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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20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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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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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사자와 사도

DUMMY

이엘이 문손잡이를 잡아당겨 열었다.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열렸고, 안은 비어 있었다. 작은 벽장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이 안에는 뭐가 들어 있었지?"

"그건 나도 몰라. 여기 이런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긴, 약 같은 걸 이렇게 접근하기 쉬운 공간에 보관하지는 않았겠지. 이엘은 문을 밀쳐 닫았다. 문이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김새는군.


여기로 쳐들어오면 녀석들이 떼거리로 우르르 몰려나올 줄 알았다. 적당히 패 주고, 물건들은 다 때려 부수고, 약을 빼앗고. 간부 한 놈 정도 인질로 잡아 정보를 캐내고.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 챙겨서 들고 튀었을 테니 아무리 올라가 봐야 똑같겠군."

"솔직히 말하면 그럴 거야. 사자 중에 여기 남은 건 나밖에 없으니까."

"이 돌 때문에 말이지."


이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단의 방향을 거스르고 독단적으로 뛰쳐나오다니. 다른 곳도 아니고, 아리나딘 교단 같은 곳에서. 그 정도로 이 녀석이 중요한 존재란 말인가?


"그만 놔 주지, 어차피 도망갈 것 같지도 않은데."


해일이 붙잡고 있던 소년을 땅에 내려놓았다. 소년은 얼굴을 찡그리며 어깨가 결리는 듯 주먹으로 툭툭 쳤다.


"이 돌 말인데. 편의상 이 녀석이라고 부르지. 이렇게 보이지만 이건 사람이잖아?"

"그래."

"이름이 뭐지?"


소년은 침묵했다. 그는 얼굴에 표정이 굉장히 잘 드러나는 유형이었다. 그 얼굴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런 건 왜 묻는 거지?


"개인적인 이유에서 물어보는 거야."


이엘은 그 돌 안에 있는 녀석에게 원한이 좀 있었다. 아리나딘의 사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가지고 놀듯 대했다. 혼돈 그 자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할까. 사람을 정신 사납게 만드는 외모와 말투, 그리고 태도까지.


그런 데 휘둘리는 건 딱 질색이었다. 그는 녀석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유마니스티."

"잘 외워라."


해일이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엘은 제가 그 이름을 아무리 되뇌어 봐야 정작 중요할 때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마니스티. 도달의 뒤통수를 치고 안타레스에서 유리오에게 접근했던 사자.


"그래, 이 녀석은 너희 교단에서 어느 정도 되는 인물이지? 그걸 알아야겠어."


이건 개인적인 이유에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는 유리오에게 닥친 위협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아야 했다. 유리오에게 접근했던 이 녀석이 교단 내에서 그리 대수롭지 않은 녀석이라면, 이 녀석 하나만 없애면 일은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리나딘 교단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마니스티는 다음 사도가 될 인물로 거론되고 있었어, 아주 유력하게."

"사도라는 건 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신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높은 사람이라는 뜻이군. 그렇다면 이 돌을 산산조각 내서 녀석을 죽여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녀석을 죽이면 다른 사람이 사도가 되겠군."

"······그렇겠지."

"결국 유리오한테 접근한 건 너희 교단 전체의 뜻이라는 거잖아."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아이니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 사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자기들의 신도 아니고, 남의 신과 관련된 일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려 하다니. 그렇게 해서 아리나딘이 얻는 게 뭐지?"

"잘 생각해 봐라, 아리나딘이 원하는 게 뭔지."


아리나딘의 목적은 언제나 혼란이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리오를 아이니 신으로 만드는 게 제국에 혼란을 불러올 거라는 뜻일까.


이엘은 잠시 상상해 보았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신의 그릇이 될 수 있는 수많은 후보 중에 하필 유리오를 찍었다는 건 역시 이상하다.


"내가 신이 되어도 제국은 혼란스러워질 텐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소년은 침묵했다. 그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터였다. 잘 생각해 보면, 누가 신이 되든 제국은 혼란스러워진다. 누가 신이 되든, 아이니 신이 육체를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건 마찬가지니까.


"유리오가 신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걸 말해."

"그건 정말 내가 모르는 영역이야. 말하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다고."

"유마니스티라고 했었나? 이 녀석은 알고 있겠지?"


소년은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이 녀석을 취조해야겠군. 소년이 예상외로 고분고분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걸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게 아리나딘이니까.


"이 흥신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지? 네가 여기를 관리했을 테니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일반적으로 흥신소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과 똑같아. 남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 감시하거나. 연적의 다리를 하나 부러뜨려 달라고 하면 부러뜨려 주거나. 정말 간단한 일도 해. 지붕을 고쳐 주고 그런 것들."

"그러면서 약물이 필요한 사람들을 물색했다는 건가. 맞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 사실까지 부정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 건물 안에 물질적인 증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작았다. 튀는 쪽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쪽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데바의 레이먼드 디베나도 이 흥신소를 이용했을 겁니다. 레이먼드 디베나가 이 건물에 드나드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해일이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소년이 더 이상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가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리나딘이 진행하는 큰 사업은 크게 두 가지일 거야. 하나가 약물 사업, 그리고 하나는 황제 살해. 약물을 이용해서 사회의 근간을 서서히 흔들고, 황제를 거꾸러뜨려 마침표를 찍으려는 거지."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계획이다. 약물로 인해 일어나는 크고 작은 범죄들 역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니까. 그 정점에서 황제가 살해당하면 제국 전체가 아수라장이 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희가 아이니의 강신 의식에 관여하기 시작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야. 채 1년도 되지 않았어. 그전까지는 아이니건 아이니의 신자들이건 너희 관심 밖의 일이었다고. 그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지?"


이엘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팔짱을 꼈다. 금고는 책상 위에 고이 내려놓았다. 나보다 잘하네. 그가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었다. 아리나딘에 대해 열심히 조사했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아이니 교단은 몸을 드러내 놓고 활동하는 신자 수가 적어. 너희보다도 적지. 당연히 아이니 신자들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알아내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너희는 강신 의식에 관해서도, 신의 그릇이 될 수 있는 조건도 알고 있지. 그 정보는 어디서 들어왔을까?"


소년은 입을 아예 닫아 버렸다. 그는 이엘을 쏘아보고 있었다. 여기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인가.


"하나만 묻자. 아, 이 녀석 이름이 뭐랬더라?"

"유마니스티입니다."


해일이 대신 대답했다.


"이 녀석과 무슨 관계길래 여기 너 혼자 남은 거지? 모두가 도망쳤는데 이 돌을 되찾겠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찾아왔잖아. 아무래도 이 녀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는 모양인데."


다음 사도가 될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렇다면 교단에서 꽤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데, 아무도 이 돌을 돌려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니.


"유마니스티는 다른 사자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가 반감을 샀으니까."

"그게 너희 아리나딘의 본질 아닌가? 이상하게 들리는군."


"사람은 잃을 게 생기면 겁이 많아지지. 아리나딘의 사자라는 자리를 얻고 태도를 바꾼 사람들이 적지 않아."


우스운 일이었다.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것처럼 굴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다니.


그런 건 가짜 반동이다. 그리고 이엘은 그런 게 딱 질색이었다.


"그럼 교단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건 유마니스티라고 봐야겠군. 이 업장도 그 녀석이 운영하던 건가?"

"그래. 원래 여기를 지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었어. 유마니스티가 그렇게 됐으니까 내가 대신 지키고 있었던 거야."


이엘은 제가 들은 정보를 천천히 정리했다. 유마니스티는 아리나딘의 사자 중 가장 급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최근에 아이니 신의 강신 과정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래, 들을 이야기는 다 들었군."

"아니, 잠깐······."


해일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엘이 소년의 머리를 검으로 베었다. 사체처럼 보이지만 사체가 아닌 것은 이내 진흙더미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것은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였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눈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돌 조각 같은 게 있을 거야."


해일은 그것의 눈구멍에 손을 넣어 돌 조각을 꺼냈다. 그는 불쾌하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이상한 녀석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나딘의 사자 같지는 않아."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동료를 되찾으려고 적진에 뛰어들다니, 그 녀석들의 방식은 아니죠."


그가 이엘에게 돌 조각을 건넸다. 이엘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보관하고 있는 게 낫겠어.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섞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러죠."

"아카시아꽃이 없군."


해일은 제 손에 쥐고 있는 돌 조각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가 책장 뒤에 뚫린 문을 열었다. 아까 보았던, 텅 빈 벽장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해일이 벽장 안에 손을 넣어 벽장 위쪽을 더듬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내부 칸막이가 천천히 회전하더니 반 바퀴 뒤집혔다.


"이런 건 다 어떻게 아는 거지?"

"말씀드렸잖아요, 기자 친구가 아리나딘에 잠입해 있었다고."


"그 친구는 어떻게 됐는데?"

"글쎄요. 아직 거기 있지 않을까요."

"반대쪽에 물건을 보관하게 되어 있군."


거기 있는 건 하얀 가루가 든 반투명한 비닐봉지 몇 개였다. 대충 어림해 보니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인데."

"하라딘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번 달에 익명의 누군가가 소포로 보냈지. 그 봉투와 이 봉투가 완전히 같아."


해일은 봉투 개수를 세었다. 총 다섯 개인가. 그가 외투 안주머니에 봉투를 챙겨 넣었다.


"이대로 대로를 돌아다니다가 잡히면 저는 마약사범이 되겠네요."

"초범한테는 관대하다고 하던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을걸."

"제가 결백하다고 증언해 줄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이 방에는 아래층의 다른 방들과 다르게 벽에 시계가 걸려 있었다. 이엘이 시계로 눈을 돌렸다. 오전 11시 30분.


"이제 곧 점심시간이군."


그는 제 주머니에 들어 있던 유마니스티의 돌을 꺼내 해일에게 내밀었다. 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돌을 내려다보았다.


"가져가. 다시 생각해 보니 둘 다 네가 가지고 있는 쪽이 나을 것 같아."

"왜죠?"


"아까 했던 이야기 말인데."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해일은 돌을 받지 않았다. 이엘이 가져가라는 듯 돌을 든 손을 두어 번 흔들자, 마지못해 돌을 챙겨 제 주머니에 넣었다.


"유마니스티라고 했었나. 그 녀석이 아이니 교단의 강신 의식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경로가 있었을 거야. 대충 그 경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에 있는 걸 전부 그에게 설명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시간 낭비나 다름없었다.


"넌 부장한테 돌아가서 보고해. 나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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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결착 22.12.01 26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2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4 1 12쪽
137 실종 22.11.25 29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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