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굿모닝, 디스토피아!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647
추천수 :
3
글자수 :
167,278

작성
23.09.28 17:32
조회
14
추천
0
글자
10쪽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DUMMY

콰드득-.

접근해온 안드로이드의 어깨를 손쉽게 으스러트린 크리스는 곧장 반대편 손으로 안드로이드의 후두부를 짓이겨 완벽히 침묵시키는 데 성공한다.

생활보조 안드로이드보다는 내구성이 튼튼한 산업용이긴 했지만, 상대가 군용 의체라면 딱히 내구성을 논하는 의미가 없을 터. 이미 총 한 발 쏘지 않고 세 기의 안드로이드를 처리하는 데 성공한 크리스였지만,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에 방심은 없었다.


[오블리?]


[그게 마지막이야.]


[오케이. 아인, 쑈. 현장 정리하고 복귀하자. 유라는 남아있는 물건이랑 다 챙겨주고.]


[알았어.]


다른 ‘부지들’과 마찬가지로 폐교의 강당을 개조하여 만든 NC공장. 심지어 이번엔 외딴곳도 아닌, 구청에서 불과 두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도심의 한복판이었다. 때문에 새벽 시간대에 습격을 감행한 ‘팀’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감염체’의 본체나 의식전이체는 만나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의미도 없는 습격은 아니었다.


[이게 다섯 번째지?]


아인의 의문에, 신호 반대편에서 오블리의 당당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맞아. 이제 놈한텐 하나의 공장밖에 없어.]


레키프의 보스, 조현세가 ‘감염체’에게 제공해준 다섯 곳의 예비 공장부지. 그는 라이벌 조직인 랙돌에게 공장의 위치를 노출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 예비 부지들의 위치를 공유해주길 거부했지만, 오블리는 조현세의 비서가 제공해준 레키프의 모든 NC공장 위치와 한전을 해킹하여 얻어낸 전력사용량 데이터를 교차하여 ‘감염체’가 사용 중인 공장의 위치를 곧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오블리의 활약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블리, 우리가 생산하기 시작한 게 일주일 정도 됐나?]


[응, 만드는 족족 혜인 누나한테 부탁해서 풀고 있으니, 슬슬 놈이 눈치챌 때도 됐는데.]

우리도 변종 NC를 만들어서 관심을 끌자는 크리스의 아이디어를 채택하여, 오블리는 감염체가 만들던 변종 NC를 해킹,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그리드앱을 역설계하여 새로운 해킹앱이 ‘함유’된 NC를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해킹앱의 기능은 간단했다.

만약 기존의 변종 NC에 의해 감염된 인간이 오블리의 NC를 투약하게 되면, 기존의 그리드앱이 채굴서버를 역으로 공격하는 DDoS 역할을 하도록 변질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냐는 아인의 질문에 오블리는 이미 ‘감염체’가 짜놓은 앱코드를 간단히 변경만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시도가 감염체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자기는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데 시장에 물건은 계속 풀리고 있고, 심지어 채굴서버의 트래픽이 점점 과부하되고 있다면 직접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길걸.]


잔뜩 콧대가 높아진 듯한 오블리의 목소리에 크리스는 피식 작은 웃음을 뱉었고, 이미 완성된 NC와 자재들을 들고나오는 아인과 쑈를 향해 인공근육조각이 들러붙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이상,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모두 해산해.”


보스, 조현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검은 그림자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한 목소리가 그 모든 움직임을 멈춰버린다.


“형님, 태하와 병헌이 소식은 아직입니까?”


일그러지진 않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움직이는 현세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찾고 있는 중이다.”


“그냥 애들 다 풀어서 조져야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비서란 새끼들이 작당해서 랙돌이랑 붙어쳐먹었는데, 원년멤버라고 은근슬쩍 봐주시려는 거 아닙니까?”


“그럼 넌 지금 그 두 새끼 조지자고 랙돌이랑 전면전이라도 하자는 얘기냐? 약장사도 망해서 지금 다른 사업체들도 위태위태한 마당에?”


“하지만-”


“시끄러. 태하와 병헌 그 새끼들 일은 내 선에서 내가 알아서 매듭지을 거다. 너네 간부들은 정신 차리고 아랫놈들 관리나 잘하고 있어.”


“······예.”


다시금 되살아나는 어수선함에, 회의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적막에 휩싸인다. 현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 의자에 반쯤 눕듯이 앉아 창밖을 향해 몸을 돌렸고, 사선으로 내리쬐는 아침햇살이 그의 눈가를 찔러온다.


“더 할 얘기 없다고 했을 텐데.”

회색빛 연기와 함께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는 노크도 없이 들어온 미지의 그림자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스의 위엄에도 대답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소리에 현세가 거칠게 몸을 일으키며 짜증을 내뱉으려던 순간-,

“······뭔-”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사무실 층마다 비치된 사무용 안드로이드.

철저하게 현세의 취향에 따라 서양식의 얼굴에 기다란 금발을 곁들인 여성형 모델이었다.

현세는 부르지도 않은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코앞에 다가와 얼굴을 들이미는 것에 첫 번째로 놀랐고, 그 도톰한 입술 사이에서 그가 기억하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친절한 목소리가 아닌, 얼음처럼 차갑고 냉소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에 두 번째로 놀라야 했다.


“내 물건으로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거지, 조현세.”


“뭐, 뭣? 넌-”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소리치는 순간 목을 비틀어버릴 테니.”


어느새 싸늘하게 목을 죄어온, 무기물의 얼음같은 손가락들.

조현세는 빠르게 이 기계 너머에 있는 인물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혼란은 남아있었다.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뭔 물건?”


“네가 알려준 공장 모두가 공격받았다. 그런데 거리에 물건은 계속 풀리고 있지. 그것도 누군가 장난질을 쳐놓은 물건이.”


“그러니까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고? 물건? NC말하는 거야? 우린 니새끼 때문에 장사 접은 지 한참 됐어, 이 씨발새끼야. 갑자기 찾아와서 뭔 씹소리야?”


“그럼 레키프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냐?”


“믿고 자시고 뭔 갑자기 멋대로 쳐들어와서 개소리를 하고 있냐고. 난 약속대로 공장 다 빌려줬어. 네가 훔쳐 간 NC나 빨리 쳐뱉으라고.”


죽임이 지척임에도 흥분과 분노를 감추지 않는 현세의 눈빛에, 안드로이드는 짧게 침묵을 삼키더니 이내 현세의 목에서 손가락을 떼어낸다.


“공장의 부지. 모든 위치를 알고 있는 게 레키프에서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뭐? 그거야-”

잠시 입을 벌린 채로 기억을 헤집다가, 이내 짧은 욕설을 뱉으며 이마를 쓸어넘기는 현세였다.

“씨발, 내 비서들. 그 새끼들이 랙돌에 넘겨버린 거야.”


“그 비서들은 어디에 있나?”


“내가 그걸 알았으면 직접 가서 그 새끼들 이마에 총알을 박아줬겠지.”


여전히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밀쳐내며 담배연기를 마저 빨아들이려던 현세였지만, 인간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차가운 무기물 덩어리는 쉽게 밀려날 생각이 없었다.


“다른 모든 공장들의 위치, 나에게도 공유해라.”


“뭐어? 내가 왜?”


“안 그러면 NC는 없다. 그리고 랙돌에게 찾아가서 네 이름을 대고 깽판을 쳐주지. 그걸 원하나?”


“그게 뭔-”


“5분 주겠다.”


일방적인 통보와, 끔찍한 무표정.

그리고 2.1초의 침묵이 흐른 뒤,


“사장님, 도와드릴까요?”


환한 미소와 함께, 사무용 안드로이드는 현세가 기억하고 있는 친근한 미소로 몸을 세운다. 레키프의 보스는 짤막한 욕설과 함께 반쯤 타버린 담배를 그대로 재떨이 위로 욱여넣어야 했다.




***




본래 카페 주인의 아늑한 고독을 위해 만들어놓은 장소였지만, 최근 들어 수많은 사람이 멋대로 침범하고 있는 2층의 창가. 그러나 주인인 윤혜인은 꿋꿋하게 미소를 유지하며 테이블 맞은편의 두 남자에게 기꺼이 커피잔을 내어주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민병헌 씨. 그리고······, 이태하 씨라고 하셨던가요?”


“맞습니다.”


염색의 시기가 지난 샛노란 머리카락에, 날렵한 인상, 거기에 눈썹 끝의 은색 피어싱까지. 얼마 전까지 강북 3대 마피아 조직 중의 하나인 레키프의 보스 옆에서 비서직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가벼움의 사내였다.

그에 비해 줄곧 날카로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 쪽은 다른 의미로 비서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인상. 흥미로운 조합이다-라고 생각하며, 혜인은 방긋 웃어 보였다.


“그래요, 환영합니다. 뭐어, 형식적인 건 다 치우고, 절 보자고 하신 이유를 들어볼까요?”


바로 본론인가.

병헌은 속으로 짧게 웃으며 태하가 대신 입을 여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희가 제공한 정보는 잘 받으셨겠죠.”


“네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럼 슬슬 그 보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쪽도 바로 본론인가.

혜인은 웃음의 농도를 높인다.


“보답이라, 구체적으로 제가 어떤 걸 해드릴 수 있을까요?”


“지금 상황은 대강 알고 계시겠지만, 레키프의 보스 조현세가 조직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명을 저희가 대신 뒤집어쓴 상태죠.”


“네에, 그건 정말 유감이라고 생각-”


“처음엔 레키프 내부에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병헌 형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만약 조현세의 실체를 레키프의 간부들이 알게 된다면 조직은 반드시 붕괴하게 될 겁니다. 랙돌의 간부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저희는 조현세라는 인간을 조지고 싶은 거지, 레키프라는 가족을 버리려는 생각은 없어요.”


“흐음, 솔직하시네요.”


“그래서 염치없지만, 간부님께 정보에 대한 보답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는 혜인과는 달리, 태하와 병헌의 입술은 이미 마를 대로 마른 상태.


“조현세와 거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뭐어, 그런 셈이죠?”


“그리고 아직 조현세에게 마저 넘겨줄 물건이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네에.”


그걸 누구에게 들은 것인가-는, 혜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 태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용이, 그녀에게 있어 훨씬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조현세에게 남은 물건을 넘겨주기로 한 시간과 장소를 저희에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굿모닝, 디스토피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4) +1 23.11.28 8 0 11쪽
34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3) 23.11.25 8 0 10쪽
33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2) 23.11.23 8 0 11쪽
32 너희들의 미소가 나를 살찌운단다 (1) 23.11.19 11 0 10쪽
31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9) 23.11.16 11 0 12쪽
30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8) 23.11.13 10 0 10쪽
29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7) 23.11.10 10 0 10쪽
28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6) 23.11.07 10 0 10쪽
27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5) 23.11.03 11 0 11쪽
26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4) 23.10.31 12 0 10쪽
25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3) 23.10.27 11 0 10쪽
24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2) 23.10.22 15 0 10쪽
23 절규를 박탈당한 유기견들 (1) 23.10.19 13 0 10쪽
22 Hello, New World 23.10.11 15 0 11쪽
21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4) 23.09.30 14 0 11쪽
20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3) 23.09.29 15 0 10쪽
»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2) 23.09.28 15 0 10쪽
18 굿모닝, 만족의 노예들 (1) 23.09.26 16 0 9쪽
17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5) 23.09.25 14 0 12쪽
16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4) 23.09.22 16 0 9쪽
15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3) 23.09.20 18 0 10쪽
14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2) 23.09.14 16 0 10쪽
13 실패한 유토피아의 특이점 (1) 23.09.12 13 0 10쪽
12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6) 23.09.11 15 0 14쪽
11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5) 23.09.10 16 0 11쪽
10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4) 23.09.09 20 0 11쪽
9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3) 23.09.08 17 0 13쪽
8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2) 23.09.07 22 0 12쪽
7 안드로이드는 조작된 행복의 꿈을 꾸는가? (1) 23.09.05 18 0 9쪽
6 좋은 아침입니다 (5) 23.09.04 23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