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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16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14 18:30
조회
63
추천
4
글자
13쪽

천재 마법사 유망주

DUMMY

"흔들린 걸 바로잡을 힘을 길러야겠죠?"

"그게 마법이라고 말씀하실 건 아니죠?"

"마법도 방법의 하나죠."


농땡이는 끝인가.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밤의 숲 근처에 있던 렘다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젠은 마법 총을 사용하기 위해 속임수를 쓰자고 말했었다.


총이 제 주인을 인식하는 회로에 혼선을 주자는 거였지. 마법 물약을 먹어서 내 몸에 흐르는 기운이 일시적으로 달라지면, 총을 속일 수 있다면서.


물론 그 계획은 장렬하게 실패했지만, 나는 그 대신 기묘한 꿈을 꿨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엄마가 나오는 꿈을 꾸지 않았네.


"다시 해 볼까요,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하고."

"솔직히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요."


두 번째였던가, 세 번째였던가.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니 주위는 온통 캄캄했다. 마치 세상에 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없는 것 같았는데.


"루스."


시칼트라 씨가 빛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휘파람 불듯 쉬워 보였다. 구체는 둥둥 떠서 창가로 날아갔다. 창가가 확 밝아지자 바깥 풍경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거의 물을 쏟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양심껏, 집중해서 백 번. 끝나고 나면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해요. 산책을 하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연구실에 혼자 남겨졌다. 이 날씨에 산책이라니요. 백 번을 하면 이게 될까? 기다란 책상 위에 드러누워 혼자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칼트라 씨가 멀어지자 창가에 떠 있던 구체는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루스."


역시 이번에도 안 되네. 이렇게 입으로 주문만 외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시칼트라 씨는 집중해서 백 번이라고 했는데, 나는 집중하는 법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아.


문득 창가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일어났다. 빗속에 우비를 입은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나는 빗속에서도 그 눈동자를 알아봤다.


"뭐 해, 거기서?"


안 들리겠구나.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은 얼핏 봐도 두꺼워 보였다. 젠이 문을 열라는 듯 잠금쇠 쪽을 가리켰다. 창을 활짝 열자 거센 비바람이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젠은 훌쩍 창틀을 뛰어넘어 연구실로 들어왔다.


"으."


젖은 우비에서 물이 거의 쏟아지다시피 했다. 창문을 다시 굳게 걸어 잠갔다. 이 날씨에 무슨 생각으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거야. 뭐, 나도 나가서 좀 뛰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올 줄 몰랐다고."

"안타레스는 원래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던데."


그래서 건물 지붕이 죄다 이상하게 생겼잖아. 젠은 우비를 벗어서 연구실 입구 앞 발판에 대충 내려놓았다.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시그니 호에."


이엘이 호수 이야기를 했었지. 안타레스의 명물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같이 가자는 식으로 말했었는데, 이엘은 곧장 사월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이후로 엄청난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시칼트라 선생님이 그러더라. 여기를 떠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왜?"

"이제 난 위험해질 거래.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건 엄마 때문이겠지."

"이쉐 알첸브라임,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마법 총 '알첸브라임'이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총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밖에 없을 터였다.


젠이 팔을 뻗어 뒷머리에서 물기를 짜냈다.


"이건 순전히 궁금한 건데, 네 어머니는 제국 사냥꾼이잖아. 제국 사냥꾼이 사람을 죽였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건가?"


시칼트라 씨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엄마는 무언가를 저지르고 다니고 있다. 그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뭐,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네 말이 맞지. 제국 사냥꾼이 사람을 죽이는 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니까. 그게 계시에 부합하기만 하면 말이야."

"법적으로나 그렇다는 건가. 그렇긴 하지."

"가장 큰 문제는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예전에는 제국 사냥꾼에게 원한을 품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대적이라는 게 뭔지 알아?"

"처음 들어."


"그건 제국 사냥꾼의 면책 특권을 깰 방법이야. 예를 들어서 네가 제국 사냥꾼에게 살해당해. 그러면 나나 서비,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과 적법한 결투를 할 수 있는 거야. 당연히 죽여도 되지."


실제로 종종 대적을 신청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주변에서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의미 있는 제도 같지는 않은데."

"동감이야."


내가 대적이라는 개념에 관해 처음 들었을 때 했던 생각과 똑같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제국 사냥꾼은 일반인보다 강하다. 대적을 신청하는 사람이 훈련받은 사람이나 용병이라도 되지 않는 한, 제국 사냥꾼과 싸워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제국 사냥꾼 자체가 마치 법 없는 시대에나 있었을 것 같은 존재지. 대적이라는 제도도 대충 비슷하게 느껴져."


그러니까, 사실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감히 대적을 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할 수 있다는 거지. 명목상으로라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건 다르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거든.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그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급격하게 억울해진다고. 갑자기 그 일을 할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느껴지고."


"아, 그 느낌 알지.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니까, 갑자기 과거의 내가 천재 마법사였던 것처럼 느껴지거든."

"냉정하게 말하자면 너는 천재 마법사였던 적이 없을걸."


젠이 픽 웃고는 나무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쉐 알첸브라임은 언제나 적이 많았어. 하지만 예전에는 적들이 자신들도 반격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 우선 대적의 기회가 언제나 열려 있었고, 나랑 아빠가, 그러니까, 가족이 사월에 살고 있었으니까."


"가족이 사월에 살고 있었다는 게 무슨 상관이지?"

"그런 거야. 만약 정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만한 일이 생긴다면,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타격을 입혀야 한다면, 가족을 찾아가서 죽여버리면 돼."


젠은 얼굴을 구긴 채 삐딱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분위기가 이상한데. 마치 오랜 악우에게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 주인공 같은 느낌······. 아니, 그렇게 아픈 과거는 없었다고.


"실제로는 별일 없었거든. 한 번 정도 납치당한 적은 있지만."

"보통은 그걸 별일이라고 해."


"그거 알고 있었어? 시칼트라 선생님 말이야. 원래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라는 데의 연구원이었대."

"아니."


"얼마 전에 연구소가 테러를 당하는 바람에 선생님 말고 다 죽었대. 별일이라고 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일을 겪고 사람이 멀쩡할 수가 있나? 시칼트라 씨는 분명 예쁘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주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거리감을 좁힐 수가 없단 말이지. 보통 그런 사람이 내게 잘해주면 마냥 좋아야 하는데.


사람 같지 않기 때문이야. 나라면 아무것도 못 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텐데.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단 말이야?


"그건 확실히 별일이네."

"하여튼, 나는 그렇게 큰일을 겪은 적은 없다는 거지. 적어도 아직은. 앞으로 위험해질 거라는 건 알아. 왜냐면 이쉐 알첸브라임은 사라져 버렸으니까. 사라졌지만 분명히 어딘가에는 존재하니까."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건, 죽은 것처럼 살 생각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 지금까지의 삶에 회의를 느꼈던 걸까, 그래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 엄마에게 그런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사라진 지 5년 정도 됐다고 했던가? 서서히 움직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면 누군가는 불안감을 느낄 거야."

"그래, 엄마의 원수든, 적이든, 제국 사냥꾼에게 반감을 품은 누군가든, 엄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지금까지는."


"그 모든 사람이 이제 너를 노릴 수도 있다는 건가?"

"뭐어, 말하자면 그렇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물론 내 또래의 여자애들을 원형 경기장에 모아 놓고, 싸우게 해서 순위를 겨룬다면 꽤 상위권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승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을 노리는 거대한 세력들에 맞서 자신을 지킬 수 있냐,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정말 아니니까.


"부모의 업보를 자식이 갚아야 한다는 건 부당하다거나, 나는 아직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애라든지, 그런 논리는 먹히지 않는 세상이라고."


사실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애는 아니지. 제국 사냥꾼이니까. 제국 사냥꾼이 되기로 한 데도, 별 이유가 없었다. 그냥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엄마도 제국 사냥꾼이고, 아빠도 제국 사냥꾼이고, 이엘도 제국 사냥꾼이다. 그렇다면 나도 제국 사냥꾼이 될까? 딱 그 정도.


정말 될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아레인스터의 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나를 공식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대. 학생이 되지 않더라도 여기 남으면 여기 사람들이 내 신변을 지켜줄 거고."

"언제까지?"


"그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 죽을 때까지 여기 숨어 있을 수는 없잖아?"

"여기서 지내면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확실한 건지도 모르는 거지. 이 사람들의 호의는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일이 이 사람들 생각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 아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으면 무조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가족도 아니고, 만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내 일을 언제까지나 맡겨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쭉 여기 있을 수는 없어. 떠나기는 해야 해. 언제 떠날지가 문제지."

"난 지금 당장이라도 상관없는데."

"네, 네. 그러시겠죠."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적어도 젠이 회복할 때까지는 여기 있고 싶었다. 만약 나 때문에 젠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미안하니까.


굳이 따지자면, 얼마 전에 아리나딘의 사자를 만났던 것도 반쯤은 나 때문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아리나딘의 신자들 이야기 말인데."

"응."

"이엘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거야. 이전에도 그 사자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했었어. 좀 들어보는 건 어때?"


우리가 신전 지하에서 발견했던 시체도 그렇고, 젠은 아리나딘이라는 세력에 관해 자세히 조사하고 싶어 했으니까. 젠이 젖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털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 사람은 여기 없잖아."

"우리가 사월로 가는 건 어때?"


"갑자기 또 무슨 소리냐."

"생각해 보니까, 이엘처럼 확실한 경호원은 없잖아. 그리고 사월에는 더 좋은 의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진지하게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 하더라도, 사월 한복판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생각해 보자고. 마법 배우는 건 잘 되고 있냐? 사월에는 너한테 마법 가르쳐 줄 사람 같은 건 없다고."

"마법이라······."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여기서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그보다, 너는 어떻게 배운 건데? 사짜잖아. 정식으로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마법을 어디서 배웠냐고?"


젖은 나무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빗줄기가 세차게 창문을 때리는 소리. 내가 신발 밑창으로 마룻바닥을 툭툭 치는 소리 가운데서 젠은 한참을 침묵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렇게 말할 셈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꽤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다.


"배운 적이···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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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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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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