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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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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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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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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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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9)

DUMMY

“다가오지 마.”


한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아인을 경계하며 소연이 소리친다. 자신이 들고 있는 기폭장치를 앞으로 내보이며 위협하는 건 물론이었다.


“중사, 그거 내려놔.”


사라진 경어와 함께 무게가 더해진 아인의 목소리. 이는 ‘군인’으로서의 자극을 노린 수였지만, 소연은 코웃음을 친다.


“가까지 오지 말라고 했어. 대피령은 내렸나?”


“대피령은 내리지 않을 거야.”


다가오는 아인과 여전히 곁을 지키고 있는 크리스를 번갈아 노려보며, 소연은 날카롭게 소리친다.


“뭐? 내 말 못 들었어? 이 건물을 날려버릴 거라니까? 다들 뒈지고 싶은 거야?”


“그냥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면 진작에 눌렀겠지. 안 그래?”


“내가 못 할 거 같아?”


“해봐, 그럼. 눌러보라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봐.”


“······.”


소연의 미간이 구겨지고, 기폭장치를 든 의수에 생체 신호가 전달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인이 그녀의 표정을 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건물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중사, 너처럼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을 알리는 게 죽어간 우리 전우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그것이야말로 그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조작되었든 아니든 우리가 그 계약서에 서명했던 순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기 위해 그들을 ‘잊기로 정한 거’야. 놈들이 우리 기억을 가지고 지랄하든 뭘 하든 간에, 우린 우리가 당장 생존하기 위해서 그 기억들을 처리해주겠다는 걸 허락한 거라고.

이제 와서 그 기억을 돌려달라고 해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아. 우린 그들을 기억하길 한번 포기했고, 상처 아래 묻어두기로 합의했어.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지금 저 밖에도 수백, 수천 명이 있지.”


“지랄하지 마! 놈들이 우릴 속였다고!”


“그래, 그랬지. 그런데 네가 그 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 놈들이 ‘사실 이 계약서는 위조될 거고, 당신들의 기억은 우리가 멋대로 뽑아내서 마음대로 가지고 놀 겁니다-.’라고 했으면, 너, 그리고 우린, 과연 서명하기를 거부했을까?”


“······.”


“매일 밤 무기물에게 사냥당하는 악몽으로 몸부림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입에 K-55를 넣고 방아쇠를 당기거나, 해독 임플란트를 끈 채 수면제를 몽땅 집어삼키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럴 자신이 없어서, 그 계약서에 서명한 거잖아.”


“······난 피해자야.”


분노로 갈라지기 시작한 소연의 입술이었지만, 아인은 한걸음 더 그녀를 향해 다가선다.


“죽은 사람들도, 살아남은 우리도 모두 피해자야. 하지만 상처를 안고 살아갈지, 덮고 살아갈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선택이었고, 우리 모두 후자를 택했어.

다시 말하지만,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을 돌려준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히려, 우리가 덮어놨던 상처가 죄책감이라는 형태로 곪아 터져 버리겠지. 정말로 그걸 원하는 건가, 중사?”


“······.”


마침내 아인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좁히는 데 성공한다.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소연의 의수를 향해 그림자를 드리웠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침묵 중인 그녀의 손아귀에서 마침내 기폭장치를 거두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지켜보던 크리스와 애경, 게이츠를 포함한 모든 보안 요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


그러나 모두가 안심한 그때,

아인은 묘한 위화감에 휩싸인다.


소연이 크리스와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절대 벗어나지 않은 서버룸의 중앙통제실.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꽁꽁 싸매진 데이터박스에 직접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그리고,

그녀는,

모두가 집중하고 있던, 기폭장치를 쥐고 있던 의수가 아닌, 반대편 손목에서 뽑아낸 커넥터를 소매 안으로 집어넣어 셔츠, 바지 안쪽을 따라 바짓단을 통해 꺼낸 뒤, 어지럽게 흐트러진 전선과 기계 파편 사이로 위장하여 통제단말기에 연결해놓은 것이다.


“이미 늦었어.”


가까이에 있는 아인만이 들을 수 있었던 소연의 낮은 목소리. 그리고 동시에 아인의 방화벽이 날카롭게 경고를 울리기 시작한다.


[국방부와 말룸 바이오닉스 社가 제공한 ‘프로젝트 오블리비언’의 계약을 파기합니다. 해당 메모리 데이터의 반환과 계약서 원본의 전송을 시작합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감감,감,감,감,감,감,감---,]


차갑게 일그러지는 방화벽의 비명에 무릎을 꿇는 아인. 그러나 서버룸에 있던 사람 중 오직 아인만이 그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 설마······-, 네 BDM, 스스로를 중계기로-”


방대한 데이터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전자적 고통에 아인이 이마를 감싸 쥐며 올려보자, 그곳엔 소연의 미소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그 미소는,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QP액이 섞인 피를 쏟아내고 있었기에, 괴기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미 그녀의 보조뇌는 폭발에 가까울 정도로 과열되어 그 보호구로서의 성능을 잃었고, 서버룸에 저장되어있던 수천 명의 기억 데이터를 여과 없이 전송할 중계기의 역할을 도맡은 소연의 BDM은 폭주, 그녀의 머릿속을 완전히 녹여버리고 있었다.


“······중···위···, 나-······, 기억을······, 죄, 합니···-.”


단편적인 언어의 파편만을 씹으며, 마치 좀비처럼 아인에게 손을 뻗어오는 소연.

아인을 제외한, 서버룸에 있는 모두가,

그녀가 기폭장치를 되찾으려 한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네 발.

뒤이어 네 발의 총성이 추가로 울려 퍼진다.


크리스는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고, 아인은 무릎을 꿇고 있었기에 보안요원들의 총탄에 그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흩뿌려진 피는 오직 소연의 것뿐이었으며,

무너진 것도 오직 그녀의 육신뿐이었다.


“물러나!”


어느새 가까이 접근해온 요원들이 크리스와 아인을 거칠게 밀어내며 소연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미 입술 위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곤죽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확인 사살이나, 추가적인 조치는 이뤄질 필요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뒤늦게 다가온 게이츠의 목소리. 물론 그의 목소리는 아인을 향해 있었지만, 그 역겨움이 가득한 시선은 계속해서 ‘테러리스트’의 시체에 고정된 채였다.


“······예.”


방화벽의 비명은 멈췄고, 머리를 죄어오던 고통도 사라졌다. 아인은 멀쩡히 일어나서 보안담당관 애경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겁니까? 끝난 건가요?”


“······예, 지금은요.”


“아, 다행이-”


“물론 당신들 입장에선 이제 시작일 겁니다.”


아인의 말에 애경과 게이츠가 동시에 싸늘한 시선으로 아인을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폭탄이나 해커는 미끼였습니다. 그녀의 목적은 처음부터 여기로 오는 거였죠.”


“뭐라고요?”

아인을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애경이 보안요원들을 밀치며 소연의 시체로 다가선다. 그녀가 소연이 숨겨놨던 커넥터와, 그 커넥터가 어디로 연결되어있었는지 알아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씨발년이 뭔 짓을 한 거죠?”


“간단합니다. 국방부 파견인이자 말룸의 협력직원으로서 프로젝트의 접근승인코드를 얻어내고, 그 권한을 통해 데이터에 접근, 스스로 데이터 중계기가 되어서 프로젝트의 모든 피험자에게 지워냈던 기억들을 되돌려주려고 한 거죠.”


“······뭐라고?”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번지려는 찰나, 아인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통증의 흔적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니까요. 다행히 병렬 전송 중에 머리가 날아가서, 각 피험자에게 전송된 데이터는 극히 일부분입니다.”


“뭐? 일부분이라니? 그게 어느 정도인데요?!”


“저야 모르죠. 앞으로 말룸에 연락해 올 피험자들의 말을 들어보시죠. 각자 그 ‘일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아주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아인은 말을 마치고,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서버룸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런 아인의 뒤를 크리스가 게이츠와 애경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에 곧바로 따른다.

애경도, 게이츠도,

서로 멀뚱한 표정을 공유할 뿐,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그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



[소셜 피드 대충 보니까, 기억이 돌아온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 같네. 그래도 ‘계약서’의 원본이나 말룸이랑 국방부가 피험자들 뒤통수쳤다는 건 다 까발려진 거 같아.]


“······.”


종로경찰서로 복귀하는 차량.

아인은 아직 ‘데이터 복귀’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뒷좌석에 누워있었고, 운전대는 크리스의 몫이었다. 둘 모두 대답이 없었지만, 귓가 너머로 들려오는 오블리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뭐어, 그럼 결국 정소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인가? 이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참전군인들 모두가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에 대한 기억’은 깨닫게 됐으니까 말이야.]


“그들에게 다시 선택권을 준 거지. ‘너네 이거 잊고 살았지? 만약 다시 모두 기억하고 싶다면 말룸에 따져-’라고.”


피곤에 찌든 아인의 목소리에 오블리는 웃음으로 대답을 시작한다.


[그거 알아? 난 뭔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말룸이나 국방부가 좆될 거 같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인 또한 웃었다. 물론 그 웃음의 농도는 오블리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지만.

“기껏 덮어줬던 상처를, 모든 미래를 희생하면서까지 들춰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아하, 그래? 그럼 아인이 형은? 기억 얼마나 돌아왔어?]


저런 질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는 것도 오블리란 녀석이라 가능한 거겠지.

아인은 짧게 한숨을 내쉰다.


“별로. 약을 오래 끊어서 그랬나? 되돌아온 기억도 거의 없는데.”


[예를 들면? 전쟁터? 시체? 폭탄 소리? 안드로이드?]


······저 새끼는 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말했잖아. 거의 없다고. 그냥······, 내 부하였던 직속대원들 목록 정도야. 그마저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실돼서 돌아왔어. 누가 누군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나고.”


[에이, 뭐야. 재미없게. 그럼 딱히 다시 뽑아낼 정도도 아니겠네.]


“죄송하게 됐네요.”


다시 뽑아낼 정도는 아니다-.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다시 뽑아낼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면, 이 정도는 품고 가도 될, 품고 가야 할 정도라고 해야 할까.

기억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알고 있지만 알아볼 수가 없는,

마치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 길바닥에서 다시 만난 유기견처럼-······.



아인은 파일을 열었다.





[박서홍. 21세. xx연대 xx소속. 20xx년, 평양 xx에서 중국제 전투용 xxxxx에게 xxxxx, xxxxxx 후 전사. 시신 회수. xxxx에게 전달.]

[김진x. 2x세. xx연대 xx소속. 20xx년 평양 xx에서 전투 중 xxxxxx. 어깨와 오른쪽 발목 xx으로 인한 xxxx 수술. 전역 후 ‘오블리비언 프로젝트’ 참여. 현재 상계동 xx에서 xxxx xxx 중.]

[정x연. 2x세. xx연대 xx소속, 20xx년 평양 xx에서 전투 중 xxx xxxxx. 왼팔과 오른쪽 다리 xx로 인한 xxxx 수술. 전역 후 xxx에서 xxxxxxx으로 복무 중.]

[xxx. xx세. xx연대 xx소속. 20xx년 평양 xx에서 xx 중 xxx xxxxx, xxx으로 상반신이 xxx. 시신 회수 실패. xxxxx 지정.]




“······.”


아인은 파일을 닫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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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9) 23.11.16 11 0 12쪽
30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8) 23.11.13 10 0 10쪽
29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7) 23.11.10 9 0 10쪽
28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23.11.07 10 0 10쪽
27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5) 23.11.03 11 0 11쪽
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1 0 10쪽
25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3) 23.10.27 11 0 10쪽
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23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23.10.19 13 0 10쪽
22 Hello, New World 23.10.11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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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4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5 0 9쪽
17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23.09.25 14 0 12쪽
16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15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7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5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3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5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0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7 0 13쪽
8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23.09.07 22 0 12쪽
7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1) 23.09.05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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