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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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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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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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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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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좋은 아침입니다 (4)

DUMMY

햇빛이 머리 바로 위에서 광명을 내리꽂고 있음에도 도시의 텅 빈 공기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축축하게 도로를 적신다.

거리는 획일화된 개성으로 치장한 온갖 빌딩들과 전뇌유저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AR증강현실 광고로 인해 어지러웠지만, 정작 유동인구라고는 NC를 파는 마약상과 NC를 사려는 사용자, 그리고 NC 합법화를 위한 시위를 준비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4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정경을 담아내는 아인의 눈동자는 그의 표정만큼이나 아무런 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심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뭐?”


갑작스러운 크리스의 목소리에 불편한 시선으로 운전석을 바라보는 아인.

어느새 생활AI에게 운전을 맡긴 크리스는 입가에 잔뜩 마요네즈를 묻힌 채로 샌드위치를 씹고 있었다.


“NC요.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목을 매는지 잘 모르시겠죠?”


“그야, 마약이니까.”


아인의 단호함에 크리스가 짧게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지만, 저 매력적인 숨소리가 자신의 편협함을 향해 있음을 알았기에 아인으로선 마냥 마주 웃을 수만은 없었다.


“네, 마약은 맞죠. 그렇게 규정됐으니까요. 하지만 NC가 다른 마약들은 물론이고 담배나 술 같은 다른 기호품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하, 마피아 새끼들이 뿌리는 스팸에서 비슷한 걸 읽었던 거 같은데.”


아인의 정색에도 크리스는 마요네즈 가득한 미소를 놓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NC가 작용하는 과정을 알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죠.

NC는 말 그대로 인간의 인체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중추신경계를 장악하고 있는 전뇌, BDM에 자극을 주는 겁니다. 즉,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거죠.

이 감각은 사용자의 희망에 따라 성적 쾌락이 될 수도 있고, 안정감이나 심적인 행복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감각’을 담당하는 뇌신호만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중독될 위험도 없는 데다가, 사용자가 원한다면 효과가 작용되고 있는 중에도 바로 중단할 수 있죠.”


“중요한 건 그게 정말로 무해하냐, 하지 않냐가 아니지.”

아무리 최근 활발하게 합법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불법은 불법이다. 이를 찬양하는 듯한 크리스의 어조에 아인은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였다.

“말하는 게 NC 옹호론자처럼 들리는데, 크리스.”


큰 깊이는 두지 않은 아인의 말이었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마무리한 크리스는 입가에 묘한 한기를 걸치고 있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오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인은 ‘오만’이라는 크리스의 단어 선택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좁은 골목을 달리던 차량이 멈춰서는 바람에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아, 다 왔네요.”


그야말로 햇빛을 구경할 수조차 없는 칙칙한 골목.

좁진 않았지만, 양옆을 틀어막고 있는 높은 건물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답답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굳이 경찰의 홀로그램 폴리스라인이 없었더라도 불법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음지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대형화물트럭이 꽁무니를 벌린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사건 현장인데 왜 대기하는 인원이 아무도 없지?”


“뭐어, 감식도 끝났고 수사 자체도 증거가 아예 없어서 흐지부지되고 있으니까요.”


“아버-, 아니, 서장님 말씀으로는, 증거가 모두 청소되거나 조작되어서 얻을 게 없었다던데. 인제 와서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그건 내가 없을 때 이야기고.]


갑자기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에 아인은 움찔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곧 머리를 헤집은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사실과, 자신의 동의나 수락도 없이 멋대로 통신 채널을 열 만한 인물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블리?”


[크리스랑 아인이 형, 서로 마주 보고 대각선으로 크게 현장을 담아줄래? 트럭까지 포함해서.]


형이라는 호칭에서 느껴지는 이 자발적 소시오패스의 뒤틀린 친밀감에 먼저 의문을 표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통신도 모자라서 어느새 시각정보까지 멋대로 빌려 쓰고 있는 소년의 여전한 통신윤리에 먼저 경계심을 가져야 할까.

하지만 곧바로 맞은편의 크리스가 오블리의 주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아인은 가장 중요한 의문 하나를 먼저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 하는 건데?”


[환경 값을 측정해서 역재생하려는 거야.]


“환경 값?”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 중에 하난데, 개인이 내뿜은 BDM 신호의 로그를 추적, 해당 사격제어어플리케이션의 내역을 해킹해서 총기가 발포된 좌표, 총기모델에 따른 화약의 방사 형태를 먼저 잡아내.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이 장소에 적용된 바람과 중력, 습도에 따라 움직인 먼지와 공기 중 입자들의 형태 등, 모든 환경 값을 상황에 맞게 계산하고 재구성해서 당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알아볼 수 있어.]


당당한 오블리의 목소리였지만, 흘러나오는 아인의 짧은 헛웃음은 주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게 말이 돼? 그렇게 유용하다면, 왜 정식으로 서에서 인가를 받지 않았지?”


[미쳤어?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만약 진짜로 인가요청을 했던들 허가해줬을까? 개인BDM이랑 기상청의 해킹데이터를 베이스로 해야 하는 걸? 윗대가리들이 대가리에 총맞지 않은 이상?]


“······.”


아인은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팀원 파일’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스스로 존재하는 개인 신상을 모조리 지워버렸기 때문에 오블리의 실제 나이는 알 수 없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원래 그의 몸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미국방성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BP서버와 NASA의 달기지 상공관측위성을 해킹 및 극비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체포된 경력이 있는 범죄자 출신이다.

이런 위험인물에게 시민들의 개인정보와 공용 서버의 권한을 주는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이야기.

적어도 아인의 이성으로는 그러했다.


[뭐어,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대충 윤곽만 잡는 거야. 초음파가 체내의 모습을 반사하여 투영하는 거랑 비슷한 원리니까. 외관만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진 않아. 알았으면 이제 자리 좀 잡아줄래?]

여전히 의구심을 걷어내지 못한 아인이었지만, 맞은편의 크리스가 워낙 진지한 태도로 오블리의 요구에 응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됐다. 눈으로 전송해줄게.]


뭐를?-이라고 아인이 묻기도 전에, 역시나 멋대로 그의 눈을 통해 오블리가 보내준 증강현실 데이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인은 처음엔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파란빛의 알갱이들이 뭉쳐 형상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자각할 수 있었다.


“······무슨 마법이라도 보는 거 같군.”


[아서 클라크의 진부한 3 법칙이라도 인용하고 싶은 거야? 칭찬으로 들을 테니까 일단 집중해서 봐. 다시 반복하려면 또 서버를 훔쳐서 계산해야 한다고.]


어떤 서버를 훔친다는 건지는 일단 불편함 아래 묻어두자.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코드 앱을 실행, 모든 시각정보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푸른 인간의 형상이 트럭에서 쓰러지듯 내려서고, 그들의 손에서 작은 파동이 몇 번 일어나더니 풀썩 바닥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뒤이어 이들에게 접근하는 수많은 형상.

아인은 그들이 트럭을 습격한 레키프 마피아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알려진 바와 다름이 없는 흐름. 그러나-,


“음?”


아인이 숨을 삼킨다.

그가 지켜보고 있는 ‘광경’엔 아무런 목소리도, 냄새도 없었지만, 10여 개의 형상에서 느껴지는 당혹감은 생생하게 아인의 피부를 찌르고 있었다.


“저게 우리가 찾던 제3자겠네요.”


같은 걸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의 짤막한 평이 끝나기도 전에, 레키프 마피아의 단원들로 추정되는 형상들이 새롭게 자신들의 한복판으로 침투한 두 개의 그림자에 의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곳곳의 손에서 파문이 번져나가는 것으로 보아 레키프 단원들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분명한 착탄의 흔적에도 두 불청객의 형상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크리스, 어때?]


“응, 전신 기계화로 보이네. 군인 출신이거나 그쪽 계열 용병일 수도.”


[다른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가 있었네.]


열 명의 레키프 조직원을 모조리 처리한 뒤, 문제의 두 그림자는 화물칸을 열고 내용물을 어디론가 옮긴다. 그리곤 신속하게 주변을 정리하더니, 한 명은 크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나머지 한 명은 아인이 있는 방향의 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인 씨, 제가 이쪽을 맡을 테니, 그쪽 나가면서 뭐 없나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전입 후 맞이하는 첫 임무. 자신이 기대하던 바와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돌아서는 아인의 발걸음엔 충분한 의무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스캔 기능을 활성화했음에도 아인은 폴리스라인이 가로막고 있는 곳까지 아무런 소득을 얻을 수가 없었다.

사건 현장에도 그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은 범인이 도주로에 무언가 남겼을 거라 생각한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까. 아인이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든 순간,


“······.”


홀로그램 라인 밖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아인보다 약간 왜소한 체격에 의도적으로 짧게 친 머리카락. 헐렁한 셔츠차림에도 눈매만큼은 날카로웠다. 그 외엔 별다른 특징은 찾을 수 없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남자였다-고, 아인은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만약 그의 스캔 기능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봐, 거기 너.”


정중함을 먼저 찾기엔 전임지에서부터 이어져 온 거친 촉이 먼저 작용했던 걸까. 아인의 망막엔 깜짝 놀란 남자의 얼굴과, 그 옆으로 ‘레키스 마피아’ 소속임을 알려주는 수배 전단이 떠올라있었다.


“읏!”


갑자기 등을 돌려 내달리는 남자. 아인은 권총을 빼는 것도 잊은 채 무작정 몸부터 날려 남자의 등을 덮친다. 하지만 덕분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돌아서느라 한발 늦은 남자의 허리를 곧바로 잡아 넘어트릴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아인은 지난 4년간 숙련된 자신의 움직임과 판단을 믿고 있었고, 그의 생각대로 상대방은 이런 아인의 대범함을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으억-!”


“가만 있어! 거수자 발견! 크리스, 이쪽으로-”


“자, 잠깐! 당신 뭐야? 뭔데 나를 지금-”


“가만 있으라고 했다!”


무언가 항변하려던 남자는 목덜미가 아인의 무릎에 의해 찍히면서 쇳소리를 대신 머금어야 했고, 아인이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는 순간, 골목에서 크리스가 다급히 달려 나온다.


“민병헌, 45세. 인천 출신. ‘레키프 마피아’ 소속 단원.”


수갑을 채우느라 바쁜 아인을 대신하여 ‘거수자’의 신원을 대신 읊어주는 크리스. 그리고 그녀가 바로 옆까지 다가왔을 땐, 이미 ‘체포’를 위한 과정이 모두 끝나있었다.


“민병헌, BDM ID 55074517.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아인, 잠시만요.”


예상치 못한 크리스의 만류에 아인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문제라도 있어?”


“민병헌. 너 보스 조현세의 측근으로 알고 있는데, 맞지?”


“······.”


병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과 반항심 가득한 표정을 통해 크리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인. 혹시라도 순찰 어플같은 거 있으면 끄고, 시각정보 레코딩 멈춰요.]


[뭐? 왜?]


[좋은 생각이 있어요.]


육성 없이 오고 가는 시선.

아인은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크리스의 샛노란 표정은 더없이 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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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2 0 10쪽
25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3) 23.10.27 11 0 10쪽
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23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23.10.19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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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7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4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7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7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1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8 0 13쪽
8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23.09.07 22 0 12쪽
7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1) 23.09.05 19 0 9쪽
6 좋은 아침입니다 (5) 23.09.04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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