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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74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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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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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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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맹금류와 작은 새

DUMMY

야영장 뒤에 있는 숲은 한산했다. 여기까지 오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일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전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거 알아요?"

"뭘?"


"이 나무 중에 한 20그루 정도는 제가 심은 거예요."

"무슨 소리야?"


도달이 숲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죠. 사월에 전나무 숲을 조성한다길래 기금을 좀 냈거든요."

"그게 언제 일인데?"

"한 3년 전인가."


도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알고 돈을 내는 거야? 나는 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서, 사월에 전나무 숲을 조성할 테니 돈을 좀 내라고 했으면 나도 냈을 텐데.


도달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입구의 끈을 풀고 자루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활을 다시 자루에 넣어 가져왔다. 텐트는 바로 근처였지만,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이렇게 눈으로만 봐서는 뭐가 달라졌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네요."

"튜닝을 한 게 아니니까."

"역시 직접 확인해 보죠."


도달은 자루를 대충 구겨 가방에 집어넣었다. 루토 시칼트라는 발라딜로를 손본 뒤 도달에게 돌려주었다. 화살의 궤도를 보정해 주는 마법을 해제했다고 했지. 사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 마나 씨는 계속 그 위험한 상태로 활을 쏜 걸까?"

"사고의 가능성을 짊어진 채 말이에요."


전나무는 매연에 약하다던데. 사월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전나무 숲이라니. 나는 주위에 서 있는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도달이 빈 활을 그중 한 그루에 겨누었다.


"이런 데서 활을 쏴도 되는 거야?"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뭐."


"나무에다가는 쏴도 돼?"

"아까 말했잖아요, 20그루 정도는 제가 심은 거라고. 한 그루에 활 좀 쏜다고 저를 원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았다. 빛의 화살은 나무를 스치지도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가다가 사라졌다.


"아."

"진짜 쏠 줄 모르네."

"생각보다 훨씬 어렵거든요."


도달은 세 번을 더 시도했고, 세 번을 더 실패했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활을 건넸다.


"나보고 쏘라고?"

"어쩔 수 없잖아요. 능력을 볼 수가 없는데. 일단 명중해야 알죠."

"그래,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막상 내 차례가 되니까, 상당히 긴장되는데. 제대로 활을 쏴본 지 대체 얼마나 지났으려나.


"이엘은 활 배운 적 있죠?"

"예전에 스승님한테."


활 쏘는 법만 배운 게 아니긴 하지. 검 다루는 법, 나이프 던지는 법, 일시적으로 상대의 눈을 멀게 하는 방법이라든지. 신경을 긁는 법, 발소리를 내지 않는 법. 아니면 반대로 내 기척을 상대가 의식하게 하는 법.


사냥꾼으로서 써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을 가르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스승이지.


"꾸준히 쏜 건 아니지만, 도달보다는 낫겠지."

"차마 부정 못 하겠네요."


활을 잡고 쏘려니,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저항이 느껴졌다. 아무 곳으로나 휙 날린다고 내가 원하는 데 가서 꽂힐 리가 없다는 느낌.


차분히 정신을 집중하고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간신히 내 앞에 서 있던 나무 가장자리에 꽂혔다.


간신히 체면치레는 했네.


"저거 봐요."


나무는 천천히 키가 작아지더니, 시간이 흐르자 완전히 묘목이 되어 버렸다.

"제대로 작동하긴 하는 것 같은데."


발라딜로는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게 그 과열 상태라는 건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그건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 자체가 그리 쉽게 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화살을 맞출 수 있다고 해도, 능력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무력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면 화살을 맞추고도 지게 된다.


"이제 당분간은 쏠 수 없을 거예요, 아마도."

"한번 실험해 보자고."


나는 다시 허공에 시위를 당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시도해 봤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개조를 더 하기로 했다. 능력이 발동할 확률을 대폭 올리는 대신, 한번 능력이 발동하면 한동안은 활을 쏠 수 없도록.


어차피 한 번에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그다음은 없으니까.


"이렇게 빛을 뿜어내는 동안에는 활을 쏠 수 없어요. 아마 오늘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원래대로 돌아오겠죠."

"그래, 텐트로 돌아가자고."


텐트로 돌아오자마자, 도달은 가방에서 술병을 꺼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술이 넘어가다니.


"이게 마지막 술일지도 모른다고요. 이쉐 알첸브라임의 손에 이번 생이 끝날지도 모르니까."

"따라올 생각이야?"


"이엘은 생각을 잘못하고 있어요. 저한테 그랬었죠. 황제와 이쉐 알첸브라임을 하나씩 맡자고."

"그래,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불가능하거든요.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하나씩 쳐야 해요. 그러니까 나랑 이엘이 갈라서면 안 된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네 말이 맞지만, 다르게 생각할 여지도 있지."

"다르게 생각할 여지라면."


나 혼자 가서 지면 나 혼자 죽는다. 하지만 나와 도달이 가서 지면 나와 도달, 둘 다 죽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차마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달은 내가 무슨 말을 참았는지 알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이엘이 죽는다면 제국 사냥꾼은 끝이에요."

"내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인 거야?"


도달은 마침 제 몫의 잔에 술을 한 잔 따른 참이었다. 그 상태로 목만 틀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이엘. 저번에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기억해."


만월정에서, 그리고 세 번째 눈동자에서. 도달은 내게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했다. 모든 게 변하고 있으니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


"왜 이엘한테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아요?"

"글쎄, 내가 사월에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는 게 한심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택시 기사가 한심한가요?"

"그건···아니지."


내가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겼던 건 내가 택시를 몰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택시를 몰든 표를 팔든 사람의 병을 고치든 본질적으로 뭐가 그리 달랐겠는가.

내가 한심했던 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엘은 그 꼬맹이를 찾고 있다고 말했었죠.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나눠 주고. 하지만 사월에 발이 붙어 버린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 게 아니라."


"그랬었지."

"이엘이 왜 그랬는지는 알고 있어요. 아마 이쉐 알첸브라임이 사월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했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최근까지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치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집 지키는 개 같은 태도를 고수했던 이유는 뭘까.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을 때, 이쉐 알첸브라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말한 건 아니라구요."


"굳이 그렇게 변명하지는 않아도 되는데."

"단지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뭐가?"


도달은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맑은 보리 빛깔 액체에서 술 냄새가 텐트 안으로 점차 퍼져 갔다.


"강한 힘이 있는데 쓰지 않는 것.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데, 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데 자기 인생을 쓰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찾아 헤매는 삶이라. 정말 집 지키는 개의 삶이군.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아깝잖아요."

"사월 밖에는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있다고 들었어."

"전업주부요."


"온종일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식사를 차리고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고.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불을 켜 놓고 기다리는 거야."

"그런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하네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가족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꾸미고, 누군가는 해야만 할 일을 도맡아 하고. 누군가가 집에 올 때 혼자가 아닐 수 있도록 기다리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단지 내가 기다릴 사람도, 나와 같은 둥지를 쓸 사람도 없었을 뿐이지.


모두가 나를 떠나기만 했으니까.


"맹금류는 대부분 단독 생활을 하잖아요."

도달이 술 한 잔을 쭉 비웠다.


"그 새들은, 작은 새에게 가족이 있다고 해서 작은 새를 부러워하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알아, 새 마음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면서."


"그게 부럽다고 생각하면 자기들도 가족을 꾸려서 살겠죠. 맹금류는 보통 포식자잖아요? 그런 새는 몸집이 크고 먹을 것도 많이 필요하죠. 다 같이 살아가려면 공동체의 규모가 너무 커져요. 감당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식량도 너무 많이 구해야 하고."


"언제부터 새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지?"

"알콩달콩 둥지를 꾸려 여럿이 행복하게 사는 새들도 그 나름의 고통이 있다고요."


"강하다고 해서 고통을 겪지 않는 건 아니잖아. 강한 힘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고."

"그러면 그 강한 힘을 내려놓으면 될 텐데. 둘 다 가지려고 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이쉐 알첸브라임을 떠올렸다. 맹금류지만 자기 둥지를 꾸리고 가족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던 사람. 결국 그 사람도 가질 수 없는 걸 원했던 걸까.


"도달. 안락한 둥지에서 가족들과 살고 싶다는 생각 한 적 없어?"

"살면서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너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도대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도달이 머리카락을 고쳐 묶었다. 저렇게 치렁치렁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귀찮은 걸 싫어하면서 머리카락은 저렇게 길게 기르고 다니다니.


"하지만 둥지에서 가족들과 살기 위해 내 발톱을 내려놓기는 싫어요."

"가족보다 발톱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는요."


둘 중 뭐가 우월하고 뭐가 열등한지 가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둘 중에 무언가를 선택할 권리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유리오가 나한테 정원에서 꽃을 꺾어다 준 적이 있었거든."

"로맨틱한 꼬맹이네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야.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 애한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지금 그러고 있잖아요?"


그래, 그러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쉐 알첸브라임 앞에 목을 내걸었으니, 이것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그 근본적인 의문이 이따금 내 발목을 붙잡고는 했다.


"사실 그 애 엄마가 결정한 게 최선은 아닐까? 내가 그걸 망치려고 하는 건 아니고?"

"글쎄요.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신이 된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처럼 보이지는 않잖아요."


"그건 무슨 의사가 된다, 변호사가 된다,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런 중대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서 결정할 수는 없어."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신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던가요?"


도달은 핵심을 찔러 왔다. 물론 유리오와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야, 안타레스를 떠난 뒤로 유리오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유리오가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안타레스의 대로에서 아리나딘의 사자를 마주쳤을 때, 그 애 옆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분명 유리오에게는 아주 중요한 존재겠지.


지금 그 애한테는 친구가 있고, 동료들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목표가 있는데.


두 잔째를 단숨에 비운 도달이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러면, 이엘이 신이 되는 건 어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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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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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5 1 12쪽
137 실종 22.11.25 30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6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5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7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4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6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2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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