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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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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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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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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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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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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DUMMY

“······.”


아인은 짧게 긴장의 숨을 내뱉었고, 자신이 쥐고 있는 권총에 의식을 집중한다.

아직 태양의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 이른 새벽. 놀랍도록 차가운 공기가 아인의 긴장을 부추기고 있었지만, 아인은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의 힘을 사격제어프로그램에 맡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오늘만큼은 이 권총을 쓸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아인의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결과를 냈다. 국방부 차원에서의 정보 차단으로 인해 각 인원의 명확한 참전내역이나 소속 부대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역으로 평양에서의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를 기준으로 해당 기간에 모든 복무 내용과 디테일한 정보가 대외비 처리된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32명의 명단 중, 그 기간의 경력이 공백인 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BDM 신호 없음. 비어있는 거 같은데.]


[보안은?]


[그냥 일반 가정용. 10초 뒤에 비활성화할게.]


오블리의 말에 아인은 맞은편에 있는 크리스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서울 외곽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 유력한 용의자의 주소지로 확인된 장소로, 확인되자마자 아인이 크리스와 함께 새벽길을 달려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처음 주변을 확인한 오블리가 여기 사람이 살긴 하는 거냐며 물을 정도로 아파트는 후줄근하고 황량했으며, 새벽 시간임을 고려하더라도 인적 자체가 보이질 않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공동현관은 보안이랄 것도 없이 이미 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중앙 엘리베이터 또한 거주자 확인이 필요 없는 구식 모델이었기 때문에 아인과 크리스는 별다른 긴장 없이 용의자의 집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보안 해제했어.]


오블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고리를 돌려 현관문을 여는 아인. 내부의 어둠에 맞춰 아인의 군용안구가 야간투시모드를 활성화했고, 신중하지만 신속한 움직임으로 거실을 향해 나아간다. 아인과 크리스가 오블리의 말대로 아파트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꽤 오래 비워놓은 거 같은데요.”


부엌을 확인한 크리스의 짤막한 목소리. 이에 아인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오직 하나뿐인 방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곳엔 야간투시모드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변색된 매트리스와, 말룸 바이오닉스의 인장이 새겨진 몇 장의 서류, 그리고-


“······.”

일부는 쌓여있고, 일부는 널브러져 있는, 익숙한 약통들.

아인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지만, 사실 그는 이미 그곳에 써있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오빌리오모’. 꽤 많은 양인데.”


[그,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약물 말이야?]


“응.”

조심스럽게 약통들을 살펴보는 아인.

“개봉된 하나 말고는 손도 대지 않았어.”


“뭔가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던 걸까요?”


어느새 뒤로 다가온 크리스였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처방 일자를 보니 전부 한 달쯤 전이네.”


[한 달? 그렇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이상하군. 사건 당시에 프로젝트에 전부 참여했다면 이제와서 다시 약을 먹을 필요는 없을 텐데. 왜 이 정도로 많은 약을 다시 처방받은 거지?”


[집에 PC나 태블릿같은 건 전혀 없네. 뭐 정보를 꺼낼만한 껀덕지가 없는데?]


오블리의 목소리엔 답답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국방부 DB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제약사항이 계속해서 그의 짜증을 유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여기서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면, 지금 팀에게 허락된 용의자의 정보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허름한 아파트의 주소뿐.


“껀덕지가 왜 없어.”


그러나 아인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약통의 겉에는 ‘오빌리오모’라는 약의 이름과,

정소연.

25세.

그리고 처방받은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



“음······, 그러니까, 해당 날짜에 해당 이름으로 처방받은 내역을 알려달라는 말씀이시죠?”


말룸 바이오닉스의 수석연구원, 게이츠가 난감하다는 듯 웃어 보인다. 물론, 아인은 이 웃음을 받아쳐 줄 정도로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국방부 DB를 해킹하는 건 위험하겠지만, ‘오블리비언 프로젝트’의 피험자로서 처방받았다면 말룸의 DB에도 등록되어 있을 거 아닙니까.”


“아-, 예에. 그렇긴 한데······, 그, 이분이 범인인 건 확실한 겁니까?”


“확실한 건 없습니다. 조사하는 과정이니까요.”


“으음······. 환자의 신상정보를 유출시키는 건 이래저래 너무 위험한 일이라서요.”


얄팍한 웃음으로 머뭇거리는 게이츠를 향해, 아인은 결국 약간의 위협이 담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뭐, 영장이라도 받아올까요?”


“하하······.”

어색한 웃음 뒤에 찾아온 짤막한 침묵. 아인은 게이츠가 인트라넷 통신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허락받는 중임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분의 성함과 날짜를 알 수 있을까요?”

입으로 대답하는 대신, 아파트에서 챙겨온 약통 하나를 건네는 아인. 게이츠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약통을 받아, 그 겉에 써있는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반응은 아인의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소연 씨?”


게이츠가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이름을 머금으며 미간을 구긴 것이다.


“아는 사람입니까?”


“아, 예. 작년부터 국방부에서 이쪽으로 파견 나온 직원입니다.”


“파견?”


“네, 프로젝트의 후속 조치와 피험자 상담에 대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 나온 분인데-”


“지금 이곳에 있습니까?”


최대한 조급함을 억누른 아인의 어투였기에, 게이츠는 대답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의심도 품을 수가 없었다.


“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이긴 한데, 잘 모르겠네요. 자리로 안내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일단 저희끼리 만나보도록 하죠.”


아인이 말한 ‘저희’란 뒤에 서있는 크리스까지 포함한 말일 터. 이에 게이츠의 옆에 서있던 ‘보안책임자’ 애경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게이츠가 손을 들어 이를 저지한다.


“본관 6층. 602-B호실입니다.”



***



“오블리. 6층 스캔 좀.”


말룸 바이오닉스 본관의 엘리베이터 안.

아인은 크리스와 단둘이 되자마자 오블리를 찾았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대답은 아인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BDM 식별가능 인원 총 14명.]


“602-B호실에는?”


[한 명.]


“스캔 가능해?”


[응. 이름 정소연. 국방부 특수임무보상지원단 소속 파견 조사관. 경력은-, 아.]


짧은 탄식과 함께 낮게 흘러들어오는 오블리의 웃음소리.


“왜 그래?”


[방금 이쪽을 역스캔하려고 해서. 내가 너무 얕봤나? 방화벽 상당한데?]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이 맞다면, 높은 수준의 방화벽을 갖고 있는 것도 당연하지.”


“특수부대 출신일까요?”


“그럴지도. 오블리, 만약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곧바로 6층 전체에 대피경보 울려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6층에 도착했다는 친절한 안내음성이 흘러나온다.

깨끗한 흰색의 벽과 정면에 보이는 말룸 바이오닉스의 로고. 복도가 양옆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아인과 크리스는 별다른 안내 없이도 곧바로 왼쪽을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말룸의 보안 절차에 따라 크리스와 아인 모두 개인화기는 1층 로비에 맡겨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쪽엔 전신이 군용의체인 크리스가 있기에,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상대를 제압할 능력은 충분하다.

때문에 아인은 노크 없이, 과감하게 602-B호의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인은 왜 자신의 시야가 가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메스의 머리로 보이는 날카로운 금속의 끝이 자신의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으며, 그 메스가 아인의 미간에 꽂히는 대신 뒤에 있던 크리스가 본인의 오른손바닥이 관통당하는 것으로 대신 이를 막아줬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아인 씨!”


그녀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는 굳이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인은 빠르게 입구 오른쪽에 있던 책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왼쪽 대퇴동맥을 노리고 날아오던 볼펜을 피해낸다. 그 사이 크리스는 저돌적인 도약으로 상대의 정면을 향했지만, 이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상대는 크리스의 얼굴을 향해 스캐너를 걷어차 그녀의 움직임을 봉쇄해낸다.


[아인 씨, 왼팔, 오른다리 의체에요. 그것도 군용.]


한 번의 경합만으로 상대의 신체스펙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크리스의 보고였다. 이에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몸을 낮춘 채, 일렬로 늘어선 책상을 엄폐물 삼아 상대의 왼측면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지만,


“움직이지 마.”


위협적인, 여성의 목소리.

아인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제야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크리스만큼이나 훤칠한 키에, 평범한 하얀색의 세미정장. 꽤 긴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말아 올렸으며 두꺼운 테의 안경이 꽤나 지적인 이미지를 보정해주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왼손에 들고 있는 작은 장치가, 이러한 모든 ‘직장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이 건물 전체가 날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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