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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60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2.01 00:0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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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결착

DUMMY

"그걸 왜 이제야 내게 말해주는 거지?"

"계획을 포기했거든요."


자나의 목소리는 전시실 안쪽에서 들렸다. 이전에는 그 안에 자나의 새로운 몸이 들어 있었지. 예비용으로 만들어 둔 신체를 이번에 사용했으니, 새로운 몸을 만들었을까?


"무슨 계획?"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나고 저는 그 사람의 영혼이 파괴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리고 제가 그걸 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도."

"그렇게 레몬을 만들지 않았나? 컨테이너에 있던 그 인형도."


그 인형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어쩌면 지금 당장 자나의 목을 비틀어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죽지 않는다 해도, 이 인형의 집 자체를 불태워 버리면 비슷한 걸 만들 수 없겠지.


"레몬을 처음 만들었을 때 정말 감탄했죠. 제 평생에 걸쳐 그것보다 멋진 걸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레인스터에도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였으니까요."


나는 몸을 일으켜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두꺼운 카펫, 커튼으로 단단하게 가려진 전시실 안에는 평소처럼 몇 개의 유리 케이스가 서 있었다. 그 안에 든 인형들의 모습은 내가 마지막으로 여기 왔을 때와 똑같았다.


"레몬은 확실히 엄청난 작품이었어. 그걸 너 혼자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인간이, 그러니까 이쉐 알첸브라임이 저와 함께 레몬을 만들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그 사람은 재료를 제공했을 뿐이니까요. 제가 만든 요리에 그라필라 알이 들어간다고 해서, 그 요리를 그라필라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재료는 네 소유가 아니었잖아? 너 혼자서 그 재료를 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그건 전적으로 너 혼자만의 공이라고 할 수 없지."

"그렇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자나는 가장 커다란 유리 케이스 앞을 서성였다. 그 케이스는 비어 있었다. 아마 얼마 전까지 거기에 그 녀석이 들어 있었겠지.


그 녀석. 이쉐 알첸브라임의 젊은 시절을 빼다 박은 것처럼 생긴 그 인형은, 걸어 다니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레몬보다 강한 인형을 만들었지? 그건 혼자서 사월을 멸망시킬 수도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


"간단합니다. 영혼의 함량을 늘리면 되죠. 그런 엄청난 게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사라져 버렸다니,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그건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고."


"그래요, 이엘 씨. 이번에는 제가 졌습니다. 그건 분명히 해 둬야겠어요."


자나가 허리를 굽혀 짐짓 과장된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최악의 인형을 완전히 파괴했다. 그게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달이 죽을 뻔했고, 나 역시 팔이나 다리, 아니면 눈 하나 정도는 잃을 만한 위기가 있었다.


"왜 하필 그날 거기로 그런 걸 보냈지?"

"알고 계시면서 굳이 물으시는 이유는 뭔가요?"


그 얼굴에 떠오른, 싱그러운 미소를 보니 속이 메스꺼워졌다. 정말 누군가를 해치려고 했군. 그 목적은 아마 나였거나, 어쩌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교단에서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나고 나서, 하루하루 새로운 나날이 펼쳐졌었죠. 그 사람은 마치 걸어 다니며 보석을 흘리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그 비슷한 내용의 동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닳고 파괴된 채로 껍데기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고?"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니까요, 영혼의 조각이."


자나는 문득 전시실 구석에 있는 케이스 하나를 가리켰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인형들에 비하면 조악한 수준의 인형이 가만히 그 안에 서 있었다.


"저렇게 평범한 인형도, 진짜 인간의 영혼이 있다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죠. 이쉐 알첸브라임처럼 강한 인간의 영혼이라면 인형 역시 강한 인형이 되고요."


"그걸 만드는 것 자체가 네 목적이었나?"

"무슨 뜻이죠?"


"그런 강력한 인형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 리 없잖아. 그걸 만들어서 뭘 하려고 했는지 알아야겠어."


"당신을 해치려고 한 것 외에도요?"

"왜 갑자기 솔직하게 말할 마음이 들었지?"


끼이익, 하고 오래된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나가 유리 케이스 아래에 있는 서랍을 여는 소리였다.


"아까 말한 것처럼,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신과 관련된 계획은 이제 포기했으니까. 충분한 이유가 되나요?"


서랍 안에는 나무로 된 칸막이, 칸 하나하나마다 눈알이 잔뜩 들어 있었다. 색이나 크기별로 구분해 놓은 모양이군. 자나는 그 안에서 제 눈알과 똑같이 생긴 안구를 두 개 꺼냈다.


"나와 관련된 계획이라는 건?"

"그건 차마 말 못 하겠군요. 그걸 말했다가는 정말 저를 죽일지도 모르니까."

"지금까지 한 일들로는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건가?"


사람들은 제국 사냥꾼이 살인에 대한 면책 특권을 가진다는 걸 모르는 걸까. 내가 여기서 자나를 살해하고 빠져나가도 나는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물론 그 살인이 계시와 부합하는지 안전사냥부에서 감사를 나올 수는 있겠지만, 나는 거기에서도 떳떳했다.


뭐,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레몬이 대적을 신청할지도 모른다는 거지만. 그러고 보니 레몬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레몬은 어떻게 되었죠?"

"내가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내 스승은 자신을 빼닮은 인형을 파괴하려면 자신을 쏘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서 그 사람을 쐈고, 그 최악의 인형은 거기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최악의 인형만큼은 아니지만,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원본의 영혼을 이어받은 레몬은 똑같이 파괴되었을까?


"그 끔찍한 인형과 레몬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 그러니까, 영혼의 함량이라거나. 작동 방식이라거나."


"레몬에게 들어간 게 한 스푼이라면, 2호에게 들어간 건 한 솥 정도겠군요."

"한 솥이라고?"


그런 걸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 있었다니. 나는 자나의 말마따나 인간의 영혼이 한 스푼 들어갔을 뿐이라는 레몬이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버렸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한 솥이나 들어갔다는 그건 아무리 봐도 인간 같지 않았어. 그 두 인형은 단순히 재료의 함량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니었다. 전혀 다른 물건일 게 틀림없었다.


"당신이 이쉐 알첸브라임을 살해했을 때, 2호는 영구적으로 파괴되었죠. 저도 왜 그렇게까지 되는지는 모릅니다. 영혼의 함량이 높을수록 원본에게서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만 알 뿐이죠."


"그렇다면 레몬은 원본의 죽음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는 건가?"

"그렇죠.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력만 충전한다면 다시 이전처럼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너한테서 알고 싶었던 것들은 이게 끝이군."

"그럼 이제 제 머리를 날릴 겁니까?"


자나는 여기저기에 있는 수납장이며 서랍 같은 걸 열어 재료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재료는 텅 비어 있는 가운데의 유리 케이스, 그 최악의 인형이 들어 있던 자리에 넣었다.


일류 인형사라고 하기에 재료를 굉장히 전문적으로 보관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대충 쑤셔 박아 놓다니.


"네가 하나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난 지금 총이 없어."

"어라."


자나의 동작이 멈췄다. 그는 내 허리춤, 정확히는 원래 내가 총을 차고 다니던 부분으로 시선을 보냈다. 정말 허전하게 텅 비어 있었다.


"다시 총을 두고 다니기 시작하신 건가요?"

"잃어버렸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쯤 할까. 나는 인형 재료를 갈무리하는 자나를 내버려 두고 전시실을 나섰다. 제국 사냥꾼 제1호를 살해한 남자. 당분간은 이게 내 다른 이름이 될 터였으니, 상당히 바빠질 게 뻔했다. 이런 데서 더 낭비할 시간은 없지.


"정말이라고, 그러니까 나한테 총 맞을 일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자나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나를 따라나섰다. 배웅이라도 하려는 건가? 모든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까지 굳이.


나는 인형의 집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자나가 조심스레 몸을 내밀어 내게 인사 비슷한 걸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려고 했을 것이다.


내 차 안에 숨어 있던, 검은 머리칼의 소녀는 마치 번개 같은 속도로 튀어 나갔다. 소녀가 자나의 배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새서림의 조용한 마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원한 쌓을 만한 일을 많이 했으니, 다른 사람한테 총을 맞는다고 해도···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겠지만."

"···알첸브라임."


자나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인간과 똑같은 구조의 신체를 만드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배에 총을 맞는다고 해서 망가지지는 않겠군.


소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내 자나의 머리가 문 앞을 굴렀다. 나는 소녀가 검을 뽑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고, 자나. 너는 묘하게 나와 내 스승을 이간질하려 들었어. 내 스승이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나를 살해하려고 했다거나, 네 육체를 파괴해서 너를 죽이려고 했다거나."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당신을 속여야, 다른 사람들 역시······."

"거짓말이지. 너는 내 영혼을 파괴하고 싶었던 거야. 마치 내 스승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영혼의 조각을 이용해서 다시 인형을 만들기 위해서."


계획이라고 했던 건 이걸 말하는 거겠지.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더 이상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스승이 너를 버렸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너를 죽이려 하고,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 악에 물들었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내 정신이 파스스 무너지기라도 할 줄 알았나?"


레몬이 없었다면 그 노림수에 곧이곧대로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쉐 알첸브라임의 영혼이 위태로울지언정 결코 완전히 어둠에 물들지는 않았다는 걸, 레몬을 통해 알 수 있었으니까.


"인형의 집을 통째로 태워 버리면, 복구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 자나."

"그런 짓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우선, 여기에는 높은 수준의 결계 마법이······."

"그런 건 없어. 실비나가 여기 왔을 때 해제해 달라고 말했으니까."


바닥을 뒹굴고 있는 자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때 인형의 집을 수리하러 온 마법사가 왜 실비나였는지도 좀 더 진작 궁금하게 여겼어야 했는데.


아무리 훌륭한 인형사라 할지언정, 제국 고위 마법사에게 제집 수리를 맡길 수 있을 리 없지.


"실비나는 네가 겪은 사고를 진심으로 유감스럽다고 여기고 있었어. 제 언니 대신 자기가 너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바람직한 사고의 흐름이냐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비나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나니까, 내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거든."


옆에 서 있던 소녀가 커다란 통을 질질 끌고 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기름통이었다. 나는 도달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를 꺼내, 시험 삼아 불을 켜 보았다.


"왜 도망치지 않았지, 자나? 정말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건가? 나에 대해 무슨 소문을 들었지? 사람을 죽이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좀처럼 움직이고 힘을 쓰려 들지 않는다고?"


자나가 무어라 소리치려 했을 때, 나는 그 머리를 밟아 부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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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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