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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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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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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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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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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5)

DUMMY

“······이 얘기는 아직 누구에게도 한 적 없어. 부대에서 붙여준 정신과 의사에게도 말이지.”


“아니, 대충은 알고 있는데. 행사 다 끝나고 갑자기 중국에서-”


눈치 없이 해당 사건에 대해 ‘위키’에 올라온 내용을 읊으려던 오블리를 제지하는 크리스. 아인은 소파에 앉은 채, 잠시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손을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남아있던 북한 군부의 무장해제를 원치 않았던 중국은 3년 내내 국경과 함경도에서 군사도발을 해왔었지. 그래서 우리도 행사 당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경찰과 군의 특수부대 포함, 1개 사단급의 병력을 평양에 배치 시켜놓은 상태였어.

하지만 정찰위성 상으론 중국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 적어도 압록강 남쪽에서는 말이야. 우리가 포착할 수 있었던 건 건축자재와 현장에 투입될 안드로이드를 운반하는 트레일러들 뿐이었어.”

말을 잇기 위해서 아인은 안개가 낀 듯한 머릿속을 헤집어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내야 했다.

“당시 재건이다 뭐다-해서 온 세상의 물자가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었으니까, 하루에만 수백, 수천의 트레일러들이 움직이던 시기였지. 그래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어. 행사가 끝날 때쯤, 30여 대의 트레일러가 도시 외곽에 진입했다는 보고뿐이었고.”


“그럼 그 트레일러들에······?”


“맞아.”

말끝을 흐리는 크리스를 향해 짧은 한숨을 내뱉는 아인.

“중국의 전투용 안드로이드들이 실려있었지.”


“총 몇 대나 실려있었던 건데?”


마침내 이쪽을 향해 의자를 돌린 오블리였다.


“머릿수로만 따지만 천 대 정도? 하지만 문제는 그 숫자가 아니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군용 안드로이드에 대한 국제법은 물론, 국가별 지침마저 중구난방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선진국들도 제조에 테스트까지 해놨음에도 눈치를 보느라 실전투입을 못 하는 분위기였거든. 그 말은 즉-”


“대응 방안도 전무했다는 거지.”

AI와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되면서 상업용, 산업용 모델들의 보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군용의 경우엔 국제법으로 명시된 ‘안드로이드는 절대로 인간을 헤쳐서는 안 된다’라는 절대원칙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주제였다.

만약 군용 안드로이드의 개발이 허용하면서 해당 행동제약원칙에 예외성을 두게 된다면 반드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게 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때문에 ‘인간을 무력화 시키는 정도까지는 제약을 풀어주자.’,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 등 개발사와 각국 정부 간의 논의가 지속되었으나 명확한 결론은 나올 수가 없었다.

“당시의 스펙으로도 개당 전투력은 장갑차와 비견될 정도였으니, 천여 대의 장갑차가 갑자기 시내를 들이닥친 거나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피해가······.”


아인이 끄집어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


“맞아, 그건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자, 사냥이었지.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어. 말 그대로 수천 발의 총소리가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우리가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조차 없었으니까.

30분 만에 사상자는 천 명이 넘었고, 우리의 임무는 반격이나, 방어도 아닌, ‘생존’이 되어있었지. 행사에 참석한 VIP들을 빼내기 위해 우린 진짜 ‘고기방패’가 되어서 놈들의 속도를 늦춰야 했어.

지휘부부터 말단 사병까지. 모두가 당황했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벼왔던 베테랑들조차 경험해보지도, 상상치도 못했던 광경이었으니까.”


“······.”


오블리는 다시 의자를 돌려 모니터들을 향했고, 크리스는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아인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북쪽에서 다들 고깃덩이가 되어준 덕분에 VIP들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사단 하나가 아예 궤멸. 심지어 상대가 군용 안드로이드였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도 24시간이나 지난 후였고.”


“심지어 그게 중국애들이 보낸 거란 건 한 달이 지나서야 알아냈지. 핫, 병신새끼들.”


오블리의 조소에는 분노나 공감보다는, 순수한 경멸만이 담겨있었다.


“······뭐어, 그 뒤는 다들 아는 대로야.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에 벌어진 교전이었고, 행동제약이 풀린 그것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거대한 생체실험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지.”


“난리였죠. 곧바로 군용 안드로이드의 개발과 생산을 금지하는 국제법이 발효됐고,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엄청난 비난과 제재가 쏟아졌죠. 국내에선 아인 씨처럼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에 대한 격리조치가 먼저 이뤄졌고요.”


“아~, 그때 기억난다. 국방부새끼들, 처음엔 ‘사람’한테 죽은 게 아니라서 전사 처리를 해줄 수 없다는 개소리 지껄이다가 몰매 맞고 ‘진실은 이렇습니다’ 시전했었지. 진짜 미친놈들인 줄.”


아인은 오블리의 웃음소리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다시금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어서 국방부도 보훈처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거지. 그래서 일단 생존자들을 모아놓고 PTSD를 관리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현실화한 거야. 사실 이미 그 시점에 자살자도 나온 상황이었으니까. 어쩌면 한국이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


“하긴, 그때 사건 가지고 국군 무용론에, 평소에 남성혐오하던 새끼들 죄다 튀어나와서 넷상을 개판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뭐어, 그래도 그때 분위기 못 읽고 분탕 치던 병신들 유족한테 싹 다 고소미 쳐먹은 덕분에 한동안 깨끗했는데.”


“거기서 ‘오블리비언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군요.”


오블리를 가만히 냅두면 계속해서 사족을 붙일 게 뻔했기에 크리스는 재빨리 본제로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 것이었다.


“맞아. ‘무기체에게 사냥당하는 악몽’에 대한 PTSD를 치료하는 지침 따위 있을 리가 없었지. 그래서 국방부는 참 간단하고 깨끗한 방법을 고안했어. 기억에 대한 고통을 치료해줄 수 없다면, 아예 그 기억을 지워버리면 되지 않냐-는 거였지.”


“예에?”

크리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게 가능한가요?”


“당연히 어려웠지. 그러니까 ‘말룸’을 끌어들인 거고.”


“······오빌리오모, 암페스카나. 그 약들은 애초에 ‘오블리비언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된 게 아니었겠네요.”


크리스의 추리에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말룸이 전뇌 소프트웨어 회사가 협업해서 만든, 강간 피해를 위한 약들이었지. 전뇌앱과 연동하여 외부의 약물을 통해 특정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파생반응들을 억제하는 기술이었어. ‘말룸’은 국방부의 ‘오블리비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해당 소프트웨어의 판권을 사서 응찰한 거야. 국방부가 생각했던 해결방안과 아주 딱 맞아떨어졌지.”


“그럼, 생존 장병들 모두 해당 프로젝트에 강제로 참여하게 된 건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어느새 아인은 왼손의 살갗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절대로 ‘강제성’은 없었어. 원하는 사람만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도록 공지했지.”


“네? 하지만-”


“그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거기 있던 모두가 프로젝트에 참가하길 원했을 뿐이야.”


“하, 어지간히 좆같았나 보네.”


어지간히 좆같았다?

오블리의 말은 그때의 기억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부드럽고 나약한 것이라고, 아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아인 씨는 해당 프로젝트에 참가하셨는데도 그때의 상황을 다 기억하고 계시잖아요?”


“아, 그건 내가 중간에 투약을 중단하고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야.”


아인의 말에 다시 흥미가 돌아왔는지, 오블리는 크리스보다도 먼저 아인의 시선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뭐어? 왜?”


“누군가는 그 광경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인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평온했지만, 크리스는 아인의 눈동자 속에서 그 무엇과도 범접할 수 없는 처절함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에엥?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맞아, 그게 문제야.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고, 심지어 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는 거.”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약물의 부작용으로-, 아니, 이 경우엔 약물의 효능 덕분이라고 해야 하려나? 일부 기억은 흐릿하게 날아갔는데 또 어떤 건 선명하게 남아있고, 그런 상태거든.”


아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의자의 바퀴를 굴려 다가오는 오블리.


“뭐? 아인이 형, 혹시-”


“약물이 어떻게 작용된 상태인지 궁금해서 내 머리를 헤집어보고 싶다는 거면 거절할게, 오블리.”


“쳇.”


가볍게 해커 청년의 마수를 뿌리치자, 이번엔 크리스의 커다란 눈망울이었다.


“일부 기억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억이죠?”


“간단해. ‘오블리비언 프로젝트’가 우선 적으로 제어하고자 했던 우리의 기억은 보통 나 자신이 아닌, 옆에 있던 ‘전우’들에게 있었거든.”


“······그렇겠죠.”


크리스 또한 참전용사다. 아인은 그녀가 쉽고 빠르게 납득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엔 우선 대상이었던 ‘전우’, 그러니까, 해당 사건에 있었던 모든 ‘사람’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진 상태야.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 내가 누굴 살렸고 누굴 살리지 못했는지, 그런 기억들 말이야.”


“······.”


“그거 외에, 뭐어, 그때 당시에 상황이라든가, 피비린내나 시체 타는 냄새, 시가지의 풍경, 그리고······, 놈들의 모습 같은 건 아직 꽤 선명하게 남아있지.”


“······.”


담담한 자신의 어투 속에 녹아있는, 처참했던 망각의 시도들을 크리스가 놓칠 리 없겠지. 아인은 특별히 그녀에게 동정을 얻고픈 마음은 없었기에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어야 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나에게 이 32명 중에 용의자를 가려낼 방안이 하나 있어. 확실하다고는 하기 힘들고, 과학적이지도 않지만, 한번 시도해볼 만해.”


“뭐죠?”


마침내, 아인의 왼손이 자유를 되찾는다.


“그 32명 중에서, ‘오블리비언 프로젝트’의 피험자였던, 참전용사가 있는지 확인해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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