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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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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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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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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8)

DUMMY

“대상이 서쪽으로 탈출, 비상계단을 통해 도주 중입니-”


“지금 뭐하는 겁니까?! 누가 멋대로 발포명령을 내렸습니까?”


내부탐색을 마치고 누군가에 육성으로 보고하던 보안요원의 방탄조끼를 낚아채며, 아인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의 항의에 대한 대답은 해당 요원이 아닌,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말룸 바이오닉스의 보안책임자, 신애경의 몫이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조사관님.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맡도록 하죠.”


처음 만났을 때의 사무적인 존중은 어느새 증발해버린, 무기물보다 차갑고 딱딱한 어투. 하지만 아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애경의 앞을 막아선다.


“말룸에서 멋대로 자기들이 파견한 인원을 즉결처분했다는 게 알려지면 국방부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멋대로’라뇨? 폭력행위는 용의자가 먼저 시작했고, 그런 폭력행위를 유발한 건 어디까지나 여러분들입니다. 저희는 내규에 따라 그 뒷수습을 하고 싶을 뿐이죠.”


“······.”


예상은 했지만, 결국 이런 거였나.

이들이 사설보안업체나 해결사 등을 고용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정부’의 힘을 빌리고자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공식적인 ‘증인’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책임’까지 떠넘기기 위한 탱커.

아인은 별다른 말없이 복도로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고, 그런 아인의 뒷모습을 보며 애경은 얇은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무너진 벽과 잔해에 일으킨 혼란 속에서 자신이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 위치는?]


[추적 중입니다. 상대가 폭탄을 설치했다는 건 말룸 쪽에 알려주셨나요?]


[아니.]


[예? 왜요?]


[그걸 알려주면 건물 전체에 대피령이 떨어질 거고, 그럼 범인은 주저하지 않고 기폭장치를 누를 테니까.]


[······예에?]


이해 못하겠다는 듯한 크리스의 목소리. 그러나 아인은 그런 크리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제압하지는 말고, 계속해서 추적만 해줘.]


[말이야 쉽죠.]

상대인 소연은 반쯤 날아다니다시피 건물 외곽의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거친 움직임 덕분에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균열과 파괴의 기운이 가득했고, 신체의 두 부위만 의체인 소연과는 달리 전신의체인 크리스가 그녀와 똑같은 이동방식을 고집한다면 계단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따라서 크리스가 선택한 ‘추적방법’은 간단했다.

건물 외벽에 손가락을 박아넣고, 체중을 이용하여 그대로 추락하는 것이었다.

“아야.”

덕분에 크리스가 육중한 충돌음과 함께 추락이나 다름없는 착지를 완료했을 땐, 소연의 그림자가 후문으로 들어서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좁혀낼 수 있었다.

[오블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확인할 수 있어?]


[엘리베이터 쪽 2명을 때려눕히고 계단 내려가는 중.]


오블리의 대답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아인이 의문을 표한다.


[지하? 지하로 간다고? 거기 주차장밖에 더 있어?]


[2층까지는. 근데 지하 3층에 공식적으로 표시되지 않은 시설이 하나 있던데. 거기로 가는 거 아닐까?]


[비밀시설이라고? 왜 말 안 했어?]


[······어, 안 물어봤으니까?]


“······.”


뭐라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지하 2층 버튼을 누르는 아인. 그는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입을 벌리자마자 뛰쳐나가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3층으로 내려가는 그곳엔 이미 소연의 소재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는지 몇몇 보안요원들도 빠르게 계단을 내려서는 중이었다. 다행히 그중 아인을 제지하는 이는 없었기에, 그는 혼란의 틈을 타 생각보다 쉽게 ‘보안구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몇몇 보안요원들과 함께 하얀 복도를 지나, 누군가에 의해 반파된 거대한 보안문을 통과한 아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이건?”


일반적인 사람 신장의 배는 되어 보이는 물리 서버로 가득한, 일종의 서버룸이었다.

수십 개의 서버는 각각이 물리적인 보안절차를 요구하는 안전장치로 보호받고 있었으며, 천장 전체가 이들을 위한 냉각장치로 구성되어 내부에선 시린 입김이 나올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말룸 바이오닉스의 심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일 터.

그리고 아인은 그 ‘심장’의 중앙, 모든 시스템을 총괄하는 제어단말기 앞에 얽혀있는 두 여인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저격당한 왼팔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한 것은 아니었는지, 필사적으로 보안요원에게서 뺏은 진압봉을 휘두르는 소연. 그런 소연을 제압하는 건 크리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아인의 부탁을 잊지 않은 그녀였기에 크리스는 달려들지 않고, 간격만을 유지한 채로 소연의 발을 묶어두는 중이었다.


“거기, 멈춰!”


아인과 함께 내려온 자들이 곧바로 각자 권총을 꺼내 소연을 겨누며 소리쳤지만, 곧바로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다. 입구 쪽을 등진 채 대부분의 사선을 가로막고 있는 크리스 덕분이었다.


“비켜!”


“어이, 나오라고!”


크리스를 자신들의 동료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일까. 보안요원들이 거칠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몇 명의 요원이 추가로 서버룸에 들어선다. 그중에는 애경의 얼굴도 있었다.


“조사관님, 제가 물러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봐, 이 사람 누가 여기 들어올 수 있게 허락했나?”


“여기에 폭탄을 설치했다! 물러서지 않으면 다 터트려버릴 거야!”


애경의 존재를 확인한 수연이 크리스를 뿌리치고 책상 위로 올라서더니, 품속에서 기폭장치를 꺼내 들었다. 애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은 물론이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물러나! 물러나라고!”

부하들과 크리스를 향한 애경의 거친 고함이었다. 이에 크리스는 살짝 뒤를 돌아 아인과 눈을 마주했고, 아인이 살짝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금 소연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물러나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조사관님, 저분 지금 뭐하는 겁니까?! 어서 빌딩 전체에 비상 걸고 전원 대피령을-”


“그러지 마세요, 담당관님.”


“뭐라고요?”


애경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인을 돌아봤지만, 아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대피령이 떨어지고 이 건물 전체가 비게 되면, 소연 씨는 망설이지 않고 폭탄을 터트릴 겁니다. ‘무고한 희생자’가 없게 될 테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사람이 있어야 폭탄을 안 터트린다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녀가 원하는 건 데이터의 유출과 전송이지, 무의미한 대량 학살이 아니니까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요원들의 팔을 밀쳐내며, 아인이 애경의 앞으로 다가선다.

“이곳에 있는 데이터들, 말룸의 기밀들은 물론이고 ‘오블리비언 프로젝트’를 통해 추출한 군인들의 기억 데이터도 보관되어있는 거겠죠.”


“······.”


애경의 눈빛이 싸늘해진다.


“아무리 강력한 방화벽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해킹의 가능성이 0.1%라도 있는 이상, 그 0.1% 확률의 위험조차 허용할 수 없는 극비데이터는 이렇게 물리적인 서버에 유동화 시켜서 보관 중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룸이 특별한 건 아니죠.

하지만 이것도 100% 안전한 보호방법은 될 수 없습니다. 해킹에는 자유롭다고 해도 불의의 사고로 이것들이 소실이라도 되면 그야말로 재앙이니까요. 그래서 보통 데이터뱅크의 물리적 손상이나 소실의 조짐이 보이면, 보안시스템엔 자동으로 해당 데이터들의 백업을 기존 온라인 보안서버로 전송시키는 비상대책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당장 위급한 사항이 닥치면, 0%의 확률을 잠시 0.1%의 확률로 옮겨놓는 게 모든 데이터를 잃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아인의 시선이 소연에게로 향한다.

“소연 씨는 바로 0%에서 0.1%가 되는 그 순간을 노려 데이터가 유출되도록 하는 루트킷을 심어놨을 겁니다. 그리고 그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말룸 측에 협박을 한 거죠. 만약 이곳에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협박을 받으면 당신들은 미리 비상대책 프로그램을 발동시킬 거고, 그럼 자연스럽게 루트킷이 작동하게 됐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들은 국방부와의 관계를 걱정하여 그 프로그램을 발동하는 대신 저희에게 범인을 색출해달라는 의뢰를 요청했죠. 범인이 돈을 요구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


애경의 표정도,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게이츠의 표정도, 모두 싸늘하게 식은 채로 아인을 향해 있었다.


[이야, 아인이형 해석 잘하네. 배우해도 되겠어.]


자신이 읊어준 모든 정보의 전달을 마친 아인을 칭찬하는 오블리였다. 아인은 귓가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소연 씨는 요구조건이고 뭐고 당신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발동시키지 않는 이상 무조건 여길 폭파시킬 겁니다. 그리고 그걸 막을 방법은 오직 하나, 이 빌딩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는 겁니다. 그녀는 단 한 명이라도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는 한, 절대로 기폭 장치를 누르지 못할 테니까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죠?”


날카로운 애경의 질문. 이에 대한 아인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그녀는 군인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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