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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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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4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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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뻐꾸기 사냥

DUMMY

혼자 숲속을 걷고 있자니 진짜 사냥꾼이 된 기분이었다. 제국 사냥꾼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사냥꾼. 숲에서 사냥을 하고, 가죽과 고기를 얻어 쓰고, 제 목숨은 제가 책임지는 그런 인간. 그런 존재에 대해 생각하니 문득 나를 둘러싼 일들이 쓸데없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츠를 신고 눈밭을 헤치며 걷는 진짜 사냥꾼. 상상만 해도 멋지군.


나, 이엘 알체이라는 지금 제 스승을 죽이러 가는 길이다. 더 이상 그 사람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결론이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매사에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모든 일은 점점 더 나빠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잘못된 일을 할까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마치 누군가와 몸을 부딪칠까 두려워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래서야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


이쉐 알첸브라임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누군가를 마법 총으로 살해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거기에서 마법 총 알첸브라임으로 만든 영혼석이 나왔으니까. 알첸브라임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다.


그리고 또 그 사람은 자나를 살해하려 했다. 물론 자나가 처한 특수한 상황 덕분에, 자나는 생물학적 의미로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살의를 품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심증을 제쳐 두고,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이미 이쉐 알첸브라임은 위험인물이다.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든.


왜 하필 내가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게도,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냥의 숲 입구에서부터 신전까지는 거의 일방통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도 딱히 볼 게 없는 숲이었는데, 여전히 그렇군. 여기 오는 사람들은 신전에 오려는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체로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렇게 엉성한 경비 초소 하나만 있는 거겠지. 하지만 최근에 길이 다져진 흔적이 있다는 건 역시 그리 심상치 않았다. 아까 그 경비원이 요즘 소란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여기 온 게 아이니의 신자들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냥 본인들의 신을 모시러 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여기 와 있는 게 남의 둥지를 차지하려는 뻐꾸기 새끼들이라는 것이다. 맹세코 나는 아이니를 믿어 본 적이 없다. 사냥의 신이든, 제국 사냥꾼을 수호하는 신이든 내가 살아가는 데 아무 관계도 없는 존재니까.


하지만 아리나딘의 신자들이 여기를 짓밟는다고 생각하면 그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일자로 난 길을 따라 걷지 않았다. 길이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 정직하게 거기로 가는 건 내 머리통을 과녁으로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무나 풀 따위를 헤치며 걷는 게 얼마 만인지.


새삼 내가 나약한 도시 인간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긴 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을 것이다. 이래서야 진짜 사냥꾼이 되기는 힘들겠는데.


저 멀리 신전 건물이 작은 크기로 눈에 들어왔다. 장갑을 끼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커다란 가지 위에 자리를 잡다가, 빽빽하고 뾰족한 잎에 하마터면 눈을 찔릴 뻔했다.


"어디 보자."


등 뒤에서 쇠뇌를 뽑았다. 조준경을 통해 신전 쪽을 바라보았다. 낡은 건물이군. 예전에는 꽤 큰 건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입김이 나올 만한 날씨까지는 아니었지만, 산속이라 그런지 꽤 추웠다. 외투와 장갑이 없었다면 몸의 말단이 얼어붙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나는 숨을 죽이고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시선 끝에서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아직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니 산짐승들이 많이 살고 있을 테니까.


초소의 경비원은 총성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척 보기에도 노인이었으니, 그 소리가 총소리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요즘 애들은 말이지, 총소리도 못 알아듣고, 총을 실제로 본 적도 거의 없고. 어쨌든 총성을 들었다는 건 누군가가 무언가를 총으로 쐈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내가 아는 총이길 바라야겠는데.


총을 든 상대가 한 명이 아니라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여기서는 보이는 게 없어서, 나는 조금 앞에 있는 나무로 옮겨 가기로 했다. 가지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귀를 찢는 파열음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틀림없이 총성이다. 몸을 한껏 움츠린 채로 가지 뒤에 몸을 숨겼다. 이렇게 해서 숨겨질까?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잎에 몸을 숨길 수는 없었다.

조준경에 눈을 대고 총성이 난 쪽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길 한가운데 피를 뿜으며 쓰러져 있는 동물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뿔은 없었지만, 사슴처럼 보였다. 총을 쏜 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체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는 체온 때문인지 금방 녹아버렸다.


총성 이후로는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그 총 한 방으로 모든 소리를 죽여 버린 것 같았다. 여기서 움직이면 안 돼.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 총을 쏜 주체가 누구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내가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릴 것만 같았다. 아마 그건 착각이 아닐 터였다.


고등 마법 무기는 그 하나하나가 정밀한 마법 공학의 결과물이다. 마법 총 하나에 크고 작은 마법이 얼마나 많이 걸려 있는지, 사람들이 알면 분명히 놀랄 것이다. 나는 내 총에 걸려 있는 마법들이 뭔지도 잘 모르고 제대로 써먹을 일도 없었지만.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소리를 내지 않게 주의하며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작게 접힌 종이 두 장을 꺼냈다. 그것들은 내 손 안에서 각각 낙하산 같은 모양으로 펼쳐졌다. 앞으로 띄워 보내자 조용히 날개를 펼치고 앞으로 날아갔다. 낙하산 날개의 아랫부분에는 흰 가루가 든 작은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낙하산은 천천히 날아가며 공중으로 안개를 뿌렸다. 흩날리는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저기에 누가 있든 이제 자연스럽게 시야가 흐려질 터였다.


문제는 소리인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소리 없는 공간에 갇혀 있는 기분이군. 쯧. 언제까지 여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까.


눈이 쌓이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눈이 쌓이면 발자국을 남기게 되니까. 나는 한숨을 쉬고는 조용히 나무에서 내려왔다.


일단 아직은 반응 없음.


안개가 퍼진 쪽을 중심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바닥이 단단해서 그리 눈에 띄는 발자국이 남지는 않았다.


발밑에서 돌을 하나 주워 앞쪽의 수풀로 던졌다. 돌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 안으로 사라졌다.


그 소리를 신호처럼, 주변의 모든 소리가 돌아왔다. 멀리서 들리는 짐승 울음소리. 바람은 거세게 불고, 가지들은 시끄럽게 서로 부딪쳤다.


역시 그 총에 뭔가가 있었군. 그렇다면 그 총은 높은 확률로 내가 아는 그 총이다. 나는 안개 아래에서 발을 멈췄다. 여기 있으면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이상한 눈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동시에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내가 있던 자리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빠른 속도로.


총은 아니었지만, 살상력이 있는 무기였을 것이다. 내 추측대로라면, 이 근처에는 소리에 반응하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 돌을 던졌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바람 소리나 나뭇잎 소리 같은 걸로는 작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살아 있는 걸 죽이기 위한 함정이군. 재차 무언가가 날아오지는 않았다. 단발성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가장 무식한 방법이 가장 잘 먹히는 법이지.


나는 신전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세 걸음 정도를 떼었을 때 한 번, 다시 열 걸음 정도를 떼었을 때 한 번, 무언가가 날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달리자 이제 아무 공격도 없었다.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다시 가지 뒤에 몸을 숨겼다.


다시 작은 낙하산 하나를 펼쳐 안개를 뿌리고, 조준경을 통해 신전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맨몸으로 서 있었다.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보니 마법사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지간히 담이 센 인물이거나.


가슴에는 흰 꽃이 달린 가지를 꽂고 있었다. 그 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그의 어깨를 노리고 쇠뇌를 한 방 쐈다. 그는 바로 몸을 꺾으며 뒤로 쓰러졌다. 쓰러진 동료를 살펴보러 달려오는 쪽의 다리에 다시 한 방.


이제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내가 있는 위치를 추측하는 데까지 빠르면 1분 정도 걸리겠지?


쇠뇌를 등에 꽂고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굵은 줄기에 등을 대고 가만히 숨을 죽였다. 잔챙이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능하면 다른 녀석들은 죽이고 싶지 않았다. 싸움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 위로 무언가가 날아오는 바람에 고개를 숙였다. 나무 둥치에 박힌 굵은 화살을 뽑아 들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평범한 북부인이 쓸 만한 물건은 아니군.


"넌 누구지?"


목소리는 위에서 들렸다. 방금까지 내가 올라가 있던 가지 위치였다. 나는 시선을 올리지 않은 채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나러 왔는데."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건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야."

"안됐군.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생각은 없거든."


주머니에서 영혼석을 꺼냈다.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쉐 알첸브라임이 누군가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머리 위로 던졌다. 커다란 손이 그걸 낚아채 가져갔다.


"그걸 가져다주고 내가 누구냐고 물어봐."


머리 위의 인기척은 사라졌다.


천천히 신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아무도 나를 공격해 오지 않았다.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웠다.


내가 신전 앞에 도착했을 때, 거기 있던 두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옮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흥건한 피 웅덩이는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결국 문 앞에 섰다. 내가 이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이 안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을 선명하게 보기는 어려워졌다. 얼마나 거기에 과녁처럼 서 있었을까, 신전 지붕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그걸 보여드렸다."


검은 옷을 입은 솔리 여자였다. 달부르미의 쌍둥이는 물론이고, 흰과 비교해서도 훨씬 클 것 같았다. 눈이 내릴 정도니, 여기는 솔리들에게 아주 추울 텐데. 하지만 그녀는 그리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네가 누구인지는 안다."

"그래? 너는 누구지?"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고 내 말을 무시한다고 해도 딱히 유감스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바람지기의 문."

"여기는 솔리에게 춥지 않나?"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게 영혼석을 돌려주었다. 그러더니 다시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분은 완전히 어두워지면 오실 거다."


그분이라. 역시 어떤 무리를 거느리고 있군. 지붕 위에서 무언가가 내 발치로 떨어졌다. 아카시아가 매달린 꽃대였다.


"그걸 가지고 있어라. 그게 있어야만 결계를 통과할 수 있으니까."


나는 가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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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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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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