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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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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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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278

작성
23.09.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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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DUMMY

조수석에 앉은 병헌의 얼굴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져있었다.

어깨를 관통한 총탄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지혈이 완료된 상처보다는, 그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가로지른 상처의 출혈이 더욱 컸던 탓이다.


“확실해? 형님이?”


“예.”


그에 비해 운전석에 앉아 도로를 응시하는 태하의 표정은 아무것도 담고 있질 않았다.


“······언제?”


“형님이 가시고, 공장에 대한 걸 사장님께 보고드리자마자요.”


“씨발 대체 왜?!”


절규와도 같은 병헌의 목소리였지만, 태하의 시선은 여전히 앞만을 향해 있었다.


“간단해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할 줄 알고 형님을 조사원으로 투입시켰지만, 생각과는 달리 형님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 탓이죠.”


“진실? 뭔 진실?”


지하주차장에서 벗어나 한참을 내달리던 태하의 차가 마침내 멈춰 선다. 인적이 드문 폐상가의 주차장으로, 등산로도 아닌 산어귀의 그림자가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병헌 형님, 형님께서는 왜 큰형님이 형님을 통해 경찰이 공장을 습격하도록 하셨는지 아십니까?”


“뭔데?”


“큰형님께서는 공장에서 생산된 NC가 곧바로 시장에 풀리는 것엔 동의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고개를 돌려, 마침내 가벼운 인상을 병헌과 마주하는 태하.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대’는 계약을 어기고 생산한 물건을 거리에 내놓기 시작했고, 바로 NC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죠. 때문에 공장을 멈추게 해야 하긴 하는데, 조직 내부의 부하들에게 비밀을 들킬 수는 없으니 경찰의 손을 빌린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막을 알게 된 형님은 제거할 수밖에 없었겠죠.”


“잠깐, 상대라니? 쌍문에서 일 벌인 그 새끼 말하는 거야?”


“예.”


“형님이 뭐가 아쉬워서 그 새끼한테 공장을 내주는데?”


태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곧이어 회색빛의 연기가 긴 한숨처럼 병헌의 코끝을 스칠 수 있었다.


“간단합니다. 형님은 쌍문에서 사라진 랙돌의 NC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그야, 거리에-”


“시장에 풀린 건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들이었죠. 그 물건들로 인해 NC의 시장가격이 폭락했고, 그거에 빡친 큰형님은 병헌 형님이라는 원년 멤버를 내치면서까지 공장의 가동을 중지시키려 했습니다. 왜 큰형님은 랙돌 라이센스 NC의 가격이 떨어지는 게 불편했을까요?”


“······.”


설마.

입 안에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이미 병헌의 이성은 모든 상황에 대한 납득이 완료된 상태였다.


“큰형님이 누군가에게 ‘쌍문사건’을 의뢰하여 랙돌의 NC를 개인적으로 빼돌렸고, 그 대가로 공장의 운영권을 양도해 준 겁니다. 큰형님 입장에선 당장 가동하지도 못할 공장을 잠시 넘겨주는 대신 댕장 대량의 NC를 확보할 수 있었으니 개이득이라 생각했겠죠.”


“그게 자작극이었다고······? 당장 우리 쪽 애들만 열 명이 죽었는데?!”


“네, 덕분에 저는 줄곧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왔다는 이유로 끄나풀 의심도 받았고, 방금까지만 해도 그때 죽은 조직원들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아, 씨발.”

병헌은 필터가 그슬릴 때까지 연기를 빨아당기는 태하를 바라보며 짤막한 욕을 씹을 수밖에 없었다. 눈엣가시 같던 이 후배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도와준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금껏 시기해왔던 후배에 대한 심심한 위로의 뜻이 담긴 욕설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냐? 간부들한테 싹다 꼬발릴까?”


“글쎄요. 누군가 이미 큰형님과 협력하여 같은 일을 벌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큰형님은 씨발 개뿔! 그냥 조현세 씹새끼라고 불러 이제.”


“······아무튼, 조직 내 간부들 중에서 확실한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닌 이상, 함부로 신호를 노출하는 건 위험할 겁니다.”


“그럼 어떡해?”


병헌의 물음에, 태하는 시트 아래로 꽁초를 튕겨내며 잠시 침묵에 빠져든다. 지금까진 얕은꾀나 부리는 재수없는 새끼라 생각했던 후배의 머리에 이렇게 의지하게 될 줄은, 어제의 병헌은 상상하지도 못했으리라.


“아, 일단, 레키프 내부는 몰라도, 외부에는 확실한 아군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아군? 누구?”


휘둥그레진 병헌의 눈동자를 향해, 태하는 짧게 헛기침을 뱉었다.




“경찰이요.”




***





[조현세가 NC를 횡령?]


종로경찰서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으며 아인은 BDM의 건너편, 오블리의 목소리를 향해 경악스럽게 팔을 벌렸다.


[응, 그래서 우리 쪽에서 뭔가 추적할 수 없는지, 아니면 증거라도 얻어낼 수 없는지 물어보더라. 지금 조현세한테 찍혀서 도망 다니는 중이래.]


[개판이구만. 집안싸움이 급한 건 알겠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안 그래도 감염체 때문에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조현세랑 감염체랑 뭔가 연관되어 있다고 하니, 조현세의 NC를 추적하다 보면 감염체에 대한 것도 뭔가 나오지 않을까?]


[레키프 지들도 모르는 NC를 우리가 무슨 수로 찾아?]


[아, 그건 방법이 하나 있긴 해.]


[뭐?]


의문에 대한 답을 직접 듣기 위해 관리실의 어긋난 물을 비틀어 밀어낸 아인. 그러나 그는 곧 행동을 정지해야 했다.

처음 보는 둘, 아니, 세 명의 얼굴과 동시에 눈을 마주친 덕분이었다.


“······누구-”


“아- 이제야 보네? 반가워. 새로 온 감독관이라며? 서유라라고 해. 여기서 잡무담당을 하고 있어.”


처음 아인을 맞이한 것은, 소파에 앉아 어린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 채 놀아주고 있던 여성이었다.

은은한 갈색빛의 단발머리에 패션주근깨가 가득한 귀염상의 얼굴.

멜빵바지에 단화라는 다소 어려 보이는 코디였지만, 아인은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목록’에서 읽었던 서유라라는 동갑내기 인물에 대한 설명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 그래. 박아인 경위다. 이번에-”


“미래야, 인사해야지?”


“안녕합셔. 서미래에요. 다섯 살.”


총총 소파에서 내려와 엄마를 향했던 아인의 악수를 가로채 방방 흔드는 소녀. 빵빵한 볼살만큼이나 귀여움이 가득한 아이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유라의 딸인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똑 닮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인의 시선은 마지막 새 얼굴을 향한다.


“······.”


눈썹 아래까지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반곱슬 먹색의 머리카락.

몇 번이나 재연성했을지 감조차 잡기 어려울 정도로 특색이 없는 얼굴과 눈빛.

평범한 체구였지만, 순찰복을 입은 채 벽을 등지고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뒤틀려 보이는 사내였다.


“아, 저쪽도 처음 보지? 다카하라 쇼. 그냥 쑈라고 부르면 돼. 워낙 조용해서 재미없는 인간이지만.”


본인을 대신하여 소개해주는 유라였지만, 그녀의 해맑은 목소리는 아인의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여차하면,

곧바로 허리춤의 홀더에서 권총을 뽑아들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읽었던 팀원들의 프로필 중에, 저 다카하시 쇼라는 남자의 이력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서로 소개 다 끝났으면 아까 했던 말 이어서 해도 될까?]


그런 아인의 긴장을 풀어주는 오블리의 통신. 바로 옆에 서 있음에도 굳이 통신앱을 통해 목소리를 전해온 것은 일종의 ‘경고’였을까. 아인은 마침내 허리춤에서 의식을 돌릴 수 있었다.


“조현세가 가진 NC를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지?”


[응.]


“그 방법이 뭔데?”


“아 그건 내가 설명해줄게.”

다시금 소파에 앉아 딸을 무릎 위에 앉힌 유라의 목소리였다.

“알다시피, 특정 라이센스가 입혀진 NC패키지는 사용자에 의해 개봉되기 전까지는 해당 라이센스가 유효하기 때문에, 정품이라면 제작사에서 유통과정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해놨어.”


“그건 알고 있어.”


유라의 옆옆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딸인 미래가 손을 흔들면서 저지한 덕분에 아인은 계속 입구 근처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랙돌은 그 방법으로 쌍문에서 털린 NC패키지를 추적하려고 했지만, 신호가 강북 일대 곳곳에서 잡혔던 데다가 곧바로 NC의 시장가격이 대폭락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물건이 곧바로 거리에 풀린 것으로 판단, 추적을 포기했지.”


“그 말은, 만약 쌍문의 NC가 고스란히 조현세의 수중에 남아있다면 랙돌 쪽에서 추적할 수 있다는 뜻이야?”


“바로 그거지.”


마치 칭찬을 바라는 학생처럼 활짝 웃어 보이는 유라였지만, 아인에게 있어 그녀의 대답은 전혀 해답이 되어주지 못한 상태였다.


“그게 뭔 의미가 있나? 랙돌한테 전화해서 니들이 털린 물건 찾아봐야 하니 대신 추적해서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오히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증거를 랙돌 놈들이 털어갈 수 있게 정보를 알려주는 꼴이 되는 거 아냐?”


아인의 의문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조현세와 레키프, 그리고 감염체 사이에서 일어난 일 따위 랙돌의 입장에서는 알 바가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물건을 강탈당한 ‘피해자’이며, 그것이 경찰과 협력할 이유가 되어주는 건 아니니까.


“맞아, 랙돌이 우릴 도와줄 이유는 없지. 걔들 입장에선 그냥 우리 뒤통수치고 물건만 되찾는 쪽이 훨씬 매력적일 테니까.”

그러나 유라는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그녀의 매력적인 미소는, 관리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쑈’의 존재감마저 혼탁하게 만들 정도로 산뜻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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