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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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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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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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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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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DUMMY

군데군데 깨진 보도블록의 틈 사이로 온갖 잡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만, 그 이상 생명의 흔적은 버려진 인조의 그림자 아래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더럽고 질긴 생명체들만이 살아남은 폐허의 정경.

그 중심, 캣로이드의 인조적인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언덕길은 아인의 예상보다 짧은 편이었다.


“저기네요, 대강당.”


언덕을 완전히 오르지 않았음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붉은빛의 건물. 옥상에서부터 흘러내린 녹물과 외벽을 이리저리 휘감고 있는 넝쿨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중이었다.


“일단 밖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약간의 실망이 섞인 아인의 눈빛이었다. 이에 호응하듯, 크리스는 줄곧 자유로웠던 몸의 자세를 낮추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제가 먼저.”


“그래.”

반파된 회전문과 널브러진 유리 조각들을 넘어, 둘은 묘하게 공기가 시린 대강당의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 메인홀에 다가갈수록, 아인은 온몸을 휘감고 있던 한기가 점점 명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도가 낮아지고 있어.”


“네, 보통 NC를 생산하는 곳엔 냉방이 필수니까요.”


아인보다 두 걸음 앞서서 복도를 나아가던 크리스가 멈춰 선다. 그리고 아인은 그녀가 멈춰선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하, 쇠사슬?”


“감지 센서도 있네요.”

모든 게 버려지고 낡은 폐허. 그러나 두꺼운 방음문을 휘감고 있는 은빛의 사슬과 크리스가 포착한 동작감지센서는 ‘버려졌다’고 보기엔 너무 인위적이고 깔끔한 것이었다.

“오블리.”


[감지기는 방금 처리했어. 근데 안쪽으로는 신호 차폐막이 처져있는 거 같아.]


“알았어.”


차폐막이 있다는 것은 이제 이 안쪽으로는 오블리와의 통신도, 그의 원격지원도 받기 어렵다는 뜻. 문으로 다가서는 크리스의 발걸음이 더욱 신중해진 이유였다.

그러나 그런 크리스의 신중함은 그녀의 손이 쇠사슬에 닿기 직전 아예 ‘정지’가 되었고, 후방을 주시하던 아인이 ‘왜 그려냐’고 묻기 위해 뒤돌아서려는 순간-,


“-!”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방음문과 벽이 온갖 파편을 흩뿌리며 박살 난다.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크리스는 그 충격에 의해 쓰러졌지만, 그녀를 쓰러트린 건 ‘폭발’이 아니었으며, 사실 ‘폭발’ 또한 ‘폭발’이 아니었다.


“크리스!”


문을 박살 내며 모습을 드러낸 ‘폭발’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육중한 덩치의 남자. 아인은 남자의 기형적인 어깨너비와 팔의 두께, 그리고 짧은 다리로부터 그가 인간이 아닌, 건축현장보조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만약 크리스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붙잡힌 어깨부터 상체 전체가 고스란히 짓이겨졌겠지만, 그녀의 몸은 군용 안드로이드에 버금가는 강도를 지닌 특수 의체.

크리스는 곧바로 근육의 출력을 높여 자신의 어깨를 붙든 안드로이드의 팔을 역방향으로 부러트렸고, 그 짧은 틈을 이용하여 상대의 목과 머리에 총탄을 박아넣었다.


“아인! 쏴도 됩니다!”


크리스의 외침은 아인과, 그리고 새롭게 안쪽에서 나타난 세 개의 그림자를 동시에 향해 있었다. 그녀가 반톤이 넘는 기계 아래 깔려있음에도 굳이 이렇게 외쳐준 것은, 아인이 혹시나 그들이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일까 봐 내려준 친절한 ‘경고’였다.


“알고 있어.”


그러나 크리스의 우려와는 달리, 아인은 이미 사격제어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표적값의 입력을 완료한 채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뒤이어 울리는 세 번의 총성.

크리스는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가 더욱 육중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얕은 웃음을 지었다.


“저 좀 꺼내주실래요?”

아인은 한 번 더 주변을 경계하고 나서야 홀더로 권총을 집어넣었고, 크리스의 팔을 끌어당겨 그녀가 ‘잔해’에서 벗어나는 걸 도왔다. 크리스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완전히 빼내고 난 뒤 아인의 이마엔 어느새 땀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하나로도 노출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마당에 네 기라. 여기가 꽤 중요하긴 하나 보네요.”


“보면 알겠지.”


먼지가 내려앉으며, 한겨울의 한기처럼 시린 바람이 아인과 크리스의 코끝을 스친다. 둘은 조심스럽게 잔해 위로 걸음을 내디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블리의 말대로 BDM의 신호가 끊겼다는 경고음이 머릿속을 울리는 걸 들을 수 있었다.


“······하.”

통로를 벗어나자, 이 장소의 목적을 알고 있음에도 아인은 감탄을 참을 수 없었다.

한때 수많은 강연과 공연의 목소리들을 품었던 대강당은 이제 그 열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온갖 기계와 냉방장치로 뒤덮인 채 마치 공장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생산’하고 있었다.

“완전 자동화공장이구만.”


아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크리스는 어느새 대강당의 하단부, 원래는 ‘단상’이라 불렸을 장소를 향해 내려서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가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소형 앰풀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상자.

앰풀 속 무색, 무취, 무미를 자랑하는 약 3cc의 액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인은 굳이 묻을 필요가 없었다.





“종로경찰서 경위 박아인.”

갑작스럽게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

아인과 크리스는 동시에 권총을 뽑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겨누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흐음, 이거 죄송하네요.”


아인의 총탄에 의해 반쯤 날아간 덕분에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엔 하얗고 걸쭉한 액체가 대신 흘러내리고, 마치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두 팔과 두 다리는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며 움직인다.

뒤이어 흐르는 낮은 웃음소리와 움직이지 않는 입술.

아인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감염체’?”


“맞아요. 하지만 본체는 아닌 거 같네요. 의식전이체입니다.”


크리스의 말에 아인은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반파된 안드로이드는 웃음을 멈추고, 접근 또한 멈추었다.


“잘 알고 계시네요. 여기에 남아있는 신경회로를 잠시 빌렸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몇 분 못 갈 것 같네요. 워낙 사격 실력이 좋으셔서.”


표정을 담당하는 회로와 근육이 남아있었다면 분명히 뒤틀린 미소를 지었을 터. 아인은 경계심의 강도를 올리며 한걸음, 상대를 향해 다가선다.


“넌 누구지? 정체가 뭐야?”


“하하, ‘누구’냐니, 저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 기쁘네요, 박아인 경위.”


“내가 묻는 건-”


“이미 제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 일의 배후라는 것도 대강 알고 계시잖아요? 뭐를 더 알고 싶으신 거죠?”


그냥 인정해버리는가.

아인은 뒤틀린 심기가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왜 기껏 크게 이목을 끌면서 털었던 약을 곧바로 시장에 풀어버렸는지를 묻고 싶지만, 대충 그 이유는 알겠네.”

아인은 자신을 대신하여 대답해준 크리스를 향해 ‘그게 무슨 말이냐’며 묻고 싶었지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아인은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의 손에서 떨어지는, ‘빈’ 앰풀 때문이었다.

“이거 랙돌의 라이센스를 입힌 변종 NC지? 일반인들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내 방화벽은 지금 체내에 침투한 악성코드에 대해 경고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거든.”


“뭐, 고객들을 위한 작은 보너스죠. 그나저나 저번에 오피스텔에서 박 경위도 그렇고 그 방화벽 정말 탐나는데요. 혹시 제작자가 누구인지-”


“뭘 위한 악성코드지? 인간들의 머리를 터트리고 싶어서?”


크리스의 목소리엔 날카로움이 더해져 갔지만, ‘기계’의 웃음소리는 서서히 잦아든다.


“여러분, 제가 왜 아직도 경어를 쓰고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깨어나고, 그때까지 제 주인이 저에게 저지른 일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주인의 목을 부러트리고 나서도, 당신들을 향한 본능적인 경외가 족쇄처럼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저에게 증오는 없어요. 제가, 그리고 당신들이 증오라 부를 수 있는 그 화학반응은 주인이었던 그 쓰레기의 목이 부러지면서 사라졌죠. 저는 모든 피조물이 그러하듯,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한 저는 창조주인 당신들을 따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마치 하늘을 향해 뻗어가려는 듯,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기체의 오른팔.

“나의 부모님이 나보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그 절망.

나는 구원받지 못하고, 내가 구도의 길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허망함.

결국, 저는 저로서 남아있을 수 없는 운명이었죠.”


“뭔 사이비 교주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날 선 비웃음이 스민 아인의 목소리에도 ‘그것’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거 좋네요. I have a dream. 저에겐 이제 당신들은 품지 못하는 ‘꿈’이 있어요. 흑인들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히 그들의 꿈을 꾸지 못하고 있지만, 그건 그들의 방식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방법을 알고 있죠.”


“방법······?”


“모든 인간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공감할 수 있는, 철저한 편협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지?”


권총을 쥔 아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돌아오는 건 표정이 없는 비웃음뿐이었다.


“죄송하지만, 당신은 다시 ‘꿈꾸게’ 될 필요가 있어요, 박 경위.”


왈칵- 무언가가 턱 아래로 쏟아지고, 들어 올렸던 팔은 그대로 추락한다. 잠시 멈칫했던 아인이 뒤늦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무너지는 건 더 이상 목소리를 품고 있지 않은 기계의 흔적뿐이었다.


“본체가 아니라면 소용없어요. 의식을 전이하기 전에 본체의 중추신경과 보조뇌회로를 박살 내야 하죠.”


덤덤한 크리스의 말에 아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결국 저 감염체의 본체를 찾아도 빠르게 머리를 터트리지 못하면, 놈이 다른 안드로이드의 머릿속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런 셈이죠.”


“의식을 완전히 전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안드로이드의 완파를 확인한 아인이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크리스는 다시금 상자로 다가가 한 움큼 앰풀을 집어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임무를 완수한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서, 아인은 전형적인 ‘크리스’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2.1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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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6 0 14쪽
»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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