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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62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2.01 23:55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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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정리정돈

DUMMY

유리 돔처럼 보이는 결계 안에서, 인형의 집은 불타고 있었다. 이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하게도 담배가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줄기차게 피워 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충동을 지금처럼 강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그의 허리쯤에나 올 만큼 작은 소녀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담배 한 대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죠, 지금?"

"어떻게 알았니?"

"척하면 척이죠."


소녀는 이엘이 내민 항아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 이렇게 맛없는 걸 가지고 다녀."

"뭐, 어쩌다 보니······."


돔 안에는 이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에 한 번 탔고, 물에 한 번 젖었으니 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불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확인하고 차에 탔다.


"이제 어쩌려고?"

"사월로 돌아가야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물론 안전사냥부의 귀찮은 감사가 맞이해 주겠지만, 달리 갈 곳도 없을뿐더러 다른 어딘가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네."

"그건 제가 할 말인 것 같은데요."


인형의 집을 파괴한 건 전적으로 개인적인 복수였다. 이제 그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사람을 죽인 적 있었나요?"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


조수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소녀의 표정이 서서히 흐려졌다. 이엘은 애써 그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없어.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 간 적도 없으니까."

"그럼, 자나에게 영혼석을 맡긴 적은?"


"글쎄, 있었을지도.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르지. 지금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밝히면 실망할 거니?"


"글쎄요. 저는 더 실망스러운 말을 할 예정이라서요."

"더 실망스러운 말이라면?"


이엘은 운전대를 잡은 채 한숨을 푹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분께 돌아가시죠."

"갑자기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쭉 생각해 봤습니다, 안전하게 숨어 지낼 만한 곳이 거기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유리오는 집을 떠난 뒤 한동안 제 고모의 집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이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리오의 고모인 미스트라 질프렌은 사월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월에 있는 애를 찾기 위해 사진을 뿌리고 그 난리를 쳤단 거지.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집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하지만 너무 수상해 보이는 소녀를 숨기기에는 딱 맞은 곳이었으니까.


"어떻게 거기 가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황제를 죽이겠다느니, 유리오를 신으로 만들겠다느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시죠."


애써 초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이엘은 사실 눈동자조차 떨고 있었다. 원래 쓰던 선글라스는 팔경 지구의 컨테이너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새 걸 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맨얼굴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다음에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조심스레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소녀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를 죽이겠다니,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결국 안 죽고 돌아오셨네요."

"내가 책상에 써 둔 서류. 마리포사한테 유출한 게 라브롭스 씨죠?"


제국 사냥꾼 숙소 사무실의 직원, 라브롭스는 서슬 퍼런 이엘의 표정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긴, 그 정도 성격은 되어야 여기서 일할 수 있을 터였다.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했는데요. 그리고 유출하지 않았습니다, 마리포사 씨에게 이엘 씨의 방에 가 보라고 말했을 뿐이죠. 누구나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보안 수준을 유지한 사람의 잘못이 아닐까요?"


"누구나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보안 수준을 유지한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와도 된다는 건 아니었는데."

"마리포사 씨가 '아무나'라는 거죠? 이 말을 들으시면 상당히 섭섭해하실 것 같은데······."


"쓸데없는 논쟁은 그만두자고요. 당연히 나를 찾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겠죠?"


라브롭스는 손가락을 들어 사무실 책상에 있는 통신기를 가리켰다. 선이 뽑혀 있었다.


"숙소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없는 건 오늘 오전에 부장님께서 다녀가셨기 때문이에요."

"우리 부장?"

"그럼 어느 부장을 제가 부장님이라고 부르겠어요."


이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상한 연락이 많이 온다는 이유로 통신기의 선을 뽑아 버린 라브롭스나,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부장이나.


"부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저한테 중요한 이야기를 남기시진 않죠. 지금 연락해 봐야겠네요."


"아니, 아니. 굳이 하지는 말고. 감사 이야기일 것 같아서 귀찮거든요."

"감사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이쉐 알첸브라임을 쐈는데. 라브롭스는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엘은 마치 그 말을 들은 것처럼 느꼈다.


"본인이 떳떳하시다면 감사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죠. 그리고, 제 생각엔 안전사냥부에서 알체이라 씨를 쥐 잡듯 잡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야, 알체이라 씨를 숙청해 버리면 안전사냥부의 힘이 확 약해지니까요. 하루아침에 1호와 2호를 모두 잃어버리면 다른 부서와의 균형이 깨지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었다. 특히, 안전사냥부는 최근 치안관리부와의 줄다리기에 상당히 매진하고 있었으니까.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긴데, 지금 3호는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글쎄요. 사월에는 안 오신 지 꽤 되었는데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건 차치하고, 유리오 알첸브라임이 지금 사월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라브롭스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얼굴을 찌푸린 이엘 알체이라를 마주하는 게 그리 유쾌하거나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기로 했다.


"아직 치안관리부에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부장님이 다녀가신 것도 그 일 때문일걸요."

"치안관리부에 있다고?"


이렇게 보니 새삼스럽게 성격 나빠 보이는군. 라브롭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사히 살아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역시 귀찮은 일을 몰고 다니는 남자라니까.


"그때 안전사냥부에 통신을 보내 자백하셨죠? 이쉐 알첸브라임을 사살했으니 조사관을 보내 달라고."

"그랬었죠."


"그 자백이 아직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이엘 알체이라가 범인이 되지 않은 상태인 거죠."

"대체 왜?"


라브롭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보나 마나 치안관리부의 수작이겠지. 제국 사냥꾼이 범인인 사건이 되어 버리면, 수사 권한은 치안관리부에서 안전사냥부로 넘어가게 된다.


제국 사냥꾼은 살인에 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지만, 안전사냥부는 제국 사냥꾼이 계시를 따르는 살인을 저질렀는지 조사할 권한을 가지니까.


"이쉐 알첸브라임이 죽었다는 대사건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겠죠. 알체이라 씨가 범인이라면 이제 치안관리부는 손 떼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멍청한 짓이군요. 나 말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그냥 어깃장을 놓는 거죠."

"그래서 유리오가 치안관리부에 아직 붙잡혀 있다는 겁니까?"


"붙잡힌 것까지는 아니고, 꽤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들은 것 같긴 하지만······."

"같이 좀 갑시다."


이엘은 라브롭스의 팔을 잡아끌었다. 라브롭스는 저도 모르게 질질 끌려 사무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저는 왜 데려가는 겁니까?"

"인질이 필요할 것 같아서."

"뭐라고요?"


농담을 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라브롭스는 이내 제 옆구리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치를 떨었다. 아예 막 나가기로 했구만.


"이해하세요. 총이 없어서 어쩔 수 없으니까."

"총은 대체 어디다 빼놓고 온 건데요?"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려도 되는 겁니까?"

"상관없겠죠, 어차피 나 말고 그걸 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텐데."


이엘은 문득 마나에 관해 떠올렸다. 마나는 그때 그 사막에서 죽지 않고, 제 발로 중앙마법부에 가서 고등 마법 무기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서명을 했다.


마나가 거기서 죽지 않았다는 건 결국 도달이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는 아주 오랫동안 도달을 오해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도달 역시 굳이 그 오해를 풀려 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어디에 있지?"


치안관리부 청사에서 비명이 솟았다. 그럴 만도 했다. 웬 일반인의 옆구리에 칼을 들이댄 이엘 알체이라가 청사에 들이닥쳤으니. 이엘은 아수라장 가운데서 도망치는 조사관을 아무나 붙잡았다.


"유리오 알첸브라임과 아이니의 신관이 어디 있는지 말해."

"저, 정말 몰라요······."


어딘가에서 사진기의 셔터 소리가 들렸다. 내일 조간신문에 올라가겠군.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조사관은 화를 내는 것도 잊은 채 쏜살같이 도망쳐, 사라져 버렸다.


유리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이엘이 택한 방법은, 청사 내의 모든 방을 뒤져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반복하며 3층에 다다르자, 대다수의 방은 이미 문이 잠겨 있었다. 아니면 지키는 사람 없이 텅 빈 상태였다.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밀면 당연히 다 도망가죠."

"그거 아십니까, 라브롭스 씨? 저는 자제력을 잃어버렸어요."

"말 안 해도 그렇게 보여요."


복도 저쪽에서부터 인기척이 다가왔다. 이엘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고개를 휙, 돌렸다. 긴 부츠를 신고 모자를 쓴 여자는 그가 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로체스티아 조사관."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이엘의 맨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이엘 알체이라."

"사표를 냈다고 들었는데요."


"어쩔 수 없이 복직했지.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았으니까."

"해야 할 일이 많은 건 저와 같군요."


"뭐 때문에 이 난리를 피웠는지 설명을 들어야겠군."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어디 있습니까?"


이엘은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인질을 라브롭스에서 로체로 바꿀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치안관리부의 사람들은 같은 조직의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길 테니까.


그러나 의외로, 로체는 꽤 선선한 태도로 빠르게 대답했다.


"부장님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걸로 안다만."

"그 여자 집에 있단 말입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어머니를 잃은 소녀가 어머니의 친구 집에서 지내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알체이라."


그런 명분을 내세웠단 말이지. 이엘은 라브롭스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무래도 뱀 소굴로 들어갈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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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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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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