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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15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20 18:30
조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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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DUMMY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는 내 질문에 잠시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좋아. 찾는 사람이 있어서 아리나딘 교단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게 충분한 대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지?"


나는 그가 한 걸음 물러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꿋꿋하게 서 있었다.


나한테 들러붙으려면 아는 걸 전부 뱉어야 할 거다. 적어도 그 정도의 각오는 해야지. 만약 그게 쓸 만한 정보라면, 나도 내가 아는 걸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1년 반 정도 됐습니다.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누가 아리나딘에 대해 조사하라고 시키든?"

"부장님이요."


그 말을 듣자 갑작스레 이 남자에게 약간의 동질감이 생겼다.

"까라면 까는 입장인 건 나랑 똑같구만."

"그런 말씀 하지 마시죠. 이엘 알체이라는 누가 까라고 까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부장이 아리나딘에 대해 조사하라고 시켰다, 그것도 1년 반 전에. 왜 이렇게 빠르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일찍부터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건가. 나는 혀를 차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까 부장이 준 물건이었다.


"이게 뭡니까?"

"얼굴을 들키지 말라던데."


검은색 복면 두 개. 두 개를 준 걸 보니 이 남자가 들러붙을 것도 예상한 모양이었다. 그보다, 누구를 은행 강도로 아나. 검은 복면을 쓰고 흥신소에 쳐들어가서 쑥대밭을 만들란 말이지. 참으로 제국 사냥꾼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아주 중대한 임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거짓말이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제가 찾던 사람이 아리나딘 교단과 관련된 사건에 얽혀 있다는 걸요."

"정확히 무슨 사건이었지?"


"아리나딘 교단은 황제 살해를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정거장에는 나와 이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 목소리가 어딘가로 녹취되어 나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부장이 몰래 이 남자에게 도청기라도 붙인 게 아니라면.


"그걸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군."

"제 친구 중에 기자가 한 명 있었는데요. 그 친구가 교단에 신자로 잠입해 알아냈습니다. 아리나딘 교단은 황제 살해를 계획했고, 아직도 그걸 목표로 하고 있을 겁니다."


쭉정이는 아니군. 이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 느슨한 인상이기는 했지만, 일단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다닌다는 점에서 약간 가산점.


"일단 그 옷은 갈아입어야겠군. 얼굴을 들키지 말라고 했으니까."


남자는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내가 이 녀석을 대체 어디서 만났더라?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해일 마리파입니다."


해일 마리파, 해일 마리파. 역시 모르겠다.


"일까지 같이 하게 됐는데, 그래서 안 알려줄 거냐?"

"뭘 말입니까?"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만났냐니까. 넌 날 본 적이 있다며?"


"아, 그건 십 년 전 황실에서 주최한 대축제 때였죠. 터지는 폭죽, 엄청난 인파 사이를 홀로 걸어가며 비처럼 내리는 꽃잎을 받던 이엘 알체이라 선배님의 모습을 처음 보고······."


그런 적 없다.


"헛소리하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

어쩐지 익숙한 느낌인데.


"전 딱히 누구한테 뭘 배우진 않았습니다."

"알려줄 생각 없으면 마라. 나도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나와 남자는 정거장을 빠져나왔다. 누가 딱히 먼저 말하지는 않았지만 숙소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숙소에 사나?"

"뭐, 그렇죠. 사월에 집을 살 돈은 없으니까요."


쉬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을 열심히 했다면 그 정도는 벌었을 텐데."

"도대체 사월 집값을 언제 기준으로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사월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제국 사냥꾼이 받는 의뢰비가 안 오른 건 아닐까.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제국 사냥꾼은 그리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었다.


스승님만 해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집 한 채가 거의 재산의 전부였으니까. 그때는 중앙 지구 역시 이렇게 비싼 동네가 아니었다고 했었지.

물론 그 사람은 마법 총알을 사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썼던 게 크지만.


"언제 가실 생각입니까?"

"왜, 내가 하자는 대로 하려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전 새파란 병아리니까."

"아무리 봐도 병아리처럼은 안 보이거든."

"이엘 알체이라 옆에서 병아리가 아닌 제국 사냥꾼이 얼마나 될까요."


이렇게 말할 때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도무지 구별되지를 않았다. 표정은 진지한데, 내용은 얼핏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그 말은 농담이냐, 진담이냐?"

"왜요? 비꼬는 것처럼 들리십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전혀 아닌데요. 아무래도 제가 사회성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


내가 누군가의 사회성을 지적할 입장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나 이 녀석이나 비슷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한참을 침묵하며 걷다가, 그는 문득 그런 말을 했다.


"부장님이 항상 이야기하시는 거 모르시죠?"

"뭘? 나?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그 인간은 대체 무슨 속셈이길래. 도대체 어떤 소리를 떠들고 다니는 건지 조금은 궁금하긴 했다. 나는 거의 청사에 드나들지 않고, 다른 제국 사냥꾼들과 교류를 그리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쉽게 환상을 품었다.


"이엘 알체이라를 동경하는 제국 사냥꾼들은 차고 넘치니까요."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 궁금하신 겁니까, 아니면 보편적으로 이엘 알체이라라는 사람을 동경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하신 겁니까?"

"아무 쪽으로나 대답해 봐."


"당연히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점에서?"


남자는 나보다 조금 앞에서 걷고 있어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결코 사람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죠."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이 억지로 알려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두어 걸음 앞서가던 그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아무런 악의 없는 표정에 오히려 속이 뒤틀렸다.


"제국 사냥꾼은 사람을 죽이는 존재지, 안 그러냐?"

"꼭 죽여야만 하는 걸까요?"

"글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자격도 없고, 그런 말을 할 입장도 아니야."


그런 건 철학자 병이지.


내 일거수일투족이 때로는 아주 쉽게 남에게 알려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관찰하고 있다는 건 몰랐다. 내가 의뢰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 받아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해일 마리파라고 했었지. 이 녀석은 그걸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밖에 없었다. 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으니까.


해일은 등을 돌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따라가는 듯한 모양새로 걸음을 옮겼다.


"나에 대해서 왜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거지?"

"그냥 알게 됐을 뿐입니다. 뒷조사 같은 걸 한 게 아니라요."

"뒷조사했냐고 추궁하는 게 아니야. 그런 일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들이지."


그 누구도 내게 그런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해체된 이후로. 스승님도, 유리오도 나를, 사월을 떠난 이후로 나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게 두렵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를 동경해서 계시를 받았죠. 막상 되어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더군요."

"어떤 생각을 했길래?"


"국가가, 사회가 벌하지 못하는 이들을 벌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들. 누군가의 삶을 짓밟고도 고개를 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목을 꺾어 놓을 수 있는 게 제국 사냥꾼이라고 생각했죠."


"틀린 건 아니지 않나? 그러고 싶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된다는 것과 전혀 다르잖습니까."


오래전에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있었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그럴 힘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던가?"


"저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냥의 신이라고 일단 둘러대도 될까요?"

"그 잘난 신이? 그럴 힘을 준 게 바로 그 신이지. 힘을 줘 놓고, 그 힘을 사용했다고 벌하는 건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나는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깨에 얹힌 영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어떤 사냥꾼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밀려드는 죄책감이 나를 흔들었다.

여기에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어쩌면 아리나딘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도 별일 아닐지 모른다. 택시를 모는 것도, 사월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모두 의미 없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일을 하려면 사월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됐다. 어쩌면 나는 모든 걸 내던지고 유리오를 찾으러 안타레스로 떠나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몬과 함께.


"신이 합리적인 존재일 거라 믿으시나요?"


신과 종교에 대해 논하다 보면 빼 먹지 않고 나오는 주제였다.

신이 무조건 선할 거라 생각하는가?

신이 반드시 사람의 편이라 생각하는가?

신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 생각하는가?


나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저런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나 그런 걸로 싸우라지.


"나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

"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해일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우리는 숙소 앞에 도착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

"편하신 대로 하시죠."


나는 그를 남겨 두고 문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매캐한 연기 냄새에서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숙소 안에 있는 내 집. 내 방.


여기로 돌아오면 언제나 혼자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내게 가족 같았던 관계가 낱낱이 해체되고 나서야 여기로 왔으니까.


냉장고를 열고 안에서 케이크 한 판을 꺼냈다. 유리오가 내게 부탁했던 카페 나루의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니. 아까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을 때 유리오는 케이크를 사다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 길로 가게로 가 남아 있던 케이크를 통째로 사 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가끔 유리오에게 케이크를 사다 주는 건 내 즐거움이었는데.


찬장에서 과도를 꺼내 케이크를 반으로 잘랐다. 포크를 찾아봤지만 내 방에 포크 같은 건 없었다.


"스푼밖에 없군."


케이크의 맛이 내 기억 속에 있던 것과 같은지, 다른지 나는 분간하지 못했다. 그저 음식을 남기는 게 싫은 사람처럼 절반을 먹어 치웠다.


내가 스푼을 다시 내려놓았을 때, 내 방에 있던 통신기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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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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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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