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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37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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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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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남겨진 사람들

DUMMY

"그 유리 벽을 깨부숴야 해."

도달 아자칸이 의식을 차리자마자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그녀의 옆에 앉아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모모 다베라가 고개를 들었다. 환자는 여기에 실려 온 지 이틀 만에 드디어 제대로 정신을 차린 참이었다.


"정신이 드세요?"


저런 비상식적인 말에 이런 뻔한 대답을 했다니. 여자가 깨어나면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았다. 여자는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까? 모모는 원래 월면 지구의 한 학교에서 아프거나 다친 학생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눈에 띄고 싶지 않다. 평범하게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며 살고 싶다. 그건 모모의 오랜 염원이었고, 그녀는 몇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창밖은 아직도 아수라장이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여기를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 중에는 큰 악의 없이, 단지 이 상황에 흥미를 느껴서 여기 와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제국 사냥꾼 제2호가, 제 스승인 제1호를 살해하고 사라졌다. 그런 대사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여기에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어떤 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여기는 어디죠?"

"월면 지구에 있는 진료소예요. 당신은 이틀 만에 정신을 차렸고요."

"이틀이라."


어떻게 되었나요? 지금 이엘은 어디 있죠? 도달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대신 얇은 시트를 걷고 제 상처를 살펴봤을 뿐이었다.


"상처가 꽤 깊으니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을 거예요."

"나갈 수 없다고요."


도달은 그제야 바깥이 소란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모모는 그녀가 전면창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도록 커튼을 살짝 걷어주었다.


"여기에 있으면 안전해요. 진료소의 환자는 완전히 낫기 전까지 그 누구도 끌고 나갈 수 없으니까."

"누가 나를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겁니까."

"글쎄요, 황제 직속군만 아니라면 좋겠는데요."


모모가 큰 뜻 없이 꺼낸 말에 도달의 표정이 변했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건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수액을 맞을 시간이네요. 혹시 본인이 무슨 상처를 입었는지 아세요?"

"그게 날 칼로 찔렀어요. 제국 사냥꾼의 검이었죠."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이군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위에 구멍이 뚫려서 음식물을 먹을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수액을 맞아야 해요."

"나한테 물어볼 게 많을 줄 알았는데요."


그렇지 않다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었다. 도달 아자칸은 현장의 생존자이자 이엘 알체이라의 오랜 파트너였으니까.


이엘이 제 스승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모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무언가 오해가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그에게 누명을 씌웠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같은 뻔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스승의 가족이 곧 그의 가족이었다. 그가 스승을 죽였다는 건, 결국 제 가족을 스스로 죽였다는 뜻이었다. 이엘이 그러리라고는 도저히······.


아니, 이것도 결국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같은 뻔한 말이군.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엘 알체이라가 정말 이쉐 알첸브라임을 쐈냐고 묻는다면, 나는 쐈다고 대답하겠어요.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직접 본 게 아닌데 어떻게 확신하나요?"

"이엘을 아는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도달은 몸을 틀어 침대 아래로 다리를 뻗었다. 그녀는 제 낡은 외투와 부츠, 가방 같은 것들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것들은 아무리 봐도 이 깨끗한 진료소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제 앞에 서 있는 의사가 죄송해요, 너무 더러워서 버리는 물건인 줄 알고 버렸어요. 그렇게 말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엘을 안다면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이엘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의무에서 도피해 왔어요. 그 모든 대가를 한 번에 치를 때가 되었던 거죠."

"의무란 건 뭘 말하는 거죠?"


모모는 도달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모모가 바늘을 꽂는 데 능숙한 덕인지, 도달이 무뎌진 탓인지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달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무언가 할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 노력이 그리 오래 간 건 아니었다.


"한 시간 이따 다시 올게요. 절대 안정이니까 웬만하면 방에서 크게 움직이지 마세요."


모모는 발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그녀가 복도인지 거실인지 모를 곳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달은 그 상대가 남자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겨우 바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커튼을 살짝 걷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구경꾼처럼 보이는 일반인들 역시 적지 않았다. 도대체 뭘 보고 싶어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거지?


도달은 관자놀이에 쨍한 통증을 느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그날 컨테이너에서 있었던 일이 전례 없는 대사건이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게 여기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 것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부드러운 털 슬리퍼를 신고 방안을 걸어 다니던 도달은 방 한구석에서 익숙한 것들을 발견했다. 제 짐이었다. 외투를 포함해 당시에 입었던 옷들. 그리고 가방까지 마치 한 번도 더러워진 적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세제라 해도, 그것들이 아주 낡았다는 사실까지 없었던 것처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가방."


저 의사나 혹은 다른 사람이 가방의 내용물을 건드렸을까? 세탁하는 과정에서 한 번 빼내기야 했겠지만, 원래대로 다시 돌려놓았다면······.


그 안에는 통신기가 들어 있었다. 마치 나쁜 일을 하려는 사람처럼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 지금 상황을 아주 잘 알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해.


의사에게는 자신만만하게 이엘이 이쉐 알첸브라임을 쐈을 거라고 말했지만, 도달 역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믿는 이엘이라면 분명 발라딜로를 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누가 이 모든 걸 좀 더 명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도달은 가방을 뒤져 통신기를 꺼냈다. 버튼을 몇 개 눌러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혹시 소리가 새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장실 안에 숨기로 했다. 익숙한 단축번호를 누르자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살아 있기는 한 거죠? 지금 사월 전체가 난리라고요. 어디 있는 거죠? 당장 제가······."

"조용히 해, 마리파.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진료소 화장실에서 하는 말이 어딘가로 퍼져나가지는 않겠지. 그럴 가능성을 아예 내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걸 걱정했다가는 지금 아무 말도 못 할 거야.


"나는 월면 지구의 어떤 진료소에 있어. 뉴스에서 봤지? 네가 본 내용을 그대로 말해. 그날 컨테이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로 되어 있는지."


"고등 마법 무기로 살해당한 여성의 시신이 나왔습니다. 이쉐 알첸브라임의 시신으로 확인되었고요. 알체이라 씨가 피해자에게 활을 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더군요. 덧붙여 현장에서 알체이라 씨의 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사실상 범인은 알체이라 씨로 확정된 상태입니다. 다만 알체이라 씨는 해당 여성을 살해한 후 현장을 빠져나가서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에요."


"대충 맞네. 그런데 잠깐만, 목격자가 있었다는 건 뭐야? 거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건가?"

"네. 이렇게 증언했다더군요. 컨테이너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여성이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의사를 불렀다고요. 그 여성이······."


"나란 말이지."


도달은 다시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옷 위로는 작은 혈흔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의식을 잃을 만한 상처였다. 누군가 의사를 불러 주지 않았더라면 그 컨테이너 안에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망한 죽음이군. 그렇게 많은 인간의 목을 썰어 죽인 삶에 어울리는 죽음인지도 모른다.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칼을 맞고 죽었다고 하면,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기억되겠지.


"목격자가 누구인지는 나왔나?"

"신상 보호를 위해 민간에는 공개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부장에게 들었습니다. 하나는 아이니의 신관이고, 하나는 유리오 알첸브라임이라고 하더군요."


"잠깐. 유리오 알첸브라임이라고? 그 애가 왜 그때 거기에 있었던 거지?"


도달은 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직 방에 누군가가 들어온 기색은 없었다. 이렇게 길게 대화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지만 해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저히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름만 들은 거라서요. 원칙적으로 살인 사건은 치안관리부에서 맡게 되어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제국 사냥꾼인지라···부장이 저희 쪽으로 이관하기 위해 싸우는 중인 것 같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 이엘 알체이라와 이쉐 알첸브라임을 그렇게 부를 날이 오는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내 이름은 이미 공개된 거지? 진료소 주변을 구경꾼들이 에워싸고 있어. 대체 뭐 때문에 다들 이렇게 모여든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 지금은 대외적으로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가 도달 아자칸이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누가 올지도 몰라서 일단 끊을게."


"잠시만요. 월면 지구의 진료소라고 했죠? 안전한 건가요? 밖을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다니······."

"그냥 가십거리를 찾아서 온 거겠지. 별일은 없을 거야. 오히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으면 위험한 일이 생기기가 더 어려우니까."


"네···뭐, 알겠습니다."


도달은 통신을 끊고, 가방과 옷을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새 옷을 살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외투며 가방 같은 것들은 죄다 이엘과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던 시절에 쓰던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키나 체격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이엘과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때는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고, 이엘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답했었다.


하지만 도달은 사실 자신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때 그렇게 말한 데에는 숨은 함의가 있었다. 나는 변했고, 모든 건 다 변해. 그러니까 너도 변해야 해. 그녀는 이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보람이 있게도, 결국 이엘은 변해 버린 모양이었다.


"수액 다 맞으셨으면······."

"이엘은 변했어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의사는 그녀의 팔에서 바늘을 뽑았다. 도달은 입이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았지? 왜 이런 말을 주절거리고 있는 거지?


"그 말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게 이엘이 원하는 일이었다는 뜻인가요?"

"적어도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거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인내심이 좋은 의사였다. 처음부터 이걸 묻고 싶었을 텐데. 도달은 뻐근한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 있는 게 느껴졌다.


"원래 이쉐 알첸브라임을 쏘려고 했던 건 나였어요. 내가 그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엘이 그걸 떠맡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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