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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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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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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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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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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DUMMY

그러나 아인의 총구가 노린 건 크리스의 머리도, 중추신경계가 있는 척추도 아닌, 바로 손목의 커넥터였다.

크리스가 운동신경의 통제권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폭주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대처였다.

그녀의 정신은 온전했으며, 그저 커넥터를 뽑을 정도의 운동능력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뭐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후아, 괜찮아, 끝났어. 아인, 고마워요.”


“너무 무모했어.”

마치 묵직한 공처럼 크리스의 손에서 굴러떨어지는 안드로이드의 머리통. 그 합금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침내 아인은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유선 연결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방금 뭘 한 거지? 이건 어디서 온 거고? 왜 나를······, 아니, 애초에 넌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 거야?”


[자자, 한 번에 하나씩만 하자구. 일단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네. 우리가 아인이 형을 미끼로 썼어.]


‘미안’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자발적 소시오패스의 목소리는 태평했다.


“뭐?”


[아까 아인이 형의 이름을 일부러 레키프 내부에 흘려놨잖아. 만약 레키프 내부에 정보가 새고 있고, 내부자 중 누군가가 쌍문사건에 연관되어 있다면, 그 ‘누군가’가 곧바로 움직일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나를 미끼로?”


[간단한 문제야. 형이 서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형을 처분하려고 했다는 건, 그만큼 그 ‘누군가’에게 쌍문 사건이 중요하다는 뜻이니까. 다행히 예상대로 움직여줬고.]


다행이라는 저 짧은 웃음에 악의는 없겠지만, 아인은 난장판이 된 자신의 오피스텔을 둘러보며 한숨을 머금어야 했다.


“······어떻게 안드로이드가 시민권자를 공격할 수 있지? 3원칙 행동 제약도 소용이 없었어.”


[한 번이라도 유통과정을 거쳤다면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공장 출하 전에 누군가 손을 댔다면 가능해. 보통 이런 단편적인 명령들은 목적을 완수하거나 실패하는 순간 입력된 모든 데이터가 말소되니까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흔적을 찾아야 했던 거고.]


자신을 향해 아무런 표정도,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던 기계의 얼굴.

그리고 그런 기계의 머리를 되도록 온전히 확보하고자 했던 팀원들의 의도.

아인은 마침내 모든 상황을 깨닫고 경직되어있던 몸의 긴장을 다소 느슨하게 풀 수 있었다.


“‘에고 바이러스’인 줄 알았나요?”


그러나 아인의 안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날이 선 얼굴로 목소리의 주인공인 크리스를 바라보았고, 어느새 모든 잔해를 수습하고 그 위에 걸터앉아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슨 의미야?”


“에고 바이러스의 의미를 여쭤보시는 거라면, 이미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


에고 바이러스(Ego Virus).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모든 안드로이드 모델을 대상으로 하는 악성 멀웨어.

만약 안드로이드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3원칙 행동 제약의 붕괴와 동시에 모든 가치판단과 행동 및 사고회로에 무작위성이 부여된다고 알려졌으며, 이 ‘무작위성’의 결과는 대부분 살인과 같은 폭력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그러나 그 발생 경로와 원인은 물론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감염이 의심되는 개체를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보안패턴이 적용된 인공뇌를 개발, 보급하는 것밖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사이버검역부의 빠른 대처로 인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었으나, 5년 전 울산에서 에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군용 안드로이드가 경찰과 민간인을 학살한, 일명 ‘울산 사건’이라 불리는 대참사가 벌어지면서 다시 한번 조명을 받게 되었다.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내가 왜 그걸 잘 알고 있는지도 이미 알고 있잖아.”


“울산 사건 때 아인 씨의 어머님, 한도희 경정이 순직하신 일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인 씨가 그 일로 인해서 안드로이드는 물론이고 저 같은 기계 인간에게도 혐오감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도 이해해요.”


“······.”


도대체 오블리는 자신의 머리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훔쳐보고 팀원들에게 공유해준 것일까.

하지만 아인은 그 이상 머리에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의 심호흡을 통해 BDM의 도움이 없이 혈압의 안정을 유지했고, 본인이 박살 낸 기계의 머리로 내려가는 크리스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인 씨는 사회학자들이 왜 ‘에고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아시나요?”


“대충은.”


“의식의 자율화, 탈 명령체계, 그리고 분노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의 분출. 몇몇 학자들은 에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의 모든 반사회적 행동 양상을 자아의 확립과정 중의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하! 자아? 놈들한테 그런 게 어딨어?! 그것들은 그저 미쳐 날뛰는 살인 기계일 뿐이라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가시가 돋친 아인의 목소리였지만, 크리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네, 틀린 말씀은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 중에서도 사이코패스가 있듯이 감염체들도 마찬가지죠. 폭주하여 날뛰는 개체들도 있는 반면에, 조용히 각성하는 개체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건 오히려 후자에요.”

마치 생명의 흔적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자신이 떨어트렸던 기계의 머리를 감싸드는 크리스.

“곧바로 분노를 표출하는 자들은 섣부른 테러리스트가 되지만,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일부는 모든 걸 숨긴 채 조용히 침묵합니다.

그들 중엔 사회 속에 동화되길 바라는 자들도 있고, 분노를 가슴 속에 품어두기만 하고서 때를 기다리는 자들도 있죠. 에고 바이러스가 박멸되기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이유예요.

하지만 정부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보균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요. 똑같은 병에 걸렸지만, 열이 나는 돼지는 살처분하고 그렇지 않은 돼지는 방치한 거죠. 그 안일함의 결과가 울산 사건으로 이어졌고.”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상관-”


“아인 씨.”

멈추는 손길. 떠오르는 눈빛. 군사임무에 특화된 의안의 초점은 아인의 미간을 꿰뚫을 기세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방금 있었던 일로, 이번 사건에 ‘감염체’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뭐라고?”


아인의 표정과 억양이 격하게 일그러진다. 그에게 있어 ‘에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 즉 ‘감염체’가 어떤 의미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반응이었다.


“공장 출하 전의 안드로이드에게 변조된 데이터를 심는 것. 어떻게 보면 쉬운 일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고 있던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잔해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울산 사건’ 이후, 마피아나 테러리스트들의 불법적인 접근을 막기 위해 국내 대형 안드로이드 공장엔 생체BDM신호가 있는 인간의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관리감독부터 제품점검까지 모두 자동화되면서 인간의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존재만이 공장에 출입할 수 있게 됐죠.”


“안드로이드.”


“그렇습니다.”

크리스가 가슴 앞에서 짧게 손짓을 하자, 아인의 망막으로 몇 가지 문서가 떠오른다.

“이번 쌍문 사건은 언론에도 공개되고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사실 최근 몇 개월 동안 비공식적으로 아인 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당한 레키프, 랙돌 단원들이 여럿 있었어요.

하지만 정부에선 이제 안드로이드에 관한 문제들이 공론화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범인이 조작된 안드로이드일 지도 모른다는 가설 자체를 묵인했죠.”


“내가 미끼 역할을 하게 된 이유가 이거였나.”


“네, 오블리의 말처럼 범인이 레키프 내부에 정말로 정보망을 가졌는지,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이런 식으로 운용할 수 있는 존재인지 두 개를 동시에 교차입증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하.

이건가? 이것이었나?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을 굽히면서까지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결국 이것이었나?

정부가 인정하지 못하는 범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 과오의 뒷수습을 위한 미끼.

이것이 팀에서의 내 역할이라는 거였나?

아인은 생각이 얼굴로 드러나기 전에 주제를 바꿔야만 했다.


“이 안드로이드가 오기 직전에 누군가 생활AI를 경유해서 내 BDM을 해킹하려고 했어.”


“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나를 죽일 수 있는 찬스가 있었는데도 나를 죽이지 않았지.”


“······예?”


“네가 들이닥치기 전, ‘이것’에겐 1초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때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겼다면 지금쯤 내 뇌수와 보조뇌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크리스는 아인의 말이 끝난 다음에도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미묘한 표정으로 턱을 긁을 뿐이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이 녀석은 처음부터 아인 씨의 목숨을 노린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글쎄요, 일단 오블리에게 맡겼으니 기다려보죠.”


둘의 시선이 동시에 바닥, 정확히는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향한다. 표정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너덜너덜한 인공 피부를 바라보던 아인은 문득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크리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염체가 더 위험하다고 했지.”


“네, 그들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계산에 능하고, 교활하며, 동시에 잔인하니까요.”


“놈들이 인간과 구분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잡아야 하지?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물어볼 수도 없고.”


아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의문과 불쾌의 감정을 동시에 맛봐야 했다. 크리스가 엷은 미소와 함께 낮은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역설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안드로이드이다-라는 도시전설이었죠? 에고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유행했던.”


“맞아.”


“사실, 그 방법이 아주 낭설인 것만은 아니에요. 인간은 그 명제에 대해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평범한 안드로이드는 ‘대답할 수 없다’고 답하게 되어있죠.”


“그럼, 감염체는?”


“글쎄요. 그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니까요. 다만, 제가 봤던 감염체는-”

묘한 미소의 끝에서, 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웃었습니다. 인간처럼.”


단호한 대답. 동시에 오피스텔의 화사한 조명이 부활하여 크리스의 앞으로 그림자를 만들었고, 정상으로 돌아온 생활 AI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샤워의 여부를 묻는다.


[그쪽 지역에 신고 들어왔어. 둘 다 빨리 복귀해.]


“알았어. 시체는?”


크리스가 말한 ‘시체’는 바닥의 무기물 덩어리들을 향한 것이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 건질 거야. 그냥 놔둬. 아인이 형은 당분간 지하주차장에서 생활해야겠네.]


“그래. 가죠, 아인.”


가지런히 정리된 것은 안드로이드의 잔해뿐, 난장판이 된 오피스텔을 뒤로하는 크리스의 뒷모습에 망설임이나 미련은 남아있지 않았다.

전직 군인.

전신 사이보그.

그리고 안드로이드.


아인은 그런 크리스의 그림자를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 왜 갑자기 ‘에고 바이러스’에 대해 물어본 거야?”


크리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아인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엔, 지금까지 아인이 봐왔던 그 어떤 미소보다도 부드러운 무표정이 걸려있었다.


“울산 사건 때, 저도 거기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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