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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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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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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278

작성
23.08.3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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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프롤로그 - 시퍼런 피

DUMMY

뺨을 스치며 지나간 탄두가 콘크리트 벽에 박히며 거친 불꽃을 퍼트린다.

얕은 열감 사이로 약간의 은빛이 섞인 선혈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오직 아드레날린의 분출만을 허락하고 있는 중앙신경통제시스템 덕분에 공포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쪽의 사격통제모듈이 저쪽보다 우수했기에,

이쪽은 살아남았고, 저쪽은 하얀 뇌수를 쏟으며 죽는다. 그뿐이었다.


[그쪽으로 튄 새끼, 잡았어?]


귓가로 들려오는 선배의 목소리. 남자는 권총을 쥔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얼굴만을 움직여 어깨에 뺨의 상처를 닦아낸다.


“예.”


[오케이, 넘어간다.]


오른쪽 골목에서 마찬가지로 권총을 든 여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능숙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혔고, 마침내 한밤중의 그림자 사이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존나 병신새끼야.”

직속상관이자 파트너인 그녀의 갑작스러운 비난에 남자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진다.

그러나 수명이 다한 가로등이 내뿜는 희미함으로는 그 굴곡을 잡아내지 못한 것일까, 그녀의 무정한 입술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니네 아빠가 종로경찰서장이라며. 그럼 빽써서 편한 곳으로 좀 빼달라고 하든가, 왜 굳이 이런 시궁창에 틀어박혀서 이 지랄을 하고 있냐고.”


“······.”


“쉬라고 하면 좀 집에 박혀서 가만히 있지. 왜 괜히 기어 나와서 일을 만들어, 엉? 왜 비번인 나까지 좆뺑이를 치게 만드냐고. 아-, 존나 애국자 나셨네, 씨발.”


“······.”


그는 파트너의 이런 노골적인 짜증과 적대감을 향해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날 선 혀를 굴리는 것이 비단 오늘만의 일도 아니었거니와, 그녀의 직업윤리의식이 부족한 발언과 태도에 대해 자신이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하아, 씨발. 뭐, 그래, 됐고. 여기야? 확실해?”


“예.”


“어떻게 알았는데?”


순수한 의문보다는, 노골적인 짜증이 묻어나는 그녀의 목소리. 그럼에도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성실했다.


“저번 출동 현장에서 죽었던 말단 조직원 중에 BDM방화벽 설치 못한 놈 하나 있지 않았습니까.”


“어. 그거 과수대에 넘기라고 했잖아.”


“그쪽 BDM 담당 부서로 가면 일주일은 지나야 뭔가 알려주니까요. 제가 따로 추출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복사본 몰래 챙겼습니다.”


“뭐어? 아이-, 씨발, 진짜 미친 새끼냐, 너? 그거 팀장님한테 걸리면 나까지-“


“그 새끼 반쯤 족쳐서 잡아가면 팀장님도 봐주실 겁니다.”


“······.”

질렸다는 듯이 욕을 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선배. 남자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한적한 시골 읍내의 어느 상가 건물 입구. 늦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이미 주변은 ‘한적한’이라는 표현으로는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스산했다.

군데군데 깨진 아스팔트 도로는 수많은 잡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사람의 그림자나 목소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요즘 시골 풍경.

“그래서, 여기 있는 건 확실하다는 거지?”


“여기가 제일 가까운 안전가옥이라고 되어있었으니까, 아마 맞을 겁니다.”


“따까리들 또 존나 깔려있는 거 아냐?”


“그때 확인된 조직원들 그놈 빼고 다 조졌잖아요. 따로 감청에 걸린 것도 없었고. 방금 저희가 잡은 놈들이 마지막 경호원이었을 겁니다.”


“하아, 씨발. 불안한데······. 일단 올라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나오는 거다? 뭐 좆도 없으면 다 네 책임이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이에 ‘파트너’는 깊은 탄식과 함께 계단으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손에는 다시금 시커먼 권총이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이를 작전 시작의 신호로 받아들였고,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권총을 뽑아 그녀의 뒤를 따라나선다.

계단은 성인 둘이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말라비틀어진 무기물의 향기가 코끝을 괴롭혔고, 군데군데 깨진 벽이 혹시라도 충격을 받으면 와장창 흘러내릴까 여인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디야?]


어느덧 3층. 이제는 직접 육성을 낼 수 없었기에 여자는 근거리 통신을 통해 파트너이자 후배인 남자의 머릿속으로 직접 목소리를 넣었다.


[바로 오른쪽입니다.]


[여기?]


[네.]


여전히 희미한 조명. 그리고 계단 바로 옆, 굳게 닫혀있는 목재 무늬의 문. 세월의 얼룩과 흐린 조명 탓에 그 단단함을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여자의 고갯짓엔 망설임이 없었다.


“단속국이다! 움직이지-, 으앗!”

신속한 몸짓으로 문을 반쯤 박살 내며 진입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밀폐되어있던 폐건물 특유의 매캐한 먼지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그녀의 감각을 어지럽혔고-,

“!”

그녀는 정강이 높이로 쓰러져있던 책장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만다.

실로 초보적인 실수였지만, 넘어진 게 그녀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는 아니었다. 그녀의 새카만 권총이 주인의 손을 떠나 지저분한 사무실 바닥을 맹렬히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욕을 씹으며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인원들이 여기에 모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정을 했던 그녀였지만, 그것이 기우였음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하고 있는 그림자는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넘어진데다가 총까지 놓쳤음에도 그녀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뒤따라 진입한 파트너의 존재 덕분이었다.


“단속국이다, 김소랑.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선배와는 다르게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 진입하는 남자.

그러나 그는 경고의 목소리를 맺지 못한다.

외부 자극에 자유로운 군용망막이 그가 빠르게 사무실의 전경을 담는 것을 도와주었고, 뒤이어 그림자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탓이었다.


“야, 뭐해?! 빨리-······. 아, 씨발.”

경직된 채로 그 어떤 반응도 내보이지 못하는 후배. 그리고 그런 그를 재촉하려던 여자.

그러나 빛에 익숙해진 그녀의 눈도 곧바로 그림자의 정체를 파악했고,

그녀는 욕설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도 희미한 먹색의 눈동자. 마찬가지로 먹색의 헝클어진 머리. 꼬질꼬질한 얼굴과 목선에 대비되는 정갈한 셔츠.

하지만 그 셔츠가 몸에 비해 너무도 컸기에 무릎까지 내려오고 있는, 열 살 남짓의 소녀.

버려진 사무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여리여리한 소녀였다.

그리고 이 사실이, 여자에게는 수많은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상황보다 더욱 거대한 절망으로 다가왔다.

“아, 씨발! 야! 박아인! 저거 김소랑 그 새끼 맞아! 정신 차려!”


“······.”

시선엔 흔들림이 없고, 사격제어시스템의 통제 아래 가늠좌는 떨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선배가 거친 욕설들을 내뱉으며 필사적으로 떨어트린 권총을 찾고 있음에도,

그리고 소녀가 천천히 그런 선배의 머리를 향해 천천히 총구를 들어 올리는 순간에도,

남자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마침내 콘크리트 잔해 사이에서 자신의 권총을 찾아낸 선배.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총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둔탁한 총성이 먼지구름을 흔들었고, 그녀는 곧 얼굴에서 피를 내뿜으며 무너져내린다.

남자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깊고 어두운 총구. 무표정의 소녀가 다음으로 그 총구를 겨눈 곳은 남자의 미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그의 손가락은 돌처럼 굳어있었다.


1초 뒤에 찾아올 확실한 미래가 어지럽게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천둥처럼 그의 머리를 강타한 총성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대로 내면의 목소리에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총성은 두 번이었다.

첫 번째의 주인공은 소녀의 권총.

그러나 총구에서 뻗어나간 총알은 남자의 관자놀이를 스치면서 낡은 벽에 구멍을 남겼다.

‘소녀가 아닌 소녀의 뇌’에 남아있는 사격제어시스템이 아직 ‘새로운 신체’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지 않은 탓이리라.

물론 두 번째 사격을 위한 보정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소녀가 재차 방아쇠를 당기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둔탁한, 두 번째 총성.


건조했던 먼지의 홍수 속에 비릿한 선명함이 번진다.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움직일 수 없었다. 총알이 관통한 소녀의 미간에서 ‘시퍼런’ 피가 쏟아지고 나서야, 그의 시선이 총성을 따라 ‘선배’를 향해 흘렀다.


“······케헥, 끄르륵······.”

소녀의 권총에 박살 난 하관. 축 늘어진 채 덜렁이는 혀와, 군데군데 형체만 남아있는 턱뼈 아래로 피를 뱉어내는 ‘선배’. 그녀는 자신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닫고서 분노에 찬 시선과 함께 남자의 머릿속에 직접 고함을 내지른다.

[야이, 개새끼야! 정신 안 차려?! 뒤질뻔했잖아, 씹새끼야! 너 이 씨발새끼, 내가 맹세코 팀장한테 말해서 너 짜르게 할 거야, 엉? 듣고 있냐? 넌 끝이야, 이 개새끼야!]


“······.”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분노에 찬 선배의 목소리는 그의 이성에 전혀 닿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자신의 커리어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도,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다시금 소녀의 모습을 한 범죄자의 육신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이쪽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의 더미용 살덩이일 뿐이다.

머릿속의 그 실체는 ‘방천 마피아’의 간부 43세 남성 김소랑.

그 모든 사실을 알았고, 같은 실수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으리라 되뇌고 있었음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넌 끝이다.’


선배의 마지막 목소리를 되짚으며,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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