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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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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글자수 :
79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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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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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이 싸움이 끝나면

DUMMY

이엘 알체이라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정확히는 잠에 빠져 있다기보다 깨어나지 않는다는 쪽이 더 가까울 터였다. 신체적으로는 딱히 별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꽤 건강한 상태라면 모를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이건 그렇게 가벼운 상황이 아니었다. 이쉐 알첸브라임은 거실 소파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그 남편은 사월에서 손에 꼽는 마법 의사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이미 자기는 봐도 모른다며 돌아간 게 몇 명이나 되던가. 사람들은 이게 고등 마법 무기에 의한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고에는 웬만하면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 사고일까? 어쩌면 의사보다는 상담사가 필요한 종류의 일인지도 몰라. 하지만 상담을 한다고 해도, 일단 잠에서 깨어나야 뭘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이엘이 깨어나지 않은 지 사흘째였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해도, 몸이 피곤하다면 하루 정도는 깨지 않고 잘 수 있다. 하지만 이틀은 다르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의사를 부르고, 주변에 수소문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사흘째가 되었다.


"이엘은 왜 학교에 안 가?"

유리오가 걸어오더니 제 엄마 발치에 주저앉았다. 이 애가 무사하다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서도.


마침 부부가 둘 다 사월을 비웠을 때의 일이었다. 누군가 유리오를 납치했고, 이엘이 혼자 아이를 구하러 가서 마법 총을 난사하고 돌아왔다.


이쉐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다. 이엘은 무고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건 옳다고 말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엘을 책망했다. 그럼에도 이엘이 총을 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엘은 총을 반납하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서 그래."

"아픈 거 아니야?"

"아픈 건지도 모르겠네. 의사 선생님들이 와서 봐주실 거야."


마법 무기 사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서 뭐 하겠는가. 아이가 뭘 알겠어? 어른들도 모르는걸. 이쉐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간신히 찾아낸, 그나마 쓸 만했던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법 총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지금의 이엘은 정신에 금이 간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쏘지 말라고 했잖아.


어젯밤 제 자리에 제가 아니라 스승님이 계셨다면 그 총을 쏘지 않으셨을 겁니까?


이엘은 그렇게 말했었지. 그럴 리가 있을까. 이쉐는 거기 있는 모든 인간을 죽였을 것이다. 살을 찢고, 장기를 터뜨리고, 뼈를 부수고 피를 짜내어 죽어가게 만들었겠지.


사실 이엘은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애에게 모질게 굴어서는 안 되었는데.


"나 때문인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유리오는 불쑥 그런 말을 하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눈동자를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설마 기억하고 있는 건가? 아냐. 금방 잠들었다고 했어. 구체적인 기억이 남아 있을 리가 없어.


이쉐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그 작은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유리오가 꽃을 가져오기 시작한 건 그다음 날부터였다. 꽃을 가져온다고 해도 그리 거창하거나 대단한 건 아니었다. 납치 사건 이후로 모두가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으니까. 평소에 나가 놀던 놀이터나 공터 같은 데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원의 꽃은 매일같이 줄어들었다.


이쉐의 남편은 자신이 열심히 기른 꽃을 하나밖에 없는 딸이 매일같이 꺾어 간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재미있어했다.


꽃을 가져가서, 이엘의 머리맡에 꽂아 놓는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화병에 꽂았지만, 매일같이 꽃을 꺾어 오려니 곧 화병도 모자랐다. 대충 아무 물병에나 꽂고, 컵에도 꽂고, 미술 시간에 쓰던 물감 통에도 꽂고, 그러다 보니 이엘의 방은 눈에 띄게 화사해졌다.


"매일 이렇게 꽃 가져오면 힘들지 않아?"

"하나도 안 힘든데."


힘들다고 했다가는 그만두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제 딸의 눈에서 그런 감정을 읽어낸 부부는 그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엘 알체이라는 딱 열흘하고도 이틀 만에 눈을 떴다.


"혹시 내가 지금 관 안에 있는 거야?"


유리오는 이엘의 첫마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 그는 천천히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바위가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고, 입 안은 바짝바짝 말라 꽃병의 물이라도 마시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이게 다 뭐니?"

"꽃이잖아."


"그러니까, 웬 꽃이야?"

"아픈 사람한테는 꽃 가져다주는 거랬어."


소녀는 손에 장미를 들고 있었다. 화원에서 파는, 곱게 손질된 장미가 아니었다. 울타리에서 대충 꺾어 들고 온, 가시조차 다듬어지지 않은 덩굴.


그 가시가 작은 손에 생채기를 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엘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에게 약속했다. 어떻게든 이 애 하나만은, 자기가 평생을 다해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그 애를 신 같은 걸로 만들 수는 없어.


이쉐 알첸브라임은 유리오를 지키기 위해 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 이엘은 그 말을 듣고 제 스승이 완전히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여튼, 그걸 멈출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걸 그는 알았다. 그러려면 발라딜로를 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떤 무서운 일을 불러온다고 하더라도.


그가 막 과거의 감상에서 벗어났을 때, 도달이 텐트 문을 열고 돌아왔다.

"진척 상황은?"

"거의 다 됐어요."


루토가 종이 한 장을 화면 너머로 넘겼다. 도달은 그 종이를 들여다보았다가 순간 숨을 삼켰다.


글씨도 예쁘네. 짙은 푸른색 잉크로 종이 위에 수를 놓은 듯한 필체였다. 비록 그 내용은 발라딜로에 중첩된 마법의 종류와 개수를 적어 놓은 것이었지만.


"발라딜로는 강력한 무기지만 약점이 있어요. 아주 오래된 무기라는 게 그 약점이죠."

"마법적으로, 오래됐다는 건 강점이 아닙니까?"


이엘의 질문에 루토는 고개를 두어 번 까딱였다. 과연 타당한 지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마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고등 마법 무기에 걸린 마법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력을 더해 간다는 것이다.


"그렇죠. 알첸브라임의 위력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강해진 거니까요. 총에 맞은 사람의 육체를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마법이라. 원래는 급소를 맞아 사망한 대상을 없애 버리는 마법이었거든요. 시체, 그러니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거죠."


"그건 몰랐군요."

"이제 원래라면 맞아도 죽지 않을 만한···이를테면 손바닥 같은 곳을 맞아도, 그 마력장 안에 휘말리면서 육체를 잃게 돼요."


살아 있는 사람을 살해하면서, 영혼석으로 만드는 무기 자체는 적지 않다. 하지만 마법 총이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법 총은 원래라면 죽지 않을 사람도 죽음으로 끌고 간다는 거구나."


"발라딜로에 걸린 마법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쉽게 설명하자면 사용자를 혼자만 동떨어지게 만드는 마법이죠. 여기 저와 알체이라 씨, 아자칸 씨가 있지만, 아자칸 씨가 그 활을 쏘게 되면, 여기 있으면서도 여기와 분리된 존재가 되는 거예요."

"하나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토가 손을 들어 제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장난스레 한숨 쉬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까요. 아주 큰 비눗방울이 있다고 가정해요. 그 안에 아자칸 씨를 집어넣는 거죠."

"와."


"아자칸 씨는 여기 있으면서도, 저나 알체이라 씨와는 분리되어 있는 거죠. 그 얇은 막이 우리가 있는 공간을 나누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발라딜로가 그 비눗방울을 만드는 존재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두 사람은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대화를 통해 도달이 그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특정 공간에서 사용자만을 분리하는 마법이라. 이엘은 그런 게 왜 존재하는지 이제야 겨우 알 것 같았다.


"시간을 왜곡하는 데 사용자가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군요."

"맞아요."


"잠깐만요. 그럼 발라딜로의 능력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공간에 간섭한다는 겁니까?"

"옛날 마법이니까요."


발라딜로의 사고 원인은 거기 있었군.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 대상을 지정해서 작동하는 게 아니다. 특정한 공간 전체에 작동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그 능력이 시전자를 휘말리게 할 수도 있다는 거군.


그러면 활을 쏜 사람이 갑자기 3천 년 뒤의 세계로 날아가 버리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건가.


"그 비눗방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사고가 일어나는 거군요?"

"두 분 다 이해가 빠르시네요."


이엘은 루토가 적어 준 종이를 다시 훑어보았다. 편의상 비눗방울이라고 하자.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에서 시전자를 보호해 주는 비눗방울이 작동하지 않으면 사고가 일어난다. 분명 그 비눗방울이 작동하지 않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거군요."

그가 종이에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도달이 그가 가리키는 지점으로 시선을 옮겼다.

"호오."


"네. 아시다시피 발라딜로는 화살 없이도 쏠 수 있는 활이죠. 빛의 화살이 있으니까요."


빛의 화살. 이엘은 제가 그 화살을 쏘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냥 시위를 당겼다 놓았지, 보통 활을 쏘듯이. 그것만으로도 빛의 화살은 알아서 제 궤도를 정해서 날아갔다.

그런 일이 가능한 건 이런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군.


"발라딜로는 빛의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을 최적화하기 위해, 임의로 사용자의 좌표를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사용자가 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비눗방울을 벗어나면 사고가 발생하는 거구나."


도달은 제 어깨를 쓸어내렸다. 소름 돋네. 조준이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지금까지 용케 이런 물건을 뻥뻥 쏴댔다니.


"제 생각도 그래요. 그 두 마법이 맞물려 발동되지 않으면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 같거든요. 원하신다면 궤적을 보정해 주는 마법을 제가 해제할 수도 있죠."

"제가 활을 아무렇게나 쏴대도 쏘는 족족 정확히 맞았던 건 그 마법 덕분이군요."

"그렇지 않을까요? 아자칸 씨가 활 쏘는 법을 체계적으로 익힌 게 아니라면."


아깝다, 아까워. 도달은 입맛을 다셨다. 저 마법을 해제한다면 이제 발라딜로를 이전처럼 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녀가 원래 다루던 무기는 활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싸움은 모든 걸 내다 버리더라도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그녀가 화면 너머로 발라딜로를 내밀며 물었다.


"오래 걸릴까요?"

"아뇨, 아마 한 시간이면 될 거예요."

"그렇다면 부탁드릴게요."


루토는 활을 받았다. 그러고는 방을 떠나 사라져 버렸다. 도달이 한껏 풀어진 자세로 기지개를 켰다.


"괜찮겠어? 이제 저 활을 쏘기가 힘들어질 텐데."

"어쩔 수 없죠. 내가 못 쏴도 이엘은 쏠 수 있을 테니까."


"날 그렇게 믿는 거야?"

"언제나 그랬는데요."

"말은 그렇게 못 할까."


대화는 어색하게 끊겼다. 마치 누군가가 잡아 뜯은 실처럼, 꼬불꼬불하게 꼬이고 엉망으로 흩어진 채로.


"아무래도 서로 쌓인 게 많죠, 우리."


아닌 척하려고 해도 어떻게 되지 않는 일이다. 이엘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도달은 결국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었으니까. 마치 남처럼, 모르는 사람처럼, 먼 사람을 대하듯 저런 말투를 고수하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서로 이름을 부르고, 이따금 뒤통수를 때리고, 욕을 뱉고 팔목을 붙잡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가 아무리 도달을 그리워했다고 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요,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다 터놓고 이야기하자고요."

"그거, 왠지 엄청 불길하게 들리는 말인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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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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