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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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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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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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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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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3)

DUMMY

“들어와.”


언제나 긴장되는 집무실 앞, 그리고 그 긴장을 극대화하는 아버지의 목소리.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아인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한 뒤에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아버지, 종로경찰서장 박인배 총경의 집무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다. 바로 옆 옷걸이에 걸어둔 제복 외투는 마치 방금 스타일러에서 꺼낸 것마냥 주름, 먼지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고, 책상 위로는 아인이 서류 하나를 꺼내 내놓기 전까진 그 어떤 불협화음도 존재하지 않았다.


“작전계획서를 승인받으려 합니다.”


“승인?”

그러나 인배는 아인이 넘겨준 서류철에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나 이 경찰서와는 별개로 취급한다. 팀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 무슨 작전을 하든 그 모든 책임과 전권은 팀에게 있어. 감독관의 역할은 팀 내부에서 결정된 사항을 나에게 일일이 보고하거나 승인받는 게 아니라, 선을 넘는 것인지를 스스로 먼저 판단하고 통제하는 거라고.”


“서장님께선 저에게 팀과 서장님 사이를 중재해달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이번 사안에 대해 중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고드리러 온 것입니다.”

아인의 대답과 동시에 찾아온 짧은 침묵과 싸늘한 눈맞춤. 결국 인배는 서류철을 집어 들어 펼쳤고, 아인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번에 보고드린 대로 감염체 확보를 위한 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작전대로만 된다면 의식전이체를 통해 본체의 위치정보와 BDM코드를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이 문제라는 건가?”


아인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 서류철의 내용을 빠르게 탐독한 아버지의 시선에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염체 본체의 정체와 위치를 특정한 다음에는 대테러부대에게 작전을 위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울산 사건 이후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 확인된 에고 바이러스 감염체입니다. 단순히 NC와 관련된 마약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합니다.”


“하나 묻지. 해당 개체가 에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체라는 기술적, 병리학적 증거가 있나?”


“······예?”


생각지도 못한 인배의 질문에 아인은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의 질문이 지닌 의도를 유추하기도 전에, 인배의 목소리가 먼저 그의 이성을 파고들었다.


“네 말대로, 울산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인’ 감염체의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말로 에고 바이러스의 박멸에 성공해서? 아니면 감염체들이 감염 사실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문명 속에 섞여 생활하고 있어서? 아니야. 그저, ‘증명’할 수 없었을 뿐이다.”


“······.”


“울산 사건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관련주가 폭락하면서 정부는 발빠른 대처를 원했어. 박멸을 선언하고, 대책반을 세우고, 안드로이드 공장과 사건을 벌인 동일 기종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

하지만 그건 다 보여주기 위한 쑈였을 뿐이야.

현실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모든 안드로이드 개체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지 않는 한 박멸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했지. 하지만 국민을 안심시키고, 외국투자자들을 붙잡아야 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인배는 서류철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여전히 정갈한 움직임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질병청은 감염체의 정의와 바이러스의 확진 기준을 정립하지 않았어. 그리고 모든 판단의 권한을 말단 수사기관과 국과수에게 떠넘겼지. 이게 무슨 뜻일까?

정부는 ‘감염체의 존재 여부’를 아예 듣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나 다름없는 거야. 아무리 우리가 감염체로 의심되는 개체를 파악하고 보고를 올려도, 우리 스스로가 해당 개체를 확보, 작동이 정지하지 않은 채로 국과수에 넘겨서 온전하게 분석이 끝나지 않은 이상, 이 나라에 ‘감염체’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감염체를 온전히 확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놈들이 다른 안드로이드로 의식을 전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2.1초. 그 2.1초 동안 놈을 무력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생포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게 진실이다, 경위.”

인배는 책상 끄트머리에 있던 오렌지주스병을 들어, 자신의 유리잔에 반쯤 채워 목을 축였다.

“인간이 머리에 BDM이라는 모듈을 박고 QP라는 양자컴퓨터가 혈류를 따라 흐르기 전부터도 이쪽 세계는 네가 각오한 것 이상으로 더럽고 타락한 바닥이었어.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이상을 가진 채 이 길을 선택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장담컨대, 네가 더 높은 계급장을 달고 얻을 수 있는 거라곤 끝없는 실망과 절망, 그리고 회의감뿐일 거야. 그건 내 아래에 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아. 요즘 시대에 경찰이란 그런 존재니까. 우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한다.”


“······.”


“마피아들과의 싸움이라고 해서 무언가 다를 거 같나? 우리가 권총을 들면 놈들은 자동소총을 들고, 우리가 방화벽을 만들면 놈들은 우리의 보조뇌를 터트릴 해커를 고용하지. 우리가 갓 대학을 졸업한 생도를 뽑으면 놈들은 실전으로 단련된 용병을 고용하고, 우리가 언론의 눈치를 보고 박봉에 시달리며 결혼과 가족을 포기할 때, 여기 있는 놈들은 우리 연봉의 열 배가 넘는 돈을 하루아침에 만지면서 자식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이게 맞는 거냐? 우리가 이 시스템하에서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지?”

아버지가 자신을 이곳에 부르고, 범죄자 출신의 용병을 모아 사설 ‘팀’을 만든 이유.

그는 아버지로서의, 그리고 서장으로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만큼, 아버지에게도 선택권이 없었을까. 아인은 혀 안쪽으로 짧게 한숨을 머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단 한 명이라도 시스템의 밖에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부하가 필요했다. 혈연이든 지연이든, 범죄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동시에 계급과 계급 사이, 그 이상으로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해. 이게 내가 너를 이곳에 부른 이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말해라. 곧바로 돌려보내 줄 테니.”


“······서장님께선 저와 팀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하신다고 하셨죠. 그럼 제가 이번 감염체를 확보하는 중에 있어 해당 개체를 온전히 포획할 방법을 찾아 성공한다면, 그리고 박아인 경위의 이름으로 국과수에 찾아서 공식으로 감염체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한다 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게 네 판단이라면.”


아버지는 완고하다. 시스템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는 그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아인에 의해 감염체의 존재가 공식 확인되고, 그 여파로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다 해도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배가 바라는 ‘팀’의 결과물일 수도.


아인은 확신이 담긴 경례와 함께 망설임 없이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




정화플랜트가 가동을 최소화하는 새벽 2시.

을씨년스러운 공기의 오염도가 점점 증가하면서 별과 달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가로등과 AR 광고가 내뿜는 불빛도 서서히 흐려진다. 그러나 도봉산을 뒤에 끼고 있는 폐교에는 그 흐릿한 빛마저 제대로 닿지 못했고, 그림자가 그림자를 삼키는 진득한 어둠만이 회색빛 운동장을 휘감고 있었다.


“흐음.”


그리고 그런 어둠의 한복판을 마치 공원처럼 가볍게 거닐고 있는 그림자들. 열 개가 넘는 그림자들이 모두 같은 동작과 속도로 강당을 향해가는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질감이었다.


“새벽 산책이라도 나오셨나?”


그림자 무리의 선두가 강당의 입구를 불과 십여 미터 앞둔 시점. 강당 옥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든 그림자가 동시에 정지하고, 동시에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역시 당신들이었군요.”


무리의 선두에서 산뜻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 실체는 신장 2m에 달하는 산업용 안드로이드. 그리고 그를 따르는 나머지 9기의 그림자 또한 동일한 모델이었기에,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순식간에 위협적으로 변모해있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런 안드로이드 무리의 앞으로 뛰어내리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왜? 채굴서버가 터지기 직전이라 꽤나 급하셨나 봐?”


“평범한 경찰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신선한 접근이었습니다. 뭐어,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만요.”


“자신만만하네.”


“설마 이게 제 본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이걸 막아낸다고 해도 10분 뒤엔 20기가, 30분 뒤엔 50기가 계속 쳐들어올 겁니다. 다른 공장으로 옮겨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하세요?”


“딱히. 이미 이겼으니까.”

[오블리.]


[오케이.]


“?!”


아무런 소리도, 불빛도, 후폭풍도 없었다. 적어도 ‘인간’의 시선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운동장, 정확히는 안드로이드 무리가 딛고 서있는 곳 아래에 묻혀있던 EMP 디스럽터의 폭발은, 그 바로 위에 있던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치명적인 행동장애를 안겨줄 재앙이었다.


[그거 존나 비싼 거였으니까 실수하면 안 돼!]


[걱정마셔.]


오블리의 당부에 크리스는 피식 웃으며 안드로이드 무리를 향해 도약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표는 줄곧 목소리를 내던 선두의 개체가 아니었다.

그녀는 무리의 한가운데에 있던 안드로이드 위에 올라탔고, 안드로이드는 아직 채 기능이 복구되지 않은 시선으로 겨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


감염체의 의식전이체가 충격에서 회복된다면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2.1초.


크리스는 망설임 없이 손목에서 커넥터를 뽑아,

안드로이드의 뒷덜미에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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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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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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