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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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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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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작성
23.11.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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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7)

DUMMY

[오블리.]


[안 돼. 만만한 방화벽이 아니라서 1초는 넘게 걸려.]


[저거 폭탄이랑 연결된 건 맞아?]


[정말로 기폭장치랑 연결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활성화는 되어있어.]


[알았어, 일단 신호 추적해줘.]

오블리와 통신을 마친 아인은 비무장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하여 두 손을 들어 보인 채, 천천히 책상 앞으로 나섰다.

“정소연 씨, 저흰 경찰입니다.”


“알고 있어. 사이버테러수사대에서 나오셨다고?”

어떠한 표정도 없었으며, 어떠한 억양이나 굴곡도 느껴지지 않는 소연 목소리. 아인은 흡사 초기 모델 안드로이드와도 같은 그 삭막함에 눈썹이 뒤틀린다.

“미안하지만 이건 군인과 군 사이의 문제야. 네가 헌병대가 아니라면 물러서는 게 좋을걸.”


“그런 걸 들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아인의 비릿한 미소였지만, 소연의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지금 내 방화벽에 붙어서 기웃거리고 있는 놈한테도 똑같이 전해.”


[야이씨, 감 좋네.]


[일단 멈춰, 오블리.]


[알았어.]


만약 상대가 순수한 100%의 유기체 인간이었다면 일반적인 사람의 반응속도를 상회하는 크리스의 도약으로 어떻게든 무력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격 장치를 쥐고 있는 상대의 팔은 군용 의체, 거기에 안구까지 군용인 것을 보아 분명 신경계 임플란트도 가지고 있을 터.

아인은 무모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정소연 중사. 그거 내려놓으세요.”


계급이 불리자, 아인의 향한 소연의 표정에 약간의 굴곡이 파인다.


“······당신, 군인 출신인가?”


“네, 그리고 여기 있는 제 파트너도 군인 출신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날’ 평양에 있었죠.”


“······.”


여전히, 그 무엇도 담고 있지 않은, 공허한 얼굴. 아인은 그런 소연을 향해 조심스럽게 반 발자국 다가선다.


“지금 들고 있는 그 트리거, C5-RDX의 원격 기폭장치랑 비슷하게 생겼네요. 직접 만드신 거죠? 제 부하 중에도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 폭발물 처리반)요원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도 사제폭발물 제조가 취미였죠. 제가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징계위원회가 매주 열렸을 겁니다.”


“그래?”

소연의 눈빛이 싸늘해진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그 부하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수 있나?”


“······.”


아인의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야. 거기에 있었던 몇천 명의 사람들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모든 걸 잊고 살아가고 있잖아. 당신은 그걸 용납할 수 있나?”


“당신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수천 명도 그럴 거라 생각하지는 마시죠. 그들에겐 그때의 기억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인 겁니다.”

이번엔 크리스의 일침이었다.

“결국 고상한 척을 하고 있어도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닙니까?”


“돈?”

소연의 얼굴이 격하게 일그러진다. 지금까지 줄곧 무미건조함을 유지해온 그녀였기에 이 ‘표정’은 더욱 극적으로, 선명하게 그녀의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놈들이 그러던가? 내가 돈 때문에 그걸 요구했다고?”


“돈을 주지 않으면 오블리비언 프로젝트를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고 하던데요.”


크리스의 친절한 답변에 소연은 웃었다. 물론 그 웃음은 즐거움의 웃음이 아닌, 허탈함과 조소가 섞인 웃음이었다.


“하. 잘도 구슬렸군. 협박범이 내부에 있을 거라곤 아예 생각도 안 했던 모양이네? 이봐, 경찰 나리들. 잘 들어.”

소연의 군용 안구가 천천히 아인과 크리스의 얼굴을 번갈아 담는다.

“난 프로젝트를 까발리겠다고 협박을 한 게 아니야. ‘프로젝트를 까발려달라고’ 협박을 한 거지. 알겠어? 난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니들 뒤지기 싫으면 오블리비언 프로젝트의 내용을 공개하고 ‘우리한테 빼앗아 간 기억’을 되돌려달라고 한 거야.”


“······뭐라고요?”


아인의 미간이 구겨지고, 소연의 시선을 얻는 데 성공한다.


“당신, 그때 평양에 있었다고 했지? 프로젝트에도 자원했을 거고? 그때 프로젝트 소개하면서 국방부랑 말룸에서 나눠줬던 계약서 내용, 기억나?”


“물론이죠.”


“그래? 근데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계약서의 내용이 서서히 놈들 입맛대로 바뀌고 왜곡되었다면 어떨 거 같아?”


“······뭐라고요?”


지금 소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다는 듯한 아인이었다. 그리고 소연은 그런 아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아인의 망막으로 어느 계약서의 사본을 전송하였다.


“지금 보내준 게, 우리가 보훈처 담당관과 마주 앉아 상담하면서 계약했던, 우리의 ‘진짜 서명’이 새겨진 계약서야. 한번 당신이 지금 기억하고 있는 계약서와 한번 비교해봐.”


“······.”

만약 그녀가 자신과 ‘평양’이라는 접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테러리스트였다면, 아인은 받은 망막 정보를 곧바로 폐기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줄곧 ‘오블리비언 프로젝트’라는 존재가 아인에게 주었던 의심의 고통은, 그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기억을 헤집어보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동의한 건, 약물로 인해 격리되는 ‘고통의 기억’을 완전히 폐기하거나, 아니면 언제라도 되찾을 수 있게 온전히 보관해주겠다는 말룸의 선택지였지.

하지만 놈들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조작한 계약서의 내용은, 우리의 기억을 폐기하지도, 온전하게 냅두지도 않겠다는 거였어.

그 새끼들은, 국방부랑 짜고 우리의 ‘기억들’을 온전히 지들 멋대로 써왔던 거야.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증거품으로 쓰고, 보상금을 축소하기 위해 소장 중인 기억을 편집하고, 지들한테 불리한 내용은 보관을 요청했음에도 싹 다 폐기 처리해버렸지.”


“······.”


“그리고 나같은 사람이 이상한 걸 느끼고 의문을 제기하면, 지들이 우리 머릿속에서 조작한 계약서를 내미는 거야. 봐라, 네 서명이 새겨져 있잖냐, 이미 네가 동의한 거 아니냐고. 그리고 만약 계약서를 위반하려고 하면, 그때는 보상금을 회수하겠다며 협박하는 거지.

알겠어? 이게 놈들이 그날 평양에서 죽어간 우리의 전우들과, 그 전우들의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 짓이라고.”


“······.”


아인과 크리스는 소연의 차분함 앞에서 그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보훈처에서 일하면서, 작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한 참전용사들에게 문의가 많이 들어오더군. 프로젝트로 인해 기억의 격리가 성공하고 이후 약을 끊게 되면서, 서서히 원래의 기억과 조작된 현실에 괴리가 생기니까, 자기 머리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었던 거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해커를 고용해서 보훈처의 DB를 털었더니 그 계약서 원본이 나오더라. 직감했지. 그래서 말룸에 파견을 자처해서 왔고, 놈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든 피험체의 격리된 기억들을 따로 백업해서 보관 중이라는 걸 알아냈어. 조작되지 않은, 원본 말이야.”


“그래서 그 백업 데이터의 공개를 요구한 거군요.”


소연의 의도를 유추해본 크리스의 목소리였지만, 소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개를 요구한 게 아니야. ‘반환’이지.”


“하지만, 조작되고 멋대로 이용당했을지라도 해당 기억이 없기에 멀쩡히 살아갈 수 있는 PTSD 환자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그들이 원하지 않아 없애길 바랐던 기억들을, 억지로 다시 품어야 한다고요?”


“그럼 죽어간 내 전우들의 진짜 모습은 누가 기억해주는데!?”

마치 비명처럼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연의 외침. 크리스는 장치를 쥐고 있는 소연의 의수에 계속 집중하고 있던 터라 움찔했지만, 아인은 가만히 그녀의 다음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해!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당시엔 다 같이 눈물을 흘려줬던 사람들도 이제 그때 이야기를 하면 국제망신이라며 쪽팔려하고 있어!

그때 우리가 목숨 걸고 빠져나가게 도와줬던 높으신 새끼들은 눈치 보면서 추모행사마저 없애더니, 어떻게든 보상금을 줄이겠다고 개지랄발광을 하고 있질 않나!

이때다 싶어 보병무용론 운운하면서 군용 안드로이드의 개발을 자처하는 기업 새끼들까지!

이봐, 당신. 대답해봐. 그날 학살당한 우리 전우들은 도대체 뭘 위해 죽은 거야? 그저, 우리가 지워내고 싶은 데이터 쪼가리로 전락한 그들에게,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는 거냐고?!”


소연은 아인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기 전에, 둔탁한 발사음이 먼저 602-B호실의 공기를 뒤흔든 것이다.


코너샷을 통해 사각에서 발사된 비살상제압용 마비탄이 정확히 소연의 왼쪽 어깨에 적중했고, 의체로 통하는 신경 신호의 교란과 함께 강력한 전기파장을 방출하기 시작한 탄환은 왼쪽팔의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폭장치’.

하지만 소연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그 장치를 발로 튕겨내 품속에 안았고, 그대로 자신의 오른쪽 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무실 벽은 군용 의체의 발차기를 견뎌내기엔 너무도 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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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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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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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0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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