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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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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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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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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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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DUMMY

아인은 가만히 혜인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비어있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랙돌에 NC가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게, 혜인 씨 개인의 의견인가요, 아니면 랙돌 전체의 입장인가요?”


“당연히 저 개인의 의견이죠.”

부드럽게 조각난 쿠키를 입에 가져가며 혜인은 말을 이었다.

“전 철저한 NC 반대론자거든요.”


“흐음.”


마약 유통을 주업으로 삼는 마피아 조직의 간부가 NC 반대론자?

아인은 가까스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아낼 수 있었지만, 혜인은 이미 그의 심중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웃기죠? NC로 벌어먹는 마피아의 간부가 NC 반대론자라니. 뭐어, 덕분에 다른 간부들 눈 밖에 나서 직함만 유지한 채 좌천되다시피 유통업무에만 박혀있으니까요.”


“왜 NC를 반대하십니까?”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아인의 질문. 이에 혜인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새롭게 뽑은 커피 석 잔을 내려놓고 나서야 대답을 내어놓는다.


“제가 NC를 반대, 아니, 혐오하는 건, NC가 ‘완벽한 마약’이기 때문이에요.”


“······완벽한 마약?”


“어플과 라이센스가 구성품의 95%이기 때문에 단가가 저렴한데다 생산에 환경오염적인 요소도 없고, 정신적 의존도를 제외하면 신체적인 중독성도 아예 없죠. 신체에 끼치는 영향이 없으니 당연히 후유증이란 것도 존재할 수 없고요. 당장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만 하더라도 NC와 비교하면 심각하게 위험한 물질일걸요?”


“······.”


“하지만 저는 NC가 이토록 ‘완벽한 마약’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합법화 찬성론자들이 항상 ‘정신적 의존도’를 가벼운 개인의 책임 정도로 여기면서 어물쩍 넘어가는데, 전 그게 사실 가장 위험한 부작용이라고 보거든요. 아무런 대가 없이 최고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요.”


“모든 것에 만족한 인간은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까.”


“바로 그거에요!”

혜인은 해맑게 웃으며 마치 드디어 동지를 찾았다는 듯 즐겁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NC가 보편화되고 결국 합법화까지 되어버리면, 그땐 정부가 어떻게 나올까요? 어이구 마피아 여러분 여태까지 NC를 생산, 유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세금만 조금 내면서 하던 일 계속하세요~, 이럴까요? 결국 이용자 확보는 우리가 하고, 꿀은 정부가 빨게 되는 모양새가 된다니까요. 보스랑 간부들은 그걸 몰라요, 답답하게.”


NC 반대론자에 안드로이드 혐오자.

아인은 자신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경찰과 마피아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혜인이란 인물이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결국 경찰과 마피아.

아인의 이성은 빠르게 현실로 돌아온다.


“그럼, 혜인 씨가 랙돌 NC들의 위치를 알아봐 주실 수······?”


“아, 물론이죠. 직함만이긴 하지만 아직 간부고, 맡은 게 유통관리라 애초에 그게 제 일 중 하나거든요.”


“잘됐네요. 그럼 잘 부탁-”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가벼운 혜인의 어투. 굳어지는 아인의 눈초리. 그러나 혜인은 곧바로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에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작은 편의랄까.”


“······편의?”


“네. 만약 조현세와 NC 둘 다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경찰 측에서 공식적인 수사 과정이나 실적에 대한 발표를 할 거잖아요?”


“그렇죠.”


“그때 언론 앞에서 발표할 대본을 짜실 때, 지금 제가 보내드리는 이름들을 은근슬쩍 끼워주세요. 뭐, 굳이 직접적으로 ‘알고 보니 랙돌의 얘들이 조현세와 공모한 거였다-’라는 정도의 거짓 뉴스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냥 관련된 자들을 심문하는 중에 이 이름들이 나왔는데 일단은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정도로만요.”


혜인의 손짓과 동시에 아인의 망막에 떠오른 이름들은, 굳이 경찰DB와 연동하지 않아도 아인에겐 익숙한 것들이었다.


“이건······, 랙돌의 간부들이잖아요?”


“네, 맞아요. 뭐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부터 보스한테 NC사업을 꼬드겨서 조직 내 제 파이를 뺏어 먹은 놈년들이죠.”


“······알겠습니다. 위쪽과 상의하여 다시 연락드리죠.”


아인은 유라와 짧게 시선을 교환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그들을 향해 혜인은 진심으로 서운한 듯한 표정과 어투로 손을 흔들었다.


“에, 벌써 가시려고요? 샌드위치 하나 만들어드릴 테니까 드시고 가시죠? 아니면 그냥 가지고 가시면서 드셔도 되는디.”


“괜찮습니다. 유라를 통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유라의 왜 자신이 필요한지에 대한 입증도 끝났다.

그러나 아인은 계단을 내려가기 전,

이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아, 저기 혜인 씨.”


“네에?”


“쌍문에 있던 랙돌의 NC. 레키프 쪽에 정보를 흘린 거, 혜인 씨인가요?”


혜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유라와 아인의 시선이 계단 아래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천천히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



“경찰에 신고라도 하겠다는 거야?”


병헌의 목소리엔 분노와 당혹감이 동시에 묻어있었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CCTV조차 닿지 않는 골목으로 몸을 피한 병헌과 태하였지만, 그렇지 않아도 굵직했던 병헌의 목소리가 벽을 따라 울려 퍼졌기 때문에 태하는 대답에 앞서 병헌을 향해 진정하라는 듯 손짓을 해보여야 했다.


“신고가 아니라 제보를 하자는 겁니다. 조현세가 NC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조직원들도 자기들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요. 지금 저희 둘이서 아무리 내부망에 떠들어봤자 설득력도 없고, 위치만 노출된다니까요.”


“그럼 그다음은?”


예상치 못한 병헌의 물음에, 태하는 잠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예? 그다음이라뇨?”


“조현세 그 씹새끼가 우릴 등쳐먹었다는 걸 밝히고 난 다음은? 우리 레키프는 어떻게 되겠냐? 응? 보스라는 새끼가 그 지랄을 해놨는데, 아주 그냥 개판이 날 거 아니야?”


“······.”

태하는 한숨을 뱉었다.

민병헌, 이 남자는 우직하고 멍청하다. 오직 시키는 일만 해왔으며, 그 보상으로 존중을 바랐고 스스로 그 존중을 따냈던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도 보스에게 충직했던 그가 바로 그 보스에게 뒤통수를 쳐맞았고,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충직의 길은 ‘레키프’라는 조직에 걸려있는 것이다.

“형님, 조현세가 저 지랄을 했던 순간 레키프는 이미 끝난 겁니다. 아니, 적어도 ‘조현세의 레키프’는 끝난 거라고요. 형님이 레키프의 창설멤버라는 것도 알고, 그만큼 애정이 깊다는 것도 알지만, 이 조직을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선 조현세를 반드시 쳐내야 하는 게 우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한테 꼰지르자고?”


“우리 조직을 배신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조직의 암덩어리인 조현세를 떼어내자는 거예요. 생각해보십쇼, 형님. 조현세의 실체를 밝히고, 그 중심에 있던 게 형님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남은 조직원들과 간부들은 누굴 따르겠습니까?”


“······.”


노골적으로 흔들리는 병헌의 눈빛. 태하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더해진다.


“누군가 의심한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조직의 창립멤버인 형님, 그리고 조현세가 가장 신뢰했던 비서인 제가 직접 나서서 말하는데 누가 뭐라 할까요?”


“······.”

병헌에게 있어 태하의 간절함은 전혀 사탕발림의 일종이 아니었다. 이 후배는 죽을 뻔한 자신을 본인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구해냈다. 그에 비해 현세는 20년 넘게 함께해온 자신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내팽개쳤다. 신뢰의 방향이 누굴 향해야 할지는 명백했다.

“좋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경찰 내에도 조현세의 손이 닿아있으니까, 무작정 저희를 노출해서는 안 됩니다. 놈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무언가를 가지고 협상을 해야죠.”


“경찰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무언가가 우리한테 있어? 당장 NC는 조현세 그 새끼가 가지고 있을 테고, 그렇다고 우리가 그 새끼의 목을 직접 갖다 바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물론 지금 상황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병헌의 말대로 조현세를 죽이든 살리든 경찰에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현세도 지금쯤이면 병헌의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터.

강북 3대 마피아 조직의 하나인 레키프의 보스를 단둘이서 어떻게 해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경찰을 정말로 ‘외부의 아군’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가치에 필적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나 있습니다. 경찰도 무시하기 어렵고, 잘하면 조현세도 직접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미끼가요.”


그랬기에,

확신에 찬 태하의 목소리는 병헌에게 커다란 눈망울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게 뭔데?”


“레키프에서 조현세와 저, 그리고 형님만이 알고 있는 정보.”

태하는 마침내 가벼운 인상에 걸맞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NC 공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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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3) 23.09.29 14 0 10쪽
19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4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5 0 9쪽
17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23.09.25 14 0 12쪽
»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15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7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5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3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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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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