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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188
추천수 :
926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18 18:30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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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꼬리 잡기

DUMMY

"그래서, 이 주소는 어디입니까?"

"아, 그건 걱정 마. 신전은 절대 아니니까."


"신전이 아닌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디입니까?"

"업장이야. 특정 교단에서 운영하는 걸로 추정하고 있지. 아마도 정황상 아리나딘이 확실하고."


업장이라. 종교인들이 부업을 하는 일이 그리 드물지는 않았다. 합법적으로도, 불법적으로도. 중요한 건 어떤 업종인지였다.


"업장이라 하면, 어떤?"

"심부름센터라고 하지. 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자잘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돈을 받아 굴러가는 곳 말이야."


이엘은 사월에서 지내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그중에서 딱 잘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심부름센터니 흥신소니 하는 녀석들은 대부분 뒤가 구리다. 혼돈의 아리나딘, 그리고 심부름센터. 어떻게 보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긴 하군.


이전의 그라면 분명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심부름센터라면 탈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긴 하겠죠. 하지만 확실한 증거나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거기 쳐들어가 그렇게 깽판을 놔도 되는 겁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엘은 결국 그 일을 맡기로 했다. 집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레몬이 고개를 들었다. 이엘은 주머니에 챙겨 넣었던 종이를 꺼내 들었다. 주소를 찬찬히 읽던 그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또 팔경 지구군."


팔경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사건인 건 아니다. 하지만 사건은 팔경 지구에서 일어난다. 나중에 책을 쓰게 된다면 그런 말을 넣어야겠는데.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종이를 집어넣었다.


"일을 하나 맡기로 했어."

"갑자기?"


레몬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꺼림칙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엘은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실카 시칼트라의 집에 침입자가 있었다. 그리고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사라졌다. 유리오의 행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이다. 레몬이 아니라, 레몬의 어딘가에 남아 있는 이쉐 알첸브라임의 영혼이.


"레몬."

"왜 그러지?"


"네가 점점 인간처럼 변해 가는 것 같아. 보안 마법이 깨진 지 얼마 안 됐을 때보다 더."

"그런가."


"그렇게 점점 바뀌다가 결국은 완전히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는 건가?"

"글쎄."


이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부장이 맡긴 일을 할 생각이었다. 바로 지금부터.


"아리나딘 교단에서 운영하는 걸로 추정되는 업장이 있다는군. 거길 쓸어 버리라는데. 이 정도면 너도 같이 갈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아리나딘이라."

"그리고 하나 더. 아리나딘이 하라딘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야. 부장의 추측으로는."


하지만 아슐리카 키리는 괜한 억측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다고 추측한다면 보통은 맞아떨어진다.


"아리나딘은 최근에 갑자기 세력이 강해졌어. 원래는 이 정도의 힘이 없었단 말이지. 약물을 다루면서 큰돈이 흐르게 됐고, 그게 힘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면 말이 돼."


레이먼드 디베나가 일으켰던 출판사 '데바' 사건. 내 방으로 왔던, 하라딘 분말이 담긴 의문의 소포.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약에 취해 있던 제국 사냥꾼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약물 이야기를 또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 유리오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신전 지하의 동굴 같은 장소에서 사체를 발견했다고. 거기서 약 냄새가 났다고 말이야."


"결국 아리나딘의 꼬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건가?"

"글쎄,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게 빠른 방법이라는 건 사실이겠지."


이엘은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이 뻐근한 느낌.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도 억울한데. 몸이고 마음이고 죄다 너덜너덜하게 피곤했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다는 말 알아?"

레몬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왜 때리지?"


"이럴 때는 또 그냥 인형 같다니까. 무슨 뜻이냐면, 명분을 만들어 준다는 거야. 나는 안 그래도 누군가를 패고 싶은 기분이었거든? 그런데 마침 아리나딘이 운영하는 업장을 쓸어 버리라잖아, 우리 부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게다가, 그가 그렇게 답답하고 불쾌해진 건 아리나딘의 끄나풀 때문이었다. 그 녀석들이 있는 곳을 들쑤셔 놓으라는 말이 달갑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어떻게 하지? 아실카 시칼트라 학장의 집을 떠났다면 위험에 처할지도 몰라. 그쪽을 찾아서 보호하는 게 급선무 아닌가?"


이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 역시 맞는 말이었다. 학장의 집은 유리오가 그나마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를 떠났다면 더 많은 위험이 따를 터.


"왜 거기를 떠났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봐."

"그럴듯한 해석이네."


이엘은 이따금 자신이 유리오를 전혀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열넷부터 열여덟.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기간이었다. 유리오는 제가 찾던 어린아이에서 어느덧 어른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 당장 신변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몰라. 하지만 유리오를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지금 아리나딘이지. 그쪽을 아예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위협을 끼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거야."


레몬이 두 번째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 자체를 제거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유리오 알첸브라임이 가지고 있는 총은 가짜였어. 마법 무기가 아니니 그 무기의 위치를 추적할 수도 없지. 한동안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결국 위험한 일을 겪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건데?"


벌어지고 나서 후회하면 늦는다. 레몬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리나딘의 덜미를 잡는 게 아니라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보호하는 거라고.


"그러면 여기서 잠시 갈라져야겠군."


이엘은 그렇게 결정했다. 레몬의 예비 좌표는 유리오 알첸브라임에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유리오의 위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위협적인 상대가 따라붙더라도, 레몬이 있으면 어지간한 사람은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당장 며칠, 몇 달, 몇 년 동안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결국 아리나딘의 세력은 유리오 개인에게나, 제국 전체에나 큰 위협이 된다.


어떻게든 뿌리를 뽑아내야 해. 그게 그의 결론이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어? 미리 해야 할 이야기라든지."

"나를 안타레스로 옮겨 줘."


순간 고민했다. 안타레스로 옮겨 달라는 건 무슨 뜻이지? 아, 레몬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공간 이동 장치를 이용할 수 없다. 지금까지 공간 이동 장치를 이용한 건 죄다 이엘의 짐으로서였다.


"그래, 같이 가자."


사월 청사의 마법 정거장은 최고층에 있었다. 거기서 짐만 부칠 수 있냐고 물어보거나, 아니면 이엘이 동행해서 안타레스에 간 뒤 레몬을 두고 오면 되겠지. 둘은 에버릴 파가 일하고 있던 부서로 향했다.


"앗,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지난번에 마법 정거장 이용은 잘하셨나요?"


에버릴 파를 만날 때마다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제복 단추를 맨 위까지 단정하게 잠그고 있는 것도, 저 활기찬 말투와 표정도.


다른 점이라면, 오늘은 그녀의 옆에 모르는 남자 한 명이 서 있다는 게 있겠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엘을 알아보았다.


"알체이라 씨?"


그 얼굴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엘은 바로 기억해 내지 못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기억에 노이즈가 낀 탓이었다.


"우리는 구면이었던가요?"

"그럴 겁니다. 아마 당신은 제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기억력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특히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데 한해서는, 이엘은 의사가 뇌 검사를 권유할 정도로 문제를 겪고 있었으니까.


"제 쪽에서 당신은 기억해야만 하는 사람이었죠."


이엘은 결국 기억 속에서 그가 누구였는지를 건져내는 데 실패했다.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해일 마리파라고 하는데요. 어차피 들어도 못 외우실 겁니다."


그 묘하게 여유로운 태도가 이엘의 신경을 긁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상황이 지긋지긋했다.


"나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모양인데."

"사월에서 당신을 모르는 제국 사냥꾼은 없습니다."

"아부를 듣는다고 기분이 좋을 나이는 지나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에버릴이 끼어들었다.


"해일은 제 동기랍니다. 이엘 선배님은 아마 기억하지 못하실 거예요. 아,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안타레스로 짐을 부치고 싶은데요. 구체적으로는 이 인형을 좀."

"아, 네.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에버릴은 창구 너머로 나와 레몬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줄자를 들고 길이를 재기도 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아슬아슬하게 괜찮으실 거예요. 언제까지 도착해야 하나요?"

"가능한 한 빨리. 그래서 여기로 온 거예요. 일반 소포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사실 원칙적으로는, 마법 정거장은 가능한 한 사람이 직접 이용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짐만 보내려면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하거든요."


특별한 사유라. 둘러댈 말은 충분히 있었다. 당장 시칼트라 학장의 이름을 대도 어지간한 곳에서는 통과시켜 줄 터였다.


"그렇지만 당연히 직무상의 중요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에버릴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서류를 작성했다. 반으로 접어서 이엘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가지고 최고층으로 가시면 돼요."

"고마워요, 항상 도와줘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녀는 이엘을 따라 걷는 레몬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입을 열어 말까지 하면 놀라 자빠지겠군. 이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에버릴과 대화하던 남자가 그를 따라 나왔다.


"알체이라 씨."

"무슨 일이죠?"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그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이엘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레스에 말입니까?"

"아뇨, 아리나딘의 꼬리를 잡으러 가실 거 아닙니까?"


소문이 빠른데. 아니, 소문이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엘이 부장을 만나 일을 받은 건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제가 그 일을 맡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장님께서 거절하셨죠."


"음."

"그리고 청사에서 알체이라 씨를 만났을 때 확신했습니다. 그 일을 받았을 거라고."


감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있을지도. 하지만 당장은 시간이 없었다.


"일단 짐을 좀 보내야 해서."


남자는 그와 레몬이 최고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내내 따라오며 말을 붙였다.


"알체이라 씨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저도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알체이라 씨도 아시잖습니까, 쉬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한 제국 사냥꾼이라면 어느 정도의 실력이 담보된다는 사실."

"아리나딘 교단에 관해서는 꽤 오래전부터 조사해 왔고, 어쩌면 제가 정보를 드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엘은 무사히 레몬을 안타레스로 보냈다. 간단한 일이었다. 원래는 이엘이 들어가던 부스에 레몬을 집어넣고 문을 닫기만 하면 됐으니까. 공간 이동 장치가 작동하는 모습을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리나딘 교단에 관해 조사했다고 했었죠."

"네."


남자는 금방이라도 제가 아는 것들을 쏟아 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눈빛이었다. 언제부터 조사했는지, 뭘 알아냈는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그러나 이엘의 질문은 그가 예상하는 범위 밖에 있었다.


"왜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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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추심 +1 22.12.03 65 2 12쪽
141 정리정돈 +1 22.12.01 32 2 12쪽
140 결착 22.12.01 25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1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3 1 12쪽
137 실종 22.11.25 26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2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3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2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2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3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4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49 4 12쪽
»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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