 나온 남자가 앞 좌석에서 나온 두 남자에게 지시했다.


“빨리 조장님에게 가 봐!”


콜린은 수면 가스를 넣기 전에 들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조장의 보디가드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떨어져서 오게 된 이유는 뭐지? 늦잠인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 녀석들에게서 떨어져야 한다는 거였다.


두 남자가 불타는 세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시한 남자는 콜린을 쳐다봤다. 콜린의 어두운 옷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선 누구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뭐야?”

“아, 예······. 저는······.”


당황한 콜린은 머릿속으로 상황판단을 했다. 아무래도 저 사고를 낸 장본인이라고 아직 생각은 못 하는 듯했다.


“큰 사고가 난 것 같아서······. 아무래도 빨리 신고 해야겠다 싶어서요.”

“신고는 했나?”


남자는 당황하며 물어봤다. 당연한 일이었다. 조장의 신원이 경찰에 밝혀지면 심하게 곤란해질 테니까. 콜린은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아직은 안 했습니다만.”


남자는 안도했다.


“당신 차는 어디에 있나?”

“우선 저기 앞에 세워뒀습니다. 역주행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까 돌아가 봐.”

“아, 네.”


아직 안도할 수 없었지만 콜린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았다. 그러나 곧 한 발자국도 내딛기 전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콜린은 애써 침착하게 남자 쪽을 봤다.


“무슨 일이시죠?”

“들고 있는 건 뭐지?”

“아, 이건요······.”


사고를 일으킬만한 물건을 들고 현장에 유일하게 서 있던 남자. 콜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다행히 가늘게 뜬 눈으로 콜린을 쳐다보는 남자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점점 대답이 늦어질수록 그의 눈도 서서히 가늘어져 갔다. 콜린은 조심스럽게 뒤에 감춘 오른손을 권총 홀스터에 가까이했다. 그것을 남자가 눈치채기 직전이었다.


하늘에서 붉은 소형정이 내려왔다. 가로등 사이로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넓지 않은 이차선도로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날렵한 외견에 기관총과 플라스마 포가 달린 모델이었다. 그것이 어떤 우주선인지 콜린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조종석이 열리고 붉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내렸다. 콜린을 보던 남자는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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