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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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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278

작성
23.10.1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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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DUMMY

“중사님! 소대장님과 링크가 끊겼습니다!”


“중대 전체 보안라인 침묵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껏 보지 못했던, 두 부하의 절망스러운 표정.

특전대원으로서 언제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작전에 임하라는 지겨운 표어를 몸소 실천해오던 그들 앞에서, 아인은 목소리를 내뱉기 직전 절망과 혼란으로 그 울림이 떨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적 식별코드는? 확인됐어?”


“확인 불가입니다. 북한도, 중국도 아닙니다.”


“뭔 말이야, 그게? 그럼 지금 저 지랄로 쏴재끼고 있는 새끼들이 유령이라도 된다는 소리야?”


시가전이라는 상황이 무색할 정도로 정확하게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조준사격을 가해오는 정체불명의 적들. 보안라인이 재밍당하고 이쪽의 위치까지 노출될 정도의 정보전 열세는 전쟁이 시작된 이래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북쪽 정규군의 무장해제만을 남겨두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전력이 등장한다고?

도무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인뿐만이 아니었다.


“무장해제에 반대하는 북쪽 강경파들의 테러 위협이 있지 않았습니까. 숨겨둔 특수부대인 걸까요?”


“저런 전력이 있었으면 우리가 평양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나왔겠지.”


“그럼 중국? 인민해방군 기갑부대가 단둥에서 포착됐다는 정보가 있었잖습니까.”


합리적인 의문이었으나, 아인은 고개를 저었다.


“걔들이 굳이 여기까지 내려와서 우리랑 교전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식별코드 은폐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그런 걸 신경 쓸 새끼들이었으면 애초에-”


부하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한다.

그의 동기와 아인은 그가 앞으로 고꾸라질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야, 뭐하-”


동기의 방탄모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동료는 그의 어깨를 붙들어 다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고-,


“-!”


반파되어 흘러내리는 군용 안구와, 왼쪽 관자놀이에서 솟구치는 선홍빛 뇌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엎드려!”


경악보다 먼저 움직인 아인의 본능.

그는 부하의 방탄조끼를 붙들어 끌어내렸고, 그와 거의 동시에 파편이 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꺼운 콘크리트벽을 관통하며 정확하게 그들의 머리를 노려온 저격.


“야! XXX! 정신 차려! 이동한다! 어서 일어-”


추가 사격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다.

아인은 끌어당겼던 부하의 방탄조끼를 다시 끌어올려 재촉하려 했다.

발각된 위치정보에, 엄폐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화력이면 이어질 상황이 어쩔지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


손끝으로 느껴지는 무게는, 호응이 없는 덩어리의 그것과 같았다.

아인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머리와 방탄모.

동시에 아인의 손등을 적시는, 검붉고 따스한 액체.


덜컥.


조심스러움은 사치라는 듯, 당당하게 들려오는 발소리였다.

아인은 순간적으로 부하의 몸뚱이를 내팽개쳤고, 소총을 들어 발소리의 주인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의 총성.

심장과 미간에 적중한 총탄.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몸뚱이······어야 했을 터.


“뭔······?”


개인화기라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조잡한 소총을 든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명중했을 터인 가슴팍이나 이마에서는 그 어떤 출혈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끔찍한 무표정으로,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이쪽을 향해 다가올 뿐.


“망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남자의 보폭을 줄일 수가 없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아인은 소총의 조정간을 연사로 바꾸어 탄창의 남아있는 모든 탄을 남자의 얼굴에 꽂아버린다.

그러자 마침내 남자의 걸음이 멈추었고, 아인은 인공피부 아래 감춰져 있던 남자의, 아니, ‘그것’의 맨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 씨발-”


그것이 들어 올리는 거대한 화기.

모든 이성을 빨아들이는, 먹색의 총구.


감정이 없는 ‘그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허억.”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낯선 천장.

저번 ‘의식전이체’ 안드로이드의 습격 이후 거처가 옮기는 편이 어떻겠냐는 크리스의 제안이 있었지만, 아인은 상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집을 옮기는 건 번거롭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고객님의 불안정한 수면을 해결해줄 최고의 선택. 러셀바이오의 나이트웨어를 체험해볼 기회를-]


아니나 다를까, 기회를 포착하고 귀신같이 광고를 띄우는 생활AI. 아인은 능숙하게 해당 AI를 비활성화하며 시간을 확인한다.


“······.”


‘그때’의 꿈을 꾼 것은 오랜만이었다. 물론, 진짜 ‘그때’ 있었던 일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으며 등장인물도 판이했지만, 그 느낌만큼은 희석되지 않고 더욱 선명하였기에 아인은 한참이나 침대에 누운 채로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어쩌면, 크리스의 말대로 이사를 하는 게 정답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꿈’을 꾸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불쾌함보다도 더욱 강하게 아인을 침대에 묶어두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전우들, 그들의 ‘이름’.


전쟁 후, 인류가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가장 끔찍한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병사들에게 정부는 국방부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PTSD 치료를 제공해주었다.

이는 약물을 동반한, 해당 기억을 잠재의식 아래로 가라앉히는 형태의 심리치료였는데, 해당 조치가 시행되기 전 생존병사들 중 30%가 넘는 인원이 그때의 기억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PTSD를 겪었던 것을 1% 수준까지 낮추는 데 성공하면서 주목받았던 치료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치료를 받았던 군인들로부터 묘한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는데, 해당 사건과 연관된 기억들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부작용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의를 제기하는 참전용사는 없었다.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그 기억을 되찾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아인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




“다음 사건이다.”


부름을 받아 ‘지하주차장’을 대신하여 서장실로 출근한 아인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 인배가 건네준 서류철이었다. 인사도 없이 본론으로 돌입해버리는 아버지의 무심함에는 이미 익숙해진 아인이었기에, 그는 별다른 생각없이 파일 안의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한다.


“······말룸?”


그러나 그는 서류의 첫 줄에서부터 의문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걸까, 인배는 고개를 들어 아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는 회사냐?”


“예, 전후 참전용사들의 PTSD를 담당했던 군납업체입니다. 제약회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정확히는 3세대 전뇌시스템의 신경계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다. 제약업도 그중 하나지.”


“단순한 민간연구소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굉장히 크군요. 운영하고 있는 계열사만 해도 군수, 전뇌 디바이스, 식품공학에 제약까지.”


“전체 규모로만 놓고 보면 일반 기업과 메가코프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고 볼 수 있지.”


국방부와 계약할 정도라면 그 실적이나 내실만큼은 검증이 되었다는 뜻일 터.

아인은 이 회사의 이름이 왜 이곳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알기 위해 천천히 보고서의 나머지 내용을 읽어 내려간다.


“······단순한 군납비리 조사가 아니군요.”


“그런 거였다면 그냥 합동수사단에 맡기면 끝나는 일이었겠지.”


하필이면 ‘그런 꿈’을 꾸고 난 뒤에 ‘이런 일’인가.

아인은 이 기막힌 우연을 향해 짧은 탄식을 한번 씹으며 서류철을 닫았다.


“혹시 이번 조사, 전후 PTSD 병사들의 치료와 관련이 있습니까?”


“뭔가 알고 있나?”


“알고 있다기보다는······, 저도 환자 중의 한 명이었으니까요.”


“······.”


인배가 다시 고개를 들어 아인을 바라본다. 그 표정에서는 그 무엇도 읽어내기 어려웠지만, 아인은 한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날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 제가 소속된 부대의 투입은 대외비였어서, 프로필에 누락되는 바람에 모르셨을 겁니다.”


“······거기에 있었다고? 네가?”


“예.”


“······.”


고등학교 졸업 후 연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부자지간이었으니, 아인이 군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인배로서는 아인의 국방부 공식 프로필에 등록된 만큼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인이 ‘그 사건’의 당사자였을 줄은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

아인은 지금 저 아버지의 무표정이 당황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경악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서 어떤 형식으로든 동정을 받는 것은 절대로 원치 않았기에 화제를 전환해야 했다.


“제가 더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일단은 거기 나와있는 게 전부다. 그쪽에서 테러위협을 받았다고 신고를 해왔는데, 어째선지 비공식 수사로 진행하길 원하더군. 국방부 협력업체라는 점을 감안해도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서.”


“예, 알겠습니다.”


“신분은 오블리가 알아서 세탁해줄 거다. 방문하기 전에 간단히 말만 맞추고 가보도록 해.”


“예.”


경례를 올리고,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아인.

혼자 남은 인배는 잠시 아인이 서있던 자리를 응시하더니, 이내 국방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아인의 이름을 검색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인의 군시절에 대한 정보는 소속부대와 계급 정도 외에는 열람이 제한되어 있었다.


긴 한숨.


인배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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