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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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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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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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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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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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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좋은 아침입니다 (5)

DUMMY

아인은 불편했다. 그것도 매우 노골적으로 불편했다.

크리스가 자신의 체포를 만류하면서 좋은 생각이 있다고 했을 때부터 무언가 불안했지만, 그 ‘좋은 생각’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고 나서 아인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수백억 상당의 약이 실려있었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는 트럭. 수갑을 찬 채로 그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있는 병헌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이 서양인한테서 들은 ‘제안’을 정리하려는 그의 표정은 아인만큼이나 혼란스러워 보였다.

“지금 이 짓을 벌인 새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줄 테니까, 나도 레키프 내부에서 나오는 일을 알려달라는 거잖아?”


“그런 셈이지.”


만족스럽게 웃는 크리스였지만, 돌아오는 건 병헌의 거친 콧방귀였다.


“미쳤냐? 내가 쥐새끼나 끄나풀로 보여? 차라리 콩밥을 먹고 말지, 미친년아.”


“아니아니, 잠깐만. 이해를 잘못하셨나 본데, 네 조직이랑 보스를 배신하라는 게 아니야. 누굴 팔아넘기라는 말이 아니라고. 이번 사건에 대해 공조를 하자는 거지.”


“공조?”


“그래. 우린 당신들이 누굴 쏴죽이든 랙돌의 약을 털든 관심 없어. 이번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싶을 뿐이라고. 어차피 우리가 찾는 범인이 당신이 찾는 범인이잖아, 안 그래?”


“······.”


이번엔 콧방귀는 없었지만, 병헌의 핼쑥한 눈매는 여전히 신뢰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물론 크리스는 그 불신의 기저가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당신네가 경찰 쪽에 정보통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근데 아무것도 안 알려줬지? 당연해. 그쪽도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뭔 개소리야? 니들은 경찰 아냐?”


“그렇긴 한데, 엄밀히 말하자면 좀 다르지. 따로 일하는 전담팀이랄까. 아인.”

갑자기 이름을 불린 아인이 바라보자, 곧바로 고갯짓하는 크리스.

“아까 그 레코딩한 거 이 사람한테도 보여줘요.”


“뭐?”


공격적인 어투와 함께 미간을 구기는 아인.

그러나 그런 아인을 크리스는 아무 말 없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자신의 불편함 말고는 그 무언의 재촉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기에, 아인은 결국 짧은 한숨과 함께 범죄자를 향해 작은 손짓을 해보여야 했다.


“······이게 뭐야? CG야? 나보고 지금 이 조잡한 걸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당신 자유지만, 경찰은 곧 이번 사건을 종결할 거야. 이제 그쪽에선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거지. 이번 사건이 당신에게 별 의미도 없고, 이 이상 뭔가 알아내지 못해도 상관없다면, 그냥 이대로 깜빵에 들어가도 우린 상관없어. 선택은 당신 몫이야.”


“······.”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병헌에게 있어 크리스의 이 ‘최후통첩’은 꽤나 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들고 있었다.


호기롭게 나선 병헌이었으나 그의 ‘탐문조사’는 그야말로 쪽박.

대충 주변 상인들이나 딜러들에게 협박과 회유를 섞어서 해주면 알아서 정보를 내놓겠지-라고 예상한 그였지만, ‘범인’은 그의 예상보다 은밀하고 치밀한 모양이었다. 경찰 쪽에서 줄 수 있는 정보가 아예 없다고 했던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빈손으로 보스에게 돌아간다면, 비서로서의 자신의 입지는 이제 끝이나 마찬가지일 터.

다혈질에 눈치가 없다고 뒷담화를 들어온 그였지만, 그런 병헌도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 정도는 읽을 줄 알았다. 특히, 최근 보스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는 태하의 등장은 병헌에게 있어 거대한 위협이자 자극이었다.


“잘 생각했어.”


잠깐의 고민 끝에 천천히 수갑 찬 손을 앞으로 내미는 병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크리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인을 돌아본다.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아인의 손짓에 병헌의 손을 구속하고 있던 수갑이 구속력을 잃었고, 병헌은 본능적으로 손목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아직은 별거 없어. 일단 오늘 보여준 영상을 바탕으로 정보를 짜깁기해서, 당신이 직접 알아낸 것처럼 잘 편집해봐. 대충 진척을 보여주면 당신네 보스도 당신에게 이번 사건조사를 일임시킬 테니까, 맞지?”


“······뭐어, 그다음에는?”


“당신이 조사하면서 레키프 내부에서 뭔가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우리 쪽에 알려주면 돼.”


씰룩이는 병헌의 눈썹.


“수상한 움직임?”


“예를 들면, 당신이 뭔가 알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묘하게 방해하거나 간섭하려는 인간이 있다던가-, 그런 거.”


“뭐? 우리 조직 내부에 범인이 있다는 얘기냐?”


“예를 들면 말이야 예를 들면. 통신코드는 보내놨으니까 거기로 연락해. 보안회선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그리고 중요한 건데.”

조심스럽게 병헌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려놓는 크리스. 엄청난 체격 차이 덕분이었을까, 그녀의 미소는 어딘가 모르게 강압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있었다.

“새로운 정보소스라든가, 뭐든지 좋으니까, 레키프 내부에 ‘박아인 경위’라는 이름을 흘려놓도록 해. 알았지? 박아인 경위야.”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병헌은 트럭 뒷바퀴에 침을 탁, 뱉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인은 크리스를 향해 몸을 돌리고 두 팔을 펼쳐 보였다. 방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해명을 요구하는 제스쳐였다.

그러나 역시나,

돌아오는 건 크리스의 상큼하리만큼 샛노란 미소뿐이었다.



“자,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죠, ‘감독관’님.”




***




“후우.”


퇴근은 일렀으나 긴 하루였다.

굳이 전입 첫날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없이 아인의 몸과 정신은 갑작스러운 변화의 폭풍을 맞이한 여파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상태.

때문에 그는 집에 들어오면서 느껴진 묘한 위화감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활성화된 생활 AI가 목욕, 또는 샤워의 여부를 묻기도 전에, 아인은 모든 음성지원을 비활성화시켜버린 채 제복을 벗고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진다.

그는 천장을 향해 누운 채로 눈을 감고, 먹색의 망막 위로 커뮤니티 계정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오블리가 보내준 방화벽 이후로는 NC광고스팸 외 그 어떤 신규메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낙하산’의 기분을 묻는 옛 동료들의 메시지가 있었지만 아인은 응답하지 않았다. 불과 반나절 만에, 그는 자신의 새로운 시작점이 완전하게 뒤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 있었던 일,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고 싶어도 자신이 가진 정보로는 택도 없다는 사실에 아인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뭐가 ‘감독관’이냐.

오늘 자신이 ‘팀’에서 한 일이라고는 크리스의 말과 행동에 딴지를 거는 것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과연 이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 수 있을까? 아버지가 감독관으로서 자신에게 바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조율해야 하는가.

나는,

과연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


아인은 문득, 검색창에 NC라는 단어를 적어본다.

완벽한 ‘물질’.

전뇌세대로 대표되는 신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가장 정교한 ‘프로그램’.

굳이 크리스의 찬양을 되새겨보지 않더라도, 아인은 현대인들에게 NC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큼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감정과 감각에 몸을 맡길 수 있다니, 어쩌면 인류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하지만 아인은 그 ‘마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리스의 앞에선 당연히 그건 불법이니까, 그리고 내가 ‘경찰’이니까-라는 이유로 흐름을 꾸며냈지만, 사실 아인에게 있어 NC란 존재는 구원이자, 공포였다.


5년 전 어머니가 순직하고, 전역 후 경찰대에 가겠다는 자신의 꿈이 아버지에 의해 좌절되면서 아인은 디딜 곳이 없는 방황의 무저갱을 헤맸었다. 자신을 향했던 가장 큰 사랑이 증발했으며, 그 공백을 분노로 채울 권리조차 박탈당한 당시의 아인은 결국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NC를 접한 것이다.

환상의 약물이 아인의 머릿속에서 재구축해준 세계는 끝없이 절망 속을 배회하던 그에겐 가장 너무도 달콤한 낙원이었다. 그곳에선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반겨주었고,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자신의 가슴에 휘장을 달아주는 아버지의 얼굴엔 영광이 가득했다.

물론 모든 게 결국 거짓이었다는 불안은 품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어떠한 부작용도 없는 환상의 기호품 NC를, 다시금 혈류로 흘려보내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아인에게 NC가 ‘공포’가 되어버린 건, 그가 바로 이 ‘부작용이 없다는 부작용’에 대한 무서운 진실을 깨달은 직후였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도록 진화해온 인간이 모든 것에 만족하는 순간,

그들의 의지가 어느 수준까지 타락하고 흐려질 수 있는지, 아인은 환상 속에서 직접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타락에 대한 회상은, 아인에겐 끔찍한 피로감이었다.



.

..

...

...

..

.



얼마나 잤을까.

그러나 이 내면의 목소리에 대답해야 할 생활 AI의 반응이 들려오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음성지원을 활성화하며, 아인은 자신의 기상이 자연스럽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자, PM 5:00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밖은 이미 어둡다. 손목의 시계를 본다. 새벽 한 시 반. 자신이 놓쳤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분명히 비활성화해놓았던 생활 AI가 어느새 다시 켜져 있고, 머릿속에선 자신의 BDM으로 침투하려는 생활AI의 공격에 대한 ‘사제’ 방화벽의 경고메시지가 빨갛게 울려 퍼지는 중이다.

만약 오블리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최종방화벽을 담당하는 자신의 보조뇌는 생활 AI를 매개체로 잠식해오는 누군가에 의해 박살 났을 터.


하지만 이 모든 비일상의 폭풍 속에서도 무엇보다 선명하게 아인의 신경을 긁고 있는 건,

바로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금속음이었다.


“······.”


아인은 누구냐고 묻지 않는다.

지금 머릿속에 울리고 있는 경고음은 제쳐두더라도, 상경을 위해 급하게 마련한 이 오피스텔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건 서에서도 인사과 정도(아마 오블리도)뿐일 터.

이 시간에, 그리고 이런 상황에 찾아올 손님의 정체 따윈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철컥이던 현관문의 소리가 멎는다.

아인은 몸을 날려, 침대 아래 던져놓았던 제복 속 권총홀더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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