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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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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648
추천수 :
3
글자수 :
167,278

작성
23.09.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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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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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DUMMY

“······.”


‘레키프’라는 이름이 생길 때부터 이 조직에 몸담아왔던 병헌이었지만, 그의 역할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몸을 쓰고 오명을 뒤덮어 쓰는 쪽이었다. 계획이나 계략을 세워서 무언가를 설계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거니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그의 입장에서도 마음 편하고 결과물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 것은, 경찰 쪽에서 흘러들어온 정보를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감염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뭔 개소린가 싶었고, 놈이 보스가 만들어놓은 공장에서 NC를 생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오블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정보원이 보내준 현장 사진과 영상들을 보고 나자, 병헌은 더 이상 비웃음을 머금을 수가 없었다.

놈이 진짜로 감염체인지 아닌지는 알 수도 없고, 상관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놈이 보스만 알고 있는 공장을 멋대로 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혼자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그러나-


“사장님께선 이미 퇴근하셨습니다.”


“이제 네 시인데?”


“따로 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집무실에서 나오는 태하의 표정에선 그 무엇도 읽어낼 수가 없다. 정말로 현세가 부재중인지, 아니면 저 집무실 안에서 태하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시킨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비서가 사장의 행방을 모르고, 그 이유를 비서가 다른 비서에게 말을 전해 듣는 지금 상황이 병헌에게 반가울 리 만무했다. 그런 병헌의 표정을 눈치챈 것인지, 태하가 다시금 입을 연다.

“연락은 해보셨습니까?”


“통신으로 말하기 좀 그런 문제라서.”


“무슨 문제인데요?”


소파에 앉은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태하를 올려다보는 병헌.

평소의 그였다면, 그리고 평소 그가 태하에게 지니고 있던 감정이었다면 태하의 질문이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를 떠나서 욕설을 뱉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병헌의 가슴 속에는, 그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무언가가 내려앉아 있었다.


“태하야, 너 ‘공장’에 대해 알고 있냐?”


“공장이요?”


“형님께서 NC 합법화되면 돌리려고 준비 중인 공장들 말이야.”


“아아, 예에. 들어는 봤습니다.”


“위치는 모르고?”


“네, 사장님만 알고 계시다고.”


“······.”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가벼운 인상이긴 하지만, 태하의 얼굴에서 거짓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병헌은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공장 중 하나를 누군가 몰래 쓰고 있는 거 같다고 나한테 알아보라고 하셨어. 정확히는, 내가 뚫어놓은 경찰들을 통해서 말이야.”


“흐음.”


“그랬더니, 정말로 누군가 공장에서 NC를 생산하고 있더라. 근데 큰 문제가 있어. 짭새 새끼들이 말하길, 그 공장을 훔쳐 쓰고 있는 놈이 쌍문사건을 일으킨 놈이랑 똑같은 놈이라는 거야. 사건이 일어나고서 지금까지 훔친 랙돌 NC의 라이센스를 복제해서 그 공장에서 생산한 거에 입힌 다음 물량을 풀고 있었던 거지.”


“······.”


태하의 누렇게 탈색된 눈썹이 씰룩인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있어. 우선, 형님만 알고 있는 공장의 위치를 그놈은 어떻게 알고 NC를 훔치자마자 가서 생산을 하고 있었던 걸까-랑, 쌍문사건 이후에 거리에 풀렸던 물량이 그 공장에서 나온 것들이라면, 정작 쌍문에서 털었던 랙돌의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라는 거야.”


“······.”

후배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 없이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병헌은 지금껏 자신이 길바닥에서 구르며 다듬어온 본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긴장을 늦추지 않았지만, 태하의 반응이 나온 것은 꽤나 긴 침묵이 지난 이후였다.

“그 공장이 쌍문사건 이후부터 계속 돌아갔다면, 왜 사장님께선 이제야 형님께 조사를 지시한 걸까요?”


“······!”

병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눈앞의 후배가 자신과 같은 의문을 품어준 것만으로도 그는 괴로운 가슴에 어느 정도 구원을 받은 셈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이! 형님 안에 정말로 안 계시냐?”


“예, 형님 오시기 30분 전쯤에 퇴근한다고 나가셨습니다. 다만······.”

처음으로 망설임을 씹고 있는 태하의 입술. 병헌은 참을성 있게 그 머뭇거림의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이 오시면 공장에 대한 일을 물어보고, 그 내용을 보고하라고 하셨죠.”


“뭐? 왜 나한테 직접 듣지 않고?”


“잘 모르겠습니다.”


“후우······.”


이마를 쓸어 넘기며 긴 한숨을 뱉는 병헌. 태하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세는 어째선지 자신과의 독대를 피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일단 형님께서 오셨었다고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그 공장 건에 대해서도요.”


“어어, 그래. 수고해라.”


병헌은 결국 태하의 인사를 뒤로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온다. 몇몇 후배들의 형식적인 인사에 대충 손을 들어 답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사무실건물의 로비를 나설 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이성을 휘감고 있는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

..

.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차량AI의 안내음성이 들려온다. 병헌은 그제야 고뇌의 홍수 속에서 벗어나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떻게 차를 타고, 어떻게 시동을 걸었는지조차 기억이 애매할 정도로 그는 집중했던 것이다.

기계적으로 지문인식을 통해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가 자동으로 해제된 이후에도 그는 한참을 운전석에 앉아 핸들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사장님께선 이제야 형님께 조사를 지시한 걸까요?’


왜일까.

형님은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 왜 이제 와서 나를 통해 공장을 경찰에 고발한 것일까.

그를 통해 그가, 그리고 조직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가 있었을까.


그리고

사라진 랙돌의 NC는 어디에 있을까.


[경고, 외부-]


BDM 방화벽의 경고가 울리기도 전에 병헌은 조수석 아래로 몸을 날린다. 방금까지 그의 뒤통수를 받쳐주고 있던 헤드레스트가 조각나며 검은 파편들을 튕겨냈고, 거의 동시에 박살 난 운전석 창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린다. 어느새 병헌은 글러브박스에서 꺼낸 권총의 잔탄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기까지 한 이 모든 동작의 흐름은 병헌이 거리에서 굴러먹던 시절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크헉-!”

병헌은 반쯤 누운 상태에서 운전석 문을 걷어차 확인사살을 위해 접근하던 괴한의 입에서 비명을 끌어낼 수 있었다.

괴한은 문에 정통으로 팔꿈치가 가격당했음에도 가까스로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떨어트리지 않을 수 있었지만, 고통으로 인해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감싼 그 행동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다.

“이쪽-”


활짝 열린 운전석으로 굴러나온 병헌의 총구에 의해 괴한의 턱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떨어져 나갔고, 굳이 사격제어프로그램의 도움이 없어도 그 괴한의 뇌간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신했기에 병헌은 몸을 낮춰 자신의 차를 엄폐물로 삼았다.


“큭-!”


그러나 병헌의 출퇴근용 차량은 별다른 방탄옵션이 붙지 않은, 평범한 전기차.

차체를 관통한 총알 하나가 그의 어깨뼈를 긁으며 비명을 흩뿌린다. 노골적인 재밍에 의해 병헌은 상대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반대는 자유로운 상황일 터.

병헌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하나뿐이었다.


“으아악-!”


그는 곧바로 누워서 차체 아래로 보이는 가장 가까운 구두를 향해 권총을 쏘았다. 비명과 함께 구두 주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병헌은 그 미간에 다시 총알을 박아주었고, 언뜻 보였던 또 다른 구두들의 존재와 권총의 잔탄에 대한 계산을 시작하려는 찰나-,


“······.”


싸늘한 그림자가 병헌의 옆얼굴을 감싼다.

그가 눕기 전부터 이미 우회해온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쪽의 정수리를 똑바로 겨누고 있는, 소음기의 먹색 총구.

방아쇠에 들어가는 힘에 망설임은 없었고, 병헌은 혀를 찬다.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뭐야!”


때문에,

병헌은 차체 반대편에서 들려온 다급한 외침과 이어진 총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깨달을 수 없었다.

발사속도 1200rpm의 기관단총이 탄창을 모두 비워내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오직 2초. 그 2초간 이어진 연발은 놀랍게도 모두 유효사격으로 적중했고, 병헌의 옆에 서 있던 그림자를 포함하여 네 명의 흔적을 지하주차장에서 지워버린다.


“병헌 형님, 괜찮으십니까?”


“태하?”

병헌은 두 번 놀랐다.

우선 반대편에서 기관단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며 등장한 익숙한 목소리에 놀랐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머리에 총탄을 박으려던 익숙한 얼굴에 놀란 것이다.

“규현이? 뭐야? 이 새끼가 왜 나를-”


“형님, 일단 제 차로 가시죠. 아직 위험합니다.”


“뭔 소리야? 내가 왜? 이 새끼들이 왜 날 잡으려는 건데?”


병헌의 얼굴에 떠오른 경악과 당혹감이 짙어진다. 그가 처음 턱을 날렸던 사람도, 구두와 미간에 총알을 박아넣은 사람도, 태하가 나타나 대신 정리해준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던 탓이었다.


“명령을 따른 것뿐입니다.”


해명을 요구하는 병헌의 멱살을 거의 낚아채다시피 끌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태하. 병헌은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역정을 내며 후배의 손길을 뿌리친다.


“명령? 누가?”


“······.”

태하는 짧은 한숨을 쉬며 병헌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어느 정도의 납득을 안겨주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태하의 목소리는,

병헌의 몸은 물론이고 사고까지 정지시켜버리기에 충분했다.




“사장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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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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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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