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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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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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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작성
23.09.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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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DUMMY

“다섯 개의 공장부지 제공, 그중 하나를 임의로 사용하되 사용 중인 부지에서 문제가 발생 시 곧바로 다른 공장을 쓸 수 있게 해달라-. 이게 놈이 내건 조건이야.”


두 번째 커피잔을 받아드는 레키프 마피아의 보스, 조현세의 몸짓은 첫 번째보다는 매우 느긋해져 있었다.


“좋네요. 빠르게 미끼를 물었으니.”


“경찰한테 한번 털렸으니 이번엔 몸을 사리겠다는 거겠지. 븅신같은 새끼.”

뒤통수를 맞았던 적의는 쉽게 가시질 않는 것일까. 현세의 목소리엔 거침이 없다.

“그나저나 직접 놈을 노리겠다는 건 윤혜인 네 독단이냐, 아니면 랙돌 윗대가리들의 뜻인가?”


“글쎄요.”


“사실 좀 이상했거든. 내가 자작극으로 NC를 빼돌린 거랑, ‘그 새끼’의 존재, 그리고 공장에서 있었던 일까지. 도대체 어떻게 다 알고 내가 숨겨놓은 약까지 추적할 수 있었던 거지?”


“에이, 기업비밀입니다~.”


가볍게 넘기려는 혜인이었지만, 레키프 보스의 시선은 집요했다.


“대충 예상은 가. 쌍문에 있던 물건에 대한 정보, 윤혜인 네가 우리 쪽에 넘긴 거지? 그런데 갑자기 랙돌 라이센스의 NC가 대량으로 풀리면서 가격이 떡락, 너희 수뇌부는 깜짝 놀랐겠지. 근데 너는 오히려 좋았을 거야. 공급이 끊긴데다가 시장이 박살 나면서 탈NC의 구실이 생겼으니까. 안 그래?”


“······.”


혜인의 입가에서 미소의 농도가 옅어진다.

조현세라는 남자의 이름은 당연히 들어봤다. 그리고 저쪽 또한 라이벌 조직의 유통 담당인 ‘윤혜인’이란 이름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둘은 눈을 맞대고 목소리를 나눈 것이 오늘이 처음. 심지어 나눈 내용이라곤 사건을 둘러싼 계약과 인사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조현세는 주어진 배경정보와 눈치만으로 마치 혜인의 속을 꿰뚫어 봤다는 듯이 머릿속에서 그녀라는 인물에 대한 정의를 끝내버렸다.

결국, 혜인은 경계심이 스미기 시작한 입가를 가리기 위해 커피잔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넘겼던 NC를 회수하기 시작했다는 거. 그리고 내가 접촉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응했다는 건······, 그래. 랙돌 내에서 네 입지 때문이었겠네?”


“죄송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절 신경 쓰실 입장이 아닐 텐디?”


“아-, 미안. 버릇이라서. 나쁜 버릇이지.”


두 번째 잔까지 비우고서 현세는 깍지를 낀 손을 무릎 위로 올려놓는다. 여유로운 태도였지만, 혜인은 이 남자를 최대한 빠르게 돌려보내고 싶었다.


“아무튼, 공장들 위치는 톡으로 따로 보내주세요.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선 저희가 알아서 판단하겠습-”


“공장‘들’?”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현세의 표정과, 특정 단어에만 비틀어버린 억양. 혜인은 놀라운 인내심으로 미간을 구기지 않을 수 있었다.


“네 공장‘들’이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다섯 곳 모두를 알려주셔야 우리가 그 녀석을 잡기 위한 대책을-”


“내가 합의한 건 그 새끼가 돌리는 공장 ‘한곳’의 정보를 넘겨주는 거였어. 내가 왜 너희 랙돌한테 내 공장부지를 다섯 곳이나 노출해야 하나?”


“아니, 놈도 자기가 위험한 걸 아니까 보험을 들려는 거잖아요. 그 보험을 막지 못하게 하면 우리가 어떻게 놈을 잡아요?”


“다시 말하지만, 내 역할은 놈이 있는 공장을 알려주는 것. 거기서 끝이야. 말을 바꾸려는 건 오히려 너네라고. 내 말이 틀리나?”


“······아깐 신나게 NC사업을 접느니 마느니 하더니, 말이 앞뒤가 다르시네요.”


“앞뒤가 다르든 같든 난 아직 레키프의 보스니까. 너흰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자신이 아닌 얼굴로 일어나며 현세는 혜인의 얼굴,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나머지 두 얼굴을 훑어본다. 마주치는 시선은 없었지만, 그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떠오른 상태였다.

“30분 후에 공장의 위치를 전송할게. 나머지 물건은 놈을 잡든 못 잡든 일이 해결되는 대로 부탁하지.”


이번에야말로 성큼성큼 두 경호원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 레키프의 보스. 1층의 문이 닫히고, 더 이상 기분 나쁜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혜인은 한참이나 커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레키프의 내부자들도 만나봐야겠는데.”


마침내 열린 크리스의 입술에, 혜인은 대답 없이 허무한 웃음만을 내보였다.



***



“공장이 하나든 다섯이든 중요한 게 아니야. 감염체의 본체를 추적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감자칩을 바삭- 씹으며, 동시에 오블리는 가슴팍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털어낸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감염체는 의식전이체를 통해 공장을 관리할 거야. 공장을 또 습격한다고 쳐도 놈 입장에선 그냥 다른 안드로이드나 의체를 찾아서 다른 공장으로 가면 그만이니까. 부지만 충분하다면 이걸 무한하게 반복할 수 있으니 그걸 노린 걸 테고.”


“그럼 놈의 본체를 어떻게 찾지?”


‘장기 출장’ 중인 한 명을 제외한 팀 전원이 모여있는 종로경찰서 지하주차장 관리실.

내부 공간 자체는 다섯 명의 성인이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충분했지만, 편의성이라고는 남쪽 벽면 아래 놓여있는 낡은 소파 하나가 전부였기에 아인은 내내 일어선 채로 이리저리 방황하는 중이었다.


“간단해. 의식전이체에서 놈의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유선으로 전이체에 엑세스하면 돼.”


“······유선이라고?”


전입 첫날,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아인은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아인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오블리는 감자칩을 들고 있는 손을 휘휘 저으며 짧은 한숨을 뱉었다.


“BDM 신호를 역추적할 뿐이니까, 그렇게 오염에 오래 노출될 필요는 없을 거야. 내가 준 방화벽을 믿으라고.”


“그럼 놈의 의식전이체가 있는 공장을 습격하면 끝이겠네.”


“그렇게 쉽게 풀린다면 좋겠지만.”

이번엔 농도가 더욱 짙어진 오블리의 한숨.

“이미 한번 습격을 받았잖아. 감염체는 신중해질 거야. 나라면, 의식전이체조차 공장에 두지 않고, 미리 명령이 입력된 안드로이드로 공장을 돌리겠지.”


“······.”

아인은 이미 반쯤 풀어진 넥타이를 거칠게 뽑아낸다. 그러나 아무리 열을 발산한다고 해도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진 않았다.

“자, 생각해보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종합해서 싸움을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야 해. 일단, 놈은 별다른 의심 없이 다시 공장을 빌려주겠다는 조현세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그건 즉, 놈이 변종 NC의 생산에 꽤나 다급하다는 얘기겠지.

두 번째로, 우린 조현세가 제공해주는 놈의 공장 위치와, 조현세의 부하가 제공해준 레키프의 모든 예비 NC생산공장의 위치를 알고 있어. 비록, 감염체가 조현세에게 요구한 보험 다섯 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우리가 감염체의 본체, 아니, 의식전이체만이라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우리가 찾는 게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어야죠.”


대답은,

의외로 크리스에게서 들려온 것이었다.


“스스로? 어떻게?”


“우리는 상대가 평범한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에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즉, 상대는 인간보다는 합리적이지만, 순수한 기계보다는 비합리적이라는 거예요.”


“뭔 소리여? 쉽게 좀 설명해봐.”


유라의 재촉에, 크리스는 결국 우람한 몸집을 일으켜 관리실 안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인은 제 얘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들어보실래요?”


“······.”


이 허락을 구하는 행동을 통해, 아인은 그녀가 말하려는 방향을 대강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 상대를 지극히 이성적이고, 기계적이며, 빈틈이 없는 기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제가 볼 땐, 상대는 고집이 드럽게 센 어린아이예요.”


“어린아이······?”


이번엔 오블리조차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경찰도, 랙돌도, 레키프도, 그리고 우리도 지금까진 상대의 뜻에 따라 움직였어요. 여기서 더 정면으로 부딪치려고 해봤자 상대는 우릴 농락하며 비웃을 뿐이겠죠. 근데 만약, 상대를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여기서 상대의 관심을 끌 수 있게 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뭐, 과자라도 던져주게?”


자신의 한입 베어 먹은 감자칩을 튕겨내더니 냉소적인 비웃음을 내보이는 오블리. 하지만 크리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아니, ‘호기심’이야.”


“호기심?”


“그래. 스스로 궁금해서 직접 찾아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거지.”


“글쎄에. 변종 NC를 유포해서 서울 사람의 절반을 채굴노예로 만들려는 감염체 안드로이드가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게 뭐가 있는데?”


크리스가 성큼성큼 오블리가 반쯤 누워있는 의자를 향해 다가선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위협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크리스는 그저 오블리의 감자칩 하나를 빼앗아 먹으며 대답하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도 변종 NC를 생산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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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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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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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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