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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23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15 18:30
조회
60
추천
4
글자
12쪽

카페 나루의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

DUMMY

"배운 적이 없다고?"

"보고 따라 한 거야, 그냥."

"주문을?"

"그래. 그러니까 복잡하고 어려운 건 못 하는 거라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젠은 추운 듯 몸을 떨었다. 저쪽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담요를 갖다 던져 주었다.


"남이 주문을 외우는 걸 보고 그냥 따라 한다는 거지? 그중에 되는 건 네 마법이 되고, 안 되는 건 그냥 안 되는 거고?"

"대충."


다시 한번 묻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시칼트라 씨에게 호흡법이니,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이니, 정신을 집중하는 법이니, 이것저것 온갖 잡다한 걸 배우고도 루스 하나 제대로 못 쓰는데.


"사짜인 게 문제가 아니었네, 마법사인 게 문제였지."

"그래서 내가 무시하지 말라고 했잖아."


누군가 문을 두 번 두드렸다. 파리스 씨의 방식으로.


"들어오세요."


파리스 씨는 내 말을 듣고는 문을 살짝 열었다가, 젠을 보고는 살짝 망설였다. 그러고는 결국 살짝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알첸브라임 양 앞으로 통신이 왔어요. 아주 급한 용건은 아니라지만, 아마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누가 저한테 연락 같은 걸 하죠?"

"이엘 씨가요."


마침 잘 됐다. 좋은 마법 의사를 아는지 물어봐야지. 사월에 가게 되면, 젠이 회복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는지도 물어보고.


사실 이엘과는 못 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래서 못내 찝찝한 기분이었다. 마치 온통 비를 맞고 나서, 샤워하지 않고 통째로 몸을 말린 느낌이랄까.


"바로 갈게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젠의 어깨를 퍽, 쳤다.

"감기 걸리기 싫으면 가서 씻어라."


파리스 씨는 그 모습을 애써 모른 척했다. 비서라는 사람들은 다 저런 걸까? 통신기는 파리스 씨의 방에 있었다. 방은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물어볼 게 좀 있는데."

"오늘 그쪽으로 갈 예정이야. 필요한 거 있어?"


나와 이엘은 거의 동시에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이엘이 나보고 먼저 말하라는 듯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로 오는 거야? 설마 나 때문에?"

"너 때문이냐고 하면 애매한데, 아닌 건 아니지. 안타레스에서 만났던 아리나딘의 사자 말이야. 내가 눈구멍 안으로 손 집어넣었던 거 기억나?"


"으, 그때 토할 뻔했어."

"안 해서 다행이네. 어쨌든 거기서 돌 조각 같은 걸 꺼냈었지. 그게 본체야. 안타레스에 가서 그 녀석을 심문할 거야."


"꼭 여기서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음."


이엘이 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따지자면 너랑 네 친구가 피해를 본 거잖아? 그러니까 너희도 참관할 자격이 있지. 그러고 보니까, 네 친구는 다 나았어?"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일 리가 없잖아.


"아니.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물어볼 게 좀 있었어. 혹시 아는 마법 의사 없어? 웬만하면 좋은 사람으로."

"며칠이면 낫는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무래도 그렇게 가벼운 부상이 아닌가 봐. 나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가 사월로 갈까 생각하고 있었어. 거기는 좋은 의사가 많을 것 같아서."

"의사는 있긴 한데, 연락은 해 볼게. 오늘 바로 같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할 말이 있나? 오늘 온다고 하니까, 어지간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면 되겠지.


"필요한 건 없어?"


그래서 그런 질문이 돌아왔을 때 순간 당황했다. 필요한 거? 무슨 출장 갔다 돌아오는 아버지 같은 말을 하고 있어.


"그럼 케이크 먹을래. 카페 나루. 어딘지 알지?"

"······알지."


"반응이 왜 이렇게 떨떠름해?"

"아니, 케이크를 들고 공간 이동 장치를 이용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야. 알겠지?"

"알아, 그것도."


우리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통신을 끊었다. 카페 나루의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 카페 나루는 이엘이 다니던 학교 정문 근처에 있었다. 가끔 이엘이 집에 오면서 사다 주고는 했지.


이상한 일이지, 어릴 때는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몇 년 동안 입에도 안 댔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왔다. 사실 세상이라는 게 그런 걸까. 한때는 끔찍하게 사랑했던 것들도 돌아보면 별거 아닌 거지.


그런데 또, 막상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대가 된단 말이야.


통신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복도에 놓인 긴 의자에 젠이 앉아 있었다. 얇은 실내복을 입고 젖은 머리 위에 수건을 얹은 차림이었다.


"뭐 하냐, 여기서."

"뭐래?"

"오늘 여기로 오겠다는데. 그, 아리나딘의 사자라는 녀석 있잖아."


아. 젠한테 자세히 설명을 안 했네. 이엘이 그 녀석을 두 동강 냈을 때, 젠은 공격받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엘이 그 녀석을 무력화시킨 사실도, 그 시체처럼 보이는 것 안에서 물건을 꺼낸 사실도 모르겠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엘이 그 자식을 반으로 갈라 버렸단 말이야. 그리고 그 시체 안에서 무슨 돌 같은 걸 꺼냈는데, 그게 그 자식 본체래. 그러니까 그 돌 같은 게 있으면 그 자식을 심문할 수 있다는 거지."

"아리나딘의 사자를 심문하겠다고?"


젠이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살짝 뗐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쩐지 아까 본 장면 같은데. 아까는 빗물, 이번에는 수돗물이지만.


"그렇대. 그리고 너랑 나도 피해자니까 그걸 참관할 자격이 있대. 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오겠다는 건가 봐."

"피해자라."


따지자면 내가 입은 피해는 거의 없긴 하지만. 젠은 다쳤고 마법조차 쓸 수 없게 되었으니 확실히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몇 시 정도에 도착한다는 말은 없었어?"

"그런 말은 없었는데, 아마 공간 이동 장치로 올 테니까 그렇게 늦지는 않겠지."


그런 걸 어떻게 쓴담. 왠지 꺼림칙하단 말이야. 엄마는 공간 이동 마법을 믿지 않았었다. 그래서 멀리 다닐 일이 있을 때도 손수 차를 운전하거나, 운전할 사람을 구했지. 게다가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늘어난다는데.


사월에서 여기 정도면 얼마나 먼 거리일까?


"무섭지도 않나."

"뭐가 무서운데? 공간 이동 마법이?"


젠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를 흔들자 마치 젖은 우산을 흔들었을 때처럼 다시 빗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질색을 하며 몸을 뒤로 빼는 시늉을 했다.


"털면 되잖아."


내가 몇 걸음 빠지자 젠은 수건으로 제 머리카락을 탈탈 털었다. 젖은 개가 몸을 흔들어 물기를 터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안 무서워? 엄마가 예전부터 그런 말을 종종 했거든. 공간 이동 마법은 잘못 썼다가 사고가 나기 딱 좋다고."

"그건 자동차도 마찬가지잖아. 인간은 자동차 사고로도 죽어."

"생각해 보니까 그건 그렇네."


심한 차 사고를 당하거나, 공간 이동 도중에 사고를 당하거나 죽는 건 똑같은데. 왜 전자의 가능성은 괜찮지만, 후자는 괜찮지 않다고 받아들이는 걸까?


사람은 역시 미지의 존재를 더 두려워하나 봐. 차 사고는 상상하기 쉽지만, 마법 사고라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안 된다.


"이제 가야 해. 대충 저녁에 이엘이 온다고 생각하자고. 그러면 오늘 해야 할 일은 저녁 전에 다 끝내야 한다는 거잖아."

"너한테 해야 할 일 같은 게 있어?"


젠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비꼬는 게 아니라 순전히 궁금해하는 말투였다. 왠지 묘하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시칼트라 선생님이 오늘 안에 루스를 백 번 외우라고 했다고. 하나하나 검사하지는 않겠지만 내 양심에 달린 거니까 진짜 백 번 해야지."


"언제부터 그렇게 양심적이었다고."

"난 양심 빼면 시체거든."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남들한테 자랑할 거라고는 그거 하나밖에 없다고. 누군가를 해치지도 않고 남을 크게 미워하지도 않고. 물론 야영 금지 지역에서 잠을 자거나, 교통 신호를 두 번 정도 어기거나 한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좀 알려줄까?"

"어떻게 알려줄 건데, 넌 마법을 날로 먹은 사짜 마법사잖아. 아니다, 이제 사짜라고 하면 안 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천재인 것 같아. 시칼트라 선생님께 마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어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젠이 제 옆에 수건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꽤 좋은 전략 아닌가? 남이 주문을 외우는 걸 보고 마법을 따라 쓸 수 있다고 했잖아. 유능한 마법사 옆에 있으면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데 더 유리해질 거 아냐.


"아레인스터에 입학하는 건?"

"내가? 이 나이에?"

"무슨 그런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해, 너 상급 학교 안 나왔지?"


젠을 안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추측하건대, 나와 거의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면 상급 학교를 나왔을 리가 없지. 상급 학교까지 졸업하려면 스물다섯 살 전후는 되어야 할 테니까.


"안 나왔지."

"이참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건 어때?"

"내가 지금까지 하던 일은?"


맞다, 얘는 나와 비슷한 신세가 아니었지. 따지고 보면 신관이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바람에 별로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냐."


"그 강신이라는 거 말이지."

"응."


아까 시칼트라 씨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강신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가벼운 일은 아니야. 나는 우리가 하려는 일이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 놓을지조차 알지 못했다. 시칼트라 씨는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테이블이 흔들려도 잔이 깨지는데, 세상이 흔들리면 더한 게 깨지겠지.


"왜 그걸 꼭 해야 한다고 믿는 거야? 강신 의식이 성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희도 잘 모른다고 했었지. 그런데도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글쎄, 그게 신의 일이라서가 아닐까. 그런 질문은 나보다는 서비한테 하는 게 어때?"


결국 젠도 잘 모른다는 건가. 역시 조금 이상하다. 왜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니.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젠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수건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잘 몰라. 나는 아이니의 사람이지. 하지만 내가 여기로 걸어온 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 보니 여기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나와 서비는 많이 달라. 신에 대한 마음도, 삶을 살아가는 태도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


정신을 차려 보니 여기 있었다는 말, 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태어나 보니 이쉐 알첸브라임의 딸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힘 정도는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다른 곳으로 걸어가면 안 되는 거야?


나는 그렇게 물으려 했다.


하지만 돌연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이건 창문이 깨지는 소리인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서 정원으로 난 전면창이 완전히 깨져 있었다.


"싫어, 유리 부스러기."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며 복도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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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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