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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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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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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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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DUMMY

화창함이란 표현이 도시 외곽과는 공존할 수 없게 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정화플랜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의 사람들에게 하늘은 이제 가끔 먹색의 미끈거리고 고약한 비를 뿌리는 하수구 그 이상도, 이하의 존재도 아니었다.


하늘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얼굴에 표정도 사라진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이런 거리의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에 분노하고 있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에 모든 BDM의 사고회로를 소모하고 있다. BDM이 전 국민의 지성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의무화를 재촉했던 정부 인사는, 최근 자신이 모든 사회학자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역시 날씨 더럽네요.”


아인은 고개를 돌려 운전대를 잡은 크리스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아니었다.


“······크리스, 물어볼 게 있는데.”


“아인의 어머님을 알고 있냐는 말씀인가요?”

오블리처럼 자신의 머릿속을 해킹이라도 한 걸까. 그러나 경악은 짧았고, 아인은 숨을 죽인 채 크리스의 입술을 기다린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울산에 있었던 건 맞지만 그땐 군 소속이었어요. 연합작전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경찰 쪽과는 그리 많은 교류가 없었죠.”


“아니, 죄송할 거까진.”


항상 정중하고, 부드러우며, 전진 군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편안한 인상. 만약 아인이 뒤늦게나마 크리스의 프로필을 읽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녀를 가장 이상적인 동료로 생각했을 것이다.

[명령 불복종, 상관 폭행, 작전 중 이탈.]

아버지가 넘겨준 자료에 명시되어있던 크리스의 이력이었다. 그리고 대 테러팀으로서의 ‘크리스 컬러사운드’ 중사가 마지막으로 투입되었던 작전이 바로 울산 사건.

크리스의 말대로 군과 경찰의 직접적인 교차 지휘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당시 현장지휘관으로 있었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명령불복종, 탈영한 크리스를 고용한 건 정말로 우연일까.


“그날 아인의 어머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죠. 정부의 발표는 현장지휘관들의 무능함에 맞춰져 있었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책임을 특정하기엔 어려운 참사였습니다. 그땐 그 누구도 ‘에고 바이러스’나, 감염된 안드로이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으니까요.”


“이해?”


아인의 혀끝엔 날이 서 있었지만, 크리스의 목소리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날 그 공장. 수많은 대테러부대와 특수부대, 심지어 드론폭격기까지 동원되었죠. 하지만 딱 한 가지, 제일 필요한 종류의 인원이 없었습니다.”


“그게 누군데?”


“협상전문가입니다.”

아인의 뒤틀린 표정을 예상했던 걸까. 크리스는 희미한 미소로 분위기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이해합니다. 자의식도 없는 살인기계들과 무슨 협상이냐고 생각하시겠죠.

그 당시 지휘관들도, 분대장도, 그리고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인질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감염체는 조우하는 즉시 ‘파괴’할 것. 그게 동쪽 입구에서 진입하는 저희 팀에게 내려진 명령이었습니다.”


아인의 시선에서 불편함이 사라지고, 대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해진 표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동쪽······? 그럼-”


“네.”

크리스의 입가에서 부드러움이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열일곱 명의 인질과 아인의 어머니를 포함한 여덟 명의 경찰특공대를 희생시킨 2층 안드로이드 자폭은 바로 저희 팀의 진입로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


“사전 스캔을 통해 감염체들에게 폭발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종보고서에 올라갔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 몸 안의 수소전지를 폭발시킬 수 있도록 개조한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스캔에 잡히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이쪽에 공지함으로써 ‘협상’에서의 주도권을 쥐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쪽에선 아예 처음부터 ‘협상’따윈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거죠.”

짧은 한숨. 이야기를 위한 기억회로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일까, 크리스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자동운전모드를 활성화했다.

“저는 침투조 선두에 있었습니다. 2층 사무실에 억류된 인질들을 구출하고 복도로 나서는 순간, 한 감염체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죠. 어떠한 무기도 없이,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들더군요. 만약 제 망막에 스캔 기능이 없었다면, 그 감염체를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걸 쐈나?”


“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날렸습니다. 하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만약 거기서 그 감염체가 폭발했다면 작전은 전면 재조정되었을 테고, 그 후 두 번째 교전에 이은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왜 폭발하지 않았지?”


“모릅니다.”

크리스의 미소가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와 ‘대화’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그저 다른 자살테러리스트처럼 인질들과 함께 폭사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마치 감염체가 인격체인 것처럼 말하는군.”


“물론 에고 바이러스에 의해 사고회로 자체가 망가져서 그랬을 수도 있죠.”

크리스는 두 손을 다시 핸들 위로 올려놓았지만, 자동운전모드는 여전히 활성화된 상태였다.

“두 번째 조우와 폭발 이후, 저는 분대장에게 ‘즉시 파괴’ 수칙의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분대장은 저들에게 폭발물이 없다는 스캔 결과를 굳게 믿고 있었죠.

그리고 교전 중 저에게 인질들 한가운데서 두 팔을 높이 들고 서 있던 ‘감염체’를 저격할 것을 지시했어요. 저는 거부했고, 분대장은 제 지정사수소총을 빼앗아 본인이 직접 처리했죠. 그리고 그놈은 다른 감염체들보다도 많은 수소전지를 품은 상태였고요.”


“······.”


명령 불복종.

상관폭행.

아인은 앞을 바라본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언론에서는 감염체들을 맨손으로 인간을 찢어 죽이기 위해 미쳐 날뛰는 괴물들로 묘사해왔어요. 물론 진짜 그런 개체들도 있었죠.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진 않았어요. 인간에게 있어 그들은 ‘왜’라는 질문조차 받을 가치가 없는 무기물 덩어리였을 뿐이니까.”


“그럼 너는 감염체들에게 ‘의식’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


“흠, 글쎄요. 생활 AI에게 저처럼 머릿속만 유기체고 온몸이 무기체인 사람과, 뇌는 무기체이지만 온몸이 유기체로 이루어진 섹스로이드 중 누가 더 인간에 가깝냐고 물으면 후자라고 답을 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우리 기준에서 인간이란, 영혼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수 있는 동일의식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니까.”


“자의식만 있다면 기계도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모르겠어요.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을 기계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애매한 문제죠.”


“······.”


“아인은요? 아인은 왜 안드로이드를 혐오하시는 거예요? 역시 어머니 일 때문인가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화제치고는 너무 무겁지 않은가. 하지만 아인은 이 질문 앞에서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딱히 혐오하는 건 아니야. 나에게 있어 안드로이드는 NC와 마찬가지일 뿐이지.”


“NC와?”


기계 인간으로서 흥미로웠던 것일까, 아인을 향한 크리스의 푸른 눈동자에 활기가 돋고 있었다.


“기계는 인간에게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뿐이어야 했어. 하지만 그것들이 인간을 대신하는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린 계속해서 나태해졌지. 주객이 전도된 거야. 세상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위한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잖아.”


“그럼, 아인은 안드로이드를 혐오하는 게 아니라 경계하는 거네요.”


경계.

이 단어만큼 자신의 시선을 대변해주는 단어가 있을까.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NC가 합법화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NC를 사용하게 된다면 인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해왔던 진화를 완전히 멈춰버릴 거야. ‘불만’이 없는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거든.

그런 의미에서 난 NC와 안드로이드를 같은 의미로 보고 있어. NC가 인간이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만든다면, 기계들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희미하게 만들지.”


“이야, 아인이 근본주의자였는 줄은 몰랐네요.”


“그런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야. 그저 단순한 회의론일 뿐이지.”


아인은 어느새 주변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가 고개를 돌려 입을 다물면서 대화의 흐름은 끝을 맞이한다. 크리스도 그 이상 무언가를 묻거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정비되지 않은 도로 위를 침묵 속에서 한참이나 더 덜컹거리고 나서야 회색 하늘 아래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여긴······, 대학?”


아인과 크리스가 도착한 장소는 의정부 외곽의 전형적인 폐교로, 부지는 물론이고 주변의 도로와 가로등과 같은 기반시설들마저도 더 이상 인간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말 그대로 버림받은 곳이었다.


“오블리, 스캔은?”


[생체 신호는 없어. 근데 전력사용량을 조작한 흔적이 있어. 강당 쪽일 거야.]


“흐음, 좋지 않은데.”


오블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크리스가 차 뒤쪽으로 다가가 트렁크를 열더니, 이미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대신하여 구경이 큰 새로운 권총과 대안드로이드 전용 탄창을 집어든다.

아인은 왜 ‘생체 신호는 없다’는 오블리의 정보에 크리스가 표정을 굳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염체가 있을까?”


아인이 갑자기 ‘감염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이곳에 오면서 크리스와 나누었던 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 ‘조사’를 어젯밤 자신의 오피스텔에 있었던 일의 연장선으로 판단한 것이다.


“아마 아닐 겁니다. 안드로이드가 있다고 해도 감염체 본체가 아니라 아인을 습격했던 것처럼 조작된 외부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이겠죠. 물론 ‘침입자는 죽여라’라는 명령이 입력되어있다면 골치 아프겠지만요.”


“······.”


아인은 결국 제식권총을 내려놓고, 크리스와 같은 모델의 권총을 허리춤으로 가져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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