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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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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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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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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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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3)

DUMMY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국제아동인권단체 ‘포 더 칠드런’과 ‘로이스 아동복지재단’의 대표인 ‘차 로이스’가 자선 경매 행사를 개최한다는 소식은, 주최 측이 언론을 통한 홍보를 딱히 하지 않았음에도 개인 SNS와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꽤나 화제에 올랐다.

덕분에 차 로이스 본인이 계정을 통해 초청 명단에 있지 않은 기자나 인플루언서들의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공지를 올렸음에도 경매 당일 행사가 열리는 ‘포 더 칠드런’의 사무실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 상태였다.


“어! 더 글로우다! 박찬열이야!”


“찬열 씨! 한 마디만 부탁드려요! 개인 애장품 혹시 이번 경매에 출품하시나요?”


“CPC! 포 더 칠드런의 후원자이신가요?”


인플루언서들이 저택에 도착할 때마다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 공세를 취했지만, 한옥식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들에 의해 모두 깔끔하게 제지당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수많은 기자들을 가뿐히 물리치고 있던, 장신의 양복 차림을 한 여인은 결국 견디다 못해 통신채널을 열었다.


[야이씨, 이런 건 그냥 사람 좀 쓰면 안 돼? 굳이 내가 직접 여기서 이것들을 막아야 하냐고.]


크리스의 투정을 향해 오블리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인건비 아껴야지. 이번 작전에선 크리스가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


[지금 입으로 욕했지? 다 들린다. 이제 집중해. 오늘의 VIP 오시니까.]


대문 앞 도로에 검은 세단이 멈춰서고, 일순간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를 알아보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저 아저씨는?”


“분위기 파악도 못 하나······.”


이곳에 모인 기자들의 주된 관심사이자 밥벌이 요소가 연예인, 인플루언서인 탓도 있었지만, 그 어떤 정치적인 인물도 초대받지 않은 곳에 유일하게 ‘공인의 옷’을 차려입은 남자의 이질적인 존재감도 그 이유였다.


“아, 서장님.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하지만 ‘종로경찰서장 박인배’를 향한 기자들의 비웃음은, 오늘 이곳에 찾아온 ‘손님’ 중 유일하게 차 로이스 본인이 뛰쳐나와 맞이함으로써 그 온도가 뒤바뀔 수 있었다. 기자들은 황급히 안구에 인배와 로이스가 악수하는 모습을 담아냈고, 그 남자의 정체와 관계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으나 또다시 크리스의 몸집에 의해 틀어막히고 만다.


“저야말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오자마자 이곳저곳에서 친목질과 셀카 찍기 바쁜 인플루언서들과는 달리, 로이스는 직접 인배를 안내하여 커다란 대합실을 지나, 2층 구석에 위치한 본인의 사무실로 함께 걸음을 옮겼다.

본래 로이스 본인의 개인 저택이었던 곳을 사무실로 개조한 탓인지, 아직도 그 내부의 분위기는 사적인 느낌의 장식이나 고급풍의 구조물이 많았다. 2층으로 통하는 붉은 원목의 계단이라던가, 사무실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책장 등이 그러했다.


“어수선해서 죄송합니다. 원체 정리를 잘 못 하는 성격이라.”


“아닙니다.”


“뭐 좀 드시겠습니까? 싸구려긴 하지만 위스키는 있습니다.”


인배가 자리에 앉자마자 로이스가 사무실 구석에 있는 찬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지만, 인배는 정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복을 입고 있어서.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아아, 합성커피 밖에 없는데, 괜찮으실까요?”


“예, 괜찮습니다.”


직접 인스턴트커피를 녹여내어 인배의 앞에 가져다 놓는 로이스. 물론 인배에게 이것이 연출된 검소함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피차 그 정도 수준으로 서로를 재단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꽤 오랫동안 저희 ‘포 더 칠드런’의 후원자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정기후원 말고도 더 도움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진중한 인배의 목소리에 로이스는 당황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유, 무슨 말씀을-,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셨으니 제가 감사를 드려야죠. 사실 대행사에서 서장님의 성함을 꺼냈을 때 긴가민가했습니다. 좀처럼 이런 자리에선 뵙기 어려운 분이셨잖아요, 하하.”


“예에, 원래 이런 자리는 되도록 피하는 편이죠. 괜히 정치적으로 엮어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홀짝임과 동시에 강력하게 번지는 합성커피의 진한 향.

“제 취임식 때 참석해주셨으니, 그 답례라고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오, 기억해주시는군요.”


의미 없이 비릿하기만 한 미소와 시선을 교환한 후, 두 남자는 거의 동시에 잔을 내려놓는다.


[서장 아저씨, 아직 아무것도 안 잡히고 있어. 차폐막이 워낙 두꺼워서 그런 거 같은데 좀 더 시간 끌 수 있어?]


귓가로 들려오는 오블리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들어 로이스의 얼굴을 살피는 인배. 그러나 오블리의 부탁에 대한 그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로이스의 입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NC 때문에 이래저래 말이 많더군요. 저번 ‘쌍문 사건’도 그렇고, 마피아든 야쿠자든 죄다 거기 들러붙어서 난리죠?”


“예에, 뭐어.”


“어떻습니까, 서장님은.”

술잔으로 가려지는, 은밀한 로이스의 미소.

“NC 합법화에 찬성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합법화가 되든 안 되든 전 정해진 법과 절차에 따라 현장의 조율만 하면 되니까요.”


“에이, 재미없게 말씀하시네. 뭐, 이해는 합니다. 그 옷을 입고 계신 이상, 개인적인 자리라도 함부로 말씀하기엔 어려우시겠죠.”


웃음을 교환하고, 이번엔 인배가 먼저 입을 연다.


“올라오면서 보니, 저 말고는 죄다 젊은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만 초대받은 듯한데, 제가 괜히 껴서 안 될 자리에 온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하하, 무슨 말씀을. 사실 박 총경님 같은 분만 계신다고 하면 굳이 저런 이슈메이커들과 어울릴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 바닥이 돌아가려면 화제가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저런 사람들만 한 손님은 없으니까요.”


말에 묘하게 가시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인배는 로이스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의 안색을 살피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동료 의원들 중에도 후원자가 많이 계시지 않습니까? 괜히 저 때문에 본인은 왜 초대하지 않았냐고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던진 잡담이었지만, 이에 대한 로이스의 반응은 인배의 예상을 뛰어넘는 미소였다.

“후원자라고 해도 그냥 겉치레용 포장이겠죠. 사실, 제가 동료 의원들이나 다른 정치인들을 이런 행사에 초대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아무리 백날 초대를 날려도 오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번엔 명백하다. 로이스의 미소와 목소리엔 명백하게 가시가 돋쳐 있었다.


“······질투인가요?”


“뭐어, 짐작되는 요소야 많죠. 키 크고, 잘생기고, 이민자 출신인데다가 이렇게 ‘착해 보이는 짓거리’만 골라 하고 있으니까. 제가 가진 그 이미지를 당에 조금이라도 나눠주라고 저를 영입했지만 그 덕을 전혀 못 보고 있으니, 제가 밉보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알만합니다.”


“하하, 그런 서장님이야말로 퇴직하시면 당장 어디서든 데려가려고 난리일 텐데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 각하와 대학 동기라고 들었습니다만.”


“······예에, 맞습니다.”


갑자기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꺾는 그 의도를 인배가 고민하기도 전에, 로이스가 먼저 몸을 앞으로 숙여 온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청와대 정책실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다고 하더군요.”


“소문?”


“예, 다름이 아니라, 군 소속도, 경찰 소속도 아닌, 일종의 소규모 특작유닛이 대통령의 직속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호오.”


마치 가십거리를 듣는다는 듯, 부드러운 태도로 커피를 홀짝이는 인배였지만, 그는 자신의 시선이 날카롭게 보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보통 그런 루머는 국정원 쪽에서 흘러나왔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청와대 내에서 관련 실물서류에 대한 소문이 있었다고 해서 기억에 남았었네요.”


“재밌군요. 전쟁도 끝난 마당에 그런 직속부대를 새로 만들 예산이 있다면 저희 쪽에나 나눠줬으면 좋을 텐데.”


“하하하-, 맞는 말씀이네요.”


“하핫.”


웃음을 나누고, 인배가 빈 찻잔을 내려놓자 마침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인배의 망막 정보로 경매가 시작함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이런, 행사가 시작하나 보네요. 어디, 허영심 많은 꼬맹이들한테 돈이나 뜯으러 가볼까요?”


“커피 잘 마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는 두 남자. 그러나 인배는 귓가를 울리는 오블리의 목소리에 곧바로 뒤돌아설 수 없었다.


[안 돼. 원격으론 아무래도 힘들겠어. 플랜B야, 아저씨.]


“······.”


인배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몸을 더듬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사무실의 문을 연 채 기다려주던 로이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놓고 가신 거라도?”


“예에, 아-! 찾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웃으며 커피잔 바로 옆에 있던 라이터를 주워드는 인배. 이에 로이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인배를 밖으로 안내했고, 사무실에 남겨진 커피와 싸구려 위스키의 잔향을 돌아보고는 문을 닫았다.


인배가 라이터를 집으며 테이블 밑에 붙여둔 작은 중계기가 활성화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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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2) 23.11.23 8 0 11쪽
32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1) 23.11.19 11 0 10쪽
31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9) 23.11.16 11 0 12쪽
30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8) 23.11.13 10 0 10쪽
29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7) 23.11.10 10 0 10쪽
28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23.11.07 10 0 10쪽
27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5) 23.11.03 11 0 11쪽
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2 0 10쪽
25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3) 23.10.27 11 0 10쪽
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23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23.10.19 13 0 10쪽
22 Hello, New World 23.10.11 15 0 11쪽
21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4) 23.09.30 14 0 11쪽
20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3) 23.09.29 15 0 10쪽
19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5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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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15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8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4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5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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