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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79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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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금연 구역

DUMMY

그러고 보니, 이런 데서 놀아 본 적이 없구나. 나는 한동안 공원에 돗자리나 텐트를 펴 놓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도 있고, 또래 친구들끼리 놀러 나온 무리도 있었다.


요즘이 딱 좋은 날씨지. 이제 보름 정도만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추워진다고. 하여튼 공원 풍경은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속해 있을 만한 곳이 아닌 것 같다고 할까.


몇몇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그렇게 수상해 보이나? 이런 데 섞여 있으면 그래도 젊은 애 아빠 정도로는······.


안 보이는 모양이군.


도달이 말한, 검은 깃발을 단 텐트는 야영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구석에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군. 게다가 크기나 구조가 꽤 본격적이었다. 추워지기 전이라면 여기서 살아도 되겠는데.


텐트 앞에는 큼지막한 그늘막 아래로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재떨이가 없는 걸 보니 공원 안은 완전히 금연인 모양이군.


그런데 텐트는 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하지?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면 입구 옆에 달린 조그만 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종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입구가 살짝 열렸다.


"나야."

"그렇구나, 들어와요."


안에서 들린 건 도달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의 풍경을 보고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기다 집을 짓고 살기로 한 거야?"

"그 정도인가?"


가장 먼저 보인 건 중앙에 놓인 커다란 책상이었다. 그 위에는 지도나 문서, 사진 같은 것들이 정신없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핀이 꽂힌 지도,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풍경이군.


"전쟁 영화에서 사령관들이 쓰는 천막에 들어가 보면 이렇게 돼 있잖아."

"그건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쁘지 않네요."


"원래는 나쁘다고 생각했다고?"

"나라고 집이나 호텔을 놔두고 이런 데서 자고 싶겠어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말인데, 집이 있었어?"


도달과 집.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도달은 사월을 떠나기 전까지 제국 사냥꾼 숙소에서 지냈었다. 그나마도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없긴 하네."

"그럴 줄 알았어."


도달은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와 거의 비슷한 차림이었다. 짙은 녹색의 기다란 코트는 마치 언제까지 더 입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상태 같았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커다란 가방은 텐트 입구 쪽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검은 홀터넥 티셔츠와 높게 대충 묶어 올린 머리카락. 확실히 내가 아는 진짜 도달이었다. 저 구석에 놓인 활 자루까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요?"


도달이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제 외투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가, 조금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에 툭, 하고 집어던졌다. 근린공원은 당연히 모든 구역이 금연 구역이다.


"요즘 워낙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져서. 믿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거든."

"무슨 이상한 일?"


그녀는 책상 앞에 걸터앉았다. 이렇게 보니까 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새 외투를 사야겠는걸.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났어. 알고 있었어?"

"지금 아리나딘의 수장이죠, 사실상."


역시 알고 있었군. 나는 한숨을 쉬며 그 맞은편 의자를 당겨 빼냈다. 의자 위에는 뒤집힌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내가 거기로 손을 뻗자, 도달이 몸을 일으키며 제지했다.


"아, 뒤집지 말고 그대로 나한테 줘요."

"내가 보면 안 되는 건가?"

"안 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은 안 보는 게 좋을 거예요."


도달은 내게서 사진을 받아 제 옆에 있던 하얀 봉투에 대충 넣어 두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이쉐 알첸브라임이 아리나딘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안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우리가 사월에서 만났을 때 그걸 알고 있었다면 이엘한테 말했을 거예요."

"그래."


내 이야기를 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아는 걸 전부 털어놓을 만한 사람은 도달밖에 없었다. 어제 라브롭스와 통신했을 때, 도달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말할지 잠시 고민했다.


일이 이렇게 내 뜻대로 풀릴 때도 있다니. 오히려 불길하군.


"실은 이미 만났어."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났다고요?"


도달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가리켰다.


"어디서요?"

"사냥의 숲에서. 신전 앞에 진을 치고 있어. 제국 사냥꾼이 되기 위해 신전에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지 감시하고 있는 것 같더군."


"감시해서 뭘 하려고?"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어. 누군가가 계시를 받는 걸."


온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거기에서 있었던 일은 무슨 괴담처럼 느껴졌다. 도달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황당해하지 않을까?


"아는 게 좀 있는 것 같네요. 하나씩 교환할까요."

"그래, 먼저 말해."


"뭐라도 좀 마실까. 커피랑 차 중에 뭐로 할래요?"

"무슨 차가 있는데?"


"녹차랑 율무차, 유자차."

"그럼 율무차로."


도달은 텐트 구석으로 걸어가 전기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전기까지 쓸 수 있다니, 정말 여기서 살아도 되겠네.


"이쉐 알첸브라임이 아리나딘 교단에 몸을 담근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오래됐다고 해도 2년 정도일 걸로 추측하고 있어요."

"그래, 움직이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지. 오랫동안 죽은 사람처럼 조용했으니까."


"왜 아리나딘에 투신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좀 더 원론적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사람이 왜 종교를 믿는지 잘 모르겠어. 그게 한심하다거나 쓸데없는 짓이라는 건 아냐. 단순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지."


"학교 다닐 때 신학 안 들었어요?"

"학교를 그렇게 열심히 안 다녀서."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나는 도달의 손끝에서 돌아가는 펜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것도 할 줄 알다니. 예전부터 온갖 잡기술에 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종교를 왜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나딘을 왜 믿는지는 알 것 같은데. 아리나딘은 혼돈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었죠.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그런 거예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아주 마음에 든다면, 혼란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겠죠."

"그렇겠지, 현상을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일 테니까."


펜은 떨어질 듯 말 듯 하면서도 도달의 손끝을 타고 잘만 움직였다. 마치 곡예라도 부리는 것처럼.


"그러니까 아리나딘을 믿는다거나 아리나딘과 함께 한다는 건 그런 거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 체제를 뒤엎어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거기로 빨려 들어가는 거지."


"얼핏 보기에는 참 멋있어 보이는 일이지. 세상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거. 위와 아래도 섞어 버리고, 좌우도 뒤틀어 버리고. 특히 이 세상이 부조리한 곳이라는 생각을 할수록 거기 심취하기 쉬울 거야."


"그래요. 이제 대충은 알겠죠? 아리나딘은 언젠가 교세가 커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어요. 그게 언제냐의 문제였을 뿐이지."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건가. 불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참 달콤한 유혹이다. 모든 걸 뒤흔들어 놓자는 말.


"이쉐 알첸브라임은 대체 뭐가 불만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건 그거예요. 그건 아무리 조사해도 알 수가 없었거든. 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건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잘 아는 영역이군. 적어도 도달보다는.


"그 사람은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왜요?"


도달이 펜을 툭, 놓았다. 그러고는 차를 끓이기 위해 텐트 구석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도달이 내려놓은 펜을 주워 들고 몇 번 매만져 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잘 돌릴 수가 없었다.


"제국 사냥꾼이 되는 인간은 무조건 불행해진다고 믿으니까. 넌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제국 사냥꾼이 되는 인간은 무조건 불행해진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자체는 알 것 같네요."


거기 공감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점이 더 의외였다. 도달이라면 헛소리라고 일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도달은 김이 피어오르는 잔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를 내 쪽으로 내려놓았다.


"반대로, 어떤 직업을 갖게 되면 반드시 행복해진다. 그런 직업이 있을까요?"

"없어."


"그렇겠죠? 무조건이나 반드시, 이런 말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거든요. 그런 말을 썼다가는 무조건 반박당하죠."


하마터면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여기다가 마실 걸 쏟았다가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게 뻔하다고.


"정리하자면 그래요. 제국 사냥꾼이 되는 인간은 무조건 불행해진다, 이쉐 알첸브라임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말이죠."

나는 이다음에 올 말을 알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지금 불행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했었지. 불행해진다는 건, 절대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제 안에 생기는 거라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고개를 돌려 보면 그 구멍이 한구석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고. 확실히 그건 불행한 사람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신이 제국 사냥꾼이라는 데서 찾는 거겠죠."

"마스터 라리안느, 기억나?"


도달이 천천히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찾듯 두리번거렸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그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우리는 마나 씨의 집에서도 그 이름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제국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면 이쉐 알첸브라임이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를 없애려 하는 건 확실한 일이네요. 그 이유도 어느 정도는 가닥이 잡혔고."

"그 목적 때문에 아리나딘과 손을 잡았다는 것까지는 확실하지."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셨다. 이렇게 도달과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 다른 모든 일들이 내게서 멀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내 스승과 결착을 지어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아무 상관 없었을 텐데.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는 사라져야 한다. 누가 그렇게 떠들어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겠죠."


하지만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정말 그렇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다.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그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동안 무언가는 반드시 크게 다칠 것이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와는 별로 관계없지만."

"뭔데요?"


"제국 사냥꾼이 돼서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 있어?"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도달은 등받이를 쭉 젖히며 거의 드러누웠다. 손끝에서는 펜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지도며 서류,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지도 여기저기에 꽂힌 핀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아리나딘 교단의 거점이군.


"생각해 봤는데, 제국 사냥꾼이 되어서 불행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불행에는 원래 합리적인 이유 같은 게 없잖아요."

"그런가."


"평생을 선하게 남들 도우며 살아도, 어느 날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을 수도 있죠."

"그래, 때로 불행에는 전조도 없더라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는 않죠. 하지만 그건 내가 변호사였어도 그랬을걸요."


무언가 얹힌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어? 그 질문을 하려고 했다. 내가 아는 한 도달은 일을 가리지 않았다. 제 계시에 부합하는 내용이라면 주저 없이 처리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만큼 영혼이 닳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입을 떼기 전에, 도달은 책상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한 대 피워야겠어. 가자고요."


그래, 월면 근린공원은 금연 구역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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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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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정리정돈 +1 22.12.01 35 2 12쪽
140 결착 22.12.01 27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2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5 1 12쪽
137 실종 22.11.25 30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6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5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7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4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6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2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8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50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 금연 구역 +1 22.09.30 41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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