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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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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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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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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DUMMY

“국방부에서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거나, 엑세스 권한이 있는 인원 전부야.”


망막으로 오블리가 전달한 ‘이름’들을 확인한 크리스는 다소 의외라는 듯이 미간을 구겼다.


“32명? 생각보다 적네?”


“‘말룸’에서 파악한 명단이니까. 만약 말룸에서도 모르게 해당 프로젝트에 권한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국방부를 통해서 확인해야겠지. 뭐어,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놓자고.”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블리로서는 국방부의 방화벽을 건드린다는 행위 자체가 지닌 위험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 32명 중에서 범인이 있기를 바라야겠네.”

빠른 납득과 동시에 오블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크리스.

“알고리즘은 돌려봤어?”


“죄다 국방부 소속이니까, 그쪽 방화벽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알고리즘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딥한 개인정보로 정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공개된 걸로만 유추해봐야지.”


“보자, 그럼······, 이름, 부서, 경력, 나이. 이 정도인가?”


“······.”


어느덧 퇴근 시간을 한참 넘어버린 한밤중.

종로경찰서 ‘지하주차장 관리실’에는 상주하다시피 하는 오블리와 야근을 자처한 크리스, 그리고 아인만이 남아있었다.

오블리와 크리스는 계속해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데 집중하고 있었지만, 아인은 그런 그들과 똑같은 시간, 장소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에 의식을 빼앗긴 상태였다.


[뭐해?]

아인이 자신들의 대화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통신을 통해 직접 아인의 머릿속에 목소리를 내버리는 오블리.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아인이 망막 인터페이스에 올려놓고 있던 자료를 훔쳐보게 된다.

[오블리비언 프로젝트? 이건 왜 보고있어?]


“······야, 너 내가-”


“아, 맞아. 형도 ‘오블리오모’ 먹었었지?”


갑작스럽게 통신에서 육성으로 전환된 오블리의 말에 아인은 눈동자만을 움직여 청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굳이 어떻게 그걸-이라고 묻지 않는다.

여기서 격하게 반응을 해봤자 도리어 오블리의 만족도만 올려주는 꼴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한 반응은 되려 크리스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네? 아인 씨가요?”


“뭐 문제라도?”


“아뇨, 참전하셨는 줄은 몰랐네요.”


“딱히 자랑스러운 경력은 아니니까.”


아인의 혀는 오블리를 향해 있었지만, 지금 이쪽을 향해서는 뒤통수만 보여주고 있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아인 씨도 ‘오블리비언 프로젝트’의 대상자였나요?”


“대상자-라고 하기엔, 피험자였지. FDA에 심사가 들어가기 전에 미리 복용할 수 있었으니까.”


호기심이 지배했던 크리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말씀은, 혹시 아인 씨는 그때-”


“‘그날’ 평양에 있었냐고 묻는 거라면, 맞아.”




2067년 겨울.

연초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는 연계되지 않을 거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고, 백두산이 대분화를 시작했다.

백두산의 분화는 곧바로 함경도를 초토화했고, 광범위한 산불과 화산재는 21세기 중반의 국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북한의 사회기반시설들을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북한 정부는 수십만에 달하는 이재민들을 케어할 수 있는 방안이 전무했기에, 사람들은 물과 식량, 전기 중 그 어떤 것도 제공해주지 못하는 중앙당국의 통제를 무시하고 남쪽을 향해 대규모 피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재민 행렬의 중심이 동해의 원산에 이르자, 북한 당국은 이재민들의 대규모 탈북을 우려하여 최악의 수를 두고 만다.

원산에 도착한 이재민들을 함경도로 다시 송환하여 복구작업에 투입하겠다는 명령서를 내린 것이다.


당장 중앙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여 살기 위해 도망친 자신들을 다시 사지로 내몰겠다는 이 결정을 달가워한 피난민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수십만의 난민들은 이러한 중앙의 명령에 반발하여 원산에서 거대한 폭동을 일으켰고, 주변에 주둔 중이던 모든 부대에 원산으로의 집결명령이 떨어졌다.

해당 부대의 지휘관들이 받은 명령은 오직 하나,

반동분자들의 즉결심판이었다.


하지만 수십만에 이르는 자국민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은 인민군 지휘관들에게도 부담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었다. 결국 명령을 따라 곧바로 병력을 투입하라는 정치장교와 현장지휘관들 사이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갈등은 원산에서 탈출한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한꺼번에 탈북을 한 사건을 계기로 극에 달하게 된다.


그리고 대사건이 터진다.

당시 1군단장이었던 김정환 상장이 탈북을 시도하는 모든 이재민을 사살하라는 명령에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 명령에 대한 거부.

즉, 반역이었다.


김정환은 곧바로 군단 내 모든 정치장교들을 축출, 원산에서의 ‘학살’을 준비 중이던 806기계화군단이 돌입을 위한 정비도 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원산시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곧바로 이재민들의 보호를 선언한다.

동부전선을 담당했던 1군단의 반역에 당황한 북한의 중앙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함과 동시에, 백두산 폭발의 후속 조치와 민생안정을 위해 투입되었던 모든 부대의 집결을 명령했다.


그리고 거기서 두 번째 실수가 시작된다.

중국을 향한 지원요청이었다.

물론 중국도 백두산 폭발 피해에 대한 대규모 대민지원과 복구작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이를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바로 이 ‘요청’이 이어질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한편, 당장 지옥도가 펼쳐진 상황임에도 중앙의 시원찮았던 지원과 구조작업에 잔뜩 불만이 고조되어 있던 상태에서 그나마 투입되었던 군까지 거두어들이니, 가장 심한 피해를 입었던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있던 시민들의 대규모 폭동이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이들을 무시하고 버릴 수 없다며 집결명령에 반발하는 부대까지 등장하게 되고, 폭동을 일으킨 민간인들과 이에 동조한 군부대를 모두 반역자로 명시, 중앙은 이들에 대한 진압을 위해 8군단의 투입을 명령한다.


그러나 8군단 역시 1군단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당의 명령을 거부, 독자적인 구호활동을 선포하게 되면서, 북한의 중앙정부는 그제야 걷잡을 수 없게 된 사태를 직시하게 되었다.


당시 대북 전문가들은 이른바 북한의 ‘춘추전국시대’를 우려했지만, 예상외로 상황은 싱겁게 끝나버리게 된다.


1군단과 8군단의 반역이 알려지자마자 이른바 ‘평양방위사령부’라고 일컫는 제91수도방어군단과, 김씨 일가의 친위대라고 불렸던 최고사령관 경호기관인 호위사령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김씨 일가와 중앙청의 측근들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평양을 점령한 호위사령부 사령관 주민석 상장은 곧바로 1군단과 협의하여 휴전선 동부의 모든 진입로를 개방, 공식적으로 남한의 지원과 구호를 요청한다.

말이 지원과 구호였지, 이것이 120년 동안 이어졌던 분단의 종말임을, 전 세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8군단을 비롯한 북한 북부의 사령관들이었다.

이들은 중앙당국에 반역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한의 통치를 바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8군단은 남한의 군대가 함경도로 진입하는 걸 거부했고, 동시에 다시금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북한정권의 붕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중국은, 북한 내 자신들의 영향력을 상실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번엔 기꺼이 함경도로 병력과 물자를 투입하였다.

기껏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북한이 또다시 남북으로 쪼개질 위험에 처한 것이었다.


물론, 대한민국은 갑작스러운 통일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120년의 세월 동안 남북은 단순한 극빈국과 선진국의 차이를 넘어, 기초 인프라부터 교육수준, 소득, 시민의식 등 모든 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상태. 이 간격을 좁히는 데 들어갈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은 2차세계대공황 이후 줄곧 휘청이던 대한민국 정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만약 여기에 중국과의 무력충돌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터.

결국 대한민국의 박민선 대통령은 정치적인 상황보다는 당장 백두산 폭팔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구호가 우선이라는 성명을 통해 점진적인 흡수통일, 부분적인 연방제 체제를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3년간, 한국은 백두산 폭발에 대한 구호와 사후 복구사업, 인프라 구축, 북한군의 무장해제, 통일헌법의 개정 등을 시행하였으며 동시에 꾸준한 8군단과의 협상을 통하여 또 다른 분단, 나아가 2차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 마침내 8군단은 중국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박민선 대통령의 제안을 수락하여 무장해제를 선언, 마침내 한국은 길었던 분단의 역사를 끝내고 통일한국을 선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여 박민선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인사들과, 북한정권의 붕괴에 지대한 공헌을 한 1군단장 김정환, 호위사령부 사령관 주민석, 그리고 8군단장 박철규가 한자리에 모여 공식적인 북한군의 해체 및 편입, 그리고 임시연방제의 비준을 위한 행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합의된 날짜는 2070년 8월 15일.

양측 모두에 의미가 있는 광복절.

장소는 평양.




아인이 말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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