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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14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21 18:30
조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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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인질극

DUMMY

흥신소,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광경이 있을까? 싸구려 정장을 대강 차려입은 잡부 두어 명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 손님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거기를 통과할 수 있으리라.


넓은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서류들, 쓸데없이 커다랗고 무거운 명패. 짐짓 들어오는 사람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날카롭게 경직된 공기. 화려하고 멋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손님을 맞이하는 간부.


먼지 낀 두꺼운 카펫에는 군데군데 담뱃재가 떨어져 있다.


이엘이 그 광경을 처참한 모양으로 망가뜨리기까지는 채 십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먼저 두 명의 문지기를 적당히 부러뜨려 놓고 주인 없는 방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영롱하게 빛나는 유리 조각들을 매단 샹들리에에 돌을 던져 깨뜨린 것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 달려오기 전에 고급스러운 나뭇결이 흐르는 책상을 발로 차 뒤로 넘어뜨렸다.


책상 위에 오랫동안 놓여 있었을 꽃병이 주르르 미끄러져 떨어져서는 카펫 위를 굴러다녔다. 그 안에서 쏟아진 더러운 물이 바닥으로 흘렀다.


이어서 커다란 책장을 쓰러뜨리고, 장식용으로 꽂혀 있던 책 몇 권을 주워들었다. 책등을 꺾고 내용물을 찢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대충 그 정도 소란을 피우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니, 그제야 누군가 도착했다. 척 보기에도 말단처럼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해일이 그를 제압해 뒤에서 붙잡고 팔을 꺾었다.


이엘은 의자에 등을 푹 파묻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좋은 의자 같아 보였는데, 막상 앉아 보니 몸이 불편하네. 의자는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것보다 앉았을 때 편한 게 최고라고.


"너희 대장이 누구냐? 아, 요즘은 대장이라는 말을 잘 안 쓰나? 그럼 두목?"

"무슨 소리를···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제국 사냥꾼이 이렇게···주택에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려도 되는 겁니까?"


남자는 이미 반말을 하는 데 실패했다. 그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제국 사냥꾼인 건 어떻게 알아?"

남자가 떨리는 손을 들어 이엘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 그. 선글라스 쓴 남자잖아요. 제국 사냥꾼이잖아······."


이엘은 그제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선글라스를 낀 얼굴 쪽이 훨씬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차라리 선글라스를 벗는 쪽이 익명성을 보장 받기 쉬운 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복면은 너무 수상하다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는 쪽으로 타협했는데.


그는 한숨을 쉬며 등을 돌려 통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유성호텔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전망이 좋은 건물이었다. 아무리 봐도 주택이라고 표현할 만한 곳은 아니지. 이런 평범한 동네에 이 건물 혼자 솟아 있는 모습은 상당히 어색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너희 대장이 누구냐니까."

"그, 그런 건 대체 왜 물어보는 건데? 이 난리 통은 다 뭐고!"


이엘은 다시 몸을 돌렸다.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둘러보는 남자의 표정은 비통했다. 아무래도 윗사람들이 아직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런 막내 하나 보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전해 줘야 하는데.


"십 분 준다고 전해. 십 분 안에 이야기가 통할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십 분이 지나면 일 분에 한 층씩 개박살을 내놓을 테니까, 돈이 많으면 천천히 와도 된다고도 꼭 알려 주고."


해일이 남자를 집어던지듯 놓아주었다. 남자는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방을 뛰쳐나갔다. 이엘은 손을 털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제부터 뭘 하실 겁니까?"

"십 분을 기다려야지. 달리 할 일이 없잖아. 더 부술 것도 없고, 빼앗거나 알아낼 만한

정보도 없고."

"금고조차 없는 걸 보니 그저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겠군요."


해일은 담배를 빼어 물었다. 이내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이엘은 그 냄새가 익숙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해서 박살 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사람은 제 손에 쥔 거라면 숟가락 하나라도 잃기 싫어하니까."


가진 걸 하나씩 다 부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가 튀어나올 것이다. 바깥에 서 있는 시계탑을 기준으로 시간을 쟀다.


정확히 칠 분이 지났을 때부터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점점 빨라져서 이내 달리듯 박차는 소리로 바뀌었다.


"이건 어린애 발소리인데."


이엘이 그렇게 말하자 해일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버리고 문가로 다가갔다. 과연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존재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게 보이는 그대로 어린이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해일이 아까 남자에게 그랬듯 소년을 붙잡아 제압했다.


"악취미가 있나 봐,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니까."

"뭐 때문에 왔냐?"


그 목소리는 마치 죽어 나자빠지기 직전의 노인네 같았다. 아니면 담배를 아주 많이 피운 사람이거나.


"너희 대장이 누구냐고 물어봤었는데, 잘 전달이 안 된 모양이군."


이엘은 방을 나서 계단을 올랐다. 성큼성큼 위층으로 향했다. 돌아보니 해일이 소년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쓸 만하네.


"제국 사냥꾼이 언제부터 업장 단속까지 했지? 이름처럼 황제의 개가 다 됐군."

"왜 황제가 나를 보냈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눈을 맞추자 아이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아리나딘의 사자들은 죄다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딘가 한 군데씩 어긋나 있는 모습. 이엘이 처음으로 만났던 사자는 노인의 모습에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쪽은 반대군.


"너희의 적이 황제밖에 없을 것 같나?"


이엘은 주머니에서 돌 조각 하나를 꺼냈다. 겉보기에는 눈에 띌 것도 없는 평범한 돌이었다. 이 앞 공사장에 가도 이런 거 하나는 굴러다니고 있겠지. 하지만 그 돌을 본 소년의 얼굴은 이내 분노로 물들었다.


"이걸 찾으러 온 거지?"

"이 자식!"


그에게 달려들려 하는 소년을 해일이 단단히 붙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이거 참, 누가 나쁜 놈인지 모르겠군. 사실 내가 나쁜 놈인 건가?


"처음에는 놓쳤지만, 다행히 두 번째에는 잡았지. 아직은 이 상태긴 하지만."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돌을 한 번 공중으로 던졌다. 그리고 받아냈다.


"마법적인 조치를 거치면 이걸 다시 살려낼 수도 있다지?"

"내가 뭘 하면 그걸 다시 돌려줄 거지?"

"돌려주다니. 이건 원래 내 거잖아."


이엘이 돌 조각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돌을 꺼낸 이후로 소년의 신경은 완전히 그 돌에 쏠려 있었다.


그 돌이 본체라는 걸 알려준 건 유리오의 일행이었던 여자 신관이었다.


"아리나딘의 사자들은 가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눈구멍 안에 본체가 있다더군. 너도 그런가?"


이엘은 돌을 빼앗으려고 발버둥 치는 소년을 무시한 채 다음 방으로 들어섰다. 아까 그가 파괴했던 방과 거의 똑같은 모습의 방이었다. 마치 장난감 집처럼. 다른 점이라면 책상 옆 한구석에 금고 하나가 놓여 있다는 것 정도일까.


"쥐 한 마리 없군. 아무도 안 나온다는 게 이상한데."


출입구부터 여기까지 쓸어 버리면서 왔는데. 이엘과 해일이 마주친 사람은 단 네 명밖에 없었다. 입구에 서 있었던, 아마도 용병일 경비병 두 명, 첫 번째 응접실에서 만났던 말단 같은 남자. 그리고 이 소년.


"나머지는 다 어디 갔지?"


소년은 입을 꾹 닫아 버렸다. 그저 얌전히 해일에게 붙들려 있었다. 전부 도망간 건가.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거나.


"이 돌을 돌려받으러 온 줄 알았는데, 상당히 비협조적이군."


이엘은 두 번째 방 역시 무감정한 태도로 파괴했다. 방식은 아까와 똑같았다. 샹들리에를 떨어뜨리고, 책상을 넘어뜨렸다. 그리 좋은 책상은 아닌 듯했다. 세게 넘어뜨린 것만으로도 금이 가는 걸 보니.


소년은 그가 금고를 제외한 모든 걸 망가뜨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이엘이 금고로 다가가 잠금장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비밀번호 식이군. 그렇게 보안성이 좋은 물건은 아니지."

"푸실 수 있습니까?"

"아니···이제부터 풀어야지."


금고는 그리 크지 않은 물건이었다. 품에 안아서 들고 나갈 수 있을 정도. 한 팔로 들릴 정도로 가벼웠다. 아마 안에 든 건 기껏해야 서류 정도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비어 있거나.


"다음 층으로 가지."

"잠깐. 그렇게 책장 같은 거나 부숴봐야 아무 의미 없어. 대화를 하자고, 대화를."


소년이 말로 그들을 붙잡았다. 이엘은 못 이기는 척 발을 멈췄다.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지.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일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흘러가 주지 않을 뿐.


"내가 하나 추측해 볼까, 너희는 전부 다 꽁무니를 뺐어. 너 하나만 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긴 왜야, 한 놈도 나타나지 않으니까지. 여기 있는 놈들은 나와 충돌하느니 다 버리고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지도."


이 금고에 대단한 게 들어 있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소년이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소년은 아직도 이엘이 돌 조각을 집어넣은 주머니 쪽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넌 나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지, 내가 이 돌을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했으니까."

"그래, 그건 맞아."


일이 잘 풀렸다면 지금 안타레스에 있었을 텐데. 장치를 사용해서 이 돌에서 의식을 추출하고 취조할 예정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문득 다시 짜증이 치밀었다. 이엘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아리나딘의 사자인가?"

"맞아."


"일반 신도와는 어떻게 다르지?"

"다른 종교의 신관 비슷한 존재야. 우리는 그걸 사자라고 불러."


소년은 예상외로 고분고분했다. 그는 지금껏 아리나딘과 관련해 이엘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미치다 만 것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 나는 이것과 두 번 만났어. 사월의 팔경 지구, 바로 이 근처에서 한 번. 그리고 안타레스의 대로에서 한 번. 처음에는 놓쳤지만 두 번째는 내가 머리를 썰어버리는 데 성공했지."


소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어린 외형 때문에 이엘은 하마터면 죄책감을 느낄 뻔했다. 그런 효과를 노리고 저런 외모를 하고 있는 거겠지만.


"원래는 이쪽에서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어. 근데 일이 조금 꼬여서 그렇게 못 하게 됐거든."


이엘은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툭툭 두드렸다. 돌에서 꺼내든, 소년의 입에서 꺼내든 정보는 같은 정보다. 소년이 이 돌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돌을 돌려받기 위해 소년이 어떤 것까지 말할 수 있는지였다.


"먼저 하라딘에 대한 것부터 물어보자. 지금 하라딘을 뿌리고 다니는 건 너희지?"

"뿌리고 다닌다는 게 무슨 뜻인데?"


소년은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곧이곧대로 반응했다. 이엘은 반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 층을 걸어 올라갔다. 세 번째 방 역시 앞의 두 방과 거의 비슷한 상태였다.


"최근에 여기저기서 약물 문제가 좀 많은 것 같더라고. 나는 그걸 유통하는 게 너희라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하라딘에 손을 대고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네가 말하는 문제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런 것까지 말해도 되는 건가? 내가 묻고 있긴 하지만."


세 번째 방의 책장은 위치가 조금 달랐다. 문으로 들어섰을 때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미묘하게 오른쪽으로 치우친 채였다. 이엘이 책장 맨 윗부분을 잡아 앞으로 끌어내렸다.

그 뒤편에 문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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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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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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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49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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