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643
추천수 :
3
글자수 :
167,278

작성
23.09.20 19:42
조회
17
추천
0
글자
10쪽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DUMMY

아인은 여러 가지 의미로 불편했다.

우선,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동갑내기 범죄자와 마치 데이트를 하듯 거리를 거닐고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목적지가 어디냐는 물음에 유라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고, 왜 차를 타고 가지 않냐는 물음에는 자기는 면허가 없으며, 그렇다고 경찰등록된 아인의 차량을 몰고 다니다가는 총맞기 딱 좋은 동네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렇게 튜브레일에서 내린 지 벌써 20분째.

10분 전부터 다 왔다던 유라의 말과는 달리, 주변은 지저분한 슬럼가도, 아나키스트들의 테러도, NC합법지지자들의 시위도 없는 평범한 거리였다.


“저기-”


“아, 이제 진짜 다 왔다니깐? 저 앞이야, 저 앞.”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아인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간질이고 있었던, 또 하나의 불편함.

“······다카하라 쇼, 그 인간 말인데.”


“‘쑈’가 뭐?”


“딸아이를 청부살인업자 옆에 두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


다카하라 쇼, 35세. 일본 미야기현 출신.

미국에서 최소 17건의 1급 살인, 일본에서 최소 20건의 살인, 한국에서 최소 31건의 청부살인 및 한 건의 촉탁승낙살인 혐의. 2065년 평양에서 체포.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팀원 프로필에서 읽었던 ‘다카하라 쇼’라는 남자의 이력이다.

아무리 ‘팀’ 자체가 범죄자 출신의 용병모임이라고 하지만, 이 ‘쑈’라는 남자의 이력만큼은 아인에게 있어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남자와 딸아이를 같은 방에 두고 나온다? 아인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라의 태평함인 것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게 직업일 뿐인데, 그게 뭐 어쨌다고?”


“뭐?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오블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수백, 수천 명은 간접적으로 죽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저 직접 손으로 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안전하고 쑈는 위험한 존재가 되는 거야?”


“당연히 다르지.”


“글쎄에. 내가 생각하기엔 ‘누가 죽였냐’가 아니라 ‘누굴 죽였냐’를 따져봐야 할 거 같은데. 만약 그걸 기준으로 한다면 ‘쑈’는 나나 오블리보다 훨씬 도덕적인 인물로 포장될 수 있을걸? 납득이 안 되면 댁 아빠한테 물어봐.”


“······.”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아인으로선 할 말이 없다.

유라의 말대로, 이 팀의 구성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도와 선택에서 비롯된 것. 해명을 요구하는 손가락질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걸 유라는 돌려서 찔러오고 있는 것이다.


“봐, 다 왔다고 했지?”


유라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카페였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브런치 카페.

유일하게 특별한 점은, 입구에 이쁘장한 글씨로 ‘안드로이드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걸려있다는 것이었다.


“어서오세-, 아, 유라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계세요?”


“네, 위에 계세요. 들어오세요.”


반갑게 유라를 맞이해주는 남자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유라와 아인은 메인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내부는 예상대로 평범함 그 자체였다. 주변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위한 테이블 몇 개와, 빠르게 주문을 하고 수제쿠키와 함께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계산대.

다만, 입구 팻말에 걸려있던 경고문과 더불어 종업원들도 전원 안드로이드가 아니라는 점은 아인에겐 꽤나 신선하게 다가오는 점이었다.

유라는 이미 익숙한지, 망설임 없이 계산대 옆 ‘STAFF ONLY’라고 적힌 문을 열고 성큼성큼 계단을 오른다. 아인은 처음엔 직원휴게실로 가는 건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해당 계단은 아예 상가의 2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1층의 카페는, 2층의 주인을 위한 위장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아, 유라~, 웬일?”

반갑게 유라의 이름을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2층의 가운데, 1층에 있던 것보다도 더욱 화려한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여인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별다른 대답 없이 손을 들어 자신을 향한 부름에 답하는 유라. 여인은 옆 찬장에서 새로운 컵 두 개를 꺼내며, 앞치마 차림 그대로 창가의 테이블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잔 세 개가 올라간 쟁반을 능숙하게 내려놓으며 다가온 여인.

묶어 올렸음에도 찰랑함을 숨길 수 없는 밝은 갈색의 머릿결. 접대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순박한 미소와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인의 얼굴.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키가 큰 여인이었기에 아인은 그녀가 맞은편에 앉기 전까지 자신을 내려보는 듯한 그녀의 시선에 압도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응, 새로 온 우리 감독관.”


눈앞에 앉은 여인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유라가 자신을 ‘감독관’이라 소개하는 것을 보면 어찌 되었든 이 바닥에 연관된 인물일 터. 아인은 형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박아인 경위입니다.”


“아아-, 경찰이시구나.”

아인과 손을 맞잡으면서, 여인의 묘한 시선이 유라의 미소를 향한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라. 그제야 아인에게 돌아온 여인의 입가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반가워요. 윤혜인이라고 해요.”


“예, 반갑습니다. 혜인 씨는 유라와 어떤······?”


관계? 위치?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리는 아인을 향해, 혜인은 맑은 미소를 유지하며 신장보다 거대한 목소리로 아인의 앞에 커피잔을 내어주었다.


“아, 네에. 랙돌 마피아의 간부를 맡고 있어요.”



...

..

.



강렬하면서도 향긋한 자연산 커피의 향이 시선 사이로 흐르던 긴장은 풀어주었지만, 아인의 표정까지는 풀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강북 3대 마피아 조직 중의 하나인 ‘랙돌’의 간부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굴 뚫어지겠어요, 경위님.”


호칭을 통해 혜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인이 황급하게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아, 죄송.”


“아녜요. 불편하실 법도 하죠. 커피 더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악질 범죄조직의 간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부드러운 미소.

평범한 카페의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미소는 짓기 어려울 것이다. 아인은 거듭 자신을 괴롭히는 이 괴리감을 감추기 위해 이미 비어있는 커피잔을 입술로 가져갔지만, 이런 의미 없는 눈치싸움을 방치할 유라가 아니었다.


“혜인아, 슬슬 일 얘기를 해도 될까.”


“응, 물론. 괜찮으시죠?”


“아, 예.”


마지막까지 아인을 향한 배려를 잊지 않는 혜인. 그러나 이어지는 유라의 목소리는 모든 이들의 배려와 가식을 지워버린다.


“저번에 너네가 쌍문에서 털린 NC, 아직 그대로 있다면 어쩔래?”


“······으응?”

살짝 미간을 찌푸린 것뿐이었지만, 워낙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인 혜인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뭔 소리야? 그거 이미 죄다 거리에 풀렸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야-, 그때 털렸던 우리 물건들의 라이센스 신호를 추적해보니까 이미 온 사방팔방에 흩어져있었으니까. 게다가 실제로 가격도 개판났고. 어떤 미친놈인지는 몰라도 우리 걸 그대로 길바닥에 내놓은 거지. 너희도 다 알고 있잖아?”


“근데 만약에 약을 여기저기 흩트려놓은 게 너네 랙돌의 추적을 막기 위해서였다면? 누군가 너네 물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고, 라이센스만 훔쳐서 거리에 풀어놓은 거라면?”


“······.”

흥미롭다는 듯 반짝이는 혜인의 커다란 눈동자. 그러나 그녀의 흥미는 아인에게 있어 꽤나 커다란 불편함이었다.

“근거 있는 말이야?”


“99.9%정도?”


“우리 물건을 누가 가지고 있는데?”


“레키프의 조현세.”


처음으로 혜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게 뭔 소리야? 레키프가 쌍문에서 우리 물건 털려다가 뒤통수의 뒤통수 맞은 거였잖아? 10명이나 죽었다고.”


“그니까~, 조현세가 누군가한테 사주해서, 자기 애들 10명이나 죽이면서까지 자작극을 펼치면서 니네 물건을 혼자 꿀꺽했다는 소리야~. 그 누군가는 물건을 조현세한테 넘겨주는 대신, 너네 라이센스만 훔쳐낸 다음 조현세한테 받은 공장에서 랙돌 라이센스의 NC를 생산, 거리에 풀어버린 거지.”


“으흐응~?”

혜인은 복잡한 얼굴로 한참이나 자신의 커피잔을 쓰다듬었다.

“굳이 왜 그런 짓을?”


“그건 너나 우리나 알 거 없고. 사실 우리도 완벽하게 놈들의 의도를 캐낸 건 아니라서.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흐흠······.”

혜인이 묘한 미소를 되찾고 자신의 입술을 커피향으로 적신다. 그리고 그 짧은 침묵의 끝은 아인을 향한 시선이었다.

“감독관, 아니, 아인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만약 600억 원어치의 약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그에 합당한 가치의 정보나 협력을 제공해주셔야 하겠죠.”


혜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부터 줄곧 아인의 이성을 자극하고 있던 불편함의 토로였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범죄자와 거래를 한다?

함양에 있었던 4년간 줄곧 이런 마피아들의 소탕에만 온 힘을 쏟았던 아인에게는 역겨움이 올라올 정도의 거부감이었다.


그러나,


“네? 하하하!”


돌아온 것은 유라와 혜인의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한 아인은 커피잔으로 입을 가릴 생각조차 잊은 채로 멀뚱히 그들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셨네요. 아, 아니면 유라가 말씀을 안 드렸나요?”


“······착각?”


“네에, 착각이요.”

드리우는 혜인의 미소.

지금 떠오른 그녀의 섬뜩한 미소야말로, 아인이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진심이었다.




“그 NC는 절대로 랙돌에 돌아와서는 안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굿모닝, 디스토피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4) +1 23.11.28 8 0 11쪽
34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3) 23.11.25 8 0 10쪽
33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2) 23.11.23 8 0 11쪽
32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1) 23.11.19 11 0 10쪽
31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9) 23.11.16 11 0 12쪽
30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8) 23.11.13 10 0 10쪽
29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7) 23.11.10 10 0 10쪽
28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23.11.07 10 0 10쪽
27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5) 23.11.03 11 0 11쪽
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1 0 10쪽
25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3) 23.10.27 11 0 10쪽
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23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23.10.19 13 0 10쪽
22 Hello, New World 23.10.11 15 0 11쪽
21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4) 23.09.30 14 0 11쪽
20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3) 23.09.29 14 0 10쪽
19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4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5 0 9쪽
17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23.09.25 14 0 12쪽
16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8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3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5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0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7 0 13쪽
8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23.09.07 22 0 12쪽
7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1) 23.09.05 18 0 9쪽
6 좋은 아침입니다 (5) 23.09.04 23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