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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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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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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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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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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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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Hello, New World

DUMMY

“······.”


육즙과 기름기라곤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배양육에선 그 어떤 풍미도 느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좀 더 효율적인 소화를 돕기 위한 분쇄과정일 뿐인 저작운동이 이어지면서 아인은 그저 피곤해질 따름.

서울로 올라온 뒤 처음으로 시도해본 저녁 외식이다. 실패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서울 골목거리 식당의 수준은 그의 예상보다도 처참한 수준이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뇌모듈(BDM)과 혈중양자나노신경체(QP)로 대표되는 ‘3세대 전뇌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입에 넣는 순간, 그 음식물에 들어있는 모든 유해물질과 신체에 주는 영향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식약처와 연동되지 않은 채로 사용자에게 무분별한 경고메시지를 날린 이 위장 임플란트의 ‘오지랖’은 결국 식품회사와 가공공장, 유통사를 향한 ‘대 고소시대’를 열었다.

이에 기업들은 부랴부랴 식약처와 협업하여 기준치 미만의 유해 물질은 경고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조치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인스턴트푸드 패키지와 음식점에서 제공되는 음식물에 첨가된 유해 물질들을 마치 사냥꾼처럼 찾아다니며 마구잡이로 고소를 진행했고, 이에 자영업자들은 무분별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어떤 유해 물질도 첨가되지 않은 깨끗한 재료와 제품만을 취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재료도 극미량의 유해물질을 완벽하게 배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 결국 서울의 식당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배양육과 유전자 조작 재료들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1등급 재료를 썼다며 광고했던 식당들이, 이제는 위장 임플란트 1등급 필터에도 전혀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며 광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요즘 시가지라면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는 ‘1등급 식당’의 실체였다.

시간이 지나며 모든 유해물질에 대한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이 재정립되고, 해당하는 발암물질과 오염물질에 대한 기준치만 초과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객들이 고소해도 처벌받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고소를 당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던 데다가, 이러한 풍조를 경쟁업체를 저격하기 위한 루머로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1등급 식당’의 유행은 이제 자영업자를 위한 정론으로 정립되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조금의 유해물질도 허락하지 않는 식당과 제조업체만이 살아남는다면 소비자들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럽게 맛없네.”


아인은 자신의 감상을 대신 읊어주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똑같은, 함박스테이크 정식.

자신과 똑같은, 합성 레모네이드.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부서’의 사람.


“······날 따라온 거야?”


“응? 네에? 어휴, 자의식과잉이 심하시네, 박아인 경위.”


샛노랗게 염색했던 짧은 머리는 어느새 하얗게 탈색이 되어있었고, 눈두덩이와 코를 장식하고 있던 피어싱도 사라진 상태.

그러나 어째서인지 남자의 경박함은 ‘위장’하고 있을 때보다도 더욱 짙어져 있었다.


“일부러 경찰서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잖아.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나?”


“할 말이야 많지. 6개월 만에 복귀하니까 감독관이 바뀌어있어서 당황했자너. 저번에 일 끝나고 봤을 땐 제대로 인사도 못 했으니까, 이참에 말이나 좀 트자고. 보니까 나랑 동갑이라며?”


“······.”


잘게 다져진 인공단백질 조각들을 꿀꺽 삼키고 나서, 아인은 천천히 청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의 이름은 박태상.

지난 6개월간 ‘이태하’라는 이름으로 레키프 마피아의 보스, 조현세의 비서로서 잠입하고 있었던 ‘지하주차장관리실’ 소속의 (자칭)‘요원’이다.

물론 그도 다른 관리실 소속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범죄자였다.

아인은 태상의 프로필로부터 그가 출신 불명의 길거리 부랑아였으며, 15살 당시 마피아의 심부름을 하다가 체포됐을 때 전산상으로 ‘박태상’이라는 존재가 처음 한국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태상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말 그대로 거리에서만 살아온 그늘의 존재였다는 뜻이다.

그는 이 ‘희미한 신분’을 이용하여 개인 용병으로서 마피아와 삼합회의 의뢰를 받아 온갖 도둑질이나 사기행위를 반복해왔고, 그중에는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사건도 포함되어있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그저 평범한 전과자에 불과한 그가 어떻게 ‘팀’에 합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겠지만, 앞서 언급된 전과들은 오직 ‘박태상’이라는, 정식적으로 대한민국에 등록된 신분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첫 체포 이후, 태상은 자신과 같은 ‘희미한 그늘’에게 적용되는 공권력에 거대한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신분을 도용하기 시작하여 범죄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에 더 나아가 아예 신분도용을 넘어서 위장신분을 직접 만드는, 뒷세계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구상했는데, 해당 부서의 구역별 담당AI를 해킹하여 고객에게 원하는 성별, 나이, 배경의 신분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이런 ‘서비스’는 범죄조직의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해결사나 용병과 같이 일시적인 위법행위가 필요한 자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태상은 해당 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면서도 용병일을 그만두지 않고 병행해왔다. 결국 그가 꼬리를 잡힌 것도 ‘사업’이 아닌 ‘용병’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네 아빠가 서장님이라며? 그런 빽이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시골에서 약쟁이들이나 조지고 있었던 거야?”


“그래. 웬만하면 아버지와는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번에 사고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얽매이게 됐지만.”


“하핫, 돌직구네.”

어차피 자신의 신상정보는 오블리에게서 들었을 테니,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딱히 변명이나 포장할 생각이 없었던 아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태상은 비죽 웃더니 씹고 있던 배양육을 접시 옆에 퉤- 뱉어버린다.

“그럼 뭐, 나한텐 궁금한 거 없어?”


“궁금한 거?”


“어. 뭐어, 딱히 내 개인적인 게 아니어도 상관없고.”


흘러가듯이 내뱉은 태상의 말이었지만, 순간 아인의 눈빛이 빛난다.


“6개월 동안 레키프에 잠입했다는 거지?”


“어.”


“목적이 뭐였지?”


“······.”


무언가 먹을만한 걸 찾아 뒤적이던 태상의 포크가 멈춰 선다.


“‘쌍문사건’ 자체가 랙돌의 윤혜인을 비롯해서 몇몇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감염체가 그사이에 껴들 줄은 그 누구도 몰랐겠지. 그런데 아버지에게 올라간 보고서엔 감염체와 조현세의 축출이 중점이었던 것처럼 돼 있었고. 뭔가 중간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예를 들면?”


“말했듯이, 네가 6개월이나 레키프에 잠입하고 있어야 했던 이유. 그게 빠졌잖아.”


“······흐음.”


“그래서 잠깐 생각을 해봤거든.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애초에 ‘쌍문사건’ 자체가, ‘팀’과 랙돌의 윤혜인이 짜고 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거야.”


“호오.”


진심으로 흥미롭다는 뜻인지, 아니면 눈앞의 동갑내기 감독관을 향한 조소인지, 태상은 희미하게 웃으며 정제수를 들이켰다.


“중간에 ‘감염체’라는 예상치 못한 큰 변수가 생기면서 일이 꼬이긴 했지만, 결국 윤혜인은 원하던 걸 얻을 수 있었지. 그렇다면 또 의문이 하나 생겨. 그녀와 모의했던 ‘팀’이 원했던 건 뭘까- 하고.”


“······.”


“쌍문에서 털린 랙돌의 NC들. 그 절반은 조현세에게 가기로 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조현세는 뒤졌잖아.”


“······.”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태상을 향해 완전히 몸을 돌리는 아인.

“조현세가 받기로 했던 NC들, 지금 어딨어?”


“흐음.”

미소를 유지한 채 태상은 아인이 했던 것처럼 포크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려 그와 눈을 마주한다.

“너네 아빠한테 올라갈 추가 보고서용 진실을 원해? 아니면 진짜 진실을 원해?”


“일단 ‘진짜 진실’을 듣고, 추가로 보고할지 판단하도록 해야겠지.”


“하하, 재미없는데, 그건.”


“내가 재밌자고 물어보는 거 같아?”


어투에 위협은 녹아있지 않았지만, 태상은 아인의 협박 아닌 협박에 졌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러나 그 다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해명이 아닌, 오히려 질문이었다.


“너, 혹시 우리 지하주차장관리실에 배정되는 정식예산이 한 달에 얼마인지 알아?”


“······예산? 뭔 갑자기 뜬금없이-”


“80만원이야.”


태상의 말에 잠시 사고가 정지해버린 아인. 태상은 그런 아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웃었다.


“알아, 웃기지? 그런 푼돈으로는 오블리가 만지는 장치들의 전기세도 내기 힘들 정도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린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야 할’ 자산이고, 너네 아버지도 지하주차장관리실 운영비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내려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자, 그러면 여기서 질문. 우리 모두의 활동비, 오블리의 서버비, 크리스의 임플란트, 쑈가 담당하고 있는 온갖 장비, 그리고 미래의 학원비까지. 이걸 우리는 모두 어떻게 충당하고 있을까아요?”


“······.”


설마.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가 마피아나 카르텔 새끼들을 등쳐먹어서 직접 활동비를 마련하는 거, 너네 아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저 묵인해줄 뿐이지. 아니,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부려 먹으면서 돈은 못 주는데, 알아서 자급자족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해?”


“그러니까, 지금 우리한테 NC가 있다는 거지······? 팔아서 작전자금으로 쓰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직접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얼얼함을 느끼는 아인이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뭐, 그런 셈이지.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는 가지고 있을 거야. 오블리가 손 좀 봐야 하기도 하고.”


“손을 보다니?”


“듣자 하니, 그 ‘감염체’가 NC에다가 장난질 쳐서 유포시키려고 했었다며? 오블리가 자기도 한번 해보겠다며, 좋은 자금조달 수단을 찾았다면서 좋아하던데?”


“······아니, 아니야. 그건 아니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황급히 식당을 빠져나가려는 아인.

태상은 그런 아인의 그림자를 향해, 웃으며 작별의 손짓을 해보인다.


“앞으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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