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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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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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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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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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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1)

DUMMY

[박아인 경위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이미 알람이 울리기 20분 전부터 눈이 떠진 상태였기에, 아인은 곧바로 생활AI의 목소리를 비활성화하며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물론 출근 준비에 돌입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토요일이었고, 별다른 ‘의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휴일에도 알람을 맞춰두는 건 군인 시절부터 이어져 온 습관이었을 뿐이었다.


“······.”


일어날 필요가 없는 시간에 일어나서, 섭취할 필요가 없는 커피를 마신다.

짤막한 스트레칭에 이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은 뒤 조깅을 나가는 것.

박아인이라는 인간의 휴일 모닝루틴은 오늘도 어김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


아인은 굳은 얼굴로 이어폰을 뺀다. 예상치 못한 그림자가 현관문 앞에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막 초인종을 누를 참에 문이 열려 당황했는지, 약간 어정쩡한 자세로 열린 문을 피해내고 있었다.

아인은 그 그림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지워내고 만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이른 토요일 아침, 생각지도 못한 시간.

자신의 오피스텔 문 앞, 생각지도 못한 장소.

바로 그런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 와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인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걸 견뎌야 했다.


“이른 시간에 미안하다. 잠깐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뭐, 예, 들어오시죠.”


이 불편함은 루틴이 깨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몇 년 만에 아버지의 사복 차림을 봤기 때문일까.

아인의 집에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엌 겸 식탁에서 의자를 끌어와 인배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침대에 걸터앉아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 별일 없나? 식사는 잘하고?”


그 어떤 굴곡도 느껴지지 않는 인배의 목소리에, 아인은 질렸다는 듯 비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서먹한 아들과 대화하는 법’이라도 검색해보고 오신 겁니까? 어설픈 공감대 형성하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본론이나 말하십쇼.”


“······.”

인배는 잠시 아인을 바라본다. 놀랍게도 방금 아인의 태도는 건방지다거나, 무례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눈앞의 아들은 지금,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닌, 주말 아침 불쑥 집으로 찾아온 ‘직장 상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먼저 멋대로 찾아온 걸 사과하지. ‘팀’에 들어온 의뢰 하나에 대해 의논할 게 있는데, 사무실이나 서 내에서 얘기를 나누기엔 민감한 사항이라.”


“그건 어차피 여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맘만 먹으면 도청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당할 텐데요.”


“그건 걱정 마라. 저번 습격 이후 이곳 방화벽이나 AI의 보안 프로토콜은 오블리가 대신하고 있으니까.”


“······흠.”

‘이 새끼를 그냥-.’


소시오패스 해커이자 직장 동료인 청년을 향한 욕을 간신히 속으로 삼켜내며, 아인은 고개를 끄덕여 아버지의 다음 목소리를 기다린다.


“이번 안건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애매하다.”


“애매?”


“일단 1차 정보의 출처가 국가기관이 아니고, 아직 검증조차 되지 않았지. 보통 검증이 완료된 정보를 통해 목표가 확립되면 그 목표를 처리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너희였는데, 이번만큼은 그 ‘정보에 대한 검증’부터 불확실한 상태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다.”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임무를 수행하라는 말입니까?”


“아니, 바로 그 ‘정보의 검증’부터 너희가 하라는 뜻이다.”


아인이 미간을 구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나 불편함이 원인은 아니었다.


“왜죠? 들어온 정보가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의 출처라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말이 자꾸 빙빙 도는구나. 명확하게 정리해주마.”

인배가 양 팔꿈치를 무릎 위에 두면서 허리를 굽혔다.

“너희 팀이 이 정보의 검증부터 착수해야 하는 이유는, 제보로 지목된 대상이 국가정보기관에서 임의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해당 정보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만약 해당 제보가 진실로 판명될 경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회적 파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안건의 최종임무는 바로 이 사회적 파문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지.”


“아니, 도대체 그 임무가 뭔데요?”


“암살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인배의 목소리. 하지만 아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숨을 삼키고 있었다. 그의 입이 다시 열리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대상은?”


핵심을 관통하는 아인의 시선에, 마침내 인배의 목소리도 망설임을 품는다. 그는 조금씩 허리를 펴고 아인의 오피스텔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야 그 망설임을 물리칠 수 있었다.


“전라도 하원의원, 차 로이스.”


아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의 얼굴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있었지만, 이런 아들의 반응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배의 안색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지금, 뭐라고요? 하원의원?”


“그래.”


“지금 저한테 국회의원을 암살하라고요?”


“정보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내지르려던 고함을 삼키고, 천천히 이마를 쓸어내리는 아인의 손. 그리고 그 손 위로 떠오른 그의 시선은 날카롭게 아버지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설마-, 이 ‘팀’을 누군가의 정적을 제거한다거나, 특정 권력자의 정치적 편향성을 위한 도구로 쓰겠다는 생각이라면-”


“그럴 일은 없다. 애초에 ‘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정부에서도 극소수뿐이고, 너도 알다시피 애초에 ‘그럴 팀’이었으면 내가 맡지도, 만들지도 않았을 거야.”


“······.”


물론 알고 있다.

‘경찰’로서의 박인배라는 사람은 기득권의 눈밖에 났으면 났지, 그들을 위한 도구가 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차 로이스 의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다.”


이번에도 역시 나타나는 ‘실물 서류’. 아인은 잠시 그 봉투를 내려보다가, 선 채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차 로이스, 필리핀 출신, 47세. 2052년 전라도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선출. 이민자인권보호 시민단체 소속으로 올해의 시민단체상 수상 경력 및 국제엠네스티 한국대표위원.”


“기부액도 상당하고, 별도로 운영 중인 자선단체도 있지. 입당 전부터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에서 노리고 있었던 사람이었어.”


“순혈주의단체나 극우단체에는 꽤나 미움받고 있는 모양인데요. 혹시 정보의 출처가-?”


“아니, 그쪽은 아니야.”

인배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마피아다.”


“······마피아?”

‘서류상’의 차 로이스라는 인물은, 내전에 희생당한 필리핀의 아이들을 위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그들의 인권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위해 동북아국가들을 상대로 투쟁해온 운동가였다. 그런 업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엠네스티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받을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까지 선출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마피아와의 커넥션이 있다?

“만약 정보의 출처가 마피아라면, 더욱더 그 진위가 의심되지 않나요? 이렇게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인데, 어떻게 마피아와 연관성이-”


“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지.”

이런 아인의 의문을 꿰뚫으며, 인배가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획적으로 정치판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고 자란 ‘정치허영주의’ 세대는 끔찍할 정도로 정부 정책엔 관심이 없으면서도 정치판의 인간상엔 과도하게 집착하지.

그나마 정책적으로 이들끼리의 분쟁을 유도해왔던 이념대립이 통일과 함께 사라지면서 이런 양상은 더욱 굳건해졌어.

입으로는 평등과 분배를 외치면서도 당장 자신의 불이익에는 기를 쓰고 달려드는 사람들. 이런 뷔페식 민주주의에 찌든 민중을 절대로 만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다의적인 사회적 가치를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만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주무기로 내세웠다.”


“그 무기가 바로 차 로이스라는 건가요?”


아인의 물음에 인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부유해지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니, 결국 자신들이 내거는 ‘공약’으로는 표를 얻을 수 없게 됐지. 그들은 이제 ‘사람’을 보고 표를 던지게 된 거야.

‘착해 보이면 뽑힐 수 있다.’ ‘투명해 보이면 이길 수 있다.’ ‘비슷해 보이면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정치인들, 돈을 움직이는 자들은 봉사활동을 하고, 기부하며, 진료소를 세우고, 노인센터를 짓는 것으로 정치의 기반을 대신한다. 깨끗한 전과기록과 서재를 장식하고 있는 표창의 개수가 이제 지배계급을 대변하는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지.”


“······뒤가 구린 사람이라면, 실력 있는 해커가 마음먹는 순간 모든 게 까발려질 테니까요.”


“그래. 이제 ‘부패’라는 개념은 예전처럼 뇌물, 전과, 유착 따위가 아니야. 누군가는 이걸 지배관계의 역전이라고 호평하고 있는 모양이다만, 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아.

사람들의 BDM에 도덕적 가치를 심어 현혹한 사람이, 실제 사회에서는 어떻게 자신의 악의를 풀어놓을 수 있는지 안다면, 결코 그런 안일한 생각은 못 할 거다.”


아버지가, 경찰서의 서장이 이렇게까지 얘기를 한다면, 아인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차 로이스의 혐의가 뭔데요?”


“이거다.”

인배가 건넨 것은-,

“거래내역이지.”


“······.”


‘무엇의’ 거래내역인지, 아인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내려 가는 아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극도로 선명한 혐오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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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1) 23.11.19 12 0 10쪽
31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9) 23.11.16 11 0 12쪽
30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8) 23.11.13 11 0 10쪽
29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7) 23.11.10 10 0 10쪽
28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23.11.07 11 0 10쪽
27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5) 23.11.03 11 0 11쪽
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2 0 10쪽
25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3) 23.10.27 11 0 10쪽
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23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23.10.19 14 0 10쪽
22 Hello, New World 23.10.11 15 0 11쪽
21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4) 23.09.30 15 0 11쪽
20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3) 23.09.29 15 0 10쪽
19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5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6 0 9쪽
17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23.09.25 15 0 12쪽
16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15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8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4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6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1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8 0 13쪽
8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23.09.07 22 0 12쪽
7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1) 23.09.05 19 0 9쪽
6 좋은 아침입니다 (5) 23.09.04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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