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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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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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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278

작성
23.09.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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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DUMMY

[내부 상황 보고.]


[그렇게 딱딱하게 말 안 해도 알아서 알려 준다니까. 계단 올라가자마자 왼쪽 복도에 한 명, 바로 옆 2-2 교실에 한 명 더.]


[신호는?]


[복도에 있는 놈 처리하자마자 재밍 걸게.]


오블리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재빨리 계단을 오른다.

벌써 수십 년간 그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았던 폐교의 계단은 푹신한 먼지와 조각난 페인트로 아인의 은밀함을 더해주었고, 그는 자신의 군용안구와 직접 링크하여 정보를 띄워주고 있는 오블리에게 의지하여 망설임 없이 복도로 나섰다.


“-!”


오블리의 말대로, 완파된 창문을 통해 들어서는 햇빛이 복도 중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베스코프 사의 KM-그래핀4 방탄복, HK717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그림자.

그러나 상대가 이쪽의 존재를 눈치챘을 땐, 이미 소음기가 장착된 아인의 권총은 아음속의 탄환을 뱉은 후였다.

툭, 툭, 툭-, 무심한 세 발의 총성이 레키프 마피아 전투단원의 미간, 보조뇌소켓, 경추를 정확히 관통하여 조현세가 해당 단원을 위해 투자했던 1년 반의 훈련기간과 1200만 원의 장비값을 허무하게 증발시킨 것이다.


“뭐야!”

육중한 고깃덩이가 무너지는 소리에 교실 안에 있던 새로운 그림자가 복도로 뛰쳐나온다. 그녀는 쓰러져있는 동료와 복도 반대편에 있는 아인을 확인하고선 망설임 없이 소총을 들어 올렸지만-,

“으아악!”


이미 그녀의 BDM에 침투해있던 오블리가 그녀의 시신경과 사격제어프로그램을 감자튀김처럼 튀겨버리고 만다. 덕분에 아인은 방아쇠 당기는 법조차 잊은 채 발버둥 치는 마피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편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다른 생체반응은?]


[없어. 크리스 쪽도 마무리됐고.]


[알았어. NC 확보해서 복귀할게.]


순조롭게 마무리된 세 번째 습격.

아인은 권총에서 소음기를 분리하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첫 번째 습격 때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않은 군사작전에, 현장요원이라고는 탈영병 출신의 전신의체화 용병과 청부살인업자뿐이었으니까.

그러나 ‘팀’의 작전수행능력은 특전여단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아인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신선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역시 ‘오블리’의 정보수집능력과 활용성으로, 준법성이나 도덕성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무차별한 BDM 해킹능력은 군의 AI오퍼레이터를 훨씬 상회하는 편의성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아인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맵핵을 키고 게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유사시엔 방금처럼 타겟의 BDM의 직접 침투하여 행동제약까지 해줘 버리니, 그가 본심이야 어떻든 ‘팀’의 일원이라는 게 아인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3층에서 물건 확보.]


[오케이, 나간다.]


단 하나, 이번 ‘NC회수작전’이 철저하게 윗선에 보고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아인에겐 꽤나 큰 불안이었다. 아무리 서장이 ‘팀’에게 이번 사건 조사의 전권을 위임했다고는 하나, 이미 사건의 스케일이 일개 용병단이 맡아서 처리하기에는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결국 첫 번째 습격 직전 아버지인 인배에게 보고를 올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네가 알아서 판단해라.’


예비역 중사에 현직 경위에 불과한 자신에게, 모든 서울 사람들을 채굴노예로 만들려는 에고 바이러스 감염체와 강북 3대 마피아 조직 중의 하나인 레키프의 보스가 엮인 사건을 책임지라?

아인은 여전히 자신을 이곳에 부른 아버지의 저의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잠깐 대기.]

쾌활한 유라의 목소리.

[혜인이한테 연락이 왔어. 레키프의 내부자가 경찰과 거래를 하고 싶다고 접촉을 해왔대.]


[내부자라면, 쌍문사건 때 정보를 넘겨준 그 대상자인가?]


[그러겠지.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뭔가 상황이 웃기게 됐어.]


[웃기다니, 뭐가?]


[레키프의 보스, 조현세도 거의 동시에 혜인이한테 연락을 해왔어.]


[흐응.]


흥미가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한 오블리의 반응에 비해 아인은 거침없이 눈을 빛냈다.


[조현세가? 어째서?]


[아마 그 새끼는 랙돌 쪽에서 NC를 털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 그래서 랙돌의 유통담당자인 혜인이한테 몰래 접선을 해온 거지. 자기가 NC에 걸어둔 락의 해제코드를 알려줄 테니 반반씩 나누자고 했나 봐.]


“······.”

아인은 고민에 빠진다.

유라가 ‘웃기다’고 한 것처럼 그녀가 전해온 상황은 꽤나 흥미로웠다.

마지막까지 NC를 포기하지 못하는 레키프의 보스와, 그 보스에게 배신당하여 복수를 바라고 있는 부하들. 이 요소들을 잘만 버무린다면 조현세를 나락에 빠트리는 건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팀’의 최종목표가 레키프의 보스, ‘조현세’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조현세를 통해 감염체를 추적할 수 있을까?]


아인의 질문은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대답은 예상대로 오블리에게서 들려온다.


[감염체가 다시 변종 NC를 생산하려면 조현세의 공장이 필요하겠지. 우리가 NC로 조현세를 압박해서 다시 감염체와 접촉하도록 해보는 건 어때?]


[감염체는 이미 한번 조현세의 뒤통수를 쳤는데, 그런데도 다시 자기한테 접촉하면 의심하지 않을까?]


[조현세는 지금 랙돌이 자기 NC를 되찾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걸 감염체한테 적용하는 거지. 조현세를 통해서 감염체한테 ‘네가 다시 NC를 가져간 거 알고 있다. 공장을 하나 더 내줄 테니 돌려달라’고 미끼를 던지는 거야.]


[그리고 레키프의 내부자가 가져온 공장 위치데이터와 교차검증하면 되겠군.]


[바로 그거야.]


오블리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아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느새 복도의 중앙계단으로 물건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잔뜩 짊어진 크리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아인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 혜인 씨한테 말해서 조현세와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해줘.]




***



“······.”


서울 한복판 위치한 어느 카페의 2층.

안드로이드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제외하면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카페였지만, 오픈 전 새벽 시간의 싸늘함은 어째선지 주변 공기보다도 더욱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어서 오세요.”


상당히 넓은 2층의 공간. 세 남녀를 맞이하는 혜인의 얼굴은 그야말로 카페 주인의 미소 그 자체. 그러나 레키프 마피아의 보스, 조현세의 시선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있는 또 다른 그림자들을 먼저 경계한다.


“저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제 경호원 같은 거니까. 커피? 차?”


“커피로.”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던 현세는 자신이 바로 앞까지 왔음에도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크리스와 ‘쑈’를 흘긋 쳐다보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몸을 내려놓는다. 두 경호원은 그대로 현세가 앉은 소파의 뒤에 서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셨다는 건, 제가 드린 제안을 받아들이신다고 생각해도 되겠죠?”


혜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커피잔을 내놓았고, 현세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곧바로 그 향을 입으로 가져간다.


“물건만 확실히 넘겨준다면.”


“물론이죠.”


혜인의 눈짓. 곧이어 크리스와 쑈가 동시에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에 현세가 커피잔을 든 채로 아이스박스에 얼굴을 들이밀어 홍채인식을 한 다음, 키패드에 번호를 입력하자 요란한 소리와 한기를 내뿜으며 아이스박스는 입을 벌렸다.

현세와 경호원들이 그 내용물의 온전함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그건 볼일이 모두 끝나면 마저 드리도록 하죠.”


“이미 절반은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이쪽도 나름 보험이 필요하니까요.”


“······뭐, 좋아. 그 미친놈한테 연락해서 공장 하나를 줄 테니 NC를 돌려달라고 하면 되는 거지?”


“맞아요.”


“그게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군.”


“뭐어, 다들 나름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혜인은 대화의 방향을 급격하게 비튼다.

“사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현세 씨는 왜 이렇게 갑자기 돈을 빼돌리려는 거예요?”


커피잔 위로 흐르는 현세의 날카로운 시선. 사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혜인의 돌발행동에 몰래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유라와 아인도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아니, 그렇잖아요. 다른 누구도 아닌 레키프의 보스시잖아요? 근데 그런 분이 왜 수십억 정도에 본인을 이렇게까지 위험에 노출하냐- 이거죠.”


“윤혜인, 너도 같은 바닥에 있으니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NC장사의 말로가 어떨지를 말이야.”


“으음?”


흥미와 의문이 뒤섞인 혜인의 미소를 향해 현세는 커피향이 가미된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미리 NC 공장을 세워둔 이유가 뭔지 아나? 만약 이 나라에 NC가 합법화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조직도 합법적인 전환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어. 돈세탁을 위한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가 NC의 생산과 유통을 도맡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지. 정부에 있는 관계자한테 뇌물을 먹여서 들어보니, 놈들은 처음부터 우리와 협의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NC가 합법화된다고 해서 마약팔이하던 범죄조직을 공기업으로 편입시켜달라는 거랑 뭐가 달라요?”


“그게 아냐. 정부 놈들은 ‘도덕적 잣대’로 우릴 평가하려는 게 아니라고. 놈들 입장에서 우리는 ‘잠재적 경쟁자’인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저 새끼들은 NC가 합법화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유통망과 생산력을 싸그리 집어삼킬 예정이야. 따로 추가적인 예산을 들일 필요가 없는 노다지인 셈이지.”


“······.”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린 당장 NC의 유통과 판매를 멈출 수 없어. 왜냐, 이제 우리에겐 이거밖에 안 남았잖아? 알겠어? 이거 때문에 망할 걸 알면서도, 이걸 놓을 수가 없는 거야 우린. 내가 장담컨대, NC가 합법화되는 순간 우리 같은 조직들은 이 땅에서 삭제될 거다. 한꺼번에 사냥당할 거라고.”


혜인은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남자, 레키프의 보스 조현세는 단순히 금전적인 욕심으로 NC를 빼돌리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NC합법화 이후 무너질 조직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녀로서는 현세가 자신과 근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


“뭐, 알겠어요. 그나저나 그 용병한테는 어떻게 연락하실 건가요?”


“저번에 놈이 쓰라고 넘겨준 개인통신채널이 있어. 그 새끼가 뒤통수 친 뒤로 계속 욕이랑 협박을 날렸지만 답장은 없더군. 그래도 수신확인은 됐으니, 채널을 폭파시킨 건 아닐 테지.”


“답장이 없으면요?”


“그럼 내가 더 해줄 건 없는 거지.”


경호원들이 아이스박스를 들어 올렸고, 현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인지 확인하는 그의 눈빛에 혜인은 손짓으로 답을 했고, 레키프의 보스는 그대로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 잊으신 거라도?”


혜인의 질문은 계단 앞에서 갑자기 멈춰선 현세를 향한 것이었다. 갑자기 멈춘 그 덕분에 경호원들도 당황했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에게 뒤를 열어주었고, 현세는 뒤를 돌아 혜인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왔어.”


“네?”




“답장이 왔다고. 그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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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23.11.07 1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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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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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5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6 0 9쪽
»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23.09.25 15 0 12쪽
16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15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8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4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5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1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7 0 13쪽
8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23.09.07 22 0 12쪽
7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1) 23.09.05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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